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 2019년 7월월

【한컷이단성체크】 몰몬교의 경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는 성경 외에 교리와 성약몰몬경값진 진주를 표준 경전으로 삼는다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한컷기독교핵심용어】 경건주의

 

 

 

17세기 말 독일 개신교회에서 일어난 신앙운동을 말한다. 1618년 유럽에서는 교파주의로 인한 전쟁이 30년간 벌어졌다이 전쟁으로 독일은 물리적도덕적영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이 같은 배경 속에서 개인의 신앙과 경건한 삶을 촉구한 요한 아른트가 경건주의의 불씨를 지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필립 야콥 스페너는 1675년 『경건한 소원』을 발간해 경건주의를 구체화시켰다스페너는 성경을 더 사용하고논쟁보다 경건을 중시하는 훈련과 신학 교육을 강조했다.

스페너프랑케진젠도르프 등이 대표적인 경건주의 운동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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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늬우스】 성락교회 김기동, 100억 원대 배임·횡령으로 징역 3년 선고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이단으로 결의한 김기동 씨가 지난 7월 12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김기동 씨가 성락교회를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범죄를 저질러 60억 원이 넘는 이득을 보았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아들에게 건물을 증여해 교회에 손실을 끼쳤고, 목회활동비를 사적 용도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김기동 씨 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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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이단성체크】 여호와의 증인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며세례를 받으실 때 메시아가 되었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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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기독교핵심용어】 가현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적실제적으로 오시지 않고 신성이 인간의 몸만 빌려 환상으로 보였다는 이단적 주장이다.

가현설은 초대교회가 대처해야 했던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사상이다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구원을 위한 특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분법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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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인물교회사】 테르툴리아누스


 

 

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으로 부모는 로마의 지방 총독부 백부장이었다수사학문학철학법학 등을 공부하고 법률가로 활동했다우상을 숭배하던 그는 회심 후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일에 몰두했다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고거룩함과 교회의 순결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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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인물교회사】 아나타시우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를 수행해 제1차 니케아 회의에 참석했다알렉산더에 이어 30세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예수는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아리우스에 맞서 삼위일체를 수호했다.

아리우스와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의 괴롭힘으로 약 17년을 유배 및 도피생활을 했다아타나시우스는 신약성경 정경의 목록을 27권으로 제안했고그 결과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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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교수의 강연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감과 의문

울산대 교수로서 스스로 대광고등학교 강제채플 문제의 부당성을 제기하였던 종자연에 속했던그리고 군승으로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면서 기독교에 귀의하여 불교적 세계관을 딛고 섰으며 또한 종자연에서 추구했던 그런 세속적 가치관을 벗어 내던지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갈아입었다는 주장과 함께 한국교회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혹은 <<엘정책연구원>>을 개원하고 그 영향력을 구체화하려고 하는 이정훈 교수의 강연을어떤 분의 신중한 문제의식과 함께 꼭 듣고 의견을 제시해 줄 것을 권유받은 후로일련의 동영상을 통하여 듣고 공감과 의문이라는 두 다른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X9ooXuAvrOY).  

▲유태화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우선그가 주장하는 기독교적인 가치 주장에 대하여는 개종한 뒤 매우 짧은 시간에 상당히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기독교 이해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되며 조심스럽지만 비교적 긍정적인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특별히 프로테스탄트교회의 후예로서 칼빈주의와 신칼빈주의의 신학에 대한 이해를 표준적인 가치로 삼고 기독교세계관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것에 대하여는 영육이원론적인 경향이 배태되어 있는 한국교회의 전망에서 볼 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특별히 칼빈의 자연법 사상의 진수를 잘 파악하고그리고 율법의 제3의 용도와 자연법 사이의 연관성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으면서 기독교인의 동성애에 대한 입장혹은 마르크스와 레닌적 사상체계에 대한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전개하고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인 어떻게 자연법 사상을 기반으로 비그리스도인과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협력을 도모해 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신학적 통찰에 숙연해지기까지 하였다.

