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국가관(3)
양심의 자유와 복종
2. 죄의 억제 기능으로써 율법의 제2 용도를 적용한 국가관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죄의 억제 기능으로써 ‘율법의 제2 용도’를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성경적 국가관을 확립하였다. 이 부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조 19장 “율법에 관하여”(Of the Law of God)를 살펴야 한다. 이 항목에서 국가의 종교적 의무에 대한 내용은 “율법의 제2 용도”에 기초한다. 율법의 제2 용도란 율법의 3가지 용도 중 “죄의 억제” 기능으로써 율법은 인간의 양심 속에 내제하여 죄를 억제케 하는 성격을 갖으며, 특히 죄를 억제하는 수단으로써 국가의 시민법적 형벌까지도 허용하는 원리이다.
▲ 신원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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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칼빈을 통해서 체계화된 내용인데, 그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억제케 하기 위해서 인간의 본성적 마음에 율법의 기본적 내용을 심으셨고, 이 양심의 법에 따라서 죄를 억제하시고 외적으로는 국가를 세우셔서 인간의 죄를 억제케 하신다고 지적하였다.1) 따라서 국가는 인간의 윤리적 사회적 죄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죄까지도 막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국가의 신앙적 책임과 의무론이 이 교리의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이 윤리와 종교를 포함한 국가의 시민법적 형벌 원리는 이 신조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정통교회 안에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개념이었다. 제일 먼저 신학적 기초를 제시한 것은 어거스틴이다. 워필드는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미국판으로 편역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어거스틴은 이단에 대한 시민법적인 처벌의 정당성을 믿고 있었으므로 다른 경우에서처럼 이 경우에도 당연히 시민법에 호소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법원에서 서신왕래가 있던 영향력 있는 친구가 있었으므로 최후의 수단으로써 시민법적이며 교회법적인 힘의 논리가 동시에 헌신으로 가득한 교황의 가련한 머리에(조지무스) 일격을 가하였을 것이라고 충분하게 가정해 볼 수 있다. … 이 두 개의 편지에서 다 같이 어거스틴은 로마의 주교좌가 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펠라기우스주의자들에게 박해를 가한다는 사실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고 식스투스에게 만천하에 드러난 이단에게 …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과거의 신앙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든지 아니면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2)
위의 설명처럼 어거스틴은 국가의 시민적 형벌 의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신적의무로 언급하였다. 어거스틴의 뒤를 이어 칼빈은 「기독교 강요」 4권에서 국가 통치의 주된 목적이 예배를 존중하며 보호하고,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보존해야 하며, 우상숭배, 신성모독, 종교에 대한 방해를 막아야 할 종교적 의무가 있음을 밝힌다.3)
칼빈은 1544년 세르베투스의 사건과 관련해서 이 문제를 실제적으로 적용하였다. 카스텔리옹이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서 관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 그는 “세르베투스의 오류에 대한 개혁신앙의 수호”(Defensio orthodoxae fidei contra Michaelis Serveti)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국가의 관원들이 교회가 이단으로 판단한 자들에 대해 언약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시민법적 형벌을 행하는 것이 성경적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아무리 입법자가 야만적이고 무지하다 하더라도, 만사에 앞서 오직 신들이 경배되고 공경되는 것을 배려한다. … 만일 누군가가 종교를 지키는 책임을 법에 포함시킨 것이 미신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선하고 바른 정치의 목적이 사람들 사이에서 적법한 질서를 보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종류의 정부가 종교 없이는 불완전하며, 위정자가 하나님 예배를 유지하는 일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시민 소송에만 전념한다면, 위정자는 단지 애매모호한 것이거나 절반만 만들어진 조생아와 같다고 결론짓는다.4)
칼빈의 위와 같은 입장은 어거스틴의 국가관에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종교적 의무는 사도시대와 어거스틴을 이어 칼빈과 16-17세기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적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신학적 흐름을 고려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신조들이 로마의 황제에 의해 소집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위정자의 총회 소집권은 교회가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 교회를 보호하는 중요한 종교적 의무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도록 국가관의 언약적 책임성과 의무를 확대시켰던 것이다.
▲ 칼빈(좌)과 어거스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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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국가의 종교적 의무 대한 적극적 이해는 개혁교회의 신조들을 통해서 계속 발전하였다. 먼저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제39장. 우리는 하나님이 무질서한 욕망을 억제할 법률들과 집정관들을 두셔서 이 세상이 통치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왕국, 공화국, 또 세습적 및 비세습적인 여러 나라와 또 정당한 정부에 속한 모든 것과 또 그것들의 창시자로 인정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들을 설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만 십계명의 두 번째 판의 범죄뿐만 아니라, 첫 번째 판을 어기는 범죄도 제지하시기 위하여 위정자의 손에 검을 쥐어 주셨다.5)
위의 프랑스 신앙고백에서 위정자가 십계명의 두 번째 판인 윤리적인 범죄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내용에 해당되는 첫판의 범죄를 위해서도 칼을 받았다고 언급하는 부분은 국가 위정자의 종교적 역할에 대한 매우 적극적인 표현이다.
