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9 1월

하나님의 죽음 vs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20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신학자 가운데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은 삼부작(Trilogy) 가운데 2부에 속하는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란 제목의 책을 썼다신학을 조금만 접해본 사람이면 이 책의 제목 “Der gekreuzigte Gott”이 일으킬 논란이 금방 다가올 것이다하나님의 죽음이라는 실로 엄청난 논제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몰트만 자신은 결코 이 사실을 의도하지 않았다그럼에도 누군가에 의해서 하나님의 죽음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말씀은 하나님의 죽음이 불가함을 명확히 언질하고 있다(딤전 6:14-16). 오직 하나님에게만 죽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창조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원칙상 죽을 수 있는 존재이나하나님은 그렇지 않다오직 그에게만 죽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위르겐 몰트만의 책 제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십자가라는 형틀은 죽음 이외의 방식으로는 내려올 수 없는 형 집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태화 교수

이와 대조적으로 하이델베르크신앙교육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 한다. (40왜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어야 했습니까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뜻한다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동시에 참 사람이다두 본성이 한 인격에 거하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이다하이델베르크신앙교육서의 제1저자인 우르시누스(Ursinus)나 그의 신앙고백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매우 주의해서 읽고 이해했었다신성과 인성을 분리 없이 혼동 없이 그리스도 예수라는 한 인격 안에서 읽고 해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성과 인성은 근원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심지어는 영혼이 그 육체로부터 분리되었을 때조차도 신성은 육체가 놓인 무덤을 비우지 않았고 동시에 영혼과도 함께 있었다심지어 인성을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에도 신성은 인성과 분리되지 않았다그러나 동시에 신성은 결코 인성과 혼동되지도 않았다인성을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을 때에즉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날 때에신성이 인성의 고난을 받고 피를 흘리며 죽음에 넘겨질 때에 본체적으로 혹은 존재론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수난은 신성의 직접적인 수난이나 죽음에 넘겨짐이 아니라 인성을 따라서 일어난 일이어서 하나님의 실제적 죽음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다만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그리스도 예수라는 한 인격적인 존재는 신성과 인성을 함께 내포하는 존재이되그 인격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은 직접적으로 각각 자신을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않고다만 간접적으로만 전달한다쉽게 말하여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을 통하여 신성이 표현될 때에는 인성이 신성과 함께 있으며인성이 표현될 때에도 신성이 인성과 함께 있지만그러나 어디까지나 직접적으로 신성을 표현하거나 혹은 인성을 표현하거나 하는 사실이 희석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다는 말이다이런 면에서 보면그리스도의 수난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수난이고따라서 직접적으로 인성의 수난인 것이다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 예수는 그 영혼과 육체로 수난과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몰트만의 Der gekreuzigte Got

이 사실을 하이델베르크신앙교육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37그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셨다고 말할 때그대는 무엇을 고백하는 것입니까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위에 사시는 전 생애 동안그러나 특별히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전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친히 육체와 영혼으로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이렇게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속죄 제물로 고난을 당하심으로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정죄로부터 구속하시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영생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37문답에서 확인하듯이 수난과 죽음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인성을 그 인격에 수반한 그리스도 예수인 것이다그리스도 예수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신 것이다.

이 수난에 신성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또한 기억해야만 한다인성이 수반된 그리스도 예수의 수난에서 몸과 영혼으로 자기 백성 모두의 죄를 실제로 담당하고 죽음의 심판에 넘겨질 때신성은 인성을 떠나지 않았다직접적인 수난의 당사자인 인성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사야 63장 9절에서 하나님이 죄인의 모든 고난에 동참할 수 있듯이죄인의 모든 죄를 담당한 예수의 모든 고난에 오롯이 동참한다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하늘을 가르고 우리에게로 오사(사 64:1) 성육신 한 그리스도 예수의 전 삶과 그 정점으로서 십자가에서 신성은 온전히 함께하였다인성에 정해진 수난과 고통을 신성이 공감하는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이다인성이 실제로 직면했고 경험했던 죽음의 고통까지도 신성이 공감하는 방식으로 실제적으로 경험하였다그러나 실제로 죽지는 않았다.

