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JMS 정명석, 2월 18일 출소 예정

JMS(기독교복음선교회)의 교주 정명석 씨가 2월 18일에 출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명석 씨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인 모 단체가 법무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다.

 

▲정명석 씨 징역 10년 확정 당시 MBC 뉴스 보도 화면(출처: MBC)

  

정명석 씨는 2009년 2월 10일 종교를 이용해 강간과 폭력을 행사해 강간치상 혐의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최근 신도들은 정 씨의 출소를 앞두고 대대적인 포교 활동을 벌이며 자신들의 교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JMS 피해자는 성범죄로 10년을 복역한 사이비 교주가 다시 세상에 나온다염려스러운 것은 정 씨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다신도들은 정 씨가 사법살인을 당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교주 앞에 세울 젊은 여대생들을 포교하고 있다라며 정 씨 출소 후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할 것을 걱정했다

 

조믿음 기자

창조, 어떻게 설교해야 하나?

창조모든 것의 출발

모든 성경의 말씀은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딤후 3:6).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받은 계시의 책이다이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소개한다(계 10:6). 창세기 전반부(1-3)는 창조주 하나님이 스스로 밝히는 창조에 대한 자기 선포이다창조의 하나님은 성경의 첫 말을 태초‘(bereshith)라는 말로 시작한다세상은 시간 안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되었다즉 창조 이전에는 시간이 없었다하나님이 바로 시간의 주관자요 창조자였다창조주 하나님만이 시간의 주관자이므로 하나님 이외 피조세계의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도 없다따라서 함부로 단정적 어조로 미래와 종말을 예언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사 47:12-14).

▲조덕영 박사

물질과 시간은 창조된 것이므로 세상은 우리 사람의 육체처럼 유한하며 끝을 가진다(계 20:11). 이방의 종교 사상들이 우주와 세계는 처음도 없고 끝도 없다는 순환적 시간관(circular view of time)을 가진데 비해기독교가 직선적 시간관(linear view of time)을 가지는 이유이다이 특징을 가장 먼저 찾아낸 사람은 신학자 어거스틴(St. Aurelius Augustinus, 354-430)이었다어거스틴은 『신국론』(De civitate Dei)에서 이 두 가지 시간관을 구분한다시간을 보는 관점이 시간의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은 전혀 다름을 알아야 한다(벧후 3:8). 공간과 물질은 이렇게 시간 속에서 비로소 삼위일체적 완성된 세상을 구성하였다그리고 세상은 시작되었다.

설교자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틴어 「Scientia」는 사람의 지식을 말한다이 라틴어에서 영어의 「Science」라는 단어가 유래하였다. 19세기 말 이 말을 일본 사람들이 과학‘(科學)이라고 번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이를 통해 과학도 인간이 가진 하나의 지식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따라서 그 지식 체계가 어떤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과 그것이 종교의 지식체계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를 해석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성경이든 과학적 데이터든 모두 해석을 통해 산 의미를 갖는다는 면에서 오늘의 상황(context) 아래서 이 둘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 지를 다루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기독교와 과학은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의 담을 쌓아온 면이 없지 않다물론 창조에 대한 설교는 성경과 과학을 단순히 융합하는 작업은 아니다신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설교자는 창조에 대한 설교를 위해 성경 본문의 지평이 과학적 데이터를 참조하여 해석자 지평을 변혁“(transformation) 시켜야하는 고도의 작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창조 질서를 다루는 하등학문으로서의 과학

성경은 과학 책이 아니다과학의 언어로 기술되지 않은 책이다자연과학적 영역과는 관심 분야가 다른 책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해 우리가 갖는 신앙적 믿음으로 인해 비록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기는 하나 성경의 말씀대로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이 곧 성경의 하나님이시라면 진정한 과학은 성경적이다하나님이 주신 이 두 권의 책(말씀의 책인 성경과 하나님의 활동의 책인 자연)이 늘 불필요한 긴장을 유지하여 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자연과학의 질서를 만드시고 그 사실을 성서를 통해 계시하고자 했다면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도 당연히 성서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하나님은 오류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분이시기는 하나 창조주 하나님 스스로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따라서 비록 성경이 과학의 언어로 서술 되지는 않았으나 과학의 이름으로 탐색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즉 과학은 창조의 질서를 탐구하는 하등학문인 것이다.

성경과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일정한 영역의 경우 분명 과학적 검토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이 문제는 성서해석에 있어 과학적 해석이 필요한가와 더불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성경이 과학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먼저 성경은 창조의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성경은 우주가 시작될 때 시간(태초)이 창조되었음을 선포하고우주의 연대 문제는 과학적으로도 관심 사항이므로 과학적 논증의 해석을 필요로 하게 된다과학이 아무리 성경과 다른 언어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다른 책인 자연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밝힌 것처럼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과학의 언어로 성경을 탐색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자들이다성경은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칼빈(1509-1564)도 창세기를 주석하면서 이 부분을 분명히 한다칼빈은 당시 천문학 체계를 부정하지 않았으나 모세는 천문학적 내용을 기술하는 데 있어 통속적으로 글을 썼고 상식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언어로 기록한 반면천문학자들은 전문가들로인간의 두뇌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도의 언어로 기술하였다고 보았다.

