【카드뉴스】“소름끼치도록 떨린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전자발찌 7년, 신상공개 및 고지 명령도 받아
여신도 강간치상, 준강제추행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JMS(기독교복음선교회)의 교주 정명석 씨가 이달 만기 출소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법원이 정 씨에게 전자발찌 착용과 신상공개 및 고지 명령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 ▲정명석 씨(출처: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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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착용 명령과 신상공개 및 고지 명령은 각각 다른 법원에서, 다른 날짜에 내려졌다. 대전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0월 19일, 정명석 씨의 출소 후 정 씨에게 전자발찌를 채워달라며 대전지방법원에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청구했다. 대전지법은 11월 30일, 부착 명령 청구를 인용했다. 정 씨가 전자발찌를 착용해야 하는 기간은 7년이다.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피부착자가) 피해자 등 특정인에의 접근금지, 야간 등 특정 시간대의 외출 제한 등의 규정을 위반하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최소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신상공개 및 고지 명령은 이보다 앞선 2015년에 결정되었다. 2013년 12월 23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정 씨의 신상공개 및 고지 명령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청구 했다. 중앙지법은 2014년 12월 16일, 청구를 인용했다. 정 씨가 항고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지만 2015년 1월 5일, 항고를 취하했다.
정 씨는 출소 후 20일 이내에 실거주지를 정해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경찰은 법무부에 정보를 전달하고 법무부는 다시 여성가족부에 전달해 성범죄자 알림 사이트에 신상공개 및 고지를 하게 된다.
정 씨의 전자발찌 부착 소식을 들은 탈퇴자 A 씨는 “JMS에서는 정명석 씨를 재림주로 믿으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고 말한다. 여신도를 상습 성폭행하고 전자발찌를 차게 된 자칭 메시아 정명석 씨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퇴자 B 씨는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정 씨를 여신도들로부터 철저히 격리조치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퇴자 C 씨는 “종교라는 가면으로 전자발찌를 찬 그의 추악한 본 모습이 감춰지지 않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구원파’라고 알려진 이단이 있다. 구원파 하면 세월호를 떠올리며 유병언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성경세미나와 마인드 교육을 내세우는 박옥수를 생각하는 이도 있다. 구원파는 한 단체를 지칭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적인 구원파로는 권신찬·유병언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박옥수 구원파(기쁜소식선교회, 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 구원파(생명의말씀선교회, 대한예수교침례회)를 꼽는다. 정통교회는 이들이 구원에 대해 잘못된 교리를 견지한다며 ‘구원파’라고 이름을 붙였다.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다”
이요한 구원파는 구원에 관한 교리뿐 아니라 종말론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특히 이요한 씨는 “우리는 죽지 않고 에녹처럼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날짜를 정한 시한부 종말론은 아니지만, 시한부적 종말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설교하는 이요한 씨(생명의말씀선교회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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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0일 주일 집회
우리는 죽지 않고 에녹처럼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이 확실합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지 않는다면, 지금 연세 많은 분도 조금만 건강하게 사시면, 아마 에녹처럼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이루어질 징조는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말입니다.
2015년 8월 16일 주일 집회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조금 더 건강하게 사시면 연세가 높으신 분들도 아마 에녹처럼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어요.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
이요한 씨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극단적인 세대주의 종말론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징이나 비유를 현시대의 특정 사건과 때려 맞춰, 자신들만이 말세의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소위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검증 불가능한 음모론으로 공포심을 조장해 신도들을 통제하는 공통점이 있다. 종말론 이단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요한 씨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과, 짐승의 열 뿔이 각각 바코드와 유럽 연합(EU)이라며 전형적인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영생의 말씀사)에는 이 같은 왜곡된 종말론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 p. 322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는 사실, 그 준비 과정에 유럽통합이 이루어진 사실 등은 성경에 예언된 인류 역사와 관련해 볼 때 대단히 중대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 세력을 통해 세계연방정부의 통치자가 나타나기 때문인데, 성경은 그를 사탄의 앞잡이 “적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 p.256-257
끝날에 먼저 남방 왕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평화조약을 깨고 이스라엘을 향해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곧이어 북방 왕 러시아는 많은 군대와 군함을 이끌고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를 동시에 공격하고 …
『하나님께로 가는 길』, p.267.
(다니엘 11장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른다는 것은 중국의 세력이 중동에 개입함을 가리킨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더욱 광적으로 그 많은 무리를 다 쳐서 전멸시키려 할 것이며 …
『하나님께로 가는 길』, p.359
영어 알파벳 수치로 계산하여 A=6, B=12, C=18 이렇게 육연수로 계산해 가면, COMPUTER(컴퓨터)라는 이름의 수치의 합은 666이 된다. 장차 나타날 세계연방통치자 곧 적그리스 이름의 수도 666이 될 것이다.
이요한 구원파는 각종 시사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등장한 유병언 구원파와 박옥수 구원파와는 달리 유명세(?)를 치르진 않았다. 하지만 국내 213개, 해외 338개의 지교회가 있다. 이들은 전 세계 60여 국에 진출해 포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수의 유명 연예인들도 출석하고 있어 주의와 분별이 필요하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JMS의 위장행사 홍보 포스터의 제작자가 바른미디어 조믿음 발행인을 저작권 침해 및 저작인격권 침해 혐의로 고소했지만 의정부지방검찰청이 1월 19일, 불기소처분(혐의없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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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발행인은 작년 8월 23일, JMS가 알파콘서트라는 위장행사를 개최하니 주의하라는 기사를 보도하며 행사 홍보 포스터를 게재했다.
고소인은 조 발행인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된 포스터를 출처도 밝히지 않고 허락 없이 게시하여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이비의 위장 행사라는 취지의 글로 미술저작물을 저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으로 이용했다며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의자(조믿음 발행인)가 고소인의 미술저작물을 게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사적 이용 및 영리 목적이 아닌 사이비 이단 등의 종교와 관련된 언론발행인으로서, 사이비 종교에 미혹되는 사람이 없도록 예방하고자 공익적인 목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며 고소인의 미술저작물이 사용되었을 뿐,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저작인격권을 침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 발행인은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따르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제37조(출처의 명시)에 따라 출처를 명시해야 하지만 예외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방송·신문 그 밖의 방법에 의하여 시사 보도를 하는 경우에는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제26조(시사 보도를 위한 이용)다. 바른미디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를 목적으로 포스터를 사용했다”라며 “이단 사이비는 종교색을 배제한 위장행사를 통해 포교를 시도한다. 앞으로도 이들의 위장행사를 지속해서 보도하겠다”고 전했다.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서울중앙지법, 전광훈 목사의 가처분 신청 받아들여
이단성이 농후한 김풍일(현 김노아) 목사의 단독 입후보로 논란이 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 선거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오늘 오전 11시, 김풍일 목사를 놓고 찬반 투표를 벌일 예정이었지만,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 청교도영성훈련원)가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졌다.
