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 2017년 4월월

시드니 복판에서 열린 문선명 탄생 기념 전시회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한학자)가 문선명 탄생 97주년 기념 전시회를 시드니 피스엠버시빌딩(Peace Embassy Building, 824-826 George St, Chippendale)에서 지난 3월 2123일에 열었다통일교는 시드니 센트럴 역(Central Station) 주변에서 보행자들에게 전단을 배포했다전시회가 열리는 빌딩은 시드니 중심가에 소재해 있다.

이 빌딩은 통일교 교회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호주 통일교 교회의 한 홈페이지(https://www.familyfedaustralia.org)를 보면전시회가 있는 건물의 주소와 교회의 주소가 같다

▲ 시드니 센트럴 역 주변에서 배포된 전단

전단에서는 문선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20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문선명은 아버지 문(Father Moon)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는 참사랑참 가정인류에 대한 이타적인 섬김의 이상을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했다그는 종교인종민족문화 간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지치지 않고 일했다올해는 그가 태어난 97주년이 된다.”

통일교는 문선명과 아내 한학자가 짝지어준 외국인 배우자와 결혼해야 하는 대규모 합동결혼식으로 유명하다통일교에서는 합동결혼식이 인류의 장벽을 허문다고 믿는다문선명이 사망한 후에는 한학자가 이 결혼식을 이어가고 있다.

통일교는 결혼하지 못한 예수가 인류의 구원 사역에서 실패했으며문선명이 하나님이 원하신 참 가정을 이룩한 참 아버지라고 주장한다통일교는 그의 아내인 한학자를 참 어머니그 자녀들을 참 자녀라고 부른다그러나 문선명이 사망한 후참 가정은 그의 적통성을 두고 참 어머니와 참 자녀들(특히 7남 문형진사이에 대립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용규 객원기자 bareunmedia@gmail.com

박지원 대표, “신천지는 사교”

 “(신천지는개인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기 때문에 절대 반대합니다.”

▲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출처: 박지원 대표 페이스북)

신천지 신도들이 국민의당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해명에 나섰다박 대표는 지난 4월 11,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친척 중에 딸 한 사람을 신천지에 잃어서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라고 가정사를 밝히며신천지는 개인가정사회를 파괴하는 사교라고 말했다.

그간 신천지와의 연루설로 곤욕을 치른 정치인들은 대체로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유력 당 대표의 특정 종교단체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은 이례적이다.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오류

사본의 가치를 무시하는 독단적 주장


성경은 다양한 번역본이 있다그럼에도 유독 킹제임스성경(The King James Version, KJV)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이하 킹제임스 유일주의라고 표기). 한국에는 대표적으로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 목사가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한글킹제임스를 출판해 보급함으로 킹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을 대표해왔다이 목사는 개역성경은 사탄이 변개했으며다른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해왔다예장합동과 통합은 말씀보존학회를 1998년과 2002년에 각각 이단’, ‘반기독교 주장을 하는 곳으로 결의했다.

 

킹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이 말씀보존학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지난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의 경우 개역성경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지만, “1611년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정 목사는 개역성경은 사탄이 변개했다는 (D.A. 카슨의 표현을 빌려무자비한 욕설을 여전히 하고 있으며 핵심 사상은 다른 킹제임스 유일론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사랑침례교회 측은 그리스도예수안에 출판사를 통해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을 만들고 홍보하고 있다흠정역은 한영대역 관주성경큰 글자 성경작은 성경 등 다양한 버전으로 출판되는 데생명의말씀사 성경 판매부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킹제임스성경읽어도 될까

킹제임스성경은 말 그대로 제임스 왕에 의해 승인되고 번역된 성경이다필립 W. 컴포트는 킹제임스성경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1603년에 영국의 왕이 된 후(이때부터 제임스 1세로 불림청교도와 성공회 간의 차이가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두 교파에 속한 몇 사람의 성직자들을 초대해 화합을 가졌다그 화합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나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청교도 측 지도자이자 옥스퍼드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학장이었던 존 레이놀즈가 왕에게 새로운 번역본을 인가해 주기를 청했다당시 그는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더 정확한 번역본을 기대하고 있었다제임스 왕 역시 그 제안을 기뻐했는데그것은 그가 보기에 비숍 성경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고제네바 성경에 들어 있는 주()들은 지나치게 선동적이었기 때문이다.1)

제임스 왕의 재가 이후 약 50여 명의 학자가 6개 팀으로 나눠 1607년부터 번역을 시작했고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이 완성되었다킹제임스성경은 오랫동안 권위를 인정받았다래리 스톤에 따르면 킹제임스성경은 잉글랜드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영어가 온전한 언어로 형성되도록 도왔고영문학에 배경을 제공해 주었고음악을 만들도록 고무했으며몇 세기 동안 각 가정마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소유하고 읽곤 했던 유일한 책 이었다고 한다.2)

킹제임스 유일주의의 시작

오랫동안 인정받았던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발생하면서 킹제임스 유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 R.C. 스프로울은 킹제임스성경이 오랜 기간 탁월한 지위를 누리며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그 지위가 위협받을 때 나온 저항의 목소리라고 말한다.3)

권동우 대표(킹제임스연구소)의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에 따르면 킹제임스 유일주의의 뿌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의 신학자 벤자민 G. 윌킨슨이다권 대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벤자민 G. 윌킨슨1872~1968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선교사이자 제7일안식일워싱턴재림대학교 신학부 학장이었다킹제임스성경의 유일주의는 윌킨슨이 1930년에 출간한 『입증된 우리의 흠정역 성경』이란 제목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시편 12:6~7을 잘못 적용하여그 말씀이 마치 킹제임스성경 보존에 대한 약속인 것처럼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그러나 정작 윌킨슨이 KJV를 지키려 했던 이유는 1881년 개정된성경RV이 KJV보다 자신이 믿고 지지하고 있는 안식교 교리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4)