이 같은 칼빈의 해석 방법은 성경의 종교 메시지가 누구에게든지 이해할 수 있게 묘사되었다는 종교 개혁 이론에 기초한다성령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된 학교를 개설한 것이다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주제를 다룬다모세는 교육받은 자의 교사만은 아니었다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교사였다따라서 모세는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 평범한 언어를 채택했다그렇다면 성경은 보통사람들을 위한 책이므로 천문학 및 다른 어려운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시편 주석에서도 칼빈은 성경의 저자들이 과학적 사건에 대해 감각이 느끼는 대로 묘사했지 과학적 용어로 묘사하려 하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성령께서는 천문학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다시 말해 가장 단순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교훈을 내리기 위해 성령은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사용하심으로써 아무도 그 말씀이 모호하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하셨다.”

예를 들어 사반과 토끼는 일반적으로 되새김 동물이 아니다그런데 성경은 분명 사반을 되새김질 동물이라고 밝히고 있다그러므로 성경을 무조건 과학적 논리로 풀려고 하면 오히려 성경을 미련한 책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 성경 해석에 있어 과학적 논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금새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해석자는 자기 스스로 사반은 되새김 동물이 아니라는 과학적 해석을 전제하고 과학의 언어로 성경을 보지 말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이 해석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이 말하는 되새김의 범위를 훗날 생물학자들이 만든 분류학(taxonomy)의 틀에 갖다 넣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성경이 박쥐를 새라고 표현한다고 박쥐는 분명 새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도 동일한 오류라 볼 수 있다.

멸종된 생명이나 검증 불가능한 동물에 대해서도 창조론과 무신론은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성경에 나타난 리워야단이나 탄닌라합비히못 등을 공룡이나 어룡 등 과거에 멸종해버린 자연적 동물로 보느냐(the naturalistic perspective) 아니면 신화적인 동물로 보느냐(he mythological perspective) 상징적인 존재로 보느냐(the emblematic perspective)에 따라 해석 전반에 대한 다양한 단면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역사적 동물이냐 상상 동물이냐 아니면 역사적 동물이기는 하나 멸종된 이후 그 이미지가 변색되어 온 것인가 그런 부분들이 해석될 필요가 있다물론 어떤 관점이 보다 더 진리에 가까운가 하는 사실이 중요할 수 있다즉 과학적 해석 자체가 성경의 권위 내지는 무오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같은 해석의 다양성을 통해 먼저 계시로서의 성경과 세속적 신화 사이에 어떤 충돌과 연속성이 있었는지를 배우고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과학과 관련된 이러한 성서 해석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 논쟁, UFO와 외계생명체 논쟁생명공학 논쟁의약 분쟁생명의료윤리 등등 여러 이슈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들 주제들을 판단해야 하는 당위성을 깨닫게 된다즉 여러 부분에서 과학을 도구로 한 성경적신학적 해석의 중요성이 금 새 드러나게 된다과학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은 이밖에도 다양하다그 중 하나는 생태적 환경과 관련한 과거의 역사를 탐색하는 부분과 특별히 초과학의 영역이랄 수 있는 태초의 창조를 수용하는 데 있어 과학의 역할은 중요하다.

진화론에서는 제임스 허튼 이래로 동일과정적인 지질학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이에 비해 성경은 대격변론적인 홍수의 역사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이 둘을 어떻게 조화하고 구분해야 하는 가하는 점 등이 바로 성서의 일반 계시 영역에 대한 과학적 해석의 당위성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첨단 과학 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 과거 해석자들보다 훨씬 풍부한 이해의 범위와 경험을 가지고 텍스트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현대 신학자 슐라이어마허가 말한 텍스트와 해석자 사이의 최소의 공통 분모라 할 수 있는 선이해(preunderstanding)가 넓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즉 계시의 점진성 아래에서 과학적 자료들은 성경 해석에 일부분 공헌하고 있음은 물론이다따라서 설교자들은 세속의 과학적 성과에 대해서도 부단히 관심을 기울이며 바른 성경적 설교에 적용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 방법과 성서

과학의 일반적인 방법은 먼저 관찰의 대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관측하여 자료를 분석하고 필요하면 실험한다시간과 상황과 조건을 달리하여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실험의 결과가 동일하게 나타나면 비로소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여기서 일반적 과학적 방법이란 성서적 해석에 많은 제한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창조의 사실에 대해 관측하고 실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하지만 과학적 방법의 한계가 과학적 설명 즉 성경에 대한 과학적 해석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행하신 예수님의 성경 해석처럼 과학적 방법 자체가 가진 논리로 해석이 가능해진다비록 창조를 관찰한 사람이나 창세기 대홍수 사건을 재현(再現하거나 직접 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과학적 해석은 가능한 것이다.

과학적 해석의 유용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은 과학적 방법의 틀 안에서 성서 해석의 한계를 가진다과학 자체의 한계가 있다기원에 대한 과학적 입증 자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그것은 여전히 성서가 말하듯 믿음의 영역으로 남는다창조와 진화도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결정적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성경해석에 있어 과학은 분명 이렇게 제한적이다기독교는 과학의 영역이 영원히 자연에 순종하는 과학이 아니라 때로는 창조주인 신이 직접 개입하여 그 질서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에 더욱 그러하다.