한기총 선관위는 전 목사가 소속된 예장 대신이 한기총 회원 교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 목사에게 후보자격이 없다고 했지만, 전 목사는 한기총의 회원단체인 청교도영성훈련원의 단체장으로 2년 전에 가입했다고 맞섰다. 법원은 전 목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기총은 입후보 신청을 다시 받고, 선거일정을 재공고해 대표회장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Ⅰ. 들어가면서
기독교는 성경을 통해 계시하는 하나님의 창조와 그 창조 신앙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다. 창조는 일종의 초월(超越)이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이 세상 너머 초월자인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재자(內在者)로 자신을 계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은 내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늘 신비한 영역이다. 사실 성경의 저자들은 계시의 전달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모두 초월적 신비를 경험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 저자뿐 아니라 초월의 신비한 영역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은 사람들에게 초월의 존재와 조우(遭遇)하기 위한 신비한 체험을 꿈꾸고 추구하게 만들곤 한다.
![]() ▲조덕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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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파생된 것이 신비주의와 신비주의 신학이다. 이들 용어는 단순하게 중세 시대처럼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반성을 의미할 수 있다. 즉 넓은 의미에서 종교체험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의 모든 신학자들은 자신이 이미 경험한 바를 기록했다는 면에서 신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이 신비주의나 신비주의 신학에 대해 부정적 기류나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신비주의 속에는 유사(類似) 초월의 기록들이 혼합될 가능성이 늘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신비주의는 초월을 믿는 사람들에게 동경(憧憬)의 부분이면서도 기독교적으로는 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 밖에서도 미상(未詳)의 초월자와의 누미노제(numinose)한 체험은 늘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초월 체험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것이 늘 정통기독교가 신비주의를 경계하는 이유이다.
문제는 그런 유사 초월적 신비주의의 진위와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오해와 편견이 아닌 건전한 성경적 신비와 유사 신비를 구분할 수 있는 잣대는 없을까? 본 논고는 그런 호기심과 고민 속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기독교 신비주의의 역사를 간략하게 개관해 보고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범람하고 있는 신비주의적 현상과 요소들을 어떻게 분별하고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 특별히 성경적 창조 신앙에서 그 기본틀을 만드는 기초 작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II. 성경의 신비와 종교로서의 신비주의
성경에 신비라는 단어는 주로 “뮈스테리온”(비밀, “musterion”)으로 표현된다. 신약 공인 본문(Received Text)에 27회 나오는 이 단어는 주로 바울 서신(20회)에서 인간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계획과 측면들을 언급하는 단어이다. 즉 성경에서 “신비”란 곧 그리스도 계시와 관련된 비밀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초월적 신비는 그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든 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원사와 연관된다.
칠십인 역(Septuagint)에서 “뮈스테리온”이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시 24:14)이나 숨겨져 있는 (군사적) 전략(외경 유딧서 2:2)으로 나타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향한 계시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볼 때 기독교의 신비란 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원의 비밀과 관련된 신비가 성경적 신비의 영역이라 할 것이요 이를 벗어난 신비는 유사 신비에 속하는 악마적 영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신비가 주로 그리스도와 관련된 비밀을 말하는 데 반해 영어의 “미스티시즘”(mysticism) 등 신비주의라고 번역되는 서구 근대어는 어원적으로는 (눈 또는 입을) 닫는 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myein”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신비주의는 물질적인 세계로 초월한 통상의 표현이 허용되지 않는 영의 세계를 중심한 철학, 교리, 가르침이나 신념이나 경험을 시사하는 것으로 신, 최고 실재, 우주의 궁극적 근거 등으로 생각되는 “절대자”를 인간이 자기의 내면에서 하나님 임재의 직접적이며 친숙한 의식을 통해 체험하려는 입장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절대자는 물론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이 초월자인 동시에 내재의 세상에도 관심을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과 끝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일관된 창조–타락–구속의 계시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반면 일반 종교로서의 절대자는 자신의 인격과 세상을 향한 절대자로서의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인격성을 보이기도 하고 인격성을 숨기기도 하는 “절대자” 앞에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신비 체험을 경험하려고 몰입하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신비적 합일(uniomystica)이라는 방식의 합일체험이라고 한다. 그것은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와의 합일, 통상의 자기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과의 합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로부터의 탈각(脫却), 자기라는 틀의 돌파를 통해서만 현성(現成)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 합일은 기독교적 신비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기독교의 신비가 인격적 존재인 인간이 인격적 그리스도와 관련된 체험을 말하는 반면 이들 합일은 탈자(脫自)의 형태로 엑스터시(탈아, 망아)를 통해 개인 체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절대자”라는 것이 세계와의 합일이면 범신론의 형태가 되고 만물의 신비 속에서 체험 되면 만유내재신론의 형태가 되기도 하고 애니미즘이나 미신이나 유사종교의 형태 속에서 체험되기도 한다.
이 같은 신비주의는 기독교의 그리스도 계시로서의 신비가 아닌 말 그대로 주관적, 개인적 신비체험을 이루게 된다. 즉 기독교의 신비주의가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에 기초한 반면 세속 신비주의는 주관적 체험이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성경 이외의 또 다른 특별 계시를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기독교적 신비 체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난다면 기독교를 이탈한 주관적 체험이라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본 논고에서는 성경적 창조 신앙의 관점에서 바로 이 같은 신비주의적 요소들을 평가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III. 기독교 신비주의의 역사
1. 신플라톤주의적 합일
시카고대의 버나드 맥긴은 서방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를 다루면서 서방 기독교의 신비주의가 3, 4세기 시작되어 12세기까지 꽃을 피웠다고 보며 13-16세기를 신비주의의 개화기로 이때 신비주의의 고전적 학파들이 생겨났다고 보았다. 그리고 17세기부터 현재까지를 기독교 신비주의의 위기로 보고 있다. 이렇게 생각보다 신비주의는 그 역사와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이 역사 속에서 성 어거스틴(354-430)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신비주의 속에 관여한다.
맥긴이 3세기를 기독교 신비주의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아마 “수도자들의 아버지”인 사막 교부 안토니와 신플라톤주의의 원조 암모니우스 사카스(Ammonius Saccus, 175-250)의 두 제자였던 플라톤 철학의 종교적 해석의 달인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겐(Origen, 185-254)과 신플라톤학파의 실제적 창시자 비기독철학자 플로티노스(Plotinus, 205?-270)를 염두에 둔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안토니가 실제적 신비 체험자였다면 신플라톤주의자들은 관념적 신비주의자였다.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 물질은 정신의 산물이며 현상은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합일(合一)에 대한 신비적 열망이 나타난다. 플로티노스는 감각적 세계와 초감각적 세계 사이의 합일, 즉 인간의 혼은 탈자(脫自)를 통한 절대적 일자(一者)와의 합일을 이룬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합일의 갈망은 과학기술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비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초월자이신 신과 합일을 이룬다는 개념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신비주의 속에는 전지전능하신 인격자이신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과 플라톤적인 선의 이데아(Idea),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만유의 목적인 누스(Nous)의 개념이 혼재해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부정신학
오늘날 기독교 신비체험가들과 신비주의자들도 이런 기독교의 하나님과 철학적 하나님을 혼동하는 체험(즉 주관적, 개인적 일종의 합일의 체험)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이 같은 혼돈을 간파한 신학자가 있었다.