다만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와 같이 행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제 40왜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어야 했습니까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성의 직접적인 수난에 신성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수난이었기 때문에한 사람의 죽음이 많은 사람의 죄의 값을 지불하고 죄와 사망에서부터 생명에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비록 직접적인 수난과 죽음에 넘겨진 것은 아니었으나간접적으로 인성과 함께 있음으로써 택함받은 모든 백성의 죄를 실제로 감당하여 진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인성의 수난은 실제적이되 그 효과가 모두에게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신성이 인성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단번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인을 속량하는 일을 완결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의 신비의 힘을 보게 되는 지점이다사실 마귀는 이 사실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십자가의 신비는 성령의 사역이 아니고는 접근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고전 2:14). 그 당대의 지혜자도선비도변론가도 십자가 사건에 감추인 구원의 지혜와 능력을 헤아릴 수 없었다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전 1:19-21). 심지어 교부들은 사단도 십자가의 신비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했다단순히 인간적인 일인 줄만 알았던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죽음에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그리스도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구현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자 속은 것을 알았던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죽음에 매이거나 혹은 죽음에 종속되는 분이 아니다오직 하나님에게는 죽지 아니함이 있기 때문이다그리스도 예수의 신비를 친히 목격하고 그로부터 계시를 받았던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5, 16절에서 다음과 같이 연약한 후배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권면하였는데바울이 걸었듯이 전도자와 목회자와 신학자의 길을 걷는 모든 후배들에게도 실로 매우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아멘” 다만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편지(2:20)에서 친히 고백했듯이 이렇게 고백할 뿐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유태화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bareunmedia@naver.com

【인포그래픽】 한 눈에 보는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

1. 수리아 지역의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아 바나바와 출발(13:1-3)

2.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의 살라미에 도착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고 회당에서 복음 전함(13:4-5)

3. 구브로의 바보에서 복음을 전함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던 엘루마가 맹인이 됨(13:6-12)

4. 밤빌리아 지역의 버가에 도착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감(13:13)

5. 비시디아 지역 안디옥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함유대인들이 반박하고 바울을 비방함(13:14-52)

6.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함여러 사람들이 바울과 일행을 모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듬(14:1-5)

7. 루스드라로 이동해 복음을 전함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해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려고 함유대인들에게 맞고 실신해 성 밖에 버려짐(14:6-19)

8. 더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함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 등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함(14:20-22)

9. 밤빌리아의 버가와 앗달리아에서 차례로 복음을 전한 뒤 배를 타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옴(14:24-26)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신천지, 해외 포교 어떻게 하나?

터키 이스탄불 지역 포교 유경험자의 폭로


신천지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신천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신천지는 해외 40개국에 진출해 22,478명의 신도(2019년 1월 13일 기준)를 보유 중이다신천지 맛디아 지파에서 9년간 활동하고터키 이스탄불 지역에서 2년 이상 포교활동을 펼쳤던 탈퇴자 씨가 1월 22터키 이스탄불 지역의 신천지 포교활동과 현황을 폭로했다.

일 년 동안 소득 없던 포교사업으로 활로 모색

씨에 따르면 처음 일 년은 포교에 큰 소득이 없었다신천지 신도 약 10명이 시리아 난민이 살던 집을 빌려 한 장소에서 지냈다재정적 어려움으로 청년 신도들은 하루 한 끼만 먹는 경우가 많았다.

신천지 신도들은 몇 가지 사업과 문화 활동을 시작하며 포교활동에 박차를 가했다화장품 사업을 시도했지만 지지부진하자 현지 청년들의 왕래가 많은 지역에 “Cheongdo”(편집자 주청도이만희의 고향이 경북 청도)라는 빙수 카페를 만들었다이 카페가 자리를 잡아 한국 음식을 하는 식당으로 리뉴얼 했고매출이 높아 2호점을 계획 중이다.