윌킨슨 이후 제임스 재스퍼 레이데이비드 오티스 풀러에드워드 F.힐즈피터S. 럭크만 등에 의해 유일주의는 그 맥을 이어왔다그 중에서도 피터 S. 럭크만은 기존의 성경을 가장 모욕적으로 비판하는 인물인데 이송오 목사가 럭크만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편 12편을 근거로 한 보존론의 오류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일점일획 가감없이 보존하셨다는 소위 성경 보존론’ 교리를 만들었다정동수 목사(사랑침례교회)는 시편 12편 6, 7절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들이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완벽하게 보존되었음을 믿는다고 주장한다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은 시편 12편 6, 7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킹제임스 흠정역

시편 12편 6절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절 오 주여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정 목사는 이 구절을 두고 이게 성경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에요이걸 믿으셔야 되요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존해 주신다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하나님의 숨이 들어가서 살아 있는 모든 단어들을 일점일획까지 하나님이 보존해 주신다는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정 목사는 7절의 그것들을이 6절의 주의 말씀들이라고 주장한다하지만 이는 문맥을 무시한 것뿐만 아니라 문법적으로 틀린 해석이다. 6절의 말씀들은은 여성명사이고 7절의 그것들은은 남성명사다,수를 일치시켜야 하는 것은 히브리어의 기본적인 문법이다문법상 말씀들은은 그것들은이 될 수 없다. 7절의 그것들은은 5절에 나오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말씀보존학회는 한술 더 떠서 자신들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성경에서 7절의 그것들을을 이 말씀들을로 바꾸어 번역했다.

한글 킹제임스성경

시편 12편 6절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7절 오 주여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킹제임스성경 그 어디에도 7절의 그것들을을 이 말씀들을로 번역할 만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유일론자들의 성경보존론은 시편 12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데 기인한 오류다

▲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시편 12편 7절과 난외주

아이러니한 것은 시편 12편 보존론은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했던 번역자들에 의해서도 반박이 가능하다번역자들은 영어문법상 7절의 그것들을’(them)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혼돈을 일으킬 가능성을 미리 예측했던 것 같다.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난외주에 그것들을이 사람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킹제임스성경은 훌륭한 사본을 가지고 번역했을까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은 구약이 히브리어신약이 헬라어로 되어 있지 않은 영어로 된 하나의 번역본이다번역본을 완전한 성경이라는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D.A. 카슨은 어떤 하나의 특정한 본문형태를 두고 그것이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그 이유는 하나의 본문 형태는 사본들을 비교하여 두드러진 공통점을 가진 것들끼리 분류해서가장 가능성이 있는 독법을 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확립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5)

킹제임스 유일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킹제임스성경의 신약 기초본문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TR)이기 때문이다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기본적으로 TR을 사용해서 신약을 번역했다는 뜻이다.

TR이라는 이름은 인쇄업자였던 엘지비어 형제가 1633년에 펴낸 성경의 서문에서 사용한 독자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을 가지게 되었다본문에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공인이라고 하니 권위 있는 곳을 통해 인정받은 것 같지만실상은 책을 판매하기 위한 상업적 문구였고 이것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학자들은 TR의 어설픈 형성 과정을 지적하며 큰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브루스 M. 메쯔거는 『사본학』에서 TR의 형성과정을 다음과 같이 알렸다.

최초로 발행된 헬라어 신약성경(즉 시판된 것)은 유명한 네덜란드 학자요 인문주의자인 로테르담의 데지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준비한 판이었다… 1514년 8월에 바젤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러한 가능성을 잘 알려진 출판업자 요한 프로벤과 의논하였다(아마 처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상담은 처음에는 결렬된 것 같았지만 1515년 4월에 에라스무스가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했을 때 재개되었다프로벤이 친구 비아투스 리이니나누스를 통하여 에라스무스가 즉시 신약의 초판을 착수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의심할 여지없이 프로벤은 스페인의 다국어 대조 성경이곧 나올 것이라고 들었으며헬라어 신약의 판이 시장화될 것을 알았고크시메네스의 작품이 끝나고 출판이 허가되기 전에 이 결정이 인쇄화 될 것을 원했다…인쇄는 1515년 10월 2일에 시작되었고아주 짧은 시간 내에(1516년 31전체 판이 끝났고 … 에라스무스 자신이 후에 선언한 것과 같이 편집되었다기보다 오히려 재촉되었다.” 출판을 서둘렀기 때문에 책은 수백 군데의 오식을 갖게 되었다사실 스크리브너가 언제가 이것은 내가 아는 가장 나쁜 책이다라고 말하였다에라스무스는 전부 헬라어로 된 성경 사본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신약의 몇몇 사본을 사용했다… 계시록을 위해서는 12세기의 단 한 권의 사본밖에 없었는데그는 그것을 그의 친구 로이힐린에게서 빌렸다불행히도 이 사본은 그 책의 마지막 6개 구절들이 있는 마지막 장이 빠지고 없었다이러한 구절들을 위해서 요한계시록의 헬라어 본문이나 그리스어 주석으로 사본이 보충된 책에는 곳곳에 있는 몇몇 다른 구절들이 거의 분간할 수 없도록 혼합되어 있는 것 같이에라스무스는 라틴역에 의존하여 이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했다그러한 절차에서 기대 되었던 것 같이여기저기에 에라스무스 자신이 만든 헬라어 본문은 어떤 알려진 헬라어 사본에서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이문(異文)이었다그러나 그러한 것은 소위 말하는 헬라어 신약의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인쇄물에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영속되고 있다.6)

이후 스테파누스베자엘지비어 형제가 에라스무스의 판본을 기초로 성경을 출판했다엘지비어 형제의 상술로 생겨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 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성경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에게 인정된 성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메쯔거는 대단히 미신적인 존경이 텍스투스 리셉투스에 바쳐졌기 때문에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수정하며 비평하려는 시도는 신성모독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다”7)고 전한다.