유대교의 알렉산드리아 신학자 필로(Philo, 주전 20-주후 50년 경)는 신은 인간 오성(understanding) 너머에 지고지순한 분이기에 무한하고 이해 불가능하며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이 신과 합일을 이룬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필로가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 개념을 초월적 하나님과 물질세계 사이의 중재 요소로 본 것과 더불어 신에 대해 인간이 단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신은 이러이러한 분은 아니다’는 식의 서술만이 가능하다고 본 것은 분명 신학에 일정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정철학에서 파생한 부정신학(negative theology)이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출신들이 그러하듯 구약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에 관심이 많던 그는 헬라 철학을 히브리적 세계관으로 종합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부정신학의 실마리 찾은 것이다.
인간의 사고 범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므로 긍정(kataphasis)에 대조되는 부정(apophasis)의 방식으로 신을 이해하려한 이 같은 방식은 6세기 아레오바고의 관원 디오니시우스(행 17:34, 僞디오니시우스)의 이름으로 저서를 유포시킨 익명의 철학자를 통해 훗날 동방정교회의 수도원 전승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위(僞)디오니시우스에 의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일체의 규정을 초월해서 선(善)이라고도 존재라고도 할 수 없다.
신은 초선, 초존재로 일체의 형용과 규정을 부정하는 것만이 신에 대한 이해의 길이다. 신을 아는 자는 “무지(無知)의 지”이어야 한다. 이 모든 부정의 길 또는 부정신학은 이후 오랫동안 신비신학의 방법론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익명의 저술가인 위디오니시우스는 아빌라의 테레사와 더불어 “신비 신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1520년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유명한 책 『교회의 바벨론 유수』에서 이 익명의 위디오니시우스를 유해한 인물이라고 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3. 중세 신비주의
중세의 스콜라신학에서도 마지막 교부로 불려진 클레르보의 베르나르(1090-1153),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이자 전기 작가인 보나벤투라 등 많은 교부 신비주의자가 나왔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까지 이어진다.
이들이 신비주의 속에서 발견한 것은 주로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합일이었다. 13세기 말, 14세기 초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년 경-1327)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근세 초기에 이르기까지 큰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이들 중세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본성에서 사랑을 가장 중심의 영성의 길로 보았다는 것은 신비주의가 영혼의 내적 생활 중심으로 궤도를 이동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의 합일이 곧 영혼과 로고스 사이의 영적 결합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 같은 영적 합일의 길은 에크하르트에게서 좀 더 신의 본질에까지 접근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하지만 내재의 인간이 초월의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격적 만남의 길이 어두워질 때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으로부터 신성으로 바뀌게 점점 더 초월자와의 만남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러한 몸부림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로 국내에 많이 알려진 토마스 아 캠퍼스(Thomas a Kempis, 1380-1471)의 저작들에까지 이어진다,
16세기가 되면서 종교개혁에 반응한 카톨릭 개혁운동으로서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1515-82)나 십자가의 요한 등 스페인 신비주의에서 절정을 이룬다:
“나는 이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을 때로는 초보적인 형태로, 그리고 배우 순간적으로 경험하곤 했다. 그리스도에 대해 묘사할 때, 심지어 그리스도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나는 예기치 않게 하나님이 임재 의식을 경험하곤 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었다는 것, 혹은 내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것을 결코 의심할 수 없었다. 이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신비 신학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신비주의를 넘어 테레사는 신비주의가 신학의 영역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이들 중세 신비주의자들은 합일만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합일을 갈망하면서 믿음과 참회와 십자가 고난에의 참여를 통한 거룩을 향함이 분명 있었다. 그 후 신비주의는 프로테스탄트의 정통주의에 대응하여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친 경건주의 운동 속에도 나타났다. 이 운동은 종교의 본질을 직관(anschauung)과 절대의존감정에서 찾으려 했던 슐라이어마허에 까지 이어진다. 이들 신비주의자들이 사용한 신비 체험의 술어들은 주로 연합(union), 관상(contemplation), 하나님의 환상(vision of Gom), 신성화(deification), 영성 속 말씀의 탄생(birth of the Word in the soul), 엑스터시(ecstasy), 의식(consciousness), 임재(presense) 같은 단어로 나타났다. 참된 신의 현현(theophania theou)을 체험하기 위한 신비주의자들의 열정과 달리 이렇게 신비주의는 복음과 성경 밖 초월의 경계선 상에서 늘 위태로운 영성 체험을 추구하였다.
4. 성경 속 신비
성경 속 예수와 바울을 신비주의의 영역 속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예수의 사역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특별히 예수 공생애 이적에 나타난 계시는 예수가 먼저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계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스스로 ‘내가 창조주이다“라는 식의 공표를 한 적은 없으나 스스로 신성을 가진 존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표적의 책인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17번의 ‘표적’이라는 단어 중 11번은 예수의 기적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 공생애 첫 사역의 갈릴리 가나 혼인 자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이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조의 기적이었다. 오늘날 과학 기술의 관점에서 ”자연은 영원히 과학에 순종“해야 한다. 그게 과학의 기본 원리이고 과학자들의 암묵적 합의이다. 자연이 인과(因果)의 법칙 안에서 과학에 순종하지 않을 때 모든 과학은 그 실험과 법칙의 규율을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은 오늘날 생화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초월의 사건이다.
이 공생애 최초의 이적인 요한복음 2장의 사건은 예수를 삼위의 제 2위 이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만든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다. 즉 이것이 기독론의 중심이다. 초대 교부 이레네우스가 그리스도와 성령을 말씀과 하나님의 영 즉 우주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두 손이라고 표현한 것도 창조가 삼위일체의 사역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부 신비주의자들이 이 창조주 하나님의 고유한 창조 사역을 자신의 주관적 체험 속에 끌어오는 경우가 있다. 비록 주관적 체험이라 그 진위를 평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성경 속 신앙과 신학의 고유한 전승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체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공생에 기적을 창조 사역으로 시작한 것은 단순히 자신을 창조주로 계시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창조주만이 영원히 무너진 이 인간과 피조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 오직 전지전능한 초월자만이 내재의 세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창조는 철저히 창조주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신비주의자들은 창조와 구속으로 이어지는 이 초월적 사역 속에 끼어들어 자신이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신비 체험 속에서 남들과 다른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 시키는 경우 신앙의 위험한 한계를 단숨에 넘어버리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5.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
바울이 묵시적으로 삼층천에 올라갔다는 기록(고후 12:1-6)이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지적한 최초의 인물은 스톨츠(Anselm Stolz, 1900-1942)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신비주의자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접근한 인물은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렸던 신학자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였다. 슈바이처는 인간이 지상적인 것과 초지상적인 것,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이의 단절이 극복된 것으로 보고, 아직은 지상적이고 시간적인 것 안에 존재하지만 자신이 초지상적인 것과 영원한 것 안에 들어가게 됨을 체험하게 됨을 체험하는 모든 것을 신비주의로 보았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메시아적 통치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예수의 선민들의 부활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만큼 성례와 윤리, 율법, 칭의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모두 종말론적이며 신비주의인 것이다. 원시 종교에 나타난 원시적 신비주의가 마술적인 반면, 인류가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깊은 사유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는 좀 더 고도화한 철학(플라톤, 스토아,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헤겔 등)이나 힌두교의 브라만(Brahman)이나 부처(Buddha)에게서 보이는 신비한 요소를 사유 신비주의라 하였다. 슈바이처는 바울의 신비주의는 이 두 신비주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신비주의라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사도 바울이 받은 계시를 초월 계시와 진리로 보기를 회피하여 보다 높은 신비주의와 보다 낮은 신비주의가 혼재한 신(神)-신비주의 가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 신비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단어나 신학사(史)에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신앙과 신학의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자신의 믿음 부족을 나타내거나 신학적 미숙의 표현일 경우 신앙과 교리를 왜곡할 가능성을 지님을 늘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쉬바이처 신학에는 초월적 복음의 요소보다 내재적 학문의 향기가 난다.