과학과 성경 기적(奇蹟)의 문제

기적은 불가사의한 일을 뜻하는 라틴어 미라쿨룸(miraculum)에서 왔다자연이나 사건의 흐름에 대해 초자연적 간섭이 있음을 의미한다그러므로 기적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면 다양하다오늘날까지 성결파 및 오순절 복음주의자들은 신유와 방언의 기적이 유효함을 주장한다.

하지만 18세기 철학자 흄(David Hume, 1711-1776)은 기적은 자연법의 위배로 보았다흄은 종교에 관한 자신의 두 저서 ⌜종교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Religion)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 에서 우주 질서의 원인이 되는 지적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그에게 있어 신은 우주 질서의 원인으로서 가정된 이신론적 존재(a deitistic being)이며 따라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기적은 인정할 수 없다그러므로 흄에게 있어 기적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흄이 볼 때혹 신의 특별한 의지에 의해 일반 법칙이 깨어지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전혀 알아챌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기적은 분명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20세기 초 과학자들 뿐 아니라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기적을 거부한 사례가 늘어나자 복음주의 신학자 워필드는 우리 마음에 품은 세계관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실들에 대한 정당한 고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기적을 이해하였다그러면서 워필드는 기적은 사도들이 교회의 토대를 놓음과 함께 그쳤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내재(內在)적 도구에 불과한 자연과학으로 초월의 창조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과욕을 버려야

이 문제는 성경을 과학의 틀 속으로 가져갈 때 문제가 발생한다즉 피조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과율(因果律)에 사로잡힌 희랍인들의 구조 안에서 기적은 존재할 수 없다기적이 그들의 틀 속에 잡힐 수 없는 것이다히브리인들에 있어 관심은 하나님의 일이었다하나님이 단지 무엇을 하시며 그 일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그들의 의문의 영역이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의 과학적 검증은 희랍인의 몫이지 결코 유대인들의 몫은 아닌 것이다즉 기적은 과학적 설명은 가능하나 과학의 잣대 안에 통제 받아야 되는 대상이 아니다설교자들도 디지털 시대에 세뇌되어 과학을 마치 절대선절대군주처럼 여기며 설교하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늘 조심할 필요가 있다내재(內在)적 도구에 불과한 자연과학으로 초월의 창조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과욕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성도들은 과학에 묶인 설교보다 과학을 초월한 전능자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집자 주: 필자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는 김천대와 평택대 신대원 겸임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조덕영 박사 bareunmedia@naver.com

신천지, 일산에 건축 시도

불허사례 참고해 대응 필요한 시점


신천지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마로 537 신곡LG화학물류센터(LG하우시스일산물류센터)에 건축을 시도한다는 소식이다계약금 및 1차 중도금이 지급 된 상태고곧 2차 중도금을 지급할 예정이다물류센터의 크기로 볼 때 1000평이 넘는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곳은 신천지 화정 시몬지파의 거점이 될 전망이다물류센터를 기점으로 2km 근방에는 10여 개의 아파트 단지와 10개 이상의 초··고등학교가 있다.

물류센터는 건물 용도가 창고시설로 되어있다신천지가 사용하려면 소유권 이전 후 종교시설로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이미 전국 각지에서 신천지의 신축 혹은 용도변경이 불허된 사례가 있어 지역 교계와 시민연대가 연합해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대법원은 중대한 공익적 사유가 있으면 건축법상 하자가 없어도 신축 혹은 용도변경을 불허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2009년 9월 24일 대법원 판결 중(20098946)

건축허가권자는 건축허가신청이 건축법 등 관계 법규에서 정하는 제한에 배치되지 않는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허가하여야 하고 관계 법규에서 정하는 제한 사유 이외의 사유를 들어 거부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나특별한 사정 즉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그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

2014년 2월 13일 대법원 판결 중(201227367)

원고(신천지)가 건축하려는 종교시설을 둘러싼 위와 같은 갈등양상에 비추어 볼 때원고가 소속된 종교단체가 위의 주장과 같은 심각한 폐해를 유발하는 이단인지에 관한 사실 여부를 차치하더라도이 사건 신청에 대하여 허가를 하는 경우 극심한 지역사회의 갈등이 현실화 되어 오랫동안 계속되고 그 갈등으로 말미암은 사회·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지그러한 갈등이 초래한 막연한 가능성만이 있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다… 학교 주변 환경이 학교 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명하고 … 종교시설의 신축을 불허가할 공익상의 필요가 있고이는 그 불허가로 인하여 원고가 입게 되는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신천지의 본부가 있는 과천에서는 자신들의 소유인 중앙동 40-3번지 건물의 신축을 위해 2008년부터 꾸준히 시도했지만여러 차례 불허 처분을 받았다과천시범시민연대의 적극적인 대응이 주요했고과천시청 역시 공익을 불허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내세웠다.

 

▲과천시 중앙동 40-3번지, 신천지는 이 건물의 신축을 2008년부터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불허되었다.

  

신천지는 2015년 11인천 중구 신흥동 3가 31-35 건물에 대한 용도변경을 인천 중구청에 신청했지만 불허되었다당시 구청 관계자는 신천지와 지역 사회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어 공익상 이유로 불허했다고 밝혔다.