다음으로그가 주장하는 마르크시스트적인 사회혁명 이론의 근간을 찾아서 맥락을 따라 그 이해의 연원과 특징을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세세한 관찰과 함께 정리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지점도 흥미롭고 또한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다이런 점에서 그의 법철학 혹은 법 사상사를 전공한 학자로서의 특징이 잘 반영된 전문적인 길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그가 잘 수행한다고 생각된다특별히 사회계층적인 전복을 꾀하는그 결과로서 기득권세력을 죄악시 하는 진영논리를 만들어 권위와 전통적 가치에 대한 기반을 해체하는 그들의 전략 전술이 결과적으로 미칠 수 있는 파괴적인 양상을 소련과 중공의 혁명과정을 통하여 세세하게 설명하는 지점은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충실한 이론을 배경으로 제안된다고 생각되어이러한 관찰에 대하여는 공감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바로 앞에서 제언한 이런 이해의 맥락을 현재 한국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현재 한국의 권력집단이 마르크시스적인 사회혁명 혹은 전복을 꾀하려고 한다는 혐의를 제기하는데이에 대하여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더욱이 이런 분석을 넘어서서 현 권력집단이 마오쩌뚱의 정치적 선동을 빌려와 청년세대를 자기의 진영으로 끌어들여기득권세력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세력 기반을 무력화시키고권위를 훼손하여 부모나 학교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꼰대로 돌리고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서 보듯이 성을 기능화 시켜서 양성평등을 넘어 동성애를 고착화시킴으로써 사회질서의 근간을 교란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유물론적인 세계관 아래 가두려는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기독교인 청년들의 집회에서는 이러한 정책의 끝은 교회를 해제하는 것인데그런 조짐이 읽힌다며 교회여 일어나라고 선동을 하는 수준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특별히 이 마지막 문단에서 전개하는 그의 논점은 두 가지 점에서 시의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첫째로현 권력집단이 과연 마르크시스적인 공산혁명을 꾀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정성 여부에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천민적 자본주의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추구해온 대한민국이 거의 물신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자본에 근거한 갑질을 일삼고 있는 시점에서개인의 사회적 기회의 평등이나 과정의 공정성이나 결과의 정의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로의 선회를 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회의 진보 과정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고현재의 권력집단은 어느 정도로 올바르게 그 길을 걷고 있는가에 대하여 일어나는 회의적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런 길을 향하여 걸음을 내딛고 있지 않은가 싶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운동을 이끄는 인물 가운데서 상당수가 과거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읽고 그런 운동에 전념했던 인물인 것은 어느 정도 감안할 여지가 없지 않으나그들이 이미 역사적인 반성을 거치고 있는 낡은 마르크스레닌마오이즘식의 사회혁명체제로의 회귀를 꾀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요 역사해석이라고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물론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역사바로세우기의 과정에서 이승만을 넘어서는 역사적 정통성에로의 몰두는 뚜렷하게 관찰되지만이것이 공화적 민주주주의의 길을 포기했다는 사실로 읽히기보다는 권위주의적인 체질을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억제하고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로의 진보를 꾀하려는 것으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듯하기 때문이다.  

▲이정훈 교수(출처: 엘정책연구원)