메쯔거가 밝힌 TR의 형성과정에 따르면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몇 개의 사본만 사용한 것도 문제지만 요한계시록은 한 개의그것도 불완전한 사본으로 편집했다학자들은 에라스무스의 편집본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본문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한다에라스무스는 몇 차례 개정을 통해 본문을 수정했지만 기초는 남아 있었고 이런 오류가 킹제임스성경에 유입되었다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요한의 콤마로 알려진 요한일서 5장 7절과 바울의 질문인 사도행전 9장 6절이다.

다수본문과 소수본문

정동수 목사는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공인본문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정 목사는 킹제임스성경의 대본번역용 본문이 된 사본에 대해서도 킹제임스가 채택한 다수 본문이 훨씬 우수하며 바르다며 다수 사본을 뿌리로 한 킹제임스성경 쪽이 소수 사본을 뿌리로 한 기타 현대 역본들에 비해 훨씬 우수하며당연히 우리가 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안타깝지만 개역성경은 소수 사본 계열의 성경이라고 말한다.8)

많은 사본이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이 완전하고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하지만 여기에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비잔틴 본문은 다수라는 이유로 권위를 갖지 않는다. 16세기 이후 비잔틴 사본보다 훨씬 이전의 사본들이 발견되었다사본은 오래 될수록 높은 가치를 가진다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손으로 본문을 필사했다주후 9세기 이전의 사본들은 대문자를 띄어쓰기 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훈련된 서기관들도 필사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없었다.

주후 9세기에 이르러서야 소문자를 띄어서 쓰기 시작했다필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필연적이었고 후대의 사본일수록 원문과 멀어지는 것은 상식이다사본에 대한 권위는 대부분 개수보다 년도에 따라 부여된다.

1947년 2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아랍계열의 한 베두인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동굴 안에서 가죽 두루마리가 담긴 항아리를 발견했다이후 동굴을 주변으로 발굴 작업이 10여 년 동안 이뤄지면서 수백 개의 사본(성경 외에도 외경위경 등도 포함)들이 발견 된다사해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하여 사해 사본(혹은 두루마리)이라고 하는데이때 발견된 문서는 무려 B.C. 200년경부터 A.D. 13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해 사본의 발견은 사본학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현 시대는 킹제임스성경이 저본으로 삼은 TR보다 권위 있는 사본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문에 더 가까운 성경을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현존하는 사본의 99%가 TR을 지지한다는 것은 상당한 사본학적 왜곡이다헬라어 신약성경은 약 13만 8천 개의 단어로 이뤄졌고 사본들 사이에는 최대 40만 개의 이문이 있다또한 수 천 개의 비잔틴 사본 간에도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문은 필사 과정에서 발생한 필사자들의 오류 때문에 생겨났다정 목사의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TR을 지지한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없음)의 문제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들은 킹제임스성경에는 “(없음)이 없다는 주장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개역개정성경 등은 번역 과정에서 본문을 고의로 누락 혹은 삭제했기 때문에, (없음)이 없는 킹제임스성경 흠정역이 유일하게 온전한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 (없음)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킹제임스 흠정역 광고

(없음)은 고의로 누락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다원래 성경에는 장절이 없었다엄밀한 의미에서 장과 절의 구분은 15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이뤄졌다고 한다구약은 1227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랭턴이 라틴어 불가타역을 이용해 장을 나눴다독자의 편의를 위해 본문에 숫자가 매겨진 것은 1551년 스테파누스의 네 번째 성경이 처음이었다오늘날 성경은 1560년 판 제네바 성경의 장절 구분을 따르고 있다.

스테파누스가 절을 표시할 때 있었던 일부 본문은더 우수한 사본으로 원문비평을 한 결과 후대에 추가되거나 삽입된 것으로 드러나 절을 빼게 되었다절 하나가 빠졌다고 숫자를 다시 매길 수는 없어 (없음)으로 표시하고 어떤 사본에는 (어떤구절이 있음이라는 난외주를 달았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역개정에는 13개 구절이 (없음으로 표시된다.

마 17:21, 마 18:11, 마 23:14, 막 9:44, 막 9:46, 막 11:26, 막 15:28, 눅 17:36, 눅 23:17, 행 8:37, 행 15:34, 행 28:29, 롬 16:24

13개의 (없음중 8개의 (없음)은 복음서에 존재하는데누가복음 17장 36절을 제외하곤 병행 본문으로 다른 복음서를 통해 충분히 보충되어 있다누가복음 17장 36절의 경우에는 킹제임스성경의 기초가 되었다는 TR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비잔틴 사본계열 다수본문의 편집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없음)은 고의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니다오히려 킹제임스 유일론자들이 없는 구절을 삽입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없음)이 없는 성경은 특별하지도 않으며 독자가 신학적교리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 주지 않는다.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하다는 주장은 사본학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킹제임스 유일주의는 현존하는 많은 사본이 가진 가치를 무시하는 배타적인 주장이다.

1) 필립 W. 컴포트 편저『성경의 기원』(김광남 역엔크리스토, 2010), 397.

2) 래리 스톤『성경번역의 역사』(홍병룡 역포이에마, 2011), 167.

3) R.C. 스프로울『성경을 아는 지식』개정판(길성남 역좋은씨앗, 2009), 179.

4) 권동우『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CLC, 2016), 41-42.

5) D.A. Carson, 『킹 제임스 버전 성경의 오류』(송병현·박대영 역이레서원, 2000), 101.

6) 브루스 M. 메쯔거『사본학』 개정판(강유중 역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123-124.

7) 같은 책, 132.

8) 현존하는 신약 사본 중 80%는 지중해의 동부에서 왔는데이를 비잔틴 본문(사본혹은 다수본문(사본)이라 부른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하나님의교회가 건물을 사들인 이유

교세 확장이 원인 아니다.


하나님의교회(총회장 김주철)는 최근 몇 년간 100개 이상의 단독 건물을 마련했다기성교회는 세 가지 의문을 품었다첫째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면서 건물을 마련한 이유는 무엇인가둘째건물 마련을 위한 재정은 어떻게 확보했는가셋째지속해서 건물을 마련할 만큼 교세가 확장되었나?