신천지 부산 안드레지파는 2013년 연산동 일대에 건축을 시도했지만연제구청은 건축심의를 거부했다안드레지파는 부산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갑작스레 소를 취하했다당시 안드레지파와 계약을 맺었던 기아모터스는 연산동 부지를 다른 업체에 매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모든 사례를 종합해 볼 때 적극적인 대응은 신천지의 거점 마련을 저지할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KWMA, 회원 단체 인터콥 재조사 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이사장 신동우 목사)가 회원 단체인 인터콥을 일 년간 조사하기로 했다「뉴스앤조이」에 따르면, KWMA 정책위원회(조용중 위원장)가 인터콥의 회원권을 3년간 정지해 달라고 법인이사회에 요청했지만조사부터 하자는 결론이 1월 8일 정기총회에서 내려졌다.

KWMA, 회원 단체 인터콥 재조사 한다
▲최바울 본부장(출처: 유튜브)

   

인터콥은 신학과 선교방식으로 인해 오랫동안 교계의 뜨거운 감자였다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인터콥에 대한 지도에 나섰고, 2014년 4월 2인터콥 신학지도위원회 업무를 종료하면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최바울 선교사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김재성 교수의 신학지도 아래 조직신학(Th. M)을 수학하였다 ▲최바울 선교사는 프리메이슨이나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으로 오해될만한 용어나 내용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반문명주의로 오해될 수 있는 내용도 피하며지역교회를 존중하고 그리스도 복음과 우주적 교회의 연합과 협력을 더 강조하도록 한다 ▲최바울 선교사는 문제점이 지적된 저서들을 폐기하고 해당 서적들의 수정증보판을 내지 않도록 한다 ▲이번 신학 지도를 끝으로 인터콥 선교회의 이단성 문제와 관련한 논쟁을 종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예장합동통합합신고신 등 한국의 주요교단들은 여전히 인터콥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참여 및 교류금지로 결의하고 있다특히 인터콥은 KWMA의 지도 후 3개월 만에 지도받기 전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만화책을 출판하면서 논란을 재점화 시킨 바 있다.

KWMA는 인터콥의 공격적 선교 방식은 물론 그들의 신학까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결혼은 소중하다

손재익 목사의 십계명 바르게 이해하기(10)


간음이란?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간음(姦淫)이란 부부가 아닌 남녀의 성()관계를 뜻합니다부부는 결혼을 통해 성립되는 관계입니다그러므로 결혼관계를 벗어난 모든 성적인 행위나 생각이 성경이 금하는 간음입니다.

▲손재익 목사

성경이 금하는 간음의 범위

세상은 간음을 좁은 범위에서 생각합니다결혼한 부부가 자신의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것만 간음으로 이해합니다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간음의 개념은 보다 넓습니다간음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의 원리에서 벗어난 모든 것입니다(근친혼동성혼일부다처).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신성한 결혼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은 간음입니다(히 13:4).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결혼 제도를 세우려고 하는 행위는 간음입니다결혼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간음입니다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간음입니다(신 24:5; 전 9:9; 고전 7:3)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배우자로 만족하지 않는다면 간음입니다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방식이 아닌 다른 형태의 결혼은 간음입니다부부의 배타성을 깨뜨리는 모든 시도한 몸 된 부부를 갈라놓으려는 모든 시도가 간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의도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자기에게 주신 배우자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것음욕을 품는 것하나님께서 결혼케 하시기도 전인 혼전에 성관계를 맺는 것이혼 등도 간음에 해당합니다.

간음은 사람과 하나님께 대한 범죄

세상은 간음을 죄라고 보지 않으며혹 보더라도 사람에 대한 죄 정도로 생각합니다하지만 간음은 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범죄입니다간음이 죄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결혼 제도를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간음은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간음은 하나님의 짝지어 주심에 대한 도전이며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우자 이외에 다른 사람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간음은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두 사람의 한 몸 됨에 다른 사람을 들어오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간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제도의 소중함과 그 결혼 제도를 통하여서 세우신 가정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간음은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죄입니다그래서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에 대해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삼하 12:13).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은 요셉은 그것을 뿌리치면서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사회와 간음

시대가 흐를수록 세상은 제7계명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21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문명사회에서는 복혼근친혼동성혼간음이혼재혼을 죄로 여겼습니다그런데 21세기 들어서 동성혼간음이혼재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려고 합니다.

다른 계명은 그렇지 않습니다6계명 중 낙태나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긴 하지만생명 자체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8계명도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는 도둑질과 그에 준하는 모든 행위를 법률로 금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유독 제7계명은 현대사회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동성결혼의 경우, 2001년 4월 1일 네덜란드가 합법화한 이후, 2003년 6월 1일 벨기에가최근에는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합법화하였고이 여파는 대한민국에도 미치고 있습니다.