둘째로이런 이해를 한국교회와 연관시키면서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기획한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며이승만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에 알린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기독교인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공유하고미래의 기독교 대한민국을 세워가야 한다고따라서 좌파에 기울어진 현 권력집단에 대하여는 분기탱천하여 반대해야 한다고 젊은이를 일깨우는 강연을 하는 것에 대하여는 실로 걱정스러운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다한편으로그의 이런 평가가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도 없지 않으나다른 한편으로 지금의 변화된 역사적 시점에서 볼 때는 대한민국의 건국 연대를 1919년 3월로 잡고남북한의 통일을 기대하는 미래지향적인 한반도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좌파에 경도된 현 권력집단이 추구하는 바가 기득권세력 7000만 명을 희생시킨 마오쩌뚱의 홍위병혁명과 연결된다는 그의 주장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면그리고 천민자본주의적 민주주위에서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에로 선회하는 것이 공화제를 포기하지 않는 길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역사 이해라면기독교는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꾸어 이승만의 공헌과 동시에 그가 살았던 불행한 전쟁 상황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가능한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변화하는 세대를 보면서또한 68혁명이후 갈라진 백성의 상태를 깊이 인식하면서 불란서에서 이는 대안 찾기의 움직임을 보면서 보다 유연한 세계관을 가지고 공존을 꾀하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찾아나서는 것이 기독교적인 삶의 본질을 살려 가는데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특정한 어떤 정파적 이해나 혹은 어떤 특정한 사회체제 이해와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없는 공동체가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체제나 혹은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복음이 재생산하는 질서를 구현하기 위하여 애쓸 수 있는 귀한 자리를 선점하고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이다사실 어떤 체제하에서도 기독교는 복음을 따라서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야 할 그런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막스 베버를 통하여자본에 기반한 삶의 부조리한 측면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고 배웠던 서구 기독교가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 수정된 자본주의의 길을 찾은 것도그리고 그런 기반 위에서 삶을 다시 새롭게 체계화할 수 있었던 것도그리하여 네덜란드나 독일이나 스위스 같은 사회가 형성된 것도변화화는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관심을 기울여 보아야 할 중요한 삶의 미래적 차원이기 때문이다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반성적 사고 가운데 이런 차원이 결여된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공동체적인 책무를 다하며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기독교적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 사이의 불연속성을 상정하고 후자를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는 이정훈 교수의 주장은 매우 편협한 진영논리에 포로된 것임을 드러내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역으로 어쩌면 마르크스주의자가 그런 공동체를 사도행전 2장에서 보고 배웠을 수 있기 때문이다혹여 좌파가 공산주의이고 우파가 자본주의라면기독교는 좌도 우도 아닌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전자를 무신론으로후자를 유신론의 진영으로 단순하게 가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거나 혹은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더 나아가서 무신론만큼이나 맘모니즘도 위험하기는 매 한가지이기 때문이다기독교는 이 둘 사이의 근원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모두 봉착할 수 있는 위기가 무엇인지를 깊이 비판적으로 숙고하며 자신의 미래적 삶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사회의 시민민주항쟁이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6월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자처하는 세력이 민주당이고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평등사회의 길을 도모하는 일에 마음을 내준 것이 당시의 백성들이었다고 본다면그런 정신을 따라서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내걸고 그것을 삶의 매우 중요한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오늘의 2030세대가 그런 정신을 대체계승했다고 생각된다그러면 1987년 당시 거리를 메웠던 그들이 오늘의 집권세력이 된 지금 그 정신을 제대로 읽고 정치적으로 대처했는지아니면 정치집단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는지의 분수령이 사실은 조국사태를 가로지르는 정신이라고 보고민주당은 이미 그러한 정신을 거스르며 자신을 권력화 하는 길로 접어들지 않았는가 싶다. “조국사태는 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1987년의 시대정신을 허무는 기재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개혁을 주체적으로 내세웠던 자들에게서 그 외침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숙고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스스로를 해체하는 길에 접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실 어느 정치세력도 자신의 정체성을 기독교가 제안하는 그런 신적인 공동체와는 동일시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만일 이러한 길이 가능했다면천국의 도래를 왜 최종적인 희망으로 상정했겠는가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이 세대의 정신이 어떤 옷을 입고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부단히 극복되어야만 하는 역사적 발전과정의 일환일 뿐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될 수는 없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특정한 체제를 지원하거나 혹은 역사 내의 어떤 한정된 단체를 후원하는 것으로 환원되는 기독교적 선택은 그 자체로 위험천만한 일이다오히려 이정훈 교수가 언급하는 자연법사상의 토대를 신중하게 고려하여 분열된 삶의 통합을 꾀하는 칼빈주의나 신칼빈주의가 대안일 수 있거나 혹은 대안적 삶을 찾아가는 중요한 전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그런 점에서는 이정훈 교수가 한국의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위한 좋은 방향을 선점했다고 보고이 방향을 향하여 좀 더 집중된 논의와 제안을 위한 시간을 갖고 학문적 공을 들이기를그리고 그런 열매와 함께 기독교 대중 앞에 나서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태화 교수 bareunmedia@naver.com