 

의문에 대한 답은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하피모김용한 공동대표는 모든 것이 시한부 종말론 때문이라고 전한다.

▲ 천안 하나님의교회

종말과 도피처

하나님의교회는 1988, 1999, 2012년 세 차례나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면서건물을 세우는 아이러니한 행보를 이어갔다종말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2년에는 무려 29곳에 건물을 세웠다하나님의교회는 이 모순을 어떻게 정당화했을까?

 

하나님의교회는 종말을 이용해 신도들에게 공포감을 심는 동시에 도피처를 제시했다도피처는 시온’ 즉 하나님의교회다신도들은 북방에서 큰 재앙과 멸망이 시작되면 시온으로 도피하라고 교육받아왔다탈퇴자들에 따르면 북방은 북한을 뜻하고 핵 도발을 기점으로 재앙이 시작되는데이때 하나님의교회 건물로 도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건축헌금이 십일조보다 일만 배 이상

도피처 건축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좋은 명분이었다신도들은 종말이 오므로 재물을 땅에 두기보다 하늘에 소망을 두라.”, “하나님께 제일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을 드리는 것이라는 설교를 반복적으로 들었다적금과 보험 해약은 물론자가에서 전세로전세에서 월세로 집을 옮기면서까지 헌금하는 신도들도 있었다건축헌금은 하나님의교회 재정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건축헌금이 십일조 보다 일만 배 이상인 지역도 있었다.

▲ 대전 하나님의교회

신도 수 증가는 건축의 이유 아니다

하나님의교회의 신도 수 파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지속적인 건축은 신도 수 증가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하지만 하피모 관계자들과 탈퇴자들은 신도 수가 오히려 감소했다고 입을 모은다하나님의교회 피해자들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하나님의교회 앞에서 시위를 해왔다자연스럽게 출석 신도 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피해자들의 현장조사와 탈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2000년 중반 이후 하나님의교회 교세는 급격히 줄었다는 결론에 이른다하피모 관계자들은 국내 하나님의교회 출석 신도 수가 2만 명 선이라고 분석한다.

▲ 여러 언론에 알려진 하나님의교회 헌당 소식

김용한 공동대표는 하나님의교회의 교회가 건물을 사들이는 것을 보면서 교세가 확장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시각이 있다하지만건물 마련은 교세 확장이 아닌 종말 교리에 기인한 현상이라며 “(하나님의교회가)건축 혹은 건물 매매를 남발하고 이를 지역 뉴스에 기사화해 마치 교세가 확장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또한 새로운 독립건물은 주변 두세 개의 임대 단위 건물이 합쳐진 것이다결과적으로 두세 개의 교회가 없어지고 한 개의 교회가 생겨난 셈이라고 밝혔다.

연이은 시한부 종말론의 실패와 더불어 피해사례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하나님의교회가 궁지에 몰린 형국이다종말과 도피처 교리로 신도들을 옥죄는데도 한계가 있다하나님의교회는 적극적인 해외진출과 교리변개로 살 길을 도모하지 않을까쇠퇴기에 접어든 하나님의교회를 향한 공세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료제공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 김용한 공동대표, 김영석 가족수호자 회원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칭의교리는 왜 중요한가?

박재은 박사의 칭의 바르게 이해하기(1)


칭의”(稱義, justification)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죄인을 의롭다 여겨(칭해 혹은 일컬어주시는 것을 뜻하는 신학 용어이다칭의 교리에 대한 논쟁은 과거에도 있어왔으며현재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다가 올 미래에도 그 논쟁의 불씨가 완전히 시들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칭의 교리가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해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 교리 자체가 가진 신학적 중대성 때문이다칭의의 성격과 방법 그리고 그 원인들에 대한 약간의” 다른 관점이 결국엔 다른 모든 신학 측면들에까지 영향을 미쳐 커다란” 신학적 차이로 귀결되는 경향이 짙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칭의 교리는 신학적으로 중대한 것이다칭의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고찰 할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전통적 신학 논제들(loci)의 범주를 따라가며 논의해보도록 하겠다순서는 성경신학적 중요성역사신학적 중요성조직신학적 중요성실천신학적 중요성 순으로 진행할 것이다


▲박재은 박사 

1. 성경신학적 중요성

교리란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 정리하여 명제적 진술을 하는 것이다모든 교리는 성경으로부터 발현되어야만 한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칭의 교리는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칭의의 가르침을 요약 정리하여 명제적 진술을 한 성경적 가르침들의 모음 형태(combined form)를 지닌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들 수 있다. “같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왜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교리적 진술을 하는가즉 같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왜 서로 다른(때로는 서로 현저히” 다른칭의 교리를 말하는가의 문제이다.

이 차이점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불거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성경을 어떤 해석학적 틀 안에서 볼 것인가혹은 다양한 해석학적 도구 가운데 어떤 도구를 최우선으로 취하여 사용할 것인가또는 특정 본문을 특정 시대적 맥락(context) 가운데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아니면 신구약 통일성 관점에서 특정 본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요즘 시대는 특정한 성경 해석법을 최고(the best)라고 감히 말 할 수 없다소위 수 없이 많은 ”(new) 관점들이 물밀 듯이 해석학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칭의 교리 영역에도 예외가 아니다이제부터 본 연재를 통해 차근차근 살펴보겠지만 이처럼 다양한 성경 해석법은 기존의 전통적 칭의 교리의 성격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교리의 뿌리를 뒤흔드는 중대한 도전을 주기도 하였다현재는 역설적이게도 칭의 교리 때문에(혹은 덕분에더욱 성경 신학 분야와 해석학 분야가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그 역의 상황도 혼재하고 있다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동시에 고무적인 일이기까지 하다성경과 교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 상호적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날카롭게 분석평가할 때 비로소 시너지 효과로 발휘되어 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물꼬를 틀 수 있게 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2. 역사신학적 중요성