간음의 경우2007년 탤런트 박 모 씨와 옥 모 씨 부부의 문제 이후 죄가 아닌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고 여기는 풍토가 나타났습니다. 2015년 2월 26(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명의 위헌과 2명의 합헌 판결로 「형법 241(간통죄)에 대한 위헌판결 (사건번호2009헌바17)」을 결정하였습니다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간음은 처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혼의 경우대한민국 법률 「민법」(법률 제13710834조 (협의상 이혼) “부부는 협의에 의하여 이혼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었긴 하지만부정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그러나 이러한 풍토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더욱 제7계명을 잘 지켜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제7계명

하나님께서 제7계명을 주신 이유는 교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단위인 가정을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에서부터 출발합니다결혼을 통해 맺어진 부부가 가정을 구성합니다이런 점에서 제7계명이 잘 지켜지는 것은 결국 교회와 사회를 든든하게 만듭니다하나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향한 당신의 배려와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편집자 주필자 손재익 목사는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를 담임하고 있다저서로 『십계명, 언약의 10가지 말씀』(디다스코), 『사도신경, 12문장에 담긴 기독교 신앙』(디다스코)이 있다.

손재익 목사 bareunmedia@naver.com

소에스더 비판한 권동우 대표 불기소처분

예장대신 올해 소에스더 목사 조사 예정


한국에는 많은 이단 사이비가 존재한다주요 교단들이 매해 이단 사이비를 연구해 총회를 통해 결의하지만이단성 있는 인사들을 모두 다루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즉 교단에서 결의하지 않았어도이단적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잘못된 귀신론을 추종하고 다양한 비성경적인 설교로 물의를 일으키는 소에스더 목사(본명 소계희우리제일교회)도 교단의 결의는 없지만 주의해야 하는 인물이다소 목사의 비성경적인 설교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소 목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소에스더 비판한 권동우 대표 불기소처분
▲소에스더(본명 소계희) 목사(출처: 우리제일교회 유튜브 채널)

  

권동우 대표(킹제임스성경 연구소)는 최근 교세를 넓혀가는 소에스더 목사를 주의해야한다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2016년 11월부터 한 달가량 인터넷에 20여 회 소 목사를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과 영상을 게시했다.

권 대표의 글은 ▲이단적인 형태로 교회를 운영피해자들이 너무나 많고 심각치밀하게 자신을 감추고 활동해 온 소에스더 목사의 정체를 밝혀야 할 때임 ▲소에스더 목사는 정식으로 신학을 하지 않았고 어디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는지도 분명하지 않음에도 독립교단에 소속되어 교단 정치에 드나들며 많은 성도들을 속여 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초석 계열디스코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 연출집단최면 시도대한예수교 장로회 교단간판을 걸고 있으나 귀신론의 내용을 그대로 갖다 쓴다통성기도랍시고 귀신 쫓는 방법을 행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소에스더 목사는 권 대표를 명예훼손과 협박으로 고소했다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2017년 12월 29일 소 목사의 고소를 불기소처분(혐의 없음)했다검찰은 권동우 대표의 글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의견을 표명하고 있거나그 의견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함께 기술하면서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서 피의자의 주관적인 종교적교리적 분석에 기초한 의견 또는 논평에 해당하는 것일 뿐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종교적 목적을 위한 언론·출판의 자유는 다른 일반적인 언론·출판에 비하여 고도의 보장을 받게 되는바모멸적인 표현으로 모욕을 가하는 일은 허용될 수 없으나(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37524, 37531 판결), 종교적 목적을 위한 언론·출판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타 종교의 신앙의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다소 모욕적이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사용하였더라도 그것이 그 종교를 신봉하는 신도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그 자체로 폭행·협박 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정도가 아닌 이상 허용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4. 9. 4. 선고 201213718 판결 등▲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우리제일교회 소에스더 아줌마 공유필수 등의 기재 부분 또는 영상은 고소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명예훼손적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예장대신은 올해 소에스더 목사에 대해 연구해 총회에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신구약 중간사(3)_바벨론의 몰락과 페르시아 치하의 유대인 포로 귀환

편집자 주본 연재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부터 A.D. 70년 예루살렘 함락에 이르기까지 주요 왕조의 발흥과 쇠퇴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신구약 중간사(3)_바벨론의 몰락과 페르시아 치하의 유대인 포로 귀환

  

앗수르와 애굽을 누르고 패권을 차지한 바벨론은 제국을 한 세기도 유지하지 못했다바벨론의 강력한 지도자 느부갓네살의 퇴장은 왕좌를 탐하는 이들의 죽고 죽이는 피바람을 불러왔다.

바벨론의 불안한 국내 정세

느부갓네살 사후 7년 동안 바벨론의 왕은 세 번이나 바뀌었다느부갓네살의 아들 아멜 마르둑(성경에는 에윌므로닥으로 기록)은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매부인 네르갈 사르 우슬에게 살해된다네르갈 사르 우슬의 통치도 길지 못했다그는 4년 만에 죽게 되는 데 뒤이어 성인이 되지 않은 아들 라바시 마르둑이 왕좌에 오른다미성년자 왕은 단 몇 개월 만에 반대파에 의해 숙청당한다라바시 마르둑을 제거한 이는 아람계 귀족 가문의 나보니두스였다.1) 왕권은 이제 느부갓네살 가문에서 새로운 가문으로 넘어갔다.