사도 바울의 창조 신학(4)

편집자 주조덕영 박사의 사도 바울의 창조 신학 글을 4회에 거쳐 연재합니다조덕영 박사는 조신학연구소 소장창조론 오픈 포럼 공동대표평택대 신학부 겸임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창조 신앙을 복음으로 연결하는 바울

파이네(P. Feine)가 바울의 복음이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zentrisch)으로 바울이 자신만의 고유한 하나님 표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본 것은 바울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를 바라보는 신학자들의 일반적 정서를 바르게 표현한 말이다사도 바울은 어떤 사도보다 구약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넘어 초대 기독교의 인식에 대한 새로운 신 이해를 심어준 인물이었다그렇다면 이 바울의 모호한 하나님 표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조덕영 박사

참된 창조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거짓 것들을 비판만 하고 있을 바울은 아니었다바울은 우리가 한 하나님 곧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가 계실 뿐 아니라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그분이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다고 했다(고전8:6). 바울의 하나님 표상”(신론)이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비록 바울이 조직신학자는 아니었으나 히브리적 창조창조주창조 신앙에 그치지 않고 바울은 당연하게 기독론적 접근으로 나아갔다바울이 원하는 것은 창조와 창조주 신앙에 그치지 않고 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죽음을 본받아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이스만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발견한 것이었다즉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창조 신앙을 창조주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과 신학으로 연결하여 기독교 구속 신학을 완성하고 있다.

누가는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바울의 아레오바고 연설에서 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놓은 제단을 소개하면서 이곳에 있던 헬라의 신 이해를 통해 복음을 어떤 방식으로 전하려 하였는지를 소개하고 있다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많다는 덕담 비슷한 언급을 하면서 복음을 소개하고 있다사실 이 도시는 우상이 가득한 도시였다(17:16). 바울은 아테네의 이런 풍경을 보고 격분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바울은 마음을 가다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회당의 유대인 및 경건한 이방인들과 토론하고 장터로 나가 날마다 거기 모이는 사람들과 토론하였다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논쟁하였다. “외국 신들을 선전하는 것 같다는 이들에게 바울은 한 사람에게서 모든 민족을 만들고 온 땅 위에 살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각 나라의 연대를 미리 정하시고 그들의 국경을 정하셨으며 이제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통해 회개하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음을 전하였다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에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고 또 더 듣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17:32).