역사신학은 장구한 교회 역사 흐름 속에서 특정 성경적 가르침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살펴보고 현재의 거울로 삼는 학문이다그런 점에서 칭의 교리는 역사신학적으로도 중대하다칭의 교리를 중심에 놓고 교회 역사를 찬찬히 살피다보면 그 장구한 흐름 안에 온갖 종류의 교리적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칭의 교리에 대한 본인의 신념 때문에 기쁨으로 춤을 추기도 하고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할 뿐 아니라슬픔과 고통과 비애에 잠 못 이루고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바치기까지 했던 수없이 많은 교회의 인물들을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은 칭의 교리를 연구하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이다특히 칭의 교리 발전의 장구한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떤 방향성을 가진 채 칭의 교리를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진다. “역사야말로 현재의 거울이요 시대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차후에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지만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수없이 많은 불균형적” 칭의론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귀한 잣대를 제공해 줄 수 있다칭의 교리를 역사신학적으로 고찰한다는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여 과거의 영광과 슬픔을 피상적으로 경험하는 데 그친다는 뜻은 아니다오히려 과거를 거울로 삼아 다시금 건전한 방향성을 가지고 힘껏 도약할 수 있는 운동 능력을 기르는 것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칭의 교리는 역사신학을역사신학은 칭의 교리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상호 발전의 사명이 서로에게 부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 조직신학적 중요성

조직신학은 기본적으로 특정 신학 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요약 정리하여 주제별로 교리적 진술을 하는 학문이다조직신학은 모든 교리적 분야예를 들면 신론기독론인간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 등을 포괄적 조망 하에 다룬다비록 조직신학은 각론들로 구성되지만 각각의 각론들은 언제나 교리적으로 상호 통합하여 유기적으로 존재한다이러한 통합적” 조직신학 성격을 칭의 교리 역시 그대로 닮아 있다.

 

칭의 교리는 기본적으로는 구원론”(soteriology) 영역에 속한 교리이지만 단순히 그 영역이 구원론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예를 들면칭의의 유효적 원인(efficient cause,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장 효과적이고 근원적 원인)이 하나님이라면 넓게는 신론의 영역이며 좁게는 신론 중 예정”(predestination)의 영역이다칭의의 질료적 원인(material cause,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필요한 재료적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 righteousness)라면 넓게는 기독론의 영역이고 좁게는 기독론 중 그리스도의 사역”(works) 영역이다칭의의 도구적 원인(instrumental cause,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필요한 수단적 원인)이 신자의 믿음(faith)이라면 넓게는 구원론의 영역이고 좁게는 구원론 중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영역이다칭의 사건은 신론기독론구원론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조직신학의 영역이므로 칭의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곧 조직신학 각론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로 발전 될 수 있다최근에는 칭의 사건을 교회론 혹은 종말론적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짙은데 이 또한 칭의 교리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교리적 확장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라 볼 수 있겠다.

 

칭의론은 그 본질 상 조직신학의 각론들을 개별적으로 동시에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교리이므로 반드시 조직신학 전체를 투영하는 거시적 조망과 통합적 조망 하에 연구될 필요가 있다이는 단순히 조직신학 내에서의 각론들끼리의 통합적 측면뿐만 아니라 간(inter) 학문들 예를 들면 성경신학역사신학조직신학 그리고 다음에 살펴볼 실천신학까지를 아우르는 폭넓은 조망 하에 다룰 필요가 있다이런 측면에서 칭의 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인간교회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지닌다.

4. 실천신학적 중요성

실천신학은 성경교리역사 등이 말하고 있는 바를 분석하여 개인사회교회국가의 각 영역들에 적용하는 학문이다교리는 삶의 체계가 되어야 한다삶과 동떨어진 교리는 결국 피상적인 외침이요 건조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만약 칭의 교리가 신학적/교리적으로 중대하다면 그 중대성이 한낱 책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그 신학적 중대성이 개인의 삶과 신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야 한다. 칭의 교리는 신자의 삶의 토대요 근본이다하나님 나라는 의인만 들어간다(고전 15:50). 하지만 의인은 없으되 하나도 없다(롬 3:10). 그렇다면 어떻게 죄인은 의인이 될 수 있을까바로 그리스도의 의가 믿음으로 죄인에게 전가(imputation)됨으로써만 가능하다이것이 바로 칭의 사건의 핵심이다이러한 칭의 사건은 성도의 삶의 양태와 태도를 규정한다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므로 죄인은 반드시 죽어 음부의 권세 아래 거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에 힘입어 값없이 의인으로 칭함을 받아 더 이상 죽음의 권세 아래 있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게 된 자가 바로 성도이다.

 

이러한 칭의 사건을 실존적으로 깨닫고 경험한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는 감격과 감사와 순종”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감격적인 칭의 사건의 의미가 각 개개인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데 유효적 원인으로 작용해야 한다바른 신학과 바른 교리의 소유는 개인의 잔잔하고도 무미건조한 삶의 양태 가운데 엄청난 반향과 충격을 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이러한 실천적 축을 이루는 근본을 바로 칭의 교리가 감당할 수 있다칭의 교리가 성도 개개인을 세울 수 있다면 이는 곧 성도의 모임인 교회를 세우는 일과 진배 다름없다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말처럼 칭의론이 바로 설 때 교회도 같이 서고칭의론이 무너질 때 교회도 같이 무너진다. 이처럼 칭의 교리는 실천신학적 토대(즉 성도 개인과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세워나감에 있어 근본구조(infrastructure)를 이루는 교리적 기저요 주춧돌의 역할을 감당한다.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칭의 교리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기 전 서론적 고찰로서 칭의 교리의 중요성을 성경신학적역사신학적조직신학적실천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혹자는 또 칭의론이야!?”라면서 미간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그 안에는 지긋지긋함과 식상함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칭의 교리 자체에 대한 반항심까지 잔뜩 서려 있을 수 있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칭의 교리는 여전히 중요하며 여전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교리이다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에 다시금 칭의 교리를 넌지시 되짚어 보며 성경과 역사와 신학이 칭의에 대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해 주의 깊게 경청 할 필요가 있다그 이유는 우리 모두 칭의라는 토대 위에 두 발 벌려 서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필자 박재은 박사는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고 있다저서로 『칭의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 『성화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가 있다.