 

▲신천지 신도들이 터키에 세운 청도 카페

다양한 문화 포교

신천지 신도들은 사업과는 별도로 문화 포교의 장을 만들었다한국 문화원부터 시작했다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신도들이 터키로 와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다매주 토요일은 한국 영화한국 음식 체험한국 놀이 체험 등을 열어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었다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한국 문화 및 언어 등을 주제로 한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A 씨는 한류 열풍으로 인해 한국 문화로 포교하는 일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전했다.

씨가 전한 신천지의 포교방법은 국내에서와 유사하다. 1차는 관계 맺기다한국어에 관심을 보이는 현지인들과의 언어 공부남북 분단 문제행복 프로젝트소통 논문 작성도형 상담인문학 세미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특히 한국문화원과 청도카페는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들과 관계를 맺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물론 국내에서처럼 맺은 관계는 성경공부로 이어진다.

해외 신도 어떻게 관리하나

씨는 현재 터키 지역의 신천지 신도가 약 100(수강생 포함)이라고 밝혔다이들은 철저한 관리를 받으며 신천지 교리에 세뇌되고 있다집회는 통역자를 통해 동시통역으로 진행된다집회 후 신천지 교리를 깨달았는지 점검한다한국에서 벌어지는 신천지 시험에도 동참하도록 독려한다신천지 고위 간부들은 터키로 파견된 미혼 신도들에게 현지인들과 결혼해 국적을 따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한편, A 씨는 신천지 터키인 강사가 4교사 가능자가 7(2018년 10월 기준)이라고 전했다이들은 한 달에 약 800리라(한국 돈 약 17만 원)를 받고 함께 합숙하면서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포교활동에 매달린다.

 

▲터키에서 이뤄지는 신천지 집회

씨는 신천지가 터키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탈리아코소보 등지에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터키 이스탄불에 신도 100명가량이 모이면 타지 개척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터키의 한국 식당과 문화원이 신천지 내에서 성공사례가 되어 앞으로 식당과 문화원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며 포교활동을 펼칠 것으로 전망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선교 활동을 펼친 한 선교사는 신천지가 해외에서 이정도로까지 포교활동을 펼치는지 알지 못했다라며 신천지의 포교 방식이 한국인 선교사라면 한 번쯤은 생각하고혹은 현장에서 충분히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경각심을 가지고 어떻게 대응할지 준비해야한다라고 밝혔다.

씨는 신천지에서 비교적 최근에 해외선교부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해외포교를 위해서 일정 기간 언어사례 공유말씀 훈련 등을 받고 해외로 보내진다신도들 사이에서 해외로 나가 포교활동을 하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천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신천지는 유럽 9개국오세아니아 2개국아프리카 5개국아시아 16개국북아메리카 2개국남아메리카 6개국 등 총 40개국에 진출해 있다신천지 뿐 아니라 통일교는 공식적으로 195개국에 진출해 있으며하나님의교회구원파만민중앙교회 등 많은 이단 사이비가 해외 포교활동을 펼치고 있다교회 혹은 선교단체가 각개 전투 식으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한국교회가 공동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한컷인물교회사】 이그나티우스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안디옥의 감독을 지냈다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을 논박했다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이그나티우스를 향해 사람을 속이는 마귀라고 불렀지만 그는 마귀가 아닌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신 자라고 맞서며 순교의 길을 걸었다로마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에서 맹수에 던져졌을 때그는 위와 같은 고백을 남기고 순교했다.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SKY 캐슬 신드롬

