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본의 가치를 무시하는 독단적 주장
성경은 다양한 번역본이 있다. 그럼에도 유독 킹제임스성경(The King James Version, KJV)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이하 킹제임스 유일주의라고 표기). 한국에는 대표적으로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 목사가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한글킹제임스를 출판해 보급함으로 킹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을 대표해왔다. 이 목사는 개역성경은 사탄이 변개했으며, 다른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해왔다. 예장합동과 통합은 말씀보존학회를 1998년과 2002년에 각각 ‘이단’, ‘반기독교 주장을 하는 곳’으로 결의했다.
킹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이 말씀보존학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의 경우 개역성경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지만, “1611년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정 목사는 개역성경은 사탄이 변개했다는 (D.A. 카슨의 표현을 빌려) 무자비한 욕설을 여전히 하고 있으며 핵심 사상은 다른 킹제임스 유일론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사랑침례교회 측은 그리스도예수안에 출판사를 통해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을 만들고 홍보하고 있다. 흠정역은 한영대역 관주성경, 큰 글자 성경, 작은 성경 등 다양한 버전으로 출판되는 데, 생명의말씀사 성경 판매부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킹제임스성경, 읽어도 될까
킹제임스성경은 말 그대로 제임스 왕에 의해 승인되고 번역된 성경이다. 필립 W. 컴포트는 킹제임스성경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1603년에 영국의 왕이 된 후(이때부터 제임스 1세로 불림) 청교도와 성공회 간의 차이가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두 교파에 속한 몇 사람의 성직자들을 초대해 화합을 가졌다. 그 화합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나,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청교도 측 지도자이자 옥스퍼드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학장이었던 존 레이놀즈가 왕에게 새로운 번역본을 인가해 주기를 청했다. 당시 그는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더 정확한 번역본을 기대하고 있었다. 제임스 왕 역시 그 제안을 기뻐했는데, 그것은 그가 보기에 비숍 성경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고, 제네바 성경에 들어 있는 주(註)들은 지나치게 선동적이었기 때문이다.1)
제임스 왕의 재가 이후 약 50여 명의 학자가 6개 팀으로 나눠 1607년부터 번역을 시작했고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이 완성되었다. 킹제임스성경은 오랫동안 권위를 인정받았다. 래리 스톤에 따르면 킹제임스성경은 잉글랜드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영어가 온전한 언어로 형성되도록 도왔고, 영문학에 배경을 제공해 주었고, 음악을 만들도록 고무했으며, 몇 세기 동안 각 가정마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소유하고 읽곤 했던 유일한 책 이었다”고 한다.2)
킹제임스 유일주의의 시작
오랫동안 인정받았던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발생하면서 킹제임스 유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 R.C. 스프로울은 “킹제임스성경이 오랜 기간 탁월한 지위를 누리며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 지위가 위협받을 때 나온 저항의 목소리”라고 말한다.3)
권동우 대표(킹제임스연구소)의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에 따르면 킹제임스 유일주의의 뿌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의 신학자 벤자민 G. 윌킨슨이다. 권 대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벤자민 G. 윌킨슨1872~1968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선교사이자 제7일안식일워싱턴재림대학교 신학부 학장이었다. 킹제임스성경의 유일주의는 윌킨슨이 1930년에 출간한 『입증된 우리의 흠정역 성경』이란 제목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그는 시편 12:6~7을 잘못 적용하여, 그 말씀이 마치 킹제임스성경 보존에 대한 약속인 것처럼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윌킨슨이 KJV를 지키려 했던 이유는 1881년 개정된성경RV이 KJV보다 자신이 믿고 지지하고 있는 안식교 교리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4)
윌킨슨 이후 제임스 재스퍼 레이, 데이비드 오티스 풀러, 에드워드 F.힐즈, 피터S. 럭크만 등에 의해 유일주의는 그 맥을 이어왔다. 그 중에서도 피터 S. 럭크만은 기존의 성경을 가장 모욕적으로 비판하는 인물인데 이송오 목사가 럭크만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편 12편을 근거로 한 보존론의 오류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일점일획 가감없이 보존하셨다”는 소위 ‘성경 보존론’ 교리를 만들었다. 정동수 목사(사랑침례교회)는 시편 12편 6, 7절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들이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완벽하게 보존되었음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은 시편 12편 6, 7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킹제임스 흠정역
시편 12편 6절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절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정 목사는 이 구절을 두고 “이게 성경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이걸 믿으셔야 되요.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존해 주신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 하나님의 숨이 들어가서 살아 있는 모든 단어들을 일점일획까지 하나님이 보존해 주신다는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정 목사는 7절의 ‘그것들을’이 6절의 ‘주의 말씀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문맥을 무시한 것뿐만 아니라 문법적으로 틀린 해석이다. 6절의 ‘말씀들은’은 여성명사이고 7절의 ‘그것들은’은 남성명사다. 성,수를 일치시켜야 하는 것은 히브리어의 기본적인 문법이다. 문법상 ‘말씀들은’은 ‘그것들은’이 될 수 없다. 7절의 ‘그것들은’은 5절에 나오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다.
