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 2017년 4월월

〔기획연재〕1. 모욕죄와 공연성

조 기자의 이판사판_이단 사이비 관련 판결문/결정문 분석


편집자 주이단 사이비 대처는 교리비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피해자들은 이단 사이비 단체가 제기하는 무차별적 소송을 감당해야 합니다바른미디어는 이단 사이비 관련 판결문과 결정문을 수집·분석해 피해자들로 하여금 법적제도적행정적인 대처의 힘을 기르고자 본 연재를 기획했습니다내가 당한 내용의 소송을 이미 누군가 승소했다면누군가 패소한 내용을 미리 숙지한다면불필요한 소송을 줄일 방법이 있다면법적 대처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본 연재는 현직 변호사님들이 감수해 주십니다.

 

사건 1

신천지 피해자 A씨는 자신의 시위 장면을 찍으려는 신도에게 찍지 말라고 자식아”, “웃긴 새끼네라고 말했다.

사건 2

신천지 피해자 B씨는 시위 도중 신도에게 너 누굴 찍겠다는 거야너 이 새끼내 얼굴을 찍겠다고라고 말했다.

 

씨와 씨는 모두 모욕죄로 고소당했다검찰은 씨와 씨의 욕설 사실은 인정했지만 공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두 사건 모두 불기소처분 했다.

공연성 이란?

공연성은 모욕죄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다수 혹은 불특정 다수가 (모욕 사실을)인식할 때 인정된다따라서 일대일 대화전화통화 등은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다수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한다.

사건 1의 경우검찰은 당시 현장에는 피의자의 일행인 신천지 반대 시위자 1명과 고소인의 일행으로서 신천지 교인인 시위 현장을 촬영한 사람 1명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고고소인이 신천지 00교회의 섭외부장 지위에 있어 고소인의 일행(촬영자)과의 인적관계에 비추어 촬영자가 피의자의 말을 전파할 가능성이 없고…” 라고 밝혔다.

사건 2의 경우검찰은 “(B씨가욕설을 할 당시 C, D가 이를 들었다고 주장하고둘의 진술이 이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C, D와 고소인은 신천지 예수교 00교회의 신도로서자신들의 종교를 비판하는 피의자가 고소인에게 했던 욕설을 다른 곳에 함부로 전파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보면고소인의 주장만으로 모욕 행위의 공연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라고 판단했다.

모욕의 범위는?

두 사건 모두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아 불기소 처분되었다물론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무조건 처벌되지는 않는다모욕죄에서 모욕이란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16. 10. 13. 선고 20169674).

사건 1을 판단했던 검찰은 단순한 농담무례불친절건방진 표현은 모욕이라고 볼 수 없고모욕의 해당 여부는 피해자의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한 다음 사회통념에 의하여 객관적 의미로 판단해야한다고 불기소 이유서를 통해 밝혔다.

일례로 부모가 그런 식이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는 너무나 막연하여 이것만으로 상대방의 명예감정을 해하여 모욕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있다(대법원 2007. 2. 21. 20068915). 반대로 저 망할 년 저기 오네는 모욕으로 판단했다(대법원 1990. 9. 25 90873).

한편모욕죄는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로도 성립할 수 있지만법률상의 의무가 아니라면 성립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형법 제311(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사이언톨로지 포교

사이언톨로지가 무료 스트레스 테스트를 미끼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 사이언톨로지 건물 앞.

야곱의 씨름은 과연, 사생결단의 기도인가?

장상태 목사의 성경 오해 풀고 읽기(2)


밤새 씨름을 합니다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나를 살려주시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 대형교회 목사님이 야곱의 씨름 기사(창 32:24)를 설명하며 위와 같이 설교했다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을 했다이 씨름을 사생결단의 기도로 해석했다기도는 이렇게 붙들고 애원하듯이 해야 응답된다는 의미로 설교하셨다물론 기도는 해야 한다그러나 인간의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말한다면 오류가 있다안타깝게도 이 본문을 야곱의 간절한 기도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 장상태 목사

과연 야곱은 사생결단의 기도를 했을까나무기둥 붙잡고 뿌리까지 뽑는 심정으로 매달렸을까이렇게 본다면 자연스럽게 야곱이 열심히 기도했으니까하나님이 도와주셨다 정도로 해석하게 된다잘못된 해석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온다그 결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닌 인간 중심의 신앙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이 본문은 야곱의 인간적인 열심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지 않다야곱은 형 에서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크지 않았다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불안과 불신을 깨우치며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인도하는 과정의 말씀이다야곱의 열심에 초점이 있지 않고야곱의 인간적인 고집을 꺾으시고 믿음의 길에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에 초점이 있다.