요즘 드라마 한편이 한국사회 및 교육계에 강력한 파장을 미치고 있다드라마 sky 캐슬 이야기다네댓 가정이 어울려 사는 한 작은 주거타운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교육 관련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다특별히 한국사회와 교육과열의 한 단면을 여과 없이 브라운관을 통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그런 환경에 속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시청자든 간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는 힘을 지닌 드라마다특별히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가 관건이어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학생은 이모저모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기까지 등록금이 싼 국내 최고의 대학이나 미국의 유력한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로 모아진다단순히 대학에서 끝나지 않고그 대학의 최고의 과까지 겨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유태화 교수

이런 면에서 SKY는 하늘이라는 일반명사의 의미를 넘어서 한국사회에서 입시를 통한 신분 상승을 꾀하는 것과 관련된 특정 대학을 의미하는 차원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예로부터 한국사회는 교육을 통해서 신분 바꾸기가 가능한 구조를 견지했었다소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구조를 견지했던 것이다나면서부터 기울어진 환경에 처했던 개인이 자신의 소양을 잘 발현해서 자신을 사회 속에 덕스럽게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일이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이런 출구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건강한 사회의 한 조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정황 가운데 대리시험이라든지 하는 불편한 일이 끼어들지 않은 바는 아니었으나옥에 티 같은 것이었을 뿐큰 흐름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적절히 노정하고자 하는 꿈을 꾸는 일은 가능하고또한 그런 가능성이 닫히지 않았다그런 의미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그러나 과거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도 연출된다교육이라는 순수한 도구가 돈의 힘과 결합되면서 경쟁구조가 불균형해진 탓이다미취학아동에서부터 시작하여 초중고를 거치면서 입시의 관문을 보다 좋은 조건에서 통과하기 위하여 소위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취하기 때문이다학교라는 공적인 기관을 중심으로 자신의 소양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구조는 뒷전으로 내몰리고사사로운 학습을 통하여 기회를 선점하려는 시도가 횡횡하기 때문이다재력을 가진 부모나 혹은 재력은 없으나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만들어서 자녀를 사교육시장에서 키워보고자 하는 부모가 나타나고그 재력을 바탕으로 입시를 위한 특별한 사교육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돈이 교육을 좌지우지하거나 입시관문통과를 결정하는 구조로 전환되어버린 것이다. sky 캐슬에 사는 부모는 자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자녀에게 고액의 입시코디를 붙이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입시코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달성을 이루기 위하여 불법하고 부도덕한 일까지 하려고 한다최근 어느 분과 식사를 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드라마에서 극화된 이야기가 아님을 들을 수 있었다상상을 초월하는 고액을 받는 강사가 주요 과목마다 한명씩 붙여지고조기 선행학습을 실행한다는 것이다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육 과정에서 기회를 선점하고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유력한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유능한 인간을 만들어내고명예와 부와 권력을 세습하기 위함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보면하늘을 의미하는 SKY는 욕망을 담은 은유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초점은 사실 학생에게만 있지 않다그런 왜곡된 교육환경을 만들어가는 부모에게도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드라마상의 부모는 자신이 형성한 기득권을 대를 이어서 승계하고픈 욕망을 갖고 있거나 혹은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가 자식을 통해서 훼손되거나 불명예스러워지는 것에 대하여 치열하리만치 불편해한다결과적으로 자식은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는 대상이거나 혹은 자신의 욕망을 대리해서 충족시키는 도구로 환원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결과적으로 이런 부모의 지나친 욕망에 희생되는 자녀가 발생하는 것이다가짜명문대학생노릇을 하게 되고자신이 하고픈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택하게 되고이러는 과정에 자녀의 마음에는 분노가 축적되게 되고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기쁨을 빼앗기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SKY 캐슬 포스터(사진출처: JTBC)