이런 중요한 표현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축소된 면이 있다. 이장식 교수는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만 십계명의 제2계명을 어길뿐더러 제1계명도 어기는 범죄를 제지하시기 위하여 위정자의 손에 검을 쥐어 주셨다”6)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십계명의 1-2판을 1, 2계명으로 잘못 번역하여 중요한 의미를 축소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번역을 원문에 맞추어서 1판과 2판으로 수정하여 국가 위정자의 종교적 역할에 대한 의미가 더욱 강조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민법적 형벌에 대한 적용은 도르트 신조를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신조의 마지막 “결의문”7)을 통해서 엄중한 경고를 제시하였다. 신조는 교회의 이단은 종교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엄중한 책망이 있어야 함을 밝혔다. 당시 의회는 이 결정을 존중하고 시민법적 형벌을 알미니안파들에게 다양하게 적용하였다. 먼저 회의 후 200여 명의 알미니안파 목회자들이 파면을 당하고, 정치적 지도자인 올덴바로테벨트는 이단적 가르침을 옹호한 죄목에다 국가 원수에 대한 반역죄까지 더해져 참수형을 당했으며, 정치가요 신학자인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종신형을 받았다.8)
하지만 시민법적 형벌의 영역은 오늘날처럼 비기독교적 문화와 사회제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매우 조심해야 하며, 또한 기독교 국가라 하더라도 적용에는 난관이 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나 종교개혁의 시기는 언약의 책임을 공감하는 기독교 국가의 형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적용할 수 있었지만 현재처럼 기독교 국가가 아닌 사회 속에서는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장로교회에서는 1729년 수정판을 통해서 비기독교 국가 아래서 국가의 종교적 의무와 책임을 소극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해서 국가의 총회 소집권과 치리권을 삭제한 것이다.
국가의 종교적 범죄에 대한 형벌적 치리권은 카이퍼와 바빙크를 통하여 ‘영역주권’의 개념으로 정립되면서 상호 구별되며 협력적이며 보충적인 개념으로 더욱 발전했다. 즉 비기독교 사회 속에서 교회와 국가가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언약적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서로 협력하고 도울 수 있게 하는 발전적 개념이다. 영역주권이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치리권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국가는 각 영역에 해당되는 범죄에 대해서 고유한 치리권을 행사하면서도 상호 협조하며 돕는 방식을 취하는 의미이다.
바빙크는 ‘계시철학’ 마지막 제10장에서 “계시와 미래”라는 제목을 통하여 신앙 없는 일반 국가제도에서는 희망이 없고, 기독교적 신앙이 토대가 된 언약적 국가에 소망이 있음을 제시한다.9) 즉 지금은 비기독교 사회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을지라도 기독교인들의 미래는 종교개혁 시대와 같은 언약적 책임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국가에 대한 기대와 전진이 있어야 함을 언급하면서 보다 더 현실적인 답을 제공해 주었다.
결국 율법의 제2 기능으로서 국가관은 비기독교 국가 아래서는 상호 구별성을 좀 더 우선하되, 기독교 국가 아래서는 국가의 종교적 의무와 책임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종교적 범죄까지 치리할 수 있는 성격을 갖는다. 비록 국가가 강제로 신앙을 갖게 할 수는 없지만 한 지역의 통치 아래서 교회가 보존되며, 바른 신앙이 확립될 수 있도록 이단과 우상숭배의 범죄를 막아야만 위정자도 국가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계속).
1) Ioannis Calvini,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 libros quatuor nunc primum digesta, certisque distincta capitibus, ad aptissimam methodum: aucta etiam tam magna accessione ut propemodum opus novum haberi possit”, in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eds. Guilielmus Baum, Eduardus Cunitz, Eduardus Reuss, vol. 2 (Brunswick: C. A. Schwetschke, 1863-1900), 260-61. 이하 CO, Institutio 1559로 한다.
2) B. B. Warfield,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에 관한 안내논문”, in Saint Augustine Anti-Pelagian Writings vol. 1, ed. trans. P. Schaff, 차종순 역 「어거스틴의 은총론」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105, 125.
3) CO, Institutio 1559, 1094.
4) 박건택, “칼뱅과 카스텔이옹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 「신학지남」 제259호 (1999년): 79-80.
5)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382.
6) 이장식, ⌜기독교 신조사⌟, vol. 1 (서울: 컨콜디아사, 1993), 218; cf.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382. 프랑스판과 영어판 원문을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판: “ὰ cette cause il a mis le glaive en la main des magistrats pour reprimer les peches commis non-seulement contre la seconde table des commandements de Dieu, mais aussi contre la premiere.” 영어판: “so he has put the sword into the hands of magistrates to suppress crimes against the first as well as against the second table of the Commandments of God.”
7)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597.
8)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1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Co., 1998), 522-23.
9) Herman Bavinck, Philosophy of Revelation, 위거찬 역, ⌜계시철학⌟ (서울: 성광문화사, 1990), 283-327. cf. “칼빈과 낙스를 이어 청교도들이 국가의 징벌을 교인의 권징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후대에 이르면서 정교혼동으로 교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날에 와서는 교회와 국가가 상호 독립케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정책으로 실증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 저작전집: 교회론」 (서울: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8), 118].
편집자 주: 필자 신원균 박사는 한마음교회를 담임하고,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책임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청소년조직신학입문』(리폼드북스), 『개혁교회 신앙고백서 해설집』(리폼드북스) 등이 있다.
신원균 박사 bareunmedi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