말씀보존학회는 한술 더 떠서 자신들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성경에서 7절의 ‘그것들을’을 ‘이 말씀들을’로 바꾸어 번역했다.
한글 킹제임스성경
시편 12편 6절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7절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킹제임스성경 그 어디에도 7절의 ‘그것들을’을 ‘이 말씀들을’로 번역할 만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유일론자들의 성경보존론은 시편 12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데 기인한 오류다.
▲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시편 12편 7절과 난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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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것은 시편 12편 보존론은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했던 번역자들에 의해서도 반박이 가능하다. 번역자들은 영어문법상 7절의 ‘그것들을’(them)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혼돈을 일으킬 가능성을 미리 예측했던 것 같다.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난외주에 ‘그것들을’이 사람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킹제임스성경은 훌륭한 사본을 가지고 번역했을까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은 구약이 히브리어, 신약이 헬라어로 되어 있지 않은 영어로 된 하나의 번역본이다. 번역본을 완전한 성경이라는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D.A. 카슨은 “어떤 하나의 특정한 본문형태를 두고 그것이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하나의 본문 형태는 사본들을 비교하여 두드러진 공통점을 가진 것들끼리 분류해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독법을 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확립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5)
킹제임스 유일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킹제임스성경의 신약 기초본문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TR)이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기본적으로 TR을 사용해서 신약을 번역했다는 뜻이다.
TR이라는 이름은 인쇄업자였던 엘지비어 형제가 1633년에 펴낸 성경의 서문에서 사용한 “독자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을 가지게 되었다. 본문에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공인이라고 하니 권위 있는 곳을 통해 인정받은 것 같지만, 실상은 책을 판매하기 위한 상업적 문구였고 이것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학자들은 TR의 어설픈 형성 과정을 지적하며 큰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브루스 M. 메쯔거는 『사본학』에서 TR의 형성과정을 다음과 같이 알렸다.
최초로 발행된 헬라어 신약성경(즉 시판된 것)은 유명한 네덜란드 학자요 인문주의자인 로테르담의 데지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준비한 판이었다. … 1514년 8월에 바젤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러한 가능성을 잘 알려진 출판업자 요한 프로벤과 의논하였다(아마 처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상담은 처음에는 결렬된 것 같았지만 1515년 4월에 에라스무스가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했을 때 재개되었다. 프로벤이 친구 비아투스 리이니나누스를 통하여 에라스무스가 즉시 신약의 초판을 착수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프로벤은 스페인의 다국어 대조 성경이곧 나올 것이라고 들었으며, 헬라어 신약의 판이 시장화될 것을 알았고, 크시메네스의 작품이 끝나고 출판이 허가되기 전에 이 결정이 인쇄화 될 것을 원했다. …인쇄는 1515년 10월 2일에 시작되었고, 아주 짧은 시간 내에(1516년 3월1일) 전체 판이 끝났고 … 에라스무스 자신이 후에 선언한 것과 같이 “편집되었다기보다 오히려 재촉되었다.” 출판을 서둘렀기 때문에 책은 수백 군데의 오식을 갖게 되었다. 사실 스크리브너가 언제가 “이것은 내가 아는 가장 나쁜 책이다”라고 말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전부 헬라어로 된 성경 사본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신약의 몇몇 사본을 사용했다. … 계시록을 위해서는 12세기의 단 한 권의 사본밖에 없었는데, 그는 그것을 그의 친구 로이힐린에게서 빌렸다. 불행히도 이 사본은 그 책의 마지막 6개 구절들이 있는 마지막 장이 빠지고 없었다. 이러한 구절들을 위해서 요한계시록의 헬라어 본문이나 그리스어 주석으로 사본이 보충된 책에는 곳곳에 있는 몇몇 다른 구절들이 거의 분간할 수 없도록 혼합되어 있는 것 같이, 에라스무스는 라틴역에 의존하여 이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그러한 절차에서 기대 되었던 것 같이, 여기저기에 에라스무스 자신이 만든 헬라어 본문은 어떤 알려진 헬라어 사본에서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이문(異文)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소위 말하는 헬라어 신약의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인쇄물에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영속되고 있다.6)
이후 스테파누스, 베자, 엘지비어 형제가 에라스무스의 판본을 기초로 성경을 출판했다. 엘지비어 형제의 상술로 생겨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 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성경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에게 인정된 성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메쯔거는 “대단히 미신적인 존경이 텍스투스 리셉투스에 바쳐졌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수정하며 비평하려는 시도는 신성모독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다”7)고 전한다.
메쯔거가 밝힌 TR의 형성과정에 따르면.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 몇 개의 사본만 사용한 것도 문제지만 요한계시록은 한 개의, 그것도 불완전한 사본으로 편집했다. 학자들은 에라스무스의 편집본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본문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한다. 에라스무스는 몇 차례 개정을 통해 본문을 수정했지만 기초는 남아 있었고 이런 오류가 킹제임스성경에 유입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요한의 콤마로 알려진 요한일서 5장 7절과 바울의 질문인 사도행전 9장 6절이다.