이 부분에 대해 주석은 바울의 선교 전략이 실패했다고 보는 측과 성공적이었다고 보는 견해로 나누어져 있다슈바이처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울의 사상이 여기서는 하나님 안에” 있다는 이교 사상으로 대치되었다고 말한다이 연설이 복음이 아니라 헬라 시인들과 사상가들을 전거로 삼아 하나님에 대한 참 된 지식을 확증하려 했다는 점에서 2세기 변증론자들의 합리주의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콘젤만이 주장한 것처럼 정말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이방인에게 미련한 것으로 알려졌기에 교묘히 그것을 회피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과연 바울의 선교 전략은 실패한 것이었을까수많은 사람들이 공산권북한이슬람 등 창의적 선교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하지만 복음의 양적 열매는 가시적으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그렇다고 그들의 선교 전략이 실패한 것일까바울이 전한 복음에 아테네의 몇 사람들은 복음에 반응하고 바울을 따르고 믿었다그중에는 놀랍게도 아레오바고의 법관 디오누시오(Dionysius)와 다마리(Damaris)라는 여자와 그 밖에 몇 사람이 있었다결코 복음은 좌절되지 않았다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이유 가운데는 바리새인 출신 바울의 확고한 유대적 창조 신앙이 뿌리박혀 있었음을 선교 방식의 지혜 속에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접촉할 경우에는 그들에게 일부러 창조 신앙을 역설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하지만 이방인들은 다르다선교 전략상 그들에게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 선포를 통해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할 필요가 있었다신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이 전략은 동일하다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초 선결 지식으로서의 창조 신앙 선포는 선교 전략 상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와 십자가의 도를 강조한 로마서의 저자다로마서는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한 서신이요 아레오바고 연설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브루스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바울의 선교적 지혜로서 이것을 복음적(evangelium)이라기보다는 복음의 예비(Praeparatio)적 성격을 띠는 연설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사도 바울은 복음의 신출내기가 아니었다복음의 본질(텍스트)와 상황(컨텍스트)를 구별 못할 만큼의 미숙한 전도자는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서도 이 같은 유비는 설득의 도구였다예수는 창조계식자연계시를 구속 계시의 접촉점으로 부단히 사용하셨다예수의 자연계시는 단순한 자연계시와 자연 신학에 그치지 않고 구속 계시로 연결하는 복음 사역의 예비적 과정이었다예수의 창조주 자연계시는 이신론(理神論)에 머무르지 않고 복음적 창조주 하나님 계시로 나아간다.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묘사하면서 영적 존재들도 피조 된 존재들이라고 설명하였다(1:16). 4복음서는 모두 이들 영적 존재들인 사단과 귀신의 존재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신약 성경에 사탄은 32회 가운데 14회 복음서에서 언급되며 귀신은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고전딤전성경에 11회 언급된 가운데 복음서에는 100여 회가 넘는 빈도로 등장하고 있다사도 바울과 달리 예수는 이들 영적 존재의 창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나 사탄과 귀신과 같은 영적 존재들이 있음과 더불어 그들도 예수 자신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또한 영적 존재인 사탄과 귀신에 대해 예수는 인격을 가진 그들과 대화한다물론 그들이 예수의 사귐의 대상은 아니었다.

예수에게 사탄은 꾸짖어 쫓아낼 존재요(8:33), 귀신도 악하고 더러워 추방해야 할 존재였다(12:43, 45). 예수는 십자가 죽음과 3일 만에 살아날 것을 예언한 가르침에 대해 예수께 항변하며 이 같은 일이 예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소원하던 제자 베드로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말하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로 책망하였다또한 사탄은 제자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13:27). 그렇게 복음서의 예수는 인류 타락과 죄와 불순종의 배후에 있는 인간이 그 전모를 파악하기 결코 쉽지 않은 심각한 영적 존재에 대해 자연스럽게 계시하고 있다이것은 마치 자연계시를 통해 의인 욥의 고난의 배후에 있는 사탄의 존재를 계시하신 하나님을 연상케 하는 한다(1-2장 참조). 심지어 하나님은 욥기 41장에서는 사탄이라는 언급을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도 리워야단이라는 동물(자연계시)를 통해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으로서의 사탄에 대해 암묵적 계시를 하고 있다욥이 깨닫고 회개하고 은혜 받고 복 받은 것은 구속 계시가 아닌 놀랍게도 모두 70여 가지에 달하는 속사포 같은 하나님의 자연계시 속에서 이루어졌다교만하고 군림(소위 갑질’)하는 자는 베드로나 가룟 유다처럼 사탄의 도구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예수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요 기독론의 중심이다예수의 자연계시가 자연을 초월함 속에서 전개되는 것은 삼위의 제 2위이신 창조주 하나님예수의 모습을 드러낸다초대교회 교부 이레네우스 역시 말씀과 하나님의 영즉 그리스도와 성령을 우주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두 손이라고 표현하여 삼위일체적 창조를 언급한다그런데 20 세기 들어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을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은 예수를 구속사(Heilsgeschichte) 내에 묶어두려는 의도적 시도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애써 숨기려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하지만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가 인간만이 아닌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임을 언급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1:15-17). 예수는 곧 창조주임을 전파하여 자연스럽게 그 예수를 우리의 주()요 구주(救主)로 연결한다(고전8:6). 바로 예수가 전한 그 방식이었다.