만약야곱이 이미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한 것으로 본다면본문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많은 모순이 발견된다예를 들면열심히 기도했는데왜 환도뼈를 맞게 될까열심히 기도한 야곱은 왜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애인으로 살게 되는가야곱이 열심히 기도했다면왜 어떤 사람에게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는가왜 그 어떤 사람은 즉시 축복해 주지 않고 바로 떠나려고 하는가많은 부분이 연결되지 않는다.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야곱의 열심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성경 이야기를 사건의 순서에 따라 세밀하게 풀어 가야 한다창세기 32장은 야곱의 위기로 시작하고 있다이 위기 앞에서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강조하고 있다. 야곱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자기 힘으로 이겨보려고 애처롭게 노력하고 있다야곱은 친형 에서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부하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환영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야곱은 잘 알고 있었다.

야곱은 몹시 불안하고 초조했다이 마음을 7절에서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로 표현하고 있다. 11절에서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라고 기도한다야곱은 몹시 두렵고 무서워하고 있었다그러나이미 하나님은 함께 하고 계심에 대한 사인을 보여 주셨다. 2절에서 마하나님”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성경에서 많은 경우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자들과 군대로 함께하심과 보호하심을 보여 주셨다그렇지만믿음이 없어 이런 사인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땅과 자손의 약속을 받았지만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였고여종을 통해서 자손을 이어가려는 믿음 없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광야 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며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끝없는 원망과 불신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많은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야곱도 그렇다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는 동안 큰 재산을 얻고 두 아내와 여종을 얻었지만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계획과 방법에 의존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이런 성향은 외삼촌 집을 나오면서 나아지지 않았다야곱은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님을 보고서도 여전히 현재 상황 앞에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불안과 두려움으로 기도했고에서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자기 재산을 나누어 형 에서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다혹시 가족이 공격을 받게 될 것을 가정해서자신이 좋아하는 아내 순서대로 열을 세운다라헬과 요셉을 가장 뒤에 둔다결정적으로 야곱은 다시 돌아와 얍복강 나루터에 혼자 남았다.

모든 예물과 가족은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은 다시 돌아와 나루터에 남은 사실은 나 혼자라도 살아남겠다는 이기적인 의도 외에도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얍복 나루터는 요단 동편 지역으로 약속의 땅을 벗어난 지역이다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벗어나더라도자기 신변과 안위가 더욱 중요했다는 사실을 나루터에 머문 모습이 보여준다야곱은 위기를 이기적인 방법으로 모면하고 싶었다모두 빼앗기고 죽더라도 자기만은 살고 싶었다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없다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이것은 창세기 33장에 나오는 야곱의 변화에서 알 수 있다.

33장 3절에서 야곱은 가족의 대표로서 죽음을 각오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야곱이 환도뼈를 맞고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난 뒤에 일어난 변화이다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난 뒤에 비로소 가족의 대표자로서 당당하게 형에서 앞에 서게 된다성경은 야곱에 대해서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라고 기록하고 있다이것은 야곱의 기도로 상황이 변화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치심과 깨닫게 하심으로 야곱의 내면적인 변화를 말씀하고 있다.

