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자유와 복종
1. 2. 총회 소집권을 당회에 한정 시킨 1729년 수정판의 국가관
웨스트민스터 신조 1729년 수정판은 국가관에 대해서 결정적인 수정을 제시했다. 1729년 판은 국가 위정자가 총회 소집권과 교회 치리권을 갖지 못하도록 수정해서 시민보호의 책임에만 전력하게 만듦으로써 정교분리의 논리적 체계성을 강화시켰다. 국가의 교회에 대한 신앙적 책임과 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반드시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폐단을 낳는다. 비록 1647년 초판에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신앙적 책임감을 강화시키는 균형을 유지했지만 국가의 총회 소집권의 문제는 국가의 상황과 교회의 신앙 수준에 따라서 오해되거나 곡해되면 위험을 낳을 수도 있다.
▲ 신원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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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 때문에 스코틀랜드 총회는 1647년 본 신조를 승인할 때 ‘국가의 총회 소집권’은 “확고한 교회정치체제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교회에게만 국한 시킨다”19)라는 전제를 달았다. 같은 이유에서 미국 장로교회에서도 이 부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국가의 총회 소집권’은 기독교 국가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만 불신앙 국가 아래에서는 자칫 교회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장로교회는 비기독교 국가 통치 아래서도 적용할 수 있는 형태로 국가관의 신앙적 책임을 소극적으로 정립시켰다. 하지만 이 정교분리원칙의 새로운 수정은 불신앙적인 국가 위정자가 무력으로 교회를 핍박하거나 간섭하는 위험을 미리 배제시키고자 했던 것이지 국가의 교회보호와 협력의 의무를 완전히 배제시킨 형태는 아니다.
‘정교분리원칙’의 축소적 적용 문제는 이 신조를 대표적으로 채택했던 미국장로교회의 초기 논쟁의 핵심이었다. 스코티시–아이리쉬(Scottish-Irish)와 영국 회중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장로교회는 1729년 필라델피아 대회에서 총회 소집에 대한 국가 위정자의 권리를 만장일치로 거절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표준 교리서로 채택할 것을 정식으로 결정하였다.20) 1736년에는 교회가 “교리 채택안”(The Adoption Act)이라 불리는 이 신앙고백서에 어느 정도까지 충실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대회는 국가 위정자의 총회 소집권과 교회 치리권을 제거한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선언했다.
김길성 교수는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서약”이라는 글을 통하여 1729년 수정판의 역사적 배경과 논쟁의 초점이 국가관에 맞춰져 있다고 지적한다.21) 그는 1729년에 논의된 미국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채택에 대한 논쟁은 국가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서 채택의 범위와 강도까지 논쟁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프린스턴의 조직신학자인 A. 핫지(A. A. Hodge)도 이 수정 작업은 단지 정교분리의 원칙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당시 불신앙 국가의 통치 아래서 교회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적용의 고민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방노회가 교역자로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위정자가 어떤 의미로든지 통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종교문제로 그들을 핍박하는 권한이 있다거나, 영국 왕위를 개신교도가 계승하는데 반대하는 생각들을 인정할 수 없다.”22) 1729년 수정된 본문은 다음과 같다.23)
제20장 4항. 그러한 사람들이 책망을 받고, 교회의 견책을 받아 고소당하는 것은 마땅하다.
제23장 3항. 위정자는 말씀과 성례를 집행하거나 천국 열쇠의 권세를 자기들의 것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 또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양육하는 아버지와 같이 우리의 참된 교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그럴 때에 참된 교회의 어느 한 교파를 다른 교파들보다 우대하지 말고, 모든 교역자들이 그 신성한 직책을 완전히 자유롭게 수행하며, 폭력이나 위협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교회 안에 일정한 치리제도와 권징법을 제정하셨으므로, 어떤 참된 교회든지 자발적인 교회원들이 그들의 신앙고백과 신념에 따라 교회규율을 시행할 때 국가의 법률이 간섭하거나 허락 또는 방해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책임자들의 임무는 국민의 신체와 명예를 보호해서, 신자나 불신자가 구실이 되어 어느 누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이나 폭행이나 학대나 상해를 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며, 모든 종교집회와 교회집회를 아무 방해나 소란이 없이 개최하도록 적당한 보호를 행하는 것이다.