종교를 둘러싼 갈등

왕이 된 나보니두스는 바벨론에 종교 갈등을 불러왔다자신의 어머니가 숭배하는 달의 신인 신(sin)을 섬기는 신전을 세웠다느부갓네살 때부터 마르둑(편집자 주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을 바벨론의 수호신으로 믿던 바벨론인들은 새로운 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특히 마르둑 제사장들은 나보니두스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종교 문제는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나보니두스는 종교 생활을 위해 거처를 옮기고 그의 아들 벧 사르 우슬(성경에는 벨사살로 기록)에게 통치권을 넘겨버렸다문제는 바벨론에서 매년 열리는 신년 축제인 아키투가 나보니두스의 부재로 중단되었다는 점이다아키투는 바벨론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다아키투의 중단은 나보니두스가 민심을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나보니두스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벨론으로 돌아왔지만 그가 순탄하게 바벨론을 다스릴 수 있는 상황은 지나버렸다존 브라이트는 바벨론은 사분오열되어 일개 지방 국가로 전락하였고 국가의 위기사태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2)라고 전한다.

고레스의 등장과 바벨론의 몰락

바벨론의 위협이 되는 존재는 이란 북서부에 자리했던 고대국가 메디아였다(성경에는 메대라고 기록). 이들은 바벨론의 땅을 호시탐탐 노렸고 두 국가는 간헐적으로 충돌했다그런데 페르시아(성경에는 바사라고 기록)에 고레스(키루스 2)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했다고레스는 메디아를 장악하고 근방의 국가들을 빠른 속도로 자신의 발아래 두기 시작했다.

나보니두스는 고레스를 겁내어 이집트리디아와 동맹을 맺지만 고레스는 리디아를 순식간에 제압했다고레스는 바로 바벨론을 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이전의 어느 나라보다 훨씬 거대한 제국을 창건”3)했다.

고레스는 바벨론으로 진격해왔다혼란한 바벨론은 고레스를 막을 힘이 없었다엘람 지방의 바벨론 장군 고브리아스는 고레스에게 투항한 뒤 고국에 칼을 들이밀었다.4) 나보니두스는 사력을 다해 바벨론을 지키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B.C. 539고레스는 손쉽게 바벨론으로 입성했다.

한편고레스는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의 외손자였다아스티아게스는 자신의 딸 만다네가 많은 양을 오줌을 누어 도시와 아시아가 잠기는 꿈을 꾼다마고스(편집자 주메디아의 사제)들의 해몽을 듣고 겁이 난 아스티아게스는 만다네를 페르시아인과 결혼시켜 페르시아로 보낸다만다네를 보낸 첫 해 아스티아게스는 만다네의 생식기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자라 아시아를 뒤덮는 꿈을 꾼다아스키아게스는 만다네를 메디아로 불러들이고 심복 하르파고스에게 만다네가 자식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한다하지만 하르파고스는 아이를 살리게 되는데 그가 바로 고레스였다.5)

고레스의 관용정책

고레스의 정책은 피지배층을 강하게 억압하던 앗수르나 바벨론과는 달랐다고레스는 일찍이 바벨론으로 붙잡혀온 민족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그들의 종교도 인정했다특히 마르둑을 섬기는 제사에 참석해 바벨론인들로 부터 지지를 이끌어냈다.

 

▲고레스의 무덤. 고레스는 파르스에 제국의 수도인 파사르가대(현재의 이란)를 세웠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출처: 위키피디아).

  

폴 존슨은 고레스 통치 아래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아사리아나 바빌로니아 제국과 전혀 다른 종교 정책이 발전했다페르시아 제국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피복민이 민족 고유의 종교 신념을 추구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다”6)라고 페르시아의 정책을 전했다게오르크 포어러는 굴복당한 이방민족들의 운명이 행복할수록 그들의 운명은 더 만족을 누린다는 관점이다억압보다 더 저항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 없으며회유 이외에 어느 것도 그런 저항을 제거할 수 없다”7)는 고레스의 원칙을 소개했다고레스는 각 나라의 독립을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군주를 두고 행정 책임을 맡기는 등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정책을 펼쳤다고레스의 정책은 페르시아 치하의 국가들의 결속력을 높이며 성공을 거뒀다.

포로귀환

하나님은 고레스의 탄생 15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고레스의 등장을 말씀하셨고(사 45:18)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올 것을 알려주셨다(렘 29:414).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을 허락했고 성전을 건축하도록 배려했다(대하 36:2223).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부터 세 차례에 거쳐 포로로 끌려가는데귀환 역시 세 차례에 거쳐 이루어진다(편집자 주유대인 역사가 폴 존슨은 스룹바벨 이전 예루살렘 재건 사업을 맡은 여호야긴의 아들 세스바살(세낫살)의 귀환을 1차 귀환으로 보고 스룹바벨을 2에스라를 3느헤미야를 4차 귀환으로 본다.).

B.C. 537년 스룹바벨학개스가랴 등이 중심이 된 1차 귀환을 시작으로 B.C. 458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2차 귀환이 B.C. 445년에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3차 귀환이 이루어진다페르시아 즉 옛 바벨론 땅에 남아있기를 자처한 이도 많았다고국에 대한 열망이 적은 바벨론 포로 2세대들은 굳이 황폐한 땅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한편, ‘유대인은 구약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다바벨론이 유다 땅에서 붙잡아온 사람들을 다른 나라의 포로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명칭이었다바벨론 포로기 부터 유대인은 특정 지역에서 통일된 사상과 관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로 보기 어려워졌다시간이 지날수록 이스라엘 밖 유대인은 증가했다이들을 흔히 디아스포라’(그리스어로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을 떠난 유대인들을 통칭하는 말)라고 부른다.