 


 

 

나가면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존재론적 간극(ontological gap)이 엄연한 현실 아래에서 자연계시의 구원적 가치(salvific value)의 문제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으면서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전면 부정론과 비관론을 넘어 오히려 논쟁은 더 심화 되는 듯하다포스트모던 신학자 클락 피녹(Clark H. Pinnock)은 일반 계시를 구원적 가치에 적극적으로 연결을 시도하는 인물이다오늘날 일반 계시에 구원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가톨릭 신학의 공식 입장이다대표적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John Hick)은 신적 계시로서의 성경을 포기하고 자연 종교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반 틸(Cornelius Van Til)은 개혁신학의 특징 가운데 일반 계시의 명료성을 말하나타락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일반 계시로는 누구도 실제적인 하나님을 참된 창조주로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그러므로 성경이 필요함을 역설한다우리 인간은 늘 제한을 가진 도구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불완전이라기보다 분명 인간의 죄성과 그에 따른 교제의 상실 그리고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지니는 한계 때문이다인간은 오직 부분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하지만 특수 계시가 적용되는 공간은 여전히 일반 계시의 영역이다이 점을 깨닫는다면 창조된 우주 안에 하나님이 계시(啓示)는 인간의 정신 활동 가운데서 제한적으로 살아날 수 있다.

예수의 자연계시는 두 가지 측면 즉 자신이 곧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동시에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는 구속 계시를 향한 연결 고리를 제공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이신론의 영향 속에서 자연에 의존하는 신학이 계시를 뒷받침하기보다 희생시켜 왔다는 생각이 20 세기 신학을 지배하여 온 것은 분명 사실이다그래서 지난 세기 신학자들이 자연계시의 합리성을 알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라거나 무지한 신학자라는 공격을 염려하여 자연 신학이라는 언어의 불충분성 때문에 자연계시의 유용성조차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가 자연 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극단적인 부정적 견해에 대해 바르트의 비판이 (1) 부적절한 성경적 기초에 기초하며, (2) 바르트 자신이 개혁신학의 전통에 있다는 주장이나 칼빈이 자연 신학에 대해 반대자의 입장에 있었다는 견해는 모두 잘못이요, (3) 자연 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부정적 태도는 자연과학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비판한 것은 바로 20 세기 주요 신학에 있어 자연계시와 자연 신학을 보는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삼위의 제 2위이신 창조주 하나님예수가 바라보고 언급하고 사역한 공생애를 통한 창조계식(자연계시)는 결국 궁극적 구속 계시로 연결되는 접촉점을 찾는 작업이었다이처럼 사도 바울의 창조 신앙도 결국 체계적으로 의도한 작업은 아니었을지라도 궁극적으로는 개종 이전의 히브리적 창조 신앙을 그리스도에게 연결한다즉 바울은 기독교 신앙을 정립하는 과정 속에서 창조 신앙을 구속 신앙의 완성을 위한 마중물이요기초석으로 삼았다그는 통전적인 기독교 사랑의 실현으로서의 하나님 계시를 구원론적종말론적 구원창조 신앙으로 연결하는조직적이며 선교적인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창조 신앙을 복음을 전혀 몰랐던 이방인들을 향한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연적인 논리적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조덕영 박사 bareun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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