이는 야곱의 씨름과 환도뼈의 의미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했을 때씨름의 주체는 야곱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을 시작했다싸움의 주체는 야곱이 아니라어떤 사람이었다하나님께서 다른 형태로 나타나서 싸움을 걸거나 씨름하는 모습은 가끔 반복된다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본 후에 이집트로 가려고 할 때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를 죽이려는 기사와 더불어 여호수아 5장에서도 비슷한 기사가 나온다중요한 신앙의 분기점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믿음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패턴 중의 하나이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신앙적인 결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회피하고 있을 때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그것이 바로 환도뼈(카프예레크)를 치는 사건이다(예레크)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아담이 하와를 보며, ‘내 뼈 중의 뼈살 중의 살’(1:23)라고 했을 때와라반이 야곱을 처음 보았을 때, ‘내 골육’(뼈와 살29:14) 가족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특히 환도뼈는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환도뼈(카프예레크)는 생식기를 의미하기도 한다출애굽기 1장 5절은 자녀들을 허리에서 나온 자들(요츠에예레크)’이라고 한다따라서환도뼈를 친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야곱이 만약 열심히 기도했다면왜 이런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는가이것은 기도가 아니라야곱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인간적인 고집을 부렸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이 고집이 꺾인 후에 야곱은 비로소 기도했다고 볼 수 있다호세아 12장 4절에 따르면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야곱이 울면서 간절하게 간구한 모습을 겨루어 이긴 것과 구별하고 있다씨름한 이후에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한 말에 대해서 울며 간구하였다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야곱에게 바로 기도해 주지 않는다무엇을 하는가? 27절에서 야곱에게 이름을 묻는다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그의 이름 뜻은 속이는 자였다이름은 자신의 존재이며 인생이었다환도뼈를 맞고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을 때야곱은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보게 되었다그는 하나님을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신뢰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로만 걸어왔다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게 하시고이제는 다른 인생을 살기 원하셨다. 28절에서 야곱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하나님의 의지로 이름을 바꾸신다이스라엘로 바뀌게 된다이스라엘의 해석에 관해서는 많은 이견들이 있다김정우 교수는 이 단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단어의 어근 샤랴’(싸우다고치신다다스리다)을 다스리다’(Noth)로 보고 동사를 기원형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여 다스리십시오(Hamilton)’로 볼 수 있다따라서 야곱은 이제 속이는 자가 아니라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 된다.” 김정우 교수의 해설이 타당하다고 본다면이제 야곱은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삶의 태도에서 하나님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통치하며 살기를 바라는 인생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한 이 본문을 사생결단의 기도로 보기는 어렵다이렇게 보면이어서 나오는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야곱의 신앙과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오해하게 된다야곱의 씨름은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하나님은 얍복강을 건너지 않고 남아서 혼자 힘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고 벗어나려던 야곱을 꺾으셨다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믿음에서 멀어져가는 야곱을 다시 강권적으로 붙잡으셔서 구속사 가운데로 인도하신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준다선택한 자녀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은혜이다우리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선택한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권능과 능력 가운데 보호하시며 하나님 자녀로서 합당한 성품을 갖추게 하신다.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창세기 32:24-30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편집자 주: 필자 장상태 목사는  좋은우리교회를 담임하고, 튤립성경연구 섬김이, 디다스코 출판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장상태 목사 jangsstt@naver.com

사이언톨로지, 무료 스트레스 테스트로 미혹 페이스북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는 톰 크루즈존 트라볼타제니퍼 로페즈 등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속해있는 종교로 익히 알려져 있다. ‘Scientology’는 라틴어 ‘Scio(깨달음)’와 그리스어 ‘logos(이성)’의 합성어로, 1954년 L. 론 허버드(Lafayette Ronald Hubbard, 19111986)에 의해 창시되었다.

▲ 사이언톨로지 도쿄 건물. 2015년 8월에 세워졌다.

교리적 근간은 허버드의 저서 『다이아네틱스』(Dianetics)인간은 불멸의 정신적 존재이고그 능력은 (현시점에서는 실현되지 않지만무한하다고 믿는다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하며불행의 원천인 태어나기 전 세포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치료하는 시스템을 제시한다.

사이언톨로지는 무료 스트레스 측정무료 심리상담 등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상담 결과 치료가 필요하니 정신 감정 및 치료기 이미터(e-meter)’를 구매하라고 권유한다프랑스 파리에서는 이미터를 사느라 빚을 지게 된 한 여성이 신도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례도 있었다프랑스 법원은 30만 유로(약 3억 7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사이언톨로지의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 무료 스트레스 테스트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이언톨로지(일본 도쿄)

이미터는 사이언톨로지의 입교식에도 사용된다전기가 흐르는 손잡이를 잡고 질문에 답하는 입교식은 매우 고통스럽다고 전해진다톰 쿠르즈의 전 아내 케이티 홈스는 딸 수리 크루즈가 입교식을 치르지 않게 하려고 이혼을 결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일본과 중국에까지 진출한 사이언톨로지는 한국에는 공식적으로 지부를 두지 않고 있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십계명, 명령을 넘어서

손재익 목사의 십계명 바르게 이해하기(2)


십계명은 명령이 아닌 언약이다

십계명(十誡命)이라는 표현만 보면 “10개의 명령(命令)”이라는 뜻입니다그러다 보니 많은 분이 경계를 합니다괜히 부담을 가집니다. “내가 어떻게 이걸 지키지?” “교회 다니면 지키라는 게 너무 많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그런데 사실 성경에서는 십계명을 명령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몇몇 구절들을 보겠습니다.

▲ 손재익 목사

 

출애굽기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신명기 4:13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신명기 9: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신명기 9: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이 구절들에 따르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십계명이 기록된 신명기 5장은 십계명을 언급하기 전에 23절에서 “(2)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라고 해서 십계명이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역대하 5:10은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라고 해서 십계명이 곧 언약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라는 말은 없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십계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한글 성경의 출애굽기 34:28과 신명기 4:13; 10:4에 나오는 십계명이라는 표현은 의역입니다히브리어 원문은 말씀들’ 혹은 ‘10가지 말씀들이라고 표현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이라고 의역한 이유는 말씀들을 가리켜서 출애굽기 24:12; 마태복음 19:17-19; 로마서 13:9 등에서 계명이라고 부르며이 계명들은 모두 10개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십계명이라는 표현 대신에 언약의 10가지 말씀들”(the ten words of the covenant)이라고 표현합니다. ‘10가지 말씀들이라는 성경의 언급(출 34:28; 신 4:13; 10:4)과 언약의 말씀들이라는 성경의 언급(출 34:28; 신 4:13; 참조신 29:1, 9)을 모아서 언약의 10가지 말씀들”(the ten words of the covenant)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이든 언약의 10가지 말씀()’이든 어느 명칭 하나만 옳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명령이라는 성격만으로 제한하기 쉽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언약의 10가지 말씀()’이라는 명칭을 통해 언약의 성격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약백성이 지켜야 할 십계명