모름지기 교육을 통하여 진리를 탐구하고그 진리를 인해서 기뻐하며 깨달은바 그 진리에 근거하여 자신과 사회에 빛을 비추려는 방향을 보아야 할 터인데 현실의 교육계는 그런 교육의 본래적인 지위와 역할이 사라진 형국이 되고 말았다교육을 대학 본연의 자율에 맡기지 않고 중앙에서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유익을 깨우치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전문적인 소양인으로서 공헌하도록 대학교육을 이끌어내지 못하고오히려 취직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싶기도 하다대학을 운영하는 주체도대학을 평가하는 주체도 대학의 근원적인 존재 이유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인문사회과학적인 토대를 잘 살리지 못하는 대학교육은 굳이 대학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교육은 은사 계발을 기초로 해서 구성될 필요가 있다네덜란드에서 경험한 바가 참 인상적이었다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학교는 학생에게 교과서를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한다교육은 전적으로 학교가 책임지는 것이다구구단을 일주일 만에 달달달 외우는 것은 그 나라의 교육 체계에서는 무의미한 일이다활용을 경험하도록 배려하면서 천천히 익힌다학습과정에 놀이문화도 활발하다. 12명 미만으로 구성된 이런 학생들의 학습발달을 두 명의 교사가 근접해서 지도하고 관찰한다매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부모를 초치하여 학생의 학습과 생활에 대한 매우 세세한 대화를 나눈다그런 자연스러운 교육과정을 통하여 교사는 이 학생이 university로 방향을 잡을지, college로 방향을 잡을지기술고등학교로 방향을 잡을지를 결정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국가는 15, 35, 50% 정도로 학생을 자연스럽게 배분한다국가구조에 적합한 규모로 학생을 양육하는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과정을 통과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때보수체계가 균질하도록 국가가 사회를 관리한다쉽게 말하여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든지 누리는 삶의 질이 균질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대학교육을 마칠 때까지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그 과정을 마친 사람이 많이 벌면 세금을 많이 받고적게 벌면 적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많은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입을 나누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보전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그래서 모든 백성은 실제로 그 나라에서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공부가 은사가 아닌 학생이 부득불 공부를 해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교육과열현상이 일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그들 안에 아무런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인간은 삶의 조건이 개선된다고 해서 욕망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복지 그 이후의 삶과 관련한 무수히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그런 면에서 한국사회는 복지사회로 가는 과도기적인 사회이다사실은 교육문제는 고용시장을 개선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고용시장이 균질화되어야그래서 누구도 인간다운 삶의 길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소양에 집중하는 교육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한국사회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사회로부터 타인을 존중하는 자본주의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원리적으로 드라마가 보여주는 sky 캐슬은 해체되어야 한다그런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읍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사회에로의 전향적인 발걸음을 내딛을 필요가 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나의 마음에 하늘에 오르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지 않나 싶다과거 모세가 시로 남겼듯이 인생이 70이요강건하면 80인데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신속하게 흐르는 그 시간을 관통하며 살아온 삶을 회고해보면 수고와 슬픔뿐이다역설이 배어든 표현이다수고하였으되 슬픈 현실이니 말이다무엇을 위하여 수고할까한국사회의 부모나 자녀는 왜 그런 무모할 만큼을 수고를 하는 것일까교육의 관문을 통과하여 sky 캐슬에 들어가서 얻는 전리품이 무엇일까재물과 명예와 권력이 아닐까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 아닐까이것을 얻기 위해 인간은 그토록 수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문제는 그런 수고와 함께 그것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손에 넣은 과정에 몸이 축나고 정신이 병들고그렇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원하던 것을 손에 넣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포장하고 세탁하더라도 결코 만족함이 없는그래서 슬픈 삶을 직면하지는 않는 것일까.