1) 존 브라이트『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483.

2) 같은 책 484.

3) 같은 책 485.

4) 같은 책 493.

5) 헤로도토스『역사』(, 2009), 93-94.

6) 폴 존슨『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2014), 151-152.

7) 게오르크 포어러『이스라엘 역사』(성광문화사, 21986), 264.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하나님의교회, 안상홍 성탄 기념?

안상홍 음력 생일에 맞춘 행사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는 사망한 안상홍 씨를 신격화하고 장길자 씨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믿으며 시한부 종말론을 설파하는 사이비 종교다이들은 성경의 동방이 한국이며 성경의 예언에 따라 동방에 그리스도가 재림했는데 그가 안상홍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 성탄 기념?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을 재림 그리스도로 믿는 사이비 종교다. 이들은 안상홍의 음력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매년 가진다.

  

하나님의교회는 12월 25일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라며 진정한 성탄절은 안상홍의 탄생일인 1918년 12월 1(음력)이라고 주장한다하나님의교회는 매년 음력 12월 1일에 안상홍님 성탄 기념예배를 진행한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

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포’로 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기독교인들에게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어떤 의미일까?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의 복잡한 시선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대해 한 번쯤은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과연 이스라엘이 정말 하나님의 복을 누린 국가요 예루살렘이 그 이스라엘의 복 된 수도였는가 하는 점이다이스라엘의 육적 조상 셈족이 복을 누리고 그 셈족 후손 이스라엘이 특별한을 누린다는 이스라엘 선민 신화는 정말 사실일까트럼프의 생뚱맞은 예루살렘이스라엘 수도 선포로 인하여 중동이 다시 혼란의 화약고가 될 조짐을 보인다신앙의 눈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포’로 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조덕영 박사

이스라엘과 유대인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은 노아 아들 가운데 셈을 그 조상으로 한다셈족 모두가 이스라엘의 후손은 물론 아니다셈에게는 엘람앗수르아르박삿아람이라는 다섯 아들이 있었다그 다섯 아들 가운데 아르박삿의 여러 후손 중 이스라엘 민족이 계시의 말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롬 3:2). 그런데 아르박삿의 후손들은 여러 갈래가 있었다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벨렉의 조상이며 벨렉은 아브라함의 5대조이며 아브라함의 여러 손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야곱(이스라엘)이었다이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인 유다에게서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나왔다일반적으로 아브람(아브라함)은 첫 번째 히브리인으로 지칭된다그런데 에벨에게서 히브리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그렇다면 하필 그 많은 히브리인 가운데 겨우 야곱 후손들만 특별한 복을 누린단 말인가그런 성경적 해석은 찾아볼 수 없다.

유대인 중의 유대인 사도 바울이 지적한 육적 이스라엘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다가 사도가 된 바울은 혈통 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했다(롬 3:28). 뼛속까지 철저한 유대인이면서도 사도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갈 6:15). 사도 바울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이 복 되다(갈 2:16)고 했다기독교는 유대교가 아니요 율법의 종교도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그럼에도 육적 이스라엘이나 역사적 예루살렘을 구원의 특별한 징조로 삼는 신학이 있다개혁 신학은 그 같은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가

온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다고 사도 바울도 말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롬 11:26). 인류 역사를 세대별로 구별(주로 1천년 단위)하는 세대주의에서 온 신학적 해석법이다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때에 일찌감치 두 나라로 갈라져 버렸다이 두 왕국은 주전 722(앗수르에 북이스라엘 멸망)과 586(바벨론에 남유다 멸망)에 멸망해버렸다우리 고조선이 망한 것보다도 근 500년 전 일이었다이후 남유다 왕국이 성경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귀향하기는 하였으나 10지파가 중심이 된 북이스라엘은 잡혼이 유행하면서 사마리아인화 되어 그 존재감이 사라져버렸다귀향한 유대인들조차 제대로 된 이스라엘 왕국을 구축하지를 못한다일명 마카비” 왕조가 잠시 잠깐 유대 왕국을 세웠을 뿐이다그리고 유다 왕국 멸망 이후 2,500여 년이 지난 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뒤 유대인들은 다시 팔레스틴 땅으로 모여들었다그동안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다양하게 뒤섞여버렸다순수 유대인 계보는 찾기가 어려워졌다그런데 과연 어떻게 온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것일까과연 오늘날 혈통 상 온전한 이스라엘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혈통 상 온전히 순수한 이스라엘을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격일 것이다.