십계명은 명령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우리가 맺은 언약입니다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하나님과 교회의 관계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보여줍니다십계명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통해 주어진 것으로서 언약백성이 지키고 누려야 할 법입니다십계명은 누구나 지켜야 할 내용을 담고 있지만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속한 자가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십계명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기독교 신자는 십계명을 지킴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나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한 방식입니다또한 십계명은 “~하지 말라” 혹은 “~하라의 형태이지만그 내면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가 누구인지나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렇기에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우리를 알며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알아가야 합니다.

머리말에 나타난 십계명의 성격

십계명에 이러한 특성이 있다는 사실은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많은 분이 십계명이라고 하면 제1계명에 해당하는 출애굽기 20:3의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을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십계명의 시작은 출애굽기 20:2 “나는 너를 애굽 땅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입니다이 부분을 가리켜서 십계명의 머리말이라고 합니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3문답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01문답).

 

십계명의 머리말은 십계명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특히 십계명이 단순한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관계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잘 나타냅니다머리말을 자세히 보면 나는 너를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곧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관계를 보여줍니다십계명의 머리말에 이러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장로교회의 신앙을 정리해 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01문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01십계명의 머리말은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머리말은 이 말씀에 포함되어 있으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신 것입니다.1) 여기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서 영원하고 불변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자기의 주권을 나타내셨으며,2) 자기의 존재를 자기 자신 안에 스스로 소유하시고3) 자기의 모든 말씀4)과 사역5)에 따라 존재를 나타내시며옛날에 이스라엘과 맺으신 것과 같이 자기의 모든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시며,6)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 된 멍에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과 같이 우리를 영적 속박에서 구원하셨습니다.7) 그러므로 이 하나님만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고 그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8)

1) 출 20:2 2) 사 44:6 3) 출 3:14 4) 출 6:3 5) 행 17:24,28 6) 창 17:7; 롬 3:29 7) 눅 1:74,75 8) 벧전 1:15-18; 레 18:30; 19:37

언약 백성들인 우리가 지켜야 할 십계명

십계명은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맺은 언약입니다구약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뒤에 십계명을 받았다면우리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뒤에 십계명을 받았습니다구약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돌 판에 새겨주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백성들인 우리에게는 마음 판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셨습니다(고후 3:3; 히 8:10; 10:16).

 

그러므로 우리들은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명령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십계명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힘

우리의 힘으로는 십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이 세상에는 자기의 힘으로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롬 3:10,23; 7:18-19, 21-23)육신이 연약해서 이루지 못하는 율법의 요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의 법을 통해서 가능합니다(롬 8:3-4).

 

새 언약 백성인 우리에게 있어서 십계명은 돌 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겨져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고후 3:3).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마음 판에 새겨진 언약을 기억하면서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 누구도 이 법을 지키라고 강제하지 않습니다그 대신 신자의 양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딤후 1:14)께서 끊임없이 이 계명을 지키도록 명령하십니다.

편집자 주필자 손재익 목사는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를 담임하고 있다저서로 『십계명언약의 10가지 말씀』(디다스코)이 있다.

손재익 목사 bareunmedia@gmail.com

〔책 소개〕 『웨딩큐티』, 준비된 결혼 생활을 위한 필독서

우리는 대학 입시를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합니다취업을 위해 졸업을 늦춰가며 스펙을 쌓습니다 결혼을 위해서는 어떤 공부나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결혼은 대입이나 취업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대다수가 아무런 공부나 훈련 없이 결혼을 맞이합니다.