 

박재은 박사 jepark.theopneustos@gmail.com

신사도운동 분별하기

사도운동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과 고신이 참여금지로 결의하고한국기독교장로회 산하 목회와신학연구소가 불건전한 신학이라고 교단 총회에 보고한 사상이다하지만 교단의 결의와 상관없이 많은 목회자와 성도가 이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다워낙 한국 교회에 깊숙하게 자리 잡아 이 운동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신사도운동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자주 목격한다.

신사도운동에 대한 오해도 많다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 금가루나 입신 등의 극단적 신비주의 현상이 나타나서인지 신비주의 신사도운동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짙다그러나 신사도운동은 은사 지속론이면 찬성은사 중지론이면 반대라는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다.

▲ 피터 와그너(출처: 피터 와그너 페이스북)

이 운동은 나름의 정리된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물론 전혀 새로운 신학을 주장하고 나선 건 아니다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자였던 피터 와그너를 신사도운동의 주창자라 부르는데그는 이미 존재했던 여러 신학 사상들을 조직화체계화극대화했다말도 많고 탈도 많고 오해도 많은 신사도운동이 운동은 무엇이고왜 논란이 될까?

사도와 선지자의 현존성

New Apostolic Reformation(신사도개혁운동). 이 운동의 정체성은 이름에서 부터 확실하게 드러난다문자 그대로 신()사도운동이다성경 시대의 사도와 선지자가 현시대에도 존재한다는 주장이 신사도운동의 핵심사상이다피터와그너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지금 제사도 시대에 살고 있다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판단해보자면우리는 2001년 경부터 제2의 사도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1)고 주장한다.

와그너는 체 안신디 제이콥스로렌스 콩척 피어슨 등과 함께 사도의 모임인 국제사도연맹(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 ICA)을 창설했다피터 와그너는 사도뿐만 아니라 선지자직도 계승된다고 말한다그는 사도와 선지자의 사역을 엄격하게 분리한다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선별적으로 사도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사도는 선지자로부터 예언의 말씀을 받아 분별해야 하는 짐을 지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선지자는 사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사도와 선지자는 오늘날에도 존재 하는가

오늘날에도 사도와 선지자는 존재할까결론부터 말하면 현시대에 사도와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성경에서 사도는 헬라어로 άπόστολος’(아포스톨로스)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다소 단순한 뜻이지만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제자 중 선별된 열두 사도나 바울 등 극히 일부에게만 사용된 특별한 직분이다사도의 핵심 사역은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이 사역은 현시대에 되풀이될 이유가 없다또한, 2001년경부터 제2의 사도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피터 와그너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

사도 시대 이후 자칭 사도 외에 그 누구도 사도 직분을 사용하지 않았다이승구 교수는 일반적인 직통 계시파는 1세기 사도들의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면서 예언 사역이 지속된다고 주장해 왔다”2)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직접 듣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사도의 독특성은 인정했다는 뜻이다.

존 스토트는 그들(편집자 주사도)은 역사적 예수님특별히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자들(행 1:21~22; 고전 9:1; 15:8~9)이라는 점과 그리스도에 의해 개인적으로 임명되고 권위가 주어졌다는 점(막 3:14) 그리고 가르치는 사역을 위해서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았다는 점(예를 들면요 14:25~26; 16:12~15)에서 독특하다”3)고 전한다스토트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 안에서 완성되었으며성경의 정경이 완성된 지 오래이기 때문”4)에 더 이상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미국의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마이클 호튼은 신약성경은 사도들의 비상한 사역과 목사와 장로의 일상적인 사역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딤전 6:20; 딤후 1:13~14).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고바울 또한 자신이 사도직을 교회가 아닌 그리스도에게서 직접적으로 받은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도직을 주장했지만(갈 1:11~23) … 사도들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고 그들의 말씀 선포와 그들이 쓴 글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인 반면(딤후 3:16), 지금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을 통해목사와 교사의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다 … 하나님은 사도와 선지자를 주셨고(엡 4:11)사도 시대의 비상한 사역 속에 신유와 방언과 예언의 은사도 나타났지만 이들 편지에는 사도들의 계승자들이 사도들의 직분으로 안수 받았다는 어떤 가르침도 존재하지 않는다”5)고 전한다.

은사에 대해 신중 수용론적 관점을 가진 로버트 소시 역시 현재의 교회 사역을 사도들을 계승한 것이라고 믿는 이들조차 최초의 성경적 사도들은 어떤 면에서 유일무이했다는 점에 동의한다”6)며 사도의 독특성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견해라고 전한다.

사도와 선지자의 현존을 주장하면 계시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신사도운동가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받는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같은 말을 그들의 집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유다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사도들에게 전달된다한 가지 방법은 사도 바울과 같은 방식인 직접적으로 계시를 받는 것이다.7)

이 같은 계시관은 성경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해친다하나님은 현시대의 사람에게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며 말씀하지 않으신다하나님의 자기 계시이자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정경 66)이 완성된 이후그에 준하는 다른 계시는 불필요하다성경보다, ‘들었다에 높은 권위를 부여하는 위험을 초래해선 안 된다하나님은 무질서를 조장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왔고 그의 사역은 다 이루어졌고그의 말씀은 완성되었기 때문에 특별 계시를 새롭게 형성하는 요소들은 더 이상 붙여질 수 없었다”8)는 바빙크의 지적을 깊이 새겨야 한다.