칼빈이 본 이스라엘

칼빈은 이들 온 이스라엘을 영적 이스라엘(유대인과 이방인 전부구원의 대상 전부를 말한다고 보았다필자는온 이스라엘이란 칼빈이 말한 영적 이스라엘이든지 아니면 모든 시대, ‘선택된 모든 유대인‘(무차별적인 모든 유대인이 아님을 명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본다즉 이라는 말이 단하나 예외 없는 집단적이고전체적이며민족적이고국가적인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대주의 신학

주님 재림 직전에 좀 더 의미심장한 말투로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되는 극적인 회심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바로 세대주의 신학이다그들은 그 중요한 표적을 예루살렘 회복으로 본다그래서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 예루살렘의 동정에 유난히 관심을 갖는다도대체 예수님 재림 때까지 지상에 온전한(조금도 다른 종족이 피가 섞이지 않은유대인이 있을까결코 있을 수 없는 비성경적 거짓말이다또한 그들이 동시적으로 모두 돌아온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관과 정말 맞을까성경은 그런 구원에 대해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세대주의는 그리하여(롬 11: 26)’를 그리고 그 후라 해석하여 그리고 그 후’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다고 본다하지만 헬라어 후토스는 우리 개역개정판처럼 그리하여(이리하여)’로 보는 것이 옳다왜냐하면 그리고 그 후로 하면 특정한 어떤 시기에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다는 뜻으로 왜곡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억지 번역이 된다그러므로 마땅히 그리하여로 번역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믿음과 회개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완강히 저항하고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외면하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다가 재림 직전 어느 순간에만 집단적으로 회심하여 돌아온다는 사상은 성경적 바른 해석과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미숙한 주장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는다는 의미를 육체적 또는 민족적인 이스라엘 전체로 보려는 것은 성경과 동떨어진 거짓 주장이다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이방인 전체가 아니듯이 온 이스라엘 역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아닌 것이다주후 2000여 년 간의 역사 속에서 전체의 이스라엘 사람들로 예수를 모르게 하여 그냥 죽도록 외면해 놓고미래 어떤 시점의 시간대에 와서 따로 이스라엘 전체만 구원 받도록 한다는 특권 사상은 결코 성경적인 바른 사상이 아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하는 트럼트 대통령(출처: YTN)

  

유대인들의 시련

2차 세계대전 이전과 1941년〜1945년 사이 핍박받은 유대인들의 시련을 보여주는 유대 인구 통계 자료가 있다당시 러시아는 280만 명⇒120만 명으로 급격한 인구 축소가 있었고 루마니아(80만⇒35), 폴란드(325만⇒300), 헝가리(40만⇒30), 불가리아(6만⇒1만 1), 독일(23만⇒18), 리투아니아(15만 5천⇒13만 5), 라트비아(9만 5천⇒8만 5), 이탈리아(45천⇒75), 체코(31만 5천⇒27등 유럽 유대인구 증가 지역은 전무하였다.1)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시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통계다세대주의의 주장이 맞는다면 이때야 말로 주님이 오셔서 이들을 구원하셔야 되지 않았을까세계 대전 중 유대인들은 정말 심각한 시련 가운데 있었으나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신앙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이스라엘에게 별난 복은 없었던 것이다.

순수 유대인들은 있는가

오늘날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도 없을뿐더러 디아스포라 이후 유대교 신앙도 많이 달라졌다다양한 기독교파가 논쟁하듯 유대교도 종교적 색깔에 따라 하레디(극정통유대교인), 다티(종교적인 유대교인), 마소르티(전통적 유대교인), 힐로니(세속적 유대교인등으로 균열하였다이들 종교적 색깔조차 서로 다른 유대인을 어떻게 모두 구원한다는 것인가그러한 보편적인 성경적 진리는 없다그래서 쾨슬러는 <13 지파>(Arthur Koestler, The Thirteenth Tribe), 1976)라는 책에서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거의 없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필자는 체코 프라하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팜플렛 광고를 찍으려다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막던 다혈질적이고 완고하고 신경질적이며 아주 인색한 정통 유대인 젊은이에게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필자의 장녀의 유대인 친구 안나가 있다안나는 서류상으로만 유대인일 뿐 유대교도 이스라엘도 신앙도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산다안나는 자신이 유대인의 피가 몇 섞인 유대인인지도 모른다그러면서 오직 먹고 살기 위해(독일의 유대인 배려정책 덕으로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주하여 살다가유대인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필자 딸의 안내로 유대인들을 위한 무료 유대청년 이스라엘 관광 연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소개받고 공짜 이스라엘 여행을 신나게 즐겼다안나가 더 유대인인지 아니면 늘 유대인 회당을 목사인 아빠보다도 훨씬 더 잘 알고 키부츠 유대공동체를 최소 다섯 군데 이상 체험한 필자의 딸이 더 유대인에 가까운 것인지 .

참된 선민은 누구인가

성경은 어떤 특정한 민족이 특별한 복을 누릴 거라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는다특정한 시기에 육적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회복과 함께 주님께 돌아온다는 주장은 개혁주의 신학의 견해가 아닌 것이다사도 바울이 온 이스라엘이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한 구절은 문자적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남은 자(즉 믿는 자, Remnant), 즉 이방인의 충만한 수(믿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같은 것이다결국 셈족’ 이스라엘이나 그들의 수도 예루살렘이 특별한 을 누린다는 주장은 일부 극단적인 유대인들의 주장일지는 모르나 기독교 신앙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사도 바울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해보자. “혈통 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다”. 기독교에는 신앙의 이스라엘”, “신앙의 예루살렘이 있을 뿐이다.

 

1) Edited by Eli Barnavi, A Historical Atlas of the Jewish People, Schocken Books, New York, 233. 

 

편집자 주: 필자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는 김천대와 평택대 신대원 겸임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조덕영 박사 bareun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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