▲ 장상태 / 엔크리스토 / 88쪽

한 사람의 인생에서 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30년에서 60년입니다인생의 절반 이상을 결혼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따라서 결혼생활을 위해 공부하고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단지 경제적인 준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결혼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과 배우자를 대하는 태도자신을 인식하는 수준신앙적인 면까지 모든 준비를 포괄합니다준비된 결혼이 건강한 가정을 만듭니다건강한 가정이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섭리 가운데 그분의 통치를 받는 가정을 말합니다하나님 안에 있을 때 가정이 바로 서며 신앙과 마음이 건강한 자녀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을 통해서 교회도 건강히 세워집니다오늘날 벌어지는 사회문제와 가정문제는 준비 없는 결혼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기로 동의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믿음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결혼에 대한 바른 신앙적 지식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기대와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결혼을 맞이하게 됩니다첫 단추를 잘 끼워야 큰 어려움 없이 새로운 가정을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결혼은 사람간의 동의로 시작하지 않습니다이것은 세속적인 관념입니다성경적인 결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만들어 가십니다이것은 바른 성경적 지식과 자신에 대한 이해배우자에 대한 지식을 포함합니다.

이 책은 하나님 안에서 결혼을 준비할 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설명하고 있습니다성경적 결혼자신의 내면 문제배우자를 이해하는 문제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등에 대한 31개의 짧은 아티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한 권의 책으로 결혼의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지만결혼과 가정에 대해 계속해서 배우고 알아가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저자 장상태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과(B.A.), 총신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다. CLC 편집장흰돌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했고현재 좋은우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아래는 저자 이메일과 페이스북.

jangsstt@naver.comwww.facebook.com/sangtae.jang.1

바른미디어 bareunmedia@gmail.com

균형 잃은 칭의론 #1

하나님 주권 강조에 집중한 칭의론들_박재은 박사의 칭의 바르게 이해하기(2)


신학과 교리의 역사는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흥망성쇠를 경험한 장구한 역사이므로 몇 가지 레토릭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표현들로 신학 전체 역사를 대결 구조” 안에서 구도화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객관 vs. 주관초월 vs. 내재초자연 vs. 자연하나님의 주권 vs. 인간의 역할/책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이러한 대결 구조는 두 개의 거대한 대결의 틀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인데 즉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두 주요 주체들 사이의 영역 다툼이요 주권 다툼이다.

▲ 박재은 박사

 이러한 성향은 칭의론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하나님을 칭의 사건의 결정적 주체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칭의 사건의 결정적 주체로 볼 것인지 혹은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점철된 싸움의 장소가 바로 칭의론의 전쟁터이다. 워낙에 이 싸움이 치열하다 보니 객관성을 상실한 채 서로 양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짙어왔다그 결과 다양한 형태의 불균형적 칭의론들이 양산되고 말았다이러한 칭의론의 역사는 가슴 아픈 역사이고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역사이다

첨예한 대결 구조 안에서 신학을 구도화 하여 설명하는 여러 가지 틀 가운데 본고는 하나님의 주권 강조 vs. 인간의 역할/책임 강조라는 틀을 사용하여 장구한 칭의론의 흐름을 2회에 걸쳐 조망해 볼 예정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칭의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 강조와 인간의 역할/책임 강조 둘 중에 어느 것 하나 무시되거나 평가절하 되지 않은 채 둘 다를 놓치지 않고 균형 있게” 조망해야 한다(어떻게 균형 있게” 조망할 것인지는 추후 연재를 통해서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균형 잡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거나반대로 인간의 주권을 하나님의 주권보다 ” 강조하는 경향이 교회사 가운데 왕왕 있어왔기 때문이다이번 회에서는 칭의의 영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권 강조에만 집중한 칭의론을 살펴보고다음 회에서는 인간의 주권 강조에 더 집중한 칭의론을 살펴볼 것이다이러한 작업 가운데 균형” 잡기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율법주의 칭의론

먼저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반율법주의를 영어로는 안티노미아니즘”(antinomianism)으로 표기하고한글로는 율법폐기론이라고도 부른다기본적으로 반율법주의는 인간의 행위를 평가절하하거나 논외로 두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반율법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크게 유행한 신학 사조인데 그 탄생 배경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반율법주의는 로마 가톨릭 신학(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선행 준비가 합력하여 의롭게 된다는 신학)이나 아르미니우스주의 신학 사상(인간의 믿음이 칭의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신학)이 유럽 전체를 강타하는 상황 자체를 심히 못 견뎌했다반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 칭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만 가능하고이 속죄 사역은 완전하게 무상(free) 은혜이므로인간의 역할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특히 반율법주의자들은 인간의 믿는 행위가 칭의의 방정식 안으로 잠입하는 순간을 매우 경계했다그러므로 반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칭의는 인간의 믿음 전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물론 반율법주의자들의 최대 논적은 아르미니우스주의였으므로 왜 그들이 칭의 사건 가운데 믿는 행위를 철저히 제거하려 했는지 일견 이해는 간다인간중심주의 신학이었던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반대해 어떻게든 칭의의 영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권을 최대한 확보하려 노력한 점은 치하 받아 마땅하다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극단적 태도였다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반율법주의가 전개한 칭의론 안에는 인간이 들어설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이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책임과 역할이 배제된 채 구원론이 전개되는 양상으로 귀결되었다즉 인간의 믿음 전에” 칭의는 무상으로 완료되었기 때문에믿음을 통해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의미인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through faith) 원리는 무색하게 되었다이미 칭의 된 자들의 죄는 하나님 눈앞에서 완전하게 사라졌기 때문에더 이상 회개 기도할 필요도 성화의 삶을 살 필요도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논리가 양산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성화의 가능성과 행함의 필요성이 구조적으로 제한되는 논리를 품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사상을 반율법주의” 혹은 율법폐기주의라고 명명한다.