임파테이션성령의 능력은 전이 되는가

신사도운동가들은 사도연맹을 만들고 안수를 통해 사도직을 수여한다안수로 성령의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일명 ‘impartation’(임파테이션)을 주장한다집회 도중 쓰러지고 바닥에 뒹구는 현상은 성령의 능력을 전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근거 구절로 로마서 1장 11절을 제시한다.

로마서 1장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임파테이션은 11절의 나누어 주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impart’에서 유래했다본문을 얼핏 보면 바울이 신령한 은사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길 원하고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주어진다.

로마서 12장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고린도전서 12장 11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바울이 상호 모순되는 말을 한 것일까많은 사람이 은사라고 하면 신비한 능력을 떠올린다잘못된 선입관이다. ‘은사는 헬라어로 χ́αρισμα’(카리스마인데 이는 χ́αρις’(카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다카리스는 신약성경에서 100회 이상 사용된다많은 경우 은혜로 사용되지만감사(롬 6:17; 롬 7:25), 아름다움(벧전 2:19, 20), 칭송(행 2:47), 마음(24:27)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한 단어가 여러 뜻으로 사용되면정확한 해석을 위해 다른 본문에서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예(용례)를 찾거나 문맥을 통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로마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을 뿐 신비한 능력을 나누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바울이 이를 신령한πνευματικος프뉴마티코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자신이 받은 은혜와 사랑이 성령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바울의 의도는 12절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로마서 1장 12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신비한 능력을 할당해 주길 원하지 않았다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길 원했고 이 과정이 일방통행이 되지 않길 소망했다존 스토트는 바울의 모습을 두고 비록 사도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그러한 교제가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을 만큼 교만하지 않다”9)라고 말한다.

일곱 산부로 이루는 하나님 나라

피터 와그너는 인간이 아담의 타락으로 사탄에게 빼앗긴 세상의 통치권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통치신학 Dominion, 통치을 주장한다신사도운동은 세상을 종교가정교육정부미디어예술과 연예비즈니스 등 일곱 영역으로 나누고 이를 ‘Seven mountain’(일곱 산)이라고 지칭한다.

일곱 산을 정복해 사회변혁을 일으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말한다정복한 산 꼭대기에 사도가 위치한다일곱 산의 정복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시켜 하나님 나라 건설이 빨라질수록 예수님께서도 더 속히 오신다고 밝힌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이 세상에 이룰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는데사람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보인다저들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 세계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재림하시는 분이다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일곱 산을 정복해서가 아닌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뤄진다민족이 민족을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것(마 24:7), 진리가 미움을 당하는 것(15:18)이 바로 말세의 징조요 예수님의 말씀이다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길 수 있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신사도운동가들이 을 일곱 산 정복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신사도운동 집회에서 부의 이동’, ‘가난의 영을 파쇄하라’, ‘번영의 영을 초청하라는 등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피터 와그너는 폭력지식부가 다른 무엇보다 사회를 변혁시켜온 주체인데 특히 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말한다와그너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다른 무엇보다도 세 가지가 사회를 변혁시켰다폭력지식그리고 부였다그리고 이들 중에서 부의 영향력이 가장 막강하다심지어 성경에도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전 10:19). 지루한 과정이 있었지만 마침내 나는 부를 영적인 질병처럼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감탄하기 시작했다”10)고 밝힌다.

와그너는 부를 이용하라는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라는 전도서 말씀을 근거로 제시했다하지만 문맥을 무시한 해석을 했다전도서 10장 16~20절은 화 있는 나라 와 복 있는 나라의 특징에 대한 설명이다.

전도서 10장 16절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17절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18절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19절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20절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19절은 화있는 나라 사람의 특징이다화 있는 나라 사람은 쾌락을 위해 포도주를 마시고 돈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이다예수님은 돈을 하나님과 견주어 비교하면서까지 경계하라고 당부하셨다(마 6:24). 물질이 주는 유혹이 너무나 커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다(마 19:23). 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면 예수님은 왜 그토록 돈의 위험성을 경고하셨을까하나님 나라는 돈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아니다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 14:17). 하나님 나라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헌신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하나님의 신적 통치가 이루어지며 확장된다.

영적 도해지역을 장악하는 귀신

통치신학을 통해 신사도운동의 세계관을 알 수 있다신사도운동은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이 사상의 결과물이 영적 도해이고이는 지역 귀신론과 땅 밟기로 이어진다영적 도해란 이 세상을 하나님이 지배하는 영역과 사단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나누어 놓은 소위 영적인 지도다지역을 지배하는 귀신이 있는데 그 땅에 들어가 기도와 찬송으로 지역의 귀신을 무찌르는 것이 땅 밟기다.

영적 도해와 지역 귀신론은 성경이 아닌 순전히 피터 와그너의 경험에서 도출된 사상이다와그너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역의 영들의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기를 원한다는 음성을 선명하게 들었다며 이 말씀이 마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초보자였던 사람에게 놀라운 임무였다”11)고 주장한다모든 신학적 명제는 성경을 기초로 만들어져야 한다지역 귀신론을 지지하는 단 한 구절의 성경말씀도 찾아 볼 수 없다김재성 교수는 성경은 지역적인 귀신들의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하나님의 백성들이 직접적으로 지역적인 귀신들과 정면대립하거나 그 어떤 방식으로든지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예수님은 결코 어떤 지역에 가셔서 그 곳의 세상 권세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 귀신들을 결박하는 일을 중심사역으로 전개하신 적이 없다”12)고 지적한다.

열린 유신론미래를 보시지 않는 하나님

피터 와그너는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놀라실 뿐만 아니라 마음도 바꾸실 수 있다며 자신을 열린 유신론자라고 밝힌다열린 유신론Open Theism이란 캐나다 출신의 신학자 클락 피노크가 주창한 것으로 개방 신론이라고도 불린다열린 유신론자들은 미래가 부분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고 열려있는 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13) 하나님은 미래를 스스로 알지 않기로 작정하고 피조물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한다는 뜻이다.