Ⅳ. 신비 체험 분별을 위한 몇 가지 도구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 속에서 교회는 신비 체험에 대한 다음의 몇 가지 분별의 도구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성경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경험이어야 한다(성경론). 신비 체험이 성경의 하나님, 창조, 타락, 구속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근본적 틀을 허무는 작은 여우(아 2:15)가 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주관적 체험이 자신과 이웃의 신앙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 성경적 기독론을 훼손하는 체험은 아닌가를 살펴야 한다(기독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대한 복음적 기독교 교리에 탈선을 일으키는 신비적 체험은 조심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기독론에 대한 도전은 성경에 대한 훼손이요 믿음의 반역이다.
셋째,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용 가능했던 신비 현상이나 체험인가를 보아야 한다(교회사와 교리사). 기독교 역사는 많은 신비적 현상과 개인적 체험들에 대해 그 진위를 평가하여 왔다. 개인의 신비 체험이 이 역사적 평가의 기준들을 넘어가게 될 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불순한 체험일 개연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소위 “금가루 현상”에 대해 서철원 박사가 기독교 역사상 그런 신앙적 체험은 없었다고 단언한 것을 주목하라.
넷째, 성경의 틀을 벗어난 첨삭된 특별 계시적 체험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계시론). 인류를 믿음으로 인도하고 구원에 이르는 근본적 계시(특별 계시)는 성경 속에서 이미 모두 완성된 것이다. 신비 체험이 이 계시의 영역을 넘어 새로운 특별 계시를 들고 나온다면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구주, 새로운 성경(몰몬경, 통일교 교리 등)의 첨삭은 결단코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다섯째, 성경이나 정통 교리보다 신비적 감정이나 체험이 앞서거나 기타 교리적 논쟁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낯선 단어를 분별없이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보아야 한다. 성경은 은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들뜬 흥분 같은 은사가 다가 아니다. 은사는 반드시 그 성경과 그 열매로 판단 받아야 한다. 또한 신비 체험이 새로운 낯선 단어들을 창출해내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교회는 성경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신학적 용어에 대해 치열한 논쟁과 토의를 거쳐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교리를 구성하여 왔다.
비록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에서 다양한 단어들이 탄생하였더라도 이것들을 새로운 신학적, 교리적 용어로 활용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마리아 염색체와 DNA, 예수의 염색체 숫자, 마리아의 월경, 왕의 기도, 신사도, 빈야드 운동, 구도자 위주의 열린 예배, 제2 선민론, 제 2 히브리민족 등과 같은 성경적으로 낯선 단어들이 신비주의와 결합할 때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불순한 폭발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신학 전개에 있어 낯선 용어의 사용은 성령의 사람들 가운데 치열한 신학적 논증 속에서 달궈져서 그 진위를 평가 받은 다음 정금같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도구를 통해 최근에 대두된 주요한 현대 신비주의 현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Ⅴ. 현대 기독교 신비주의 평가
1. 성경적 창조론과 신론
(1) 영지주의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헬라어로 ‘지식’, ‘앎’ 등의 뜻을 가진 그노시스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영지주의는 일종의 우주론적 이원론으로 우주는 영적 세계와 악한 물질 세계로 구분되며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거나 여타 종교를 통해 구원 받는 게 아니라, 신비한 지식을 통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본다. 그 특별한 비법, 특별한 지식을 바로 영지(그노시스)라고 부른다.
영지주의가 언제 어떻게 발생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일치된 견해가 없다. 기독교와 무관한 종교 현상이라는 설과 유대교 이단이나 유대교 이탈 집단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그랜트(R. M Grant)는 영지주의가 주후 70년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후 전통적 종교적 관념들(유대적 관점과 기독교적관점들)이 철저히 파괴된데 대한 반응으로 생겨났다고 보았다. 반면에 영지주의를 신비적 체험에 대한 글을 담고 있는 일련의 운동으로 본 사람은 영국 학자 도드(E. R. Dodds)였다. 예루살렘 히브리대의 유대 신비주의 학자 게르솜 스콜렘(G. C. Scholem)은 유대적 영지주의가 신비적 명상과 실천을 포함하고 있다는 도드의 견해에 동의한다.
자유주의 신학자 하르낙이 『교리의 역사』(History of Dogma)에서 영지주의자들을 최초의 신학자라고 부른 반면, 성경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일련의 글들과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한 자들이 있음을 사도 요한이 언급(요일 2:22; 4:2,3)하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초기 사도들에게 있어 영지주의는 골칫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지주의에 대한 자료들은 순교자 저스틴, 이레네우스,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키프로스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315경-403) 등의 저서에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이레네우스의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에 잘 나타나 있다. 초대교회 훌륭한 교부였던 이레네우스(Irenaeus)는 소아시아 태생으로 이단 논박은 그가 거의 10년 간에 걸쳐 썼던 책으로 모두 5권으로 되어있다. 그는 성경과 아울러 헬라 철학과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로 특별히 사도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이 그의 스승이었다. 그가 영지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사도 시대로부터 영지주의가 기독교에게는 위험한 종교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잉게(Dean Inge)는 “영지주의는 익기도 전에 썩어버렸다”고 했던 것이다.