 

반율법주의 칭의론은 죄인의 칭의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상으로 모든 것을 다 하신다는 것(그러므로 논리적으로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없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는 신학 사상이다반율법주의 논리 가운데서는 인간의 책임과 역할이 자연스럽게 배제되므로 반율법주의적 칭의론은 불균형적 칭의론의 전형으로 발전한다존 이튼(John Eaton, 1574-1630), 토비아스 크리슾(Tobias Crisp, 1600-1643), 존 설트마쉬(John Saltmarsh, d.1647) 등이 대표적으로 반율법주의적 칭의론을 전개한 인물들이다.

2. 하이퍼(hyper) 칼빈주의 칭의론

하이퍼 칼빈주의 혹은 초()칼빈주의는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신학 사상이다하이퍼(hyper) 혹은 초()라는 용어 자체가 의미하듯이 하이퍼 칼빈주의는 칼빈주의를 뛰어넘는” 신학 사상을 뜻한다그렇다면 무엇을 뛰어 넘는다는 말인가만약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듯이 칼빈주의를 하나님 주권 강조 사상으로 상정한다면하이퍼 칼빈주의는 칼빈주의가 지향하는 하나님 주권 강조 사상을 한층 더 뛰어넘어 하나님 주권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하이퍼 칼빈주의 사상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첫째는 복음에로의 부르심(calling)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혹은 자유롭게” 적용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고(즉 모든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만” 복음의 부르심이 적용된다고 주장함 1)), 둘째불신자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 믿음과 회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부 한다(즉 복음을 수납할 때 인간의 역할이 필요 없다는 것을 주장함). 결국 하이퍼 칼빈주의는 구원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간의 역할을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17세기 반율법주의의 재판(reprint)적 성격을 갖는다.

 

하이퍼 칼빈주의의 요체인 극단적 하나님 주권 중심” 사상이 칭의론에 적용되면 17세기 반율법주의 칭의론보다 더 극단적인 칭의론으로 치닫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하이퍼 칼빈주의가 말하는 칭의 사건은 하나님의 내재적 행위”(God’s immanent act) 속에서 완전하게 완료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일견 큰 문제가 아니게 보일 수 있다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의 내재적 행위를 신적 작정”(divine decree)으로 이해한다면칭의 사건은 영원 전 하나님의 내재적 행위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칭의가 하나님의 내재적 행위에서 완료된다는 의미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는 신학적으로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하나님의 작정과 실행에 대한 전통적 틀인 영원에서의 작정그 작정의 시간 속에서의 실행”(decree in eternity & its execution in time)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만약 칭의가 하나님의 영원 전 내재적 행위에서 완료된다면그 칭의는 시간 속에서의 실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칭의가 되기 때문이다즉 하이퍼 칼빈주의가 말하는 칭의 사건은 인간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실태,” 인간의 존재 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현 시간,” 인간의 현 믿음과는 하등의 상관없이 단순히 하나님의 내재적 생각” 속에서 완료되는 뜬 그름과도 같은 신기루에 불과한 사건이 되고 만다.

 

17세기 반율법주의자들처럼 18세기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주 논적도 아르미니우스주의였다칭의의 영역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꽤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적 칭의론의 뿌리를 초장부터 잘라내기 위해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반율법주의자들보다 더 극단적으로 칭의를 하나님의 내재적 생각 안에 가두어 버렸다이로 인해 하나님의 주권은 극단적으로 강조되었지만인간의 역할과 책임은 동시에 완전하게 제거되어버렸다더 극단적인 불균형적 칭의론이 탄생한 것이다존 스켑(John Skepp, d.1721), 조셉 허시(Joseph Hussey, d.1726), 존 브라인(John Brine, 1703-1765) 등을 대표적 하이퍼 칼빈주의자들로 명명할 수 있다.