제31장 1항. 더 나은 교회의 정치와 건덕(健德)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노회나 총회로 불리는 모임들이 있어야 한다. 개교회의 감독자들이나 개교회의 치리자들은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직책과 권한으로 이런 집회를 결정하며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하고 인정하는 대로 자주 소집할 책임이 있습니다.
위 수정된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수정판은 20장 4항에서 국가의 신앙적 치리권 문제를 삭제하여 교회만이 신앙적 치리권을 갖게 했다. 23장 3항에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양육하는 아버지와 같이 우리의 참된 교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라고 수정하여 국가의 교회 간섭 문제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즉 초판에서 강하게 언급한 이단제거와 우상숭배 억제에 대한 책임을 삭제하고 수정판은 국가는 각 교단이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돕고, 또한 교회를 단지 보호하는 의무만 가지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31장 1항에서도 총회 소집권은 오직 교회만이 가지도록 수정했다.
결국 1729년 수정판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성을 추구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소극적으로 정립하여 국가 위정자의 교회 간섭을 최소화 시킨 것이다. 이 규범은 이후 비기독교 국가 아래서 교회와 국가와 가져야 하는 정교분리원칙의 중요한 모델로 자리 잡았다.
수정판은 국가관에 대한 수정뿐만 아니라 이 고백을 얼마나 철저하게 적용하고 실천해야 하는 신조의 서약문제까지 다루었다. 즉 신조에 있는 문자까지 수용해야 한다고 하는 “엄격한 서약”을 뜻하는가, 아니면 그중에 중요한 교리에만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느슨한 서약”을 뜻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논쟁은 수정된 국가관을 당시의 교회와 국가적 상황 속에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논쟁점이었다.
1729년 9월 19일 오전 대회에서는 “예비안”을 채택했는데, 그 내용은 대회의 회원 각자가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모든 조항”에 서약한 것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오후 대회는 논의를 계속하면서 “거리낌”을 선포한다. 그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장과 31장에 있는 구절들이다. 즉 국가 위정자들이 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 권한과 교회의 치리를 참여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다고 하는 구절들이 유일한 거리낌으로 선포되었다.
오후에 제시된 채택안에 따르면, 미국장로교회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목사나 목사후보생은 반드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오직 신앙고백서 23장과 31장에 있는 국가 위정자와 관련한 구절만큼은 “거리낌”을 표명할 수 있었다. 또한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조항에 속하지 않는 거리낌의 수용 여부를 자기가 속한 노회나 대회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였다.24) 결국 대회는 초판의 국가관을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과 ‘거리낌’으로 수정하여 받을 수 있는 입장을 모두 존중해 준 것이다.
미국장로교회가 1729년에 국가 위정자의 교회치리 권한에 대한 부분을 수정한 이후 프린스턴 신학교를 중심으로 장로교 신학자들은 국가의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를 좀 더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정교분리의 원칙을 확고히 정립하였다. C. 핫지(C. Hodge)는 신조의 채택과 관련해서 국가 위정자의 권한 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의 문자와 내용까지 철저하게 채택해야 하는 “엄숙한 언약적 서약”을 강조하였다.25)
벌콥(L. Berkhof)은 그의 조직신학 교회론에서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독립된 정치와 권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또한 이것이 칼빈주의의 독특성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루터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권징의 시행을 위정자들에게 맡긴 에라스티언적 입장이 강한 것으로 평가했다.26) 이와 같이 개혁신학자들은 후대로 발전해 가면서 기독교 국가 아래서와 비기독교 국가 아래서의 교회와 국가 관계를 좀 더 세밀하게 가다듬으면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체계화시켰다.
초판과 수정판의 국가관에 대한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입장은 셋으로 구분된다. 첫째 초판의 본문을 선택하여 적극적 국가관을 취하는 입장이다. 둘째는 수정판의 본문을 선택하여 소극적 국가관을 취하는 입장이다. 셋째는 초판과 수정판을 함께 수용하는 입장이다.