교부들은 마술을 행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사마리아의 시몬(Simon Magus, 사도행전 8장)을 최초의 영지주의자로 간주한다. 그는 스스로 신이라 칭한 사람이었다. 불트만은 요한복음이 만다야교의 것들과 유사한 전승들을 실은 초기 영지주의 문서를 개작(改作)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구속된’ 구속자에 관한 기독교 영지주의 신화에 의존한 문서라고 본다. 그래서 불트만은 신화로 얼룩진 책인 성경을 제대로 보려면 신화를 제거하고 비신화화(Entmythologisierung, 非神話化)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영지주의의 경향은 기독교의 신론과 창조론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영지주의는 사람들이 천상에서 온 존재임을 모르며 육체에 대해 신성의 불꽃들이 특정한 영적 개인들의 육체에 갇혀있다고 본다. 영지주의가 그리스도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영지주의에서는 그리스도를 성육신한 하나님이라든가 십자가 고난이 인류의 대속 사역이 아닌 영지의 사명을 띠고 오셨다는 주장을 통해 기독론조차 속상을 입히게 된다. 기독론의 손상은 구원론에도 당연히 영향을 준다. 영지주의는 구원이 믿음이나 행위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영지주의에서 보는 구원은 단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참된 본질을 아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오늘날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리즘 속에서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2) 창조과학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은 헨리 모리스(H. M. Morris)를 원조로 하는 성경 해석 운동이다. 주로 우주와 지구 창조 연대에 대해 6천년 내외와 창세기 대홍수 단일격변설을 중심으로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시도해 온 종교 신학적 운동이다. 필자는 지난 80-90년대 한국의 창조과학운동의 간사로 사역하여 왔다.
이 때에도 창조과학 운동은 신앙 속 낯선 언어인 “창조과학”이라는 어원에 대한 논의를 창조과학 운동 내부 안에서 꾸준히 지속하여 왔다. 그만큼 신앙의 운동이 신앙의 낯선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분명 부담을 가진 행동이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반증주의적 관점에서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반증 가능해야 함에도 창조는 초자연적 절대자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반증불가하다. 즉 창조와 과학이라는 두 단어는 초월과 내재라는 속성 사이에서 늘 충돌한다. ‘아버지’인 ‘어머니’처럼 두 단어는 정면으로 만나면 안 되는 단어인 것이다.
이 같은 창조과학의 딜레마는 늘 창조과학이 두 가지 잣대로 창조와 과학의 문제에 접근한다는 평가를 받게 만든다. 즉 과학이 유리하고 필요할 때는 과학의 논리를 사용하다가 과학의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한다. 틈새를 메우는 하나님(또는 성경)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창조과학에 대해 신학적 측면에서 성경신학적 해석학에 무지하면서도 저돌적이라고 비판 받고, 과학계에는 근본적으로 과학 단체가 아닌 신비주의 신앙 단체라는 지적을 당하는 것이다.
창조과학이 젊은 우주와 단일 격변론에 대한 성경적 신뢰를 바탕으로 성경에 대한 독특한 해석의 잣대와 과학적 해석이라는 두 가지 잣대를 오고가는 것은 분명 신비주의적 경향을 말한다. 이 같은 창조라는 초월의 신비와 과학이라는 내재의 잣대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늘 창조과학 운동이 딜레마 속에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신비주의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마크 놀이 창조과학은 “성경과 관련해서는 베이컨주의를 잘못 적용했고, 자연과 관련해서는 베이컨주의를 포기했다”는 지적을 옳았다.
과학적 무리한 해석은 ‘그건 하나님이 하셨으니까’ 라는 한 마디로 모두 무마된다. 예를 들어 성경적으로 우주는 지구 중심이므로 먼 우주의 별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태양보다 수만 배 큰 천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관심 밖이다. 왜? 외계생명체는 있을 수 없으니까. 아니면 우주가 그렇게 광활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그렇게 먼 곳에 그렇게 수많은 별들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 지구 중심의 하나님이시니까. 아마 별들은 수억, 수천만 광년이 아닌 빛의 속도로 가도 수천 광년이면 갈 수 있는 실은 아주 가까운 곳에 박혀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위대한 책이므로 답이 없을 리 없다. 외계인은 당연히 없는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한 답은 모른다는 것이 답이다. 그렇게 알고 믿음 가운데서 기다리면 된다. 모른 다는 것이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것일까? 성경을 믿던 갈릴레이 이전의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태양계 시스템이 있고 지구는 그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갈릴레이 이전 사람들이 믿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하늘과 별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엄위하심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실체라고 왜 말할 수 없는가. 최근까지도 지구 밖에는 절대 물이 있을 수 없다는 쪽에 창조과학이 집착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성경해석에 대한 미숙한 대처를 보여준다.
성경문자주의는 성경선민주의자가 되어 버리는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 충성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창조과학에 대한 충성이 맹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는 예수의 충성스런 사람이었다(요 18:10).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행동이었다. 베드로는 십자가 고난은 결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역설하여 예수님께 ‘사단’이라는 책망을 받는다(마 16: 23). 창조과학은 과학에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신앙과 그에 따른 바른 신학에 길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 먼저이다. 즉 창조과학도 신학의 일종임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3) 지적설계
20세기 후반 창조과학의 대안으로 시작된 지적설계에서도 창조과학과 유사한 신비주의가 보인다. 설계와 설계자이신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지적설계라는 말은 창조과학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새로운 낯선 단어인 것이다. 창조과학과 달리 지적설계는 설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충성심이 감추어져 있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속에서 설계의 강조는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설계자가 누구인가? 왜 인격적인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하필 지적설계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지적설계는 유대인의 유일신, 힌두교의 창조신, 이슬람의 유일신, 조로아스터교의 신, 영지주의의 신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한 그 설계자는 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과정에서 짜증나는 모기와 징그러운 쥐들을 창조하였으며 지카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로 애꿎은 아이들을 구제불능의 심각한 장애인으로 만드는가? 그 지적설계자는 왜 우주를 쓸데없이 불필요하게 그렇게 크게 만들어서 인간에게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가? 그 설계자는 왜 악마를 창조했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안에 왜 돌이킬 수 없는 악을 넣은 것인가?
결국 지적설계도 새로운 낯선 단어를 만들어내기는 하였으나 신학의 문제로 환원 되어버렸다. 신앙과 신학이 함부로 새로운 낯선 단어를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는 지 지적설계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신학이 교회의 시작부터 사용해 온 그대로 ‘창조’, ‘설계’, ‘섭리’, ‘보존’과 통치라는 말로 충분하다.
2. 기독론
이단들이나 사이비의 신비 체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모든 신앙 교리의 훼손이 일어나는 데 특별히 기독론의 문제를 일으킨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나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들이 기독론을 손상 시키는 것은 교주의 주관적 신비 체험에서 비롯된다. 개혁교회는 항상 성경 자신이 곧 성경해석자였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또한 어거스틴이 서방 기독교 신비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어거스틴이 정통 신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그의 신비한 목표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그리스도 중심적이요 교회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와 모두를 향한 신비한 그리스도의 “사랑”(caritas)과 관련된다.
그런데 몰몬교의 창시자 요셉 스미스(Joseph Smith)는 다르다. 그에게는 새로운 초월적 해석이 주어졌다. 제 7일 예수재림교에서 엘렌 지 화이트는 모세와 같은 특별한 계시를 받은 여선지자이다. 이렇게 될 때 성경의 특별 계시는 일반 계시보다도 못한 상대적 계시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성경을 이탈하여 기독론을 손상 시키는 신비 체험을 가지고 신자들을 현혹하는 일은 금물이다. 이들이 개혁신학이나 어거스틴과 다른 이유이다.