3. 영원 칭의론

칭의론의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극단적으로 강조했던 사상들 중 하나가 바로 영원 칭의론”(eternal justification)이다영원 칭의론은 영원으로부터 칭의”(justification from eternity)라고도 표기한다영원 칭의론의 핵심은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 즉 영원 전에 이미 칭의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일견 하이퍼 칼빈주의 칭의론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하이퍼 칼빈주의 칭의론은 하나님의 내재적 행위에서 칭의가 완료되지만 그 내재적 행위를 반드시 영원과 연결시키지 않는다오히려 하이퍼 칼빈주의 칭의론은 하나님의 내재적 생각을 칭의의 완료점으로 상정하여 하나님의 내재적 생각 자체에 더 큰 강조점을 둔다반면 영원 칭의론은 칭의의 완료점을 하나님의 내재적 생각보다는 영원” 그 자체에 두어 영원이 내포하는 의미 자체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즉 시간 전 영원에서부터” 우리 모두의 칭의는 이미” 완료되었다는 것이 영원 칭의론의 요체이다.

 

하지만 순수한 의미로서의 영원 칭의론 즉 영원에서부터 모든 칭의가 완전히 완료되었다는 극단적 입장을 가진 인물은 교회 역사 속에서 오롯이 찾아보기 힘들다칭의의 시작점과 완료점을 영원에 두고 칭의론을 전개하는 인물들도 시간 속에서의 믿음의 역할 등에 대해서 여전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영원 칭의론은 칭의의 방정식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신학적 레토릭으로 자주 쓰여 왔으며 그 성격상 많은 오해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양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반율법주의 칭의론하이퍼 칼빈주의 칭의론영원 칭의론 등은 인간의 역할/책임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칭의론들 이었다인간 중심적 칭의론과의(특히 아르미니우스주의 칭의론과의치열한 다툼 가운데서 탄생한 이러한 칭의론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의도의 긍정성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칭의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하시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늘 인간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이 무시되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반율법주의하이퍼 칼빈주의영원 칭의론은 바로 이러한 오류를 범했다하나님의 주권 vs. 인간의 역할이라는 거대한 시소게임의 추가 지나치게 혹은 완전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불균형적 칭의론들이 양산되었다.

 

다음 회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시소게임의 추는 그 반작용으로 또다시 다른 쪽 극단으로 치우쳐 기울기 시작한다그것이 바로 인간 중심주의적 칭의론의 탄생 배경이다하나님의 주권 vs. 인간의 역할이라는 시소게임 속에 나타난 치열한 작용과 반작용의 다툼을 과연 어떻게 균형 있게 조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 바로 본 연재의 근본 목적이다이에 대해서는 연재가 진행되면서 차츰 드러날 것이다). 지나간 교회 역사를 통해 다양한 불균형적 칭의론들을 조망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얼마나 적실하며 필요한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역사 속에 나타났던 불균형적 칭의론들을 조망함을 통해 현재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그것이 이 작업의 존재 이유이고그 이유에는 당위성이 한 가득 서려 있다.

1) 개혁신학 구원론은 부르심을 외적(혹은 일반적부르심과 효과적 부르심으로 구분해 이해한다외적 부르심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복음의 부르심을 뜻하고효과적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작정과 경륜 가운데서 전적으로 값없는 은혜로 구원 받을 자들을 위한 효력 있는특별한 복음의 부르심을 뜻한다.

편집자 주필자 박재은 박사는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고 있다저서로 『칭의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 『성화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가 있다.

박재은 박사 jepark.theopneustos@gmail.com

신천지의 불법행위, 합의로 종결

올림픽 평화의 광장 무단 점거, 처벌 없이 끝나


신천지는 지난 2015년 9월 18위장단체 HWPL이 주최하는 행사를 명목으로 올림픽 평화의 광장을 무단 점거했다당시 국민체육진흥공단은 HWPL의 광장사용 신청을 미승인했다신도 수백 명은 행사 전날인 17일 밤기습적으로 광장에 난입해 행사 진행을 위한 무대를 설치했다경찰이 출동했지만손을 쓸 수 없었다다음날 집결한 수만 명의 신도로 인해 광장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 신천지의 올림픽 평화의 광장 무단 점거 모습(출처: 한국기독교이단상담연구소 페이스북)

상황이 심각해지자 공단 측은 올림픽공원 홈페이지에 현재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진행 중인 행사는 사전에 승인되지 않은 행사로 주최 측에서 무단 점거하여 진행되고 있는 불법행사임을 알려 드립니다관리자로서 행사장 철거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나 주최 측에서 행사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이로 인해 올림픽공원 이용에 불편이 예상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공지했다당시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 불법행사임을 알리는 올림픽공원 홈페이지 공지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사건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본지의 취재결과 사건은 공단과 신천지의 합의로 마무리되었다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공단 측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법원의 조정 신청에 따라 지난 2016년 3월에 합의해 사건이 종결되었다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위한 각서와 합의금을 받았는데합의금은 알려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의 조정에 따른 합의이기 때문에 표면적인 문제는 없다하지만 신천지의 무법한 행위로 인한 피해자는 공단만이 아니다당시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은 직접적인 피해자였고위장행사와 포교로 인한 이차삼차의 잠재적 피해요인을 따져본다면, ‘합의라는 공단의 판단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한 신천지 피해자는 국민의 피해를 담보로 한 합의라고 공단을 행위를 비판했다.