첫 부분에 해당되는 신학적 입장은 박윤선 박사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7), 총회교육자원부의 「개혁교회의 신앙고백」28), 최병섭 교수의 「개혁 교회 신앙고백서」29) 등이다. 둘째 부분은 조석만 교수의「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주기도문해설)」3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의 「헌법」31), 김의환 교수의 ⌜개혁주의 신앙고백집⌟32), 이형기 교수의 ⌜신앙고백서⌟33), 김영재 교수의 「교회와 신앙고백」34) 등이다. 셋째 부분은 박일민 교수의「개혁교회의 신조」35), 이장식 교수의 ⌜기독교 신조사⌟36)등이다. 교단적으로는 합동과 대신은 1729 수정판, 합신은 1647년 초판, 고신은 1903년 수정판이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서 1729년 수정판의 국가관은 국가의 신앙적 의무와 책임을 제거하거나 교회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킨 것이 아니라, 국가 위정자를 언약의 집행자요 하나님의 사자로 고백하면서도 국가 위정자의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를 엄격히 분리함으로 정교분리원칙의 논리적 체계성을 더 깊이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초판에서 국가 위정자의 총회 소집권과 교회 치리권을 허락했지만, 수정판 이후부터는 허락하지 않음으로 교회직원의 언약적 책임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따라서 수정판을 통하여 언약적 책임자로서 상호 협력적이면서도 각각의 독립적 성격을 인정하는 정교분리원칙은 비기독교 국가 아래서 더욱 효과적인 국가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계속).
19) Confession of Faith, The Lager and Shorter Catechisms (John G. Eccles Printers Ltd. 1983), 15.
20) 홍치모, ⌜영미장로교회사⌟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8), 132-35.
21) 김길성,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서약”, 146.
22)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21ff. ; cf. Digest of the Acts and Deliverances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vol. 1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 1923), 31-32. 1923년 미합중국장로교회 총회록도 수정된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
23)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264, 297, 373.
24) 김길성,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서약”, 145-46.
25) C. Hodge, “What is Meant by Adopting the Westminster Confession?”(1867), in The Confession of Faith, ed. A. A. Hodge (Pennsylvania: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2), 422-26; C. Hodge, “What is the Presbyterianism?” in The Confession of Faith, ed. A. A. Hodge (Pennsylvania: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2), 400-07.
26)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 Co., 1996), 601.
27) 박윤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서울: 영음사, 1994), 122, 153-55, 199-200.
28) 총회교육자원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7), 328-39.
29) 최병섭, 「개혁 교회 신앙고백서」 (서울: 신성, 1997), 493, 501, 515-17.
30) 岡田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주기도 해설」, 조석만 역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1977), 144-50, 164, 196-97. 오까다 교수는 강해로 사용한 본문이 수정판임을 제시한다.
3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헌법」, 제10판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출판부, 2008), 318, 326, 339.
3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헌법」, 제10판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출판부, 2008), 318, 326, 339.
33) 이형기, ⌜세계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276, 281-82, 292-293.
34) 김영재, 「교회와 신앙고백」 (서울: 성광문화사, 1994), 175-76. 본문 없이 강해만 했다.
35) 박일민, ⌜개혁교회의 신조⌟ (서울: 성광문화사, 2002), 511, 518-19, 533. 박일민 교수는 제20장 4항은 초판 사용, 제23장 3항, 제31장 2항은 혼합했다.
36) 이장식, ⌜기독교 신조사⌟, vol. 2 (서울: 컨콜디아사, 1992), 87, 92, 102-3. 이장식 교수는 제20장 4항, 제23장 3항은 초판, 제31장 2항은 혼합했다.
편집자 주: 필자 신원균 박사는 한마음교회를 담임하고,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책임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청소년조직신학입문』(리폼드북스), 『개혁교회 신앙고백서 해설집』(리폼드북스) 등이 있다.
신원균 박사 bareunmedi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