 

인간을 실제로 지킬 수 없는 바로 이러한 허무한 가치에 굴종하도록 인간을 꾀어내는 존재를 성경은 마귀라고 칭한다그리고 그 마귀는 공중곧 SKY의 권세를 잡은 자로 묘사된다마귀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 즉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로서 끊임없이 인간을 미혹하는 일을 감행한다. 70이요강건하면 80인 인생살이를 그 실존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그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는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취하는 일로 다 허송세월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70-80의 삶을 살아낸 후 삶을 정리할 때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던 욕망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평가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그런 벌거벗은 실존으로 인간이 자신을 직면하도록 만드는 존재그가 바로 마귀인 것이다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세상(SKY)의 민낯이다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소중한 존재인 인간으로 하여금땅만 바라보고이 세상에 속한 것만 바라보고하나님의 처소인 하늘(HEAVEN)을 향한 문을 닫아걸고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존재가 바로 마귀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소위 고지론이라는 것을 손에 쥐고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에게 외친다. “여러분 정체경제사회문화교육의 전 영역에 뚫고 들어가 고지를 점령하십시오모든 영역의 고지를 선점하여그곳에서 하나님의 선의를 떨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구호와 함께 이 지점을 선점하기 위하여주일에 예배하는 일도일상에서 기도하는 일도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아보는 일도 죄다 뒷전으로 밀어놓고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한다그 고지를 위하여 과정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고지를 점령한 후에 그 부족한 면면을 채워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어쩌면 이런 삶의 태도야말로 세상적이요정욕적이며마귀적인 것이라고 야고보가 읊었던 그 삶이 아닐까.

 

오늘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지금껏 추구해온 고지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기독교후기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는 이 세상을 설득할 자격을 이미 상실해버렸다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은사를 살려서 사회의 모든 영역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계층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야 한다그리고 그 어느 곳에서나 재물을 넘어서는 삶명예를 뚫고 나오는 삶권력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재물보다 귀한 삶의 세계명예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보게 하는 삶권력이 불필요하여 섬기지 않고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는 삶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에 마음을 쏟고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일이 필요한 시점에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서 있지 않은가 싶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 가정과 교회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되어떤 자녀가 되기를 기도할지 깊이 묵상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유태화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bareunmedia@naver.com

신천지, 가평군청에 업무 방해 수준 민원 폭탄

이만희, 군수 면담 요청했다 헛걸음


신천지가 가평군 청평면에 추진 중인 박물관 건축을 허락해 달라며 지난해 12월부터 가평군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접수된 민원은 무려 4만 건.

CBS는 신천지의 반복적인 민원이 공무원의 행정력을 낭비하고 다른 민원 업무들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이만희 씨는 지난 12월 28일, 갑작스레 군청을 방문해 군수와의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한컷기독교핵심용어】 개신교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동방 정교회와는 구별되어 형성된 기독교 전통이다성경의 고유 권위를 인정하고 만인제사장이신칭의 등을 주요 신념으로 삼는다.

이 용어가 발생한 역사적 배경은 1529년 슈파이어 의회였다이 의회에서 로마 가톨릭은 마틴 루터의 지지자들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이 결정에 반대했던 독일 14개 도시의 제후들이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게 항의하는 문서를 제출했다훗날 사람들은 이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항의 혹은 저항하는 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넓은 의미로 종교개혁에 반대하던 로마 가톨릭에 저항했던 사람 등을 지칭한다.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바른미디어 조믿음 발행인, CGNTV 인터뷰

이단의 변화에 발맞춘 대책 마련 필요성 제기해


바른미디어 조믿음 발행인이 CGNTV와의 인터뷰를 통해변화하는 이단에 발맞춘 이단 사이비 대책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지난 8밝혔다.

▲CGNTV 뉴스 화면 캡쳐

조 발행인은 교리가 이단 사이비에 빠지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고 진단하며이단 사이비에 미혹되는 다양한 이유를 분석해 회복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조 발행인은 이단 사이비 탈퇴자와 피해자를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대안들이 있느냐고 반문하며이들을 건강한 신앙인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인터뷰 영상 보기http://news.cgntv.net/player/home.cgn?c=102&v=142841&y=2019&m=01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한컷인물교회사】 폴리캅

 

 

폴리캅은 사도요한의 제자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교회의 지도자였다그는 탐욕과 불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철저하게 붙잡으라고 강조했다당대 교회를 어지럽혔던 이단인 영지주의마르키온주의와 논쟁을 펼쳤다.