3. 구원론
기독론의 손상은 필연적으로 구원론의 손상을 가져온다. 무함마드의 계시에서 비롯된 이슬람교가 예수를 이슬람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계시를 통해 예수가 아닌 무함마드를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로 본 것은 이슬람이 근본적으로 기독교 이단들과 다를 것 없는 성경에서 이탈한 종교임을 보여준다. 예수를 선지자로 격하 시키면서 모든 구원의 도를 무산시켜 버리며 이슬람은 새로운 계시인 꾸란를 통해 성경 전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슬람의 이 같은 복음 아닌 ‘내가복음’, ‘자기복음’의 행태는 이단들의 ‘자가 복음’ 형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4. 교회론
조지 폭스(George Fox, 1624-91)로부터 시작된 초기 퀘이커교는 가견적 교회의 배교(딤후 3:1-5)를 통해 외형적 신앙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우주의 내면의 빛(요 1:9-18)만이 그리스도께로 가는 유일한 길로 보았다. 당연히 교회의 성례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순결한 내면의 예배에 부적절한 옛 언약의 잔존물이라 하여 배척당하였다(요 4:24). 교회와 더불어 빛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전가된 의와 전적 부패와 삼위일체 같은 교리들도 모두 부정되었다. 오직 퀘이커 교도만이 “빛의 자녀들”이요 “진리의 친구들”이었다. 다른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보이듯 이들도 자신들만이 특별한 빛을 받은 선민들이요 자신들은 오직 조용한 기도와 참 빛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직접적 은혜의 설교를 체험한 신자들이었다. 보편적 빛의 교리를 찾아 퀘이커들도 분화되었으나 그 근본은 교회론을 이탈한 신비주의적이었다.
5. 종말론
신비주의적 종말론은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시한부 종말론에서 문제가 된다. 시한부 종말론은 세대주의를 근간으로 파생된 종말론이 하나라 할 수 있다. 세대주의는 주로 인류 역사의 세대 구분과 문자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본으로 한다. 대개 6-7개 세대로 구분하는 세대들은 1천년을 기본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시한부종말론의 딜레마에 다다르게 된다. 이 같은 세대 구분은 젊은지구론의 창조과학과도 커넥션을 가질 수 있는 데 쥬영흠 박사가 창조과학 운동을 세대주의적이라고 한 것이나 마크 놀이 창조과학을 과학적 세대주의라고 한 것이 모두 이 두 운동의 종말론이 서로 창조 연대 6천년이라는 일치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문자적 천년왕국을 믿는 세대주의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조바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재림에 대한 무리한 소망은 재림의 재촉과 초조함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세대주의적 갈망은 종말에 대한 간절한 기도 속에서 신비주의적 합일의 체험을 주장하는 일부 종말론자들을 양산하게 마련이다.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해석하여 이스라엘 독립의 해인 1948년에 희년이나 70년을 합산하여 1992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18년 등 재림과 휴거를 갈망하는 시한부 종말설 등은 모두 건전치 못한 세대주의의 파급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세대주의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급박한 휴거에 대한 확신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표적으로서 신비적 체험이 동원되게 되는 것이다.
Ⅴ. 나가면서
1. 도대체 왜 속는 것인가?
(1) 착각을 즐기는 인간?
인간은 가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상이나 정보에서 어떤 특정한 규칙성이나 연관성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인식 작용을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를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한다. 1958년 독일의 정신병리학자인 클라우스 콘라드(Klaus Conrad)가 맨 처음 사용한 개념인데, 사람은 이 같은 집착 가운데서 감정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포페니아(Apophenia)는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으나 인간 인지(認知)와 사고(思考)의 오류와 착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해 왔다.
불분명하고 불특정한 현상이나 소리, 이미지 등에서 특정한 의미를 추출해내면서 나타나는 착각과 오인(誤認) 등을 나타내는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도 아포페니아(Apophenia)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는 그리스어로 ‘나란히, 함께’ 등을 의미하는 ‘para’와 ‘이미지, 형태’를 나타내는 ‘eidolon(εἴδωλον)’에서 온 말로 ‘잘못된 연상에 의한 이미지나 인식의 형식’을 나타낸다.
이런 보기는 주변에 너무도 많다. 모양과 형질의 유사성을 유사한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동양의학 또는 의학의 대체요법이라던가 꿈의 형상을 삶의 미래의 투영으로 보는 경우, 과거 달 표면을 보고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연상하거나 별들의 배치를 별자리와 신화로 이미지화 한 것, 구름의 형태를 보면서 동물이나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불분명하고 불특정한 현상이나 소리, 이미지 등에서 별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 또한 최근의 화성에 설치된 파이프 라인, 화성의 외계인 시체, 화성의 해골이나 고대 건축물들, 달 표면의 외계인 기지 등등 모호하고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자극에서 일정한 이미지와 패턴을 추출해 연관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 현상이 모두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와 관련된다.
특정한 메시지가 무의식적으로 기억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한때 음악을 거꾸로 돌려 들으면 마귀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숨겨놓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치명적 음모가 있다는 소위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 소동도 이와 관련된다.
이들 이미지는 가끔 예술적 상상력과 창작 욕구를 진작시켜 문화와 예술 등의 발전을 촉발 시킨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물체나 생각들 사이에서 어떤 연관 관계를 찾으려는 성향은 정신병과 창조성을 연결시킨다”는 피터 부르거(Peter Brugger)의 말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훗날 정신병자가 된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연관된다. 남들과 다른 이 같은 아웃사이더적인 경향이 예술적 창의성과 연관되기도 하지만 주변에 대한 망상과 환각, 착란과 같은 정신 분열 증상의 원인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2) 착각의 심리학이 신앙적 착각으로
기독교적으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독교인들도 착각에는 당연히 예외가 없다. 신앙적으로 볼 때 이 문제는 많은 부작용을 내재하고 있다. 개인의 신비 체험은 반드시 주관주의 신앙을 낳는다. 그리고 주관주의 신앙은 성경의 절대성을 허물어뜨린다.
신비체험이 강조될 때 신앙은 질서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내가복음’, ‘자가복음’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신자들 숫자만큼의 기독교 교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즉 ‘내가 예수를 보았고 내가 천국을 보았고 내가 지옥을 보았다. 하나님은 나를 절대적으로 특별 대우하시며 신비롭게 만나 주셨다‘는 착각 속에 성경의 질서를 이탈하게 된다. 내 개인적 신앙 체험이 오직 최고인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남보다 특별히 사랑해서 특별한 복이나 은사를 주셨다거나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구별된 특별한 민족이라든가 우리 학교야말로 하나님의 학교라는 등의 선민의식은 대단히 위험하다. 특별하기는커녕 선줄로 알 때 무너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우월적 착각(선민)이 아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늘 겸손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신비한 진리이지만 일개 신비주의로 변질 되어버리면 위험하다. 최근 일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관적 신비 체험, 천국지옥 체험, 길흉 예언, 점술식 기독교화 등 ‘신앙의 부채 도사화‘ 현상은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은 누미노제(numinose)한 주관적 신앙 체험을 가지고 아포페니아적 연관성을 찾아내려는 심리적 집착에서 비롯된다.