다수본문과 소수본문
정동수 목사는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공인본문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정 목사는 ‘킹제임스성경의 대본, 번역용 본문이 된 사본에 대해서도 킹제임스가 채택한 다수 본문이 훨씬 우수하며 바르다’며 ‘다수 사본을 뿌리로 한 킹제임스성경 쪽이 소수 사본을 뿌리로 한 기타 현대 역본들에 비해 훨씬 우수하며, 당연히 우리가 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안타깝지만 개역성경은 소수 사본 계열의 성경’이라고 말한다.8)
많은 사본이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이 완전하고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비잔틴 본문은 다수라는 이유로 권위를 갖지 않는다. 16세기 이후 비잔틴 사본보다 훨씬 이전의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사본은 오래 될수록 높은 가치를 가진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손으로 본문을 필사했다. 주후 9세기 이전의 사본들은 대문자를 띄어쓰기 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훈련된 서기관들도 필사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없었다.
주후 9세기에 이르러서야 소문자를 띄어서 쓰기 시작했다. 필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필연적이었고 후대의 사본일수록 원문과 멀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사본에 대한 권위는 대부분 ‘개수’보다 ‘년도’에 따라 부여된다.
1947년 2월,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아랍계열의 한 베두인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동굴 안에서 가죽 두루마리가 담긴 항아리를 발견했다. 이후 동굴을 주변으로 발굴 작업이 10여 년 동안 이뤄지면서 수백 개의 사본(성경 외에도 외경, 위경 등도 포함)들이 발견 된다. 사해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하여 사해 사본(혹은 두루마리)이라고 하는데, 이때 발견된 문서는 무려 B.C. 200년경부터 A.D. 13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해 사본의 발견은 사본학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 현 시대는 킹제임스성경이 저본으로 삼은 TR보다 권위 있는 사본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문에 더 가까운 성경을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TR을 지지한다는 것은 상당한 사본학적 왜곡이다. 헬라어 신약성경은 약 13만 8천 개의 단어로 이뤄졌고 사본들 사이에는 최대 40만 개의 이문이 있다. 또한 수 천 개의 비잔틴 사본 간에도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은 필사 과정에서 발생한 필사자들의 오류 때문에 생겨났다. 정 목사의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TR을 지지한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없음)의 문제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들은 킹제임스성경에는 “(없음)이 없다”는 주장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개역개정성경 등은 번역 과정에서 본문을 고의로 누락 혹은 삭제했기 때문에, (없음)이 없는 킹제임스성경 흠정역이 유일하게 온전한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 (없음)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킹제임스 흠정역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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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은 고의로 누락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다. 원래 성경에는 장, 절이 없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장과 절의 구분은 15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이뤄졌다고 한다. 구약은 1227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랭턴이 라틴어 불가타역을 이용해 장을 나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본문에 숫자가 매겨진 것은 1551년 스테파누스의 네 번째 성경이 처음이었다. 오늘날 성경은 1560년 판 제네바 성경의 장, 절 구분을 따르고 있다.
스테파누스가 절을 표시할 때 있었던 일부 본문은, 더 우수한 사본으로 원문비평을 한 결과 후대에 추가되거나 삽입된 것으로 드러나 절을 빼게 되었다. 절 하나가 빠졌다고 숫자를 다시 매길 수는 없어 (없음)으로 표시하고 ‘어떤 사본에는 (어떤) 구절이 있음’이라는 난외주를 달았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역개정에는 13개 구절이 (없음) 으로 표시된다.
마 17:21, 마 18:11, 마 23:14, 막 9:44, 막 9:46, 막 11:26, 막 15:28, 눅 17:36, 눅 23:17, 행 8:37, 행 15:34, 행 28:29, 롬 16:24
13개의 (없음) 중 8개의 (없음)은 복음서에 존재하는데, 누가복음 17장 36절을 제외하곤 병행 본문으로 다른 복음서를 통해 충분히 보충되어 있다. 누가복음 17장 36절의 경우에는 킹제임스성경의 기초가 되었다는 TR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 사본계열 다수본문의 편집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없음)은 고의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킹제임스 유일론자들이 없는 구절을 삽입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없음)이 없는 성경은 특별하지도 않으며 독자가 신학적, 교리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 주지 않는다.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하다는 주장은 사본학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 킹제임스 유일주의는 현존하는 많은 사본이 가진 가치를 무시하는 배타적인 주장이다.
1) 필립 W. 컴포트 편저, 『성경의 기원』(김광남 역, 엔크리스토, 2010), 397.
2) 래리 스톤, 『성경번역의 역사』(홍병룡 역, 포이에마, 2011), 167.
3) R.C. 스프로울, 『성경을 아는 지식』, 개정판(길성남 역, 좋은씨앗, 2009), 179.
4) 권동우,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CLC, 2016), 41-42.
5) D.A. Carson, 『킹 제임스 버전 성경의 오류』(송병현·박대영 역, 이레서원, 2000), 101.
6) 브루스 M. 메쯔거, 『사본학』 개정판(강유중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123-124.
7) 같은 책, 132.
8) 현존하는 신약 사본 중 80%는 지중해의 동부에서 왔는데, 이를 비잔틴 본문(사본) 혹은 다수본문(사본)이라 부른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