바른미디어 bareunmedia@naver.com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속의 신비주의

1. 기독론 속 신비주의

정통 기독교와 달리 이단들이나 사이비의 신비 체험에서 나타나는 주관적인 현상은 다양한 신앙 교리를 훼손한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과 직무와 인격을 다루는 기독론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여호와의 증인들이 기독론을 손상 시키는 것은 교주의 주관적 신비 체험에서 비롯된다.

▲조덕영 박사

개혁교회는 항상 성경 자신이 곧 성경 해석자였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또한 어거스틴이 서방 기독교 신비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어거스틴이 정통 신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그의 (신비한목표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그리스도 중심적이요 교회적이었기 때문이다그것은 교회와 모두를 향한 신비한 그리스도의 사랑”(caritas)과 관련된다.

 

그런데 몰몬교의 창시자 요셉 스미스(Joseph Smith)는 다르다그에게는 새로운 초월적 해석이 주어졌다안식교에서 엘렌 지 화이트는 모세와 같은 특별한 계시를 받은 여 선지자이다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를 성육신하신 참 하나님(vere Deus)으로 보지 않으므로 기독론을 손상시켜 버린다이렇게 될 때 성경의 특별 계시는 일반 계시보다도 못한 상대적 계시로 추락해버리고 만다성경을 이탈하여 기독론을 손상 시키는 신비 체험을 가지고 신자들을 현혹하는 일은 금물이다이들이 개혁신학이나 어거스틴과 다른 이유이다.

 

2. 구원론 속 신비주의

기독론의 손상은 필연적으로 구원론의 손상을 가져온다무함마드에서 비롯된 이슬람교가 예수를 이슬람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신비주의 계시를 통해 예수가 아닌 무함마드를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로 본 것은 이슬람이 근본적으로 기독교 이단들과 다를 것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의 유일한 성경(Sola Scriptura)에서 이탈한 새로운 특별계시를 수용한 종교임을 보여준다.

 

610년부터 632년까지 23년간 마호메트(무함마드, Muhammad)가 간헐적으로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 가운데 직접적으로 계시 받은 것으로 인정되는 설교나 이야기를 모은 코란을 알라의 완성된 마지막 계시라 주장하며 예수를 선지자로 격하 시키면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성경의 모든 구원의 도(특별 계시)를 가볍게 무산시켜 버린다.

코란은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탄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종이며 예언자임은 사실이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며 최후의 예언자는 예수 다음에 이 땅에 온 무함마드라고 주장한다이렇게 이슬람은 새로운 계시인 꾸란를 통해 성경 전체를 변질시키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였다이슬람의 이 같은 복음 아닌 내가복음’, ‘자기복음의 행태는 이단들이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자가 복음’ 형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3. 교회론 속 신비주의

교회(church)는 주님에게 속한다는 의미의 헬라어 퀴리아코스에서 유래한다구약에서는 카할이 회중의 모임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이 말은 종교적 대상(대상 30: 23)이나 세속적(렘 26:17)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사복음서 가운데 오직 마태복음에 나타난 교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는 베드로가 예수의 물으심에 대해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 고백한 것을 기초로 신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신데 기반한다(마 16:18). 그리고 이 단어는 한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마 18:17)에도 적용되었다예수는 친히 교회에 대해 가견적 교회 공동체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보다 완전한 의미의 교회란 제도적 실체가 아닌 초자연적 실체인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이 교회 사역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속시키고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혈력하여 천상의 새 예루살렘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로 연합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아간다이 같은 성경과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는 성도들의 내면적영적 교통의 본질 안에서 바른 말씀 선포와 성례와 권징을 세 가지 표징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기독교 신비주의는 이 같은 교회의 본질과 표징을 외면한다퀘이커교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조지 폭스(George Fox, 1624-91)로부터 시작된 초기 퀘이커교는 가견적 교회의 배교(딤후 3:1-5)를 통해 외형적 신앙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우주의 내면의 빛(요 1:9-18)만이 그리스도께로 가는 유일한 길로 보았다당연히 교회의 성례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순결한 내면의 예배에 부적절한 옛 언약의 잔존물이라 하여 배척해버렸다(요 4:24).