성경은 주관적 신비주의자들이 풀 듯 사사로이 풀거나 그렇게 풀 수 있는 책이 전혀 아니다(벧후 1:20-21).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논리와 체험 속에 가두는 착각과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사사 시대는 바로 영적 포스트모던 시대였다. 그 영적 사사시대가 지금 대한민국의 일부 병든 종교인들에게서 재현되고 있다. 성경과 성령의 사람들인 신앙의 정통 선배들이 역사를 통해 구축해 놓은 바른 믿음과 교리(신조)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제멋대로 가르친 일부 엉터리 신앙 지도자들의 일차적 책임이 크다.
2. 분화되고 있는 신비주의
현대 신비체험 운동은 세대주의 종말론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되고 있다. 뉴에이지, 관상 기도, 빈야드, 토론토 축복, 하늘의 언어 방언 운동, 예언 사역, 신사도, 종교 현상이 초월의 존재가 아닌 UFO나 외계인과의 조우(遭遇)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현대적 종교운동 등 새로운 유사기독교 운동들이 미숙한 성경 해석, 신학의 부재와 교리에 대한 무시 속에 성경 이탈, 새로운 특별 계시와 접목될 때 주관적, 개인적 체험이 초월을 넘나드는 신성모독의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의 신비주의적 경향들이 역사적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처럼 인간의 더러운 죄성과 정면으로 대면하여 개인적 참회와 거룩성 회복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기복적이며 타인을 향한 상대적 영적 우월감(일종의 영적 선민의식)을 조장하는 경향이 뚜렷한 점은 우려스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예레미야나 요나나 아모스나 나훔과 같은 성경의 선지자들이 참된 회개와 징계의 경고를 발한 초월 체험자인 것과 마치 특별 취급 받는 무슨 선민이 된 듯한 착각 속으로 대중들을 몰고 가는 최근의 신비주의 운동은 오히려 극렬히 대비가 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쪽이 성령의 초월적 체험이었다면 한쪽은 분명 아니다. 신비 체험을 통해 ‘신령한 선민’이 되지 않아도 된다.
“진정한 선민”은 신화와 신비에 매달려 복을 누리고 즐기려는 “영적 선민 히브리 족”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과 십자가의 영광을 알고 십자가 지신 승리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과 함께 그렇게, 성문 밖 고난 받은 예수처럼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선민인 것이다(히 13: 12-13).
편집자 주: 필자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는 김천대와 평택대 신대원 겸임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조덕영 박사 bareunmedia@naver.com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엄기호, 한기총)의 제24대 대표회장 선거에 김풍일(현 김노아, 세광중앙교회) 목사가 단독 입후보했다. 오는 30일 찬반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애초 현 대표회장인 엄기호 목사와 이파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했지만, 엄 목사가 제출한 입후보 서류에 하자가 있어 엄 목사는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다.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 청교도영성훈련원)도 한기총 회장직 도전에 나섰지만, 서류 미비를 이유로 후보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전 목사는 서울중앙지법에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 ▲김풍일 목사의 단독 입후보 소식을 알리는 한기총 공지(출처: 한기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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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기총 대표회장에 단독 입후보한 김풍일 목사는 ‘자칭 보혜사’,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동정녀 탄생 부정’, ‘신천지와 유사한 비유퓰이’ 등 다양한 이단 사설로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한기총은 홍재철 목사가 재임하던 지난 2013년 8월, 김 목사의 한기총 가입을 허락하고 김 씨를 신천지대책위원장직에 앉혔다.
예장합동은 지난해 총회에서 김풍일 씨를 예의주시로 결의했고, 올해 한 번 더 조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한기총은 지난 몇 년간 변승우(구 큰믿음교회, 현 사랑하는교회), 류광수(다락방) 등 한국의 주요 교단에서 이단으로 결의한 인사들에 대해 이단 해제를 시도하는 등의 월권을 행사해 성도들에게 큰 혼란을 준 바 있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편집자 주: 본 연재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부터 A.D. 70년 예루살렘 함락에 이르기까지 주요 왕조의 발흥과 쇠퇴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제대로 된 시장 하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던 페르시아는 메디아와 바벨론까지 흡수하며 황금의 제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에 의해 끌려온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지방화 정책을 펼쳤다. 속국을 혼혈족으로 만든 앗수르와, 포로를 나라별로 구별해 강력한 중앙 집중화를 이룬 바벨론과는 분명 다른 정책이었다. 유대인 역시 세 차례에 걸쳐 본토로 귀환하게 된다. 물론 귀국을 희망하지 않는 자들은 계속해서 페르시아에 머물 수 있었다.
초대왕 키루스 2세(고레스)이후 왕이 된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정복했다. 캄비세스 2세는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새로운 왕으로 다레이오스 1세가 오르게 된다. 다레이오스 1세의 아들이 에스더의 남편 크세르크세스(편집자 주: 영화 300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왕으로 성경에는 ‘아하수에로’로 기록)이다. 페르시아는 크세르크세스 치하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고 알려진다.
실패한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
다레이오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는 각각 두 차례와 한 차례 도합 세 차례에 걸쳐 그리스 점령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먼저 1차 침공. B.C. 492년, 다레이오스 1세는 마르도니오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육군과 해군을 지휘하여 그리스를 침공하게 했다. 그런데 변수를 만났다. 아토스 곶에서 폭풍을 만나 함대가 풍비박산 나버렸다.
헤로도토스는 “(함대는) 아토스 곶을 우회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회하는 동안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맹렬한 북풍이 덮쳐 그들을 거칠게 다루며 수많은 함선들을 아토스에 내동댕이쳤다. 300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1)라고 기록했다. 와중에 육군은 브뤼고이족 이라는 트라게 부족에게 야습을 당해 많은 사람이 전사하고 말았다. 결국 페르시아는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하지 못한 채 병력을 철수시켜야 했다.
2년 뒤 다레이오스 1세는 다시 한번 전열을 정비하고 그리스 정복에 나섰다. 아테네를 목전에 둔 마라톤 광야에 다다를 때까지 페르시아는 거침이 없이 방해요소들을 처단했다. 치열했던 마라톤 광야에서의 전투는 아테네의 승리로 돌아갔다. 전투의 정면대결에서는 페르시아가 우세했지만, 양측 날개에서는 아테네가 완승했다는 것이 헤로도토스의 기록이다.2)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 측은 약 6,400명이 전사하고, 아테나이(아테네) 측은 192명만이 전사”3)했다. 페르시아인들은 서둘러 배로 돌아와 아테네 군대보다 빠르게 아테네로 진격할 계획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아테네 군사들이 먼저 행동해 계획을 철회 할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는 2차 원정에서도 패했다.