사이비 종교의 명백한 집단적 불법행위조차 처벌하지 못한 공단의 소극적 대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성화, 균형 있게 이해하기』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다짧은 책 한 권이지만 혼자서는 알 수 없는 방대한 지식이 잘 정리되어 있다성화에 대해서 오해하기 쉬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역할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균형 잃은 성화론에 대해 명확한 지점을 잡아 설명하고 개혁주의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이다혼자서 그 분야를 이해하려면 분량도 많고정리가 어려울 텐데 저자의 방대한 독서와 분석으로 목회자들이 쉽게 다른 분야의 잘못된 성화론을 이해하게 해준다.

〔 책 소개 〕 『성화, 균형 있게 이해하기』
▲박재은 / 부흥과개혁사 / 214쪽

먼저로마 가톨릭의 성화론을 설명하면서 왜 공로를 강조하는지 기초를 제공한다이성이 타락하지 않았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서부터 계속 발전하여 공로신학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핵심을 소상하게 설명한다왜 가톨릭은 전적부패가 아닌 부분 부패인지 또 그 신학적 뿌리가 지금 어떤 현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루터파의 성화론 에서는 마틴 루터의 성화론과 그것을 발전시킨 루터파의 성화론을 비교하면서 마틴 루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루터는 칭의만 강조했고 성화를 소홀히 했다는 말은 마틴 루터와 루터파의 성화론을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한 오해임을 알려준다.

헤르만 콜브뤼게의 반 율법적 성화론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읽으면서 일부 반 율법주의로 흐르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도움을 받았던 내용은 근현대의 균형 잃은 성화론에 소개되는 케직 운동에 대한 평가다케직운동에 대한 평가는 늘 헛갈려왔다왜 극단적인 평가가 케직운동을 통해 나오게 되는지를 설명하고한국교회 강단에서 성화에 대한 잘못된 설교 중 다수가 케직 운동 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다시 균형 잡기에서 언급하는 개혁주의 성화론에 대한 설명이다짧은 분량이라 한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겠지만 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의 개념과 점진적 성화의 개념으로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역할을 설명하기 한 부분은 다소 아쉽다좀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균형 잡기를 썼더라면 어땠을까?

이승구 교수도 추천사에서 언급했지만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가 칭의와 어떻게 다른가하는 의문이 강하게 일어나게 된다그 부분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설명이 있었으면 더 완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화균형 있게 이해하기』는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야 하는 탁월한 책이다성화의 주제 중 혼란스러운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 설명하고잘못된 이론들을 명확하게 평가한다성화에 대한 논의의 역사적 과정을 소개함으로 왜 잘못된 신학들이 발생했는지 이해를 돕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방대한 분량의 역사와 조직신학을 공부하며 깊이를 갖추는데 많은 시간이 든다그런 측면에서 깊이 있는 주제를 한 권의 책으로 쉽게 써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신학자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책 뒤편에 소개된 성화에 관련된 자료들도 더 공부하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킨다짧은 분량 안에 이 긴 역사를 다 담아낸 저자의 능력은 탁월함을 넘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화려한 것도 아름답지만명확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편집자 주저자 박재은 박사는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bareunmedia@gmail.com

이영훈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정지

김풍일 목사에게 발목 잡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영훈 대표회장의 직무가 정지됐다서울중앙지법 제51민사부는 17김풍일 목사(현 김노아세광중앙교회)가 제기한 직무집행정지등 가처분을 받아들였다이 대표회장은 확정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이영훈 목사는 20, 21, 22대 대표회장으로 선출됐는데법원은 한기총 정관에 따라 대표회장은 두 번만 지낼 수 있다고 밝혔다. 20대가 보궐선거였지만이 역시 연임제한규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 이영훈 목사(좌), 김풍일 목사(우)

법원은 김풍일 목사의 한기총 대표회장 출마자격도 인정했다김 목사는 지난 1월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하려고 했지만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는 김 목사가 원로목사라는 이유로 출마자격을 박탈했다법원은 직무정지 기간 중 자신을(편집자 주김풍일직무대행자로 선임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김풍일 목사는 자칭 보혜사’,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동정녀 탄생 부정’, ‘신천지와 유사한 비유퓰이’ 등 다양한 이단 사설로 논란이 되어 왔다한기총은 이런 김 목사를 신천지대책위원장직에 앉혀 비판을 받아왔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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