교회와 더불어 빛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전가된 의와 전적 부패와 삼위일체 같은 교리들도 모두 부정되었다오직 퀘이커 교도만이 빛의 자녀들이요 진리의 친구들이었다다른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보이듯 이들도 자신들만이 특별한 빛을 받은 선민들이요 자신들은 오직 조용한 기도와 참 빛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직접적 은혜의 설교를 체험한 신자들이었다이후 보편적 빛의 교리를 찾아 퀘이커들도 분화되었다일부는 복음주의자로 돌아선 경우도 있었다하지만 그 근본은 교회론을 이탈하여 신비주의적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이 로마 가톨릭의 교회관을 배격하였다면 조지 폭스의 퀘이커교는 프로테스탄트 의 교회관을 뒤집어버리고 멀리 나가버린결국 교회론으로부터 비롯된 신비주의라 할 수 있겠다인간은 거듭난 성도라도 하나님 앞에 여전한 죄인의 성품을 지닌다(simul justus et peccator).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인 교회가 여전히 완전한 모습을 지니지 않는 이유다그렇다고 교회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교회론이 아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4. 종말론 속 신비주의

신비주의적 종말론은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시한부 종말론에서 문제가 된다시한부 종말론은 세대주의를 근간으로 파생된 종말론의 하나라 할 수 있다세대주의는 주로 인류 역사의 세대 구분과 문자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본으로 한다대개 여섯에서 일곱 세대로 구분하는 세대들은 문자적 일천 년을 기본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시한부 종말론의 딜레마에 다다르게 된다그래야 문자적 천년왕국(계 20:2-7)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 같은 세대 구분은 젊은 지구론의 창조과학과도 커넥션을 가질 수 있는 데 건국대 쥬영흠 박사가 창조과학 운동을 세대주의적이라고 한 것이나 마크 놀이 창조과학을 과학적 세대주의라고 한 것이 모두 이 두 운동의 종말론이 서로 창조 연대 육천 년이라는 일치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문자적 천년왕국을 믿는 세대주의자들은 지구가 창조된 지 이미 문자적 육천 년을 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인류 휴거와 종말이 곧 올 거라는 조바심을 가지기 마련이다그리고 재림에 대한 무리한 소망은 재림의 재촉과 초조함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세대주의적 갈망은 종말에 대한 간절한 기도 속에서 신비주의적 합일의 체험을 주장하는 일부 종말론자들을 양산하게 된다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해석하여 이스라엘 독립의 해인 1948년에 희년(50)이나 이스라엘 포로 귀환 기간(70)을 합산하여 1992, 1998, 1999, 2000, 2001, 2018년 등을 재림과 휴거의 때라고 주장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었다재림의 갈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재림의 때와 시()를 규정하는 이 같은 시한부 종말론이 문제인 것이다종말을 갈망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리한 환상적 신비 체험을 재림이나 휴거의 날에 꿰맞추려는 무리한 집착의 경향을 보인다.

이들 시한부 종말설들은 모두 건전치 못한 세대주의의 파급 효과라 할 수 있다세대주의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급박한 휴거에 대한 확신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표적으로서의 신비 체험이 동원되게 되는 것이다비성경적인 주관적 시한부 종말론은 이렇게 신비주의와 조우하게 된다.

편집자 주필자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신학연구소 소장창조론 오픈 포럼 공동대표평택대 신학부 겸임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조덕영 박사 bareun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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