피터 와그너의 말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미래에 눈감고 계시며 피조물의 의지를 적극 지지하시는 분일까하나님은 때때로 놀라실 뿐 만 아니라 마음을 바꾸실 수도 있을까? R.C. 스프로울은 이렇게 반문한다.

내 기도에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이 있는가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자할 때내 기도 이전에는 하나님조차 정보나 지식에서 부족한 어떤 것이 있는가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변화시킬 만한 정보지시 혹은 충고를 하나님께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신의 경륜에도 없는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14)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초월성을 제한하는 사상이다열린 유신론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는 말씀에 정면으로 대치되며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각종 신비주의 현상과 종교의 영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는 직통 계시입신치유집단 방언 등의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신사도운동가들은 이런 현상이 교회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저들은 교회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성장하지 않았다며신사도운동이 오늘날 교회 성장의 새 가죽부대라고 주장한다와그너는 지난 2014년 1월 6~9한국에서 열린 HIM 회복 콘퍼런스에서 신사도운동은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지만교단주의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옛 부대라고 비판했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자신들의 사상에 반대하는 자들을 종교의 영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한다와그너가 말하는 종교의 영이란 종교적인 계략들을 사용함으로써 변화를 막고 현재의 상태에 머물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사탄의 대행자”15)종교의 영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이 같은 주장은 신사도운동가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반대논리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영을 만들어 그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배타주의요 교조주의일 뿐이다.

신사도운동 어디서 유래했나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신사도운동은 피터 와그너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신사도운동은 어딘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와그너 역시 자신이 영향 받은 인물이나 단체사상들을 자주 언급한다와그너는 신사도 운동의 뿌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신사도 개혁 운동의 뿌리는 1900년 아프리카 독립교회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당시로 올라간다. 1975년경에 시작된 중국 가정교회 운동과 1980년경에 출현한 라틴 아메리카의 대중교회 운동도 다른 대륙에서 나타난 동일한 영적 현상의 일부분들이다. 1970년경에 나타난 미국의 독립적 은사주의 교회들도 현재의 신사도적 개혁 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구자이다.16)

신사도운동에 영향을 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윌리엄 브랜험(William Branham)이다행크 해네그래프에 따르면 윌리엄 브램험은 삼위일체를 거부하고종말의 대략적인 일자를 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브란함은 “1977년쯤에는 로마 가톨릭 통제 아래 모든 분파가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할 것이고 그러면 휴거가 일어나고 세계는 파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브란함의 빗나간 예언은 브란함의 잘못된 교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브란함은 뱀의 씨앗 교리를 주장하며이브가 뱀과 관계를 맺어 가인을 잉태했다고 주장했다… 브란함은 성경적 삼위일체 교리를 강경하게 거부했다… 브란함은 삼위일체론으로 세례받은 사람들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17)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 존 윔버도 빼놓을 수 없다피터 와그너는 치유나 축사 사역은 존 윔버에게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이 밖에 피터 와그너는 영적 도해와 지역귀신론은 오스카 쿨만잭 헤이포드조용기 목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또한 조용기 목사와 빌 헤몬이 가난의 영을 파쇄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자신이 열린 유신론자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대표적 열린 유신론자들인 클라크 피녹존 샌더스그레그 보이드의 책을 접하면서고세상을 구성하는 일곱 산에 대한 패러다임은 랜스 월나우를 초청한 콘퍼런스에서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신사도운동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발흥과 쇠퇴를 반복해온 많은 운동과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와그너가 체계화해 극대화한 하나의 무브먼트로 이해할 수 있다.

신사도운동신사도적 운동?

어떤 단체가 신사도운동을 하는 곳인지를 따져보려면 제일 먼저 사도직을 인정하고 통치신학열린 유신론영적 도해 등을 주장하는지 살펴야 한다사도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사도운동이라 보기 어렵다하지만 우리는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으니 신사도운동이 아니다라고 발뺌하면서도 신사도운동이 가진 신학을 일부 차용하는 단체들이 있다사도를 인정하지 않아도 많은 부분 신사도운동과 유사점이 있다면 신사도적 운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제안한다.

신사도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천명하고성경 무오설을 지지한다하지만 1세기의 특수한 직분인 사도가 현시대에도 존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영적도해지역귀신론이 특별계시에서 파생되었으며극단적 신비주의 집회를 낳았다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하나님 나라를 부로 이루겠다는 주장까지 펼치며 반대자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한다이처럼 신사도운동은 여러모로 성도들의 올바른 신앙을 위협하는 불건전한 사상이다.

1) 피터 와그너Dominion(서종대 역, WLI KOREA, 2007), 23.

2) 이승구『거짓과 분별』(예책, 2014), 205.

3) 존 스토트『성령 세례와 충만』(김현회 역, IVP, 2014), 125.

4) 같은 책, 126.

5) 마이클 호튼『개혁주의 조직신학』(이용중 역부흥과개혁사, 2012), 881-882.

6) 리처드 개핀 외 3『기적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있는가』(이용중 역부흥과개혁사, 2009), 132.

7) 피터 와그너『사도와 선지자』(임수산 역쉐키나, 2008), 55.

8) 헤르만 바빙크『개혁교의학1(박태현 역부흥과개혁사, 2011), 470.

9) 존 스토트『로마서 강해』(정옥배 역, IVP, 1996), 126.

10) 피터 와그너『변화를 위한 지침서』(진현우 역, WLI KOREA, 2014), 362.

11) 같은 책 158.

12) 김재성『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킹덤북스, 2013), 36.

13) 그레고리 A. 보이드폴 R. 에디『복음주의 신학 논쟁』(박찬호 역, CLC, 2014), 113.

14) R.C. 스프로울『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해설1(이상웅김창영 역부흥과개혁사, 2011), 77.

15) 피터 와그너『종교의 영으로부터의 자유』(김도현 역, WLI KOREA, 2008), 20.

16) 피터 와그너Dominion(서종대 역, WLI 31), 25.

17) 행크 해네그래프『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이선숙 역부흥과개혁사, 2009), 257-258.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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