![]() ▲살라미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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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레이오스 1세의 1, 2차 원정이 실패하고 뒤이어 왕위에 오른 크세르크세스는 2차 원정이 있은 지 10년 후인 B.C. 480년, 3차 원정길에 오른다. 16만 명의 군사와 1,200여 척에 이르는 함대. 그야말로 대군 이었다. 육지에서 페르시아의 압승이 이어졌다. 그런데 육지에서와 달리 해전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아테네는 지도자로 급부상한 테미스토클레스의 지휘 하에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이후 강력한 해군을 양성한 상태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의 해군을 살라미스 섬 인근의 좁은 해협으로 유인해 대승을 거뒀다. 이것이 소위 세계 4대(혹은 3대) 해전 중 하나로 불리는 살라미스 해전이고, 아테네는 이 해전의 승리로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해전에서 완패한 페르시아는 승승장구하던 지상전에서도 잇따라 패배해 그대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의 세 번에 거친 그리스 침공은 큰 상처만 남기고 마무리 되었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기 때의 유대인
페르시아의 초대 왕 키루스 2세 때인 B.C. 537년,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1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키루스 2세에 이어 왕에 오른 캄비세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후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이 한창이었던 다레이오스 1세 때 학개, 스가랴 등이 대적자들의 방해로 잠시 중단되었던 성전재건 사업을 완수하게 된다. 에스더의 남편이었던 크세르크세스를 뒤이어 왕위에 오른 아닥사스다 1세 때인 B.C. 458년,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포로귀환이, B.C. 444년,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다.
1) 헤로도토스, 『역사』(숲, 2009), 572.
2) 같은 책, 612.
3) 같은 책, 613.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편집자 주: 수많은 이단이 역사 속에서 발흥과 쇠퇴를 반복했다. 오늘날 교회는 교회사 속 이단을 살펴봄으로, 정통신학이 정립된 과정을 배우는 동시에 잘못된 신학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펠라기우스는 350년경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4세기 말 로마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윤리적인 삶을 접한 후 도덕적 갱신을 촉구했다. 펠라기우스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을 믿었기 때문에 당시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그를 신뢰했다”1)고 전해진다.
펠라기우스와 펠라기우스주의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펠라기우스에 대해 “교회 역사상 가장 강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킨 인물”2)이라고 평가한다. 펠라기우스의 주장에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대척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흔히 펠라기우스주의라고 불리는 이 사상이 펠라기우스 혼자만의 사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펠라기우스는 로마교회 내부의 도덕적 개혁을 촉구함으로 신학 사상보다 도덕적 개혁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펠라기우스주의는 펠라기우스와 켈레스티우스, 루피누스, 율리아누스 등의 혼합사상으로 볼 수 있다는 학자들의 연구를 무시할 수 없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펠라기우스주의는) 펠라기우스의 사상과 강조점을 일부 포함하고 있지만, 이 운동과 연계된 다른 사상들은 다른 인물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죽음과 죄의 전이에 관한 견해는 펠라기우스보다 켈레스티우스와 루피누스에게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3)고 전한다. 또한 펠라기우스는 실용주의자에 가까우며 “그런 행실을 격려하는 신학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은 인물은 오히려 켈레스티우스와 루피누스였다 따라서 어느 것이 펠라기우스 개인의 신학 사상이고, 어느 것이 이른바 펠라기우스라는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구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4)라고 밝혔다.
![]() ▲펠라기우스(좌)와 아우구스티누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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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어떤 사상을 주장했나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중심사상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었다. 목창균 교수는 “펠라기우스 사상 체계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자유의지와 인간의 책임이었으며, 그가 강조한 것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였다”5)고 전한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인간은 선과 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담의 범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며, 인간은 타락 이전의 아담처럼 죄가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즉 인간의 전적부패와 원죄를 부정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가 아니며, 아담의 죽음 역시 죄에 기인한 문제가 아닌 창조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고 보았다. 죽음을 죄의 결과가 아닌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에 따르면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죄인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짓기로 자발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6)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인간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으며 복음이 아닌 율법으로도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이신칭의 역시 부정했다. 브루스 데머리스트는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칭의는 죄악 된 습성을 극복하고 고상한 윤리적 목표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사람들과 관계된다.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칭의를 실현시킬 능력이 있으며 실제로 많은 이가 그렇게 한다고 펠라기우스는 주장했다”7)라고 밝힌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에 대해 목창균 교수는 “펠라기우스의 인간 이해는 자연주의적이고 낙관주의적인 것이 특징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행이나 악행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즉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자신의 의지 활동의 결과”8)라고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반박
펠라기우스주의는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으로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박한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만이 진정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그 후손이 죄에 대한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고 전했다. “타락의 결과로 죄에 오염되었다”9)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점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죄는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적인 질병과 같았다.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죄성은 인간을 오염시키고, “죄스러운 행위를 선호하는 본유의 편견”10)을 가진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이 선을 선택하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차이를 “인간의 상황”과 “하나님의 구원의 성격”과 관련해 설명한다.11)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간은 손상된 상태에서 스스로 그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존재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것을 부인하는 자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펠라기우스주의는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으나, 조시모 교황에 의해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런데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로마 관리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황제 호노리우스는 펠라기우스와 켈레스티우스를 로마에서 추방하려했다. 조시모 교황 역시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하게 된다. 이들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다시 한번 정죄 되는데, 이후의 펠라기우스와 켈레스티우스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전해진다.
1) 저스틴 홀콤, 『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154.
2) 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포이에마, 2011), 239.
3) 같은 책, 240.
4) 같은 책, 240.
5) 목창균, 『이단 논쟁』(두란노, 2016), 164.
6) 저스틴 홀콤, 『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159.
7) 부르스 데머리스트, 『십자가와 구원』(부흥과개혁사, 2006), 517.
8) 목창균, 『이단 논쟁』(두란노, 2016), 197.
9) 같은 책, 245.
10) 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포이에마, 2011), 247.
11) 같은 책, 251.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신천지 시대를 맞이하고 육체로 영생불사하며 이 땅을 다스리는 일이 신천지 신도들의 믿음이다. 신천지는 요한계시록 20장 4절을 잘못 해석해 순교자의 영과 하나 되어 육체로 영생한다고 믿는다. 또한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창조된 신천지 12지파와 이긴 자 이만희 씨에게만 영생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 ▲신천지 건물 안에 세워진 장례식장 배너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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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영생에 목메는 신천지에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신천지 베드로지파의 한 신천지 건물 안에 장례식장을 홍보하는 배너가 세워진 것. 광고에는 신천지 교인에게 영정사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장의용품 등을 할인해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도 수 14만 4천을 목적에 둔 지난 몇 년 전부터 곧 신천신지(新天新地)가 열리고 신인합일이 이루어진다고 신도들에게 기대감을 심었던 터라 장례식장 광고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신천지는 이 모순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