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익 목사의 십계명 바르게 이해하기(2)
십계명은 명령이 아닌 언약이다
십계명(十誡命)이라는 표현만 보면 “10개의 명령(命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분이 경계를 합니다. 괜히 부담을 가집니다. “내가 어떻게 이걸 지키지?” “교회 다니면 지키라는 게 너무 많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서는 십계명을 명령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몇몇 구절들을 보겠습니다.
▲ 손재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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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신명기 4:13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신명기 9: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신명기 9: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이 구절들에 따르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십계명이 기록된 신명기 5장은 십계명을 언급하기 전에 2∼3절에서 “(2)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라고 해서 십계명이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역대하 5:10은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라고 해서 십계명이 곧 ‘언약’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라는 말은 없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십계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글 성경의 출애굽기 34:28과 신명기 4:13; 10:4에 나오는 ‘십계명’이라는 표현은 의역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말씀들’ 혹은 ‘10가지 말씀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이라고 의역한 이유는 ‘말씀들’을 가리켜서 출애굽기 24:12; 마태복음 19:17-19; 로마서 13:9 등에서 ‘계명’이라고 부르며, 이 계명들은 모두 10개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십계명’이라는 표현 대신에 “언약의 10가지 말씀들”(the ten words of the covenant)이라고 표현합니다. ‘10가지 말씀들’이라는 성경의 언급(출 34:28; 신 4:13; 10:4)과 ‘언약의 말씀들’이라는 성경의 언급(출 34:28; 신 4:13; 참조. 신 29:1, 9)을 모아서 “언약의 10가지 말씀들”(the ten words of the covenant)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이든 ‘언약의 10가지 말씀(들)’이든 어느 명칭 하나만 옳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단, ‘십계명’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명령’이라는 성격만으로 제한하기 쉽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언약의 10가지 말씀(들)’이라는 명칭을 통해 ‘언약’의 성격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약백성이 지켜야 할 십계명
십계명은 명령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우리가 맺은 언약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통해 주어진 것으로서 언약백성이 지키고 누려야 할 법입니다. 십계명은 누구나 지켜야 할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속한 자가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 이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기독교 신자는 십계명을 지킴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 나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한 방식입니다. 또한 십계명은 “~하지 말라” 혹은 “~하라”의 형태이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가 누구인지, 나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우리를 알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알아가야 합니다.
머리말에 나타난 십계명의 성격
십계명에 이러한 특성이 있다는 사실은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십계명이라고 하면 제1계명에 해당하는 출애굽기 20:3의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을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시작은 출애굽기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입니다. 이 부분을 가리켜서 십계명의 머리말이라고 합니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3문답;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01문답).
십계명의 머리말은 십계명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십계명이 단순한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관계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잘 나타냅니다. 머리말을 자세히 보면 “나는 너를”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곧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관계를 보여줍니다. 십계명의 머리말에 이러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장로교회의 신앙을 정리해 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01문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01문: 십계명의 머리말은 무엇입니까?
답: 십계명의 머리말은 이 말씀에 포함되어 있으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신 것입니다.1) 여기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서 영원하고 불변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자기의 주권을 나타내셨으며,2) 자기의 존재를 자기 자신 안에 스스로 소유하시고3) 자기의 모든 말씀4)과 사역5)에 따라 존재를 나타내시며, 옛날에 이스라엘과 맺으신 것과 같이 자기의 모든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시며,6)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 된 멍에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과 같이 우리를 영적 속박에서 구원하셨습니다.7) 그러므로 이 하나님만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고 그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8)
1) 출 20:2 2) 사 44:6 3) 출 3:14 4) 출 6:3 5) 행 17:24,28 6) 창 17:7; 롬 3:29 7) 눅 1:74,75 8) 벧전 1:15-18; 레 18:30; 19:37
언약 백성들인 우리가 지켜야 할 십계명
십계명은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맺은 언약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뒤에 십계명을 받았다면, 우리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뒤에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구약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돌 판에 새겨주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백성들인 우리에게는 마음 판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셨습니다(고후 3:3; 히 8:10; 10:16).
그러므로 우리들은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명령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십계명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힘
우리의 힘으로는 십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의 힘으로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롬 3:10,23; 7:18-19, 21-23). 육신이 연약해서 이루지 못하는 율법의 요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의 법을 통해서 가능합니다(롬 8:3-4).
새 언약 백성인 우리에게 있어서 십계명은 돌 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겨져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고후 3:3).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마음 판에 새겨진 언약을 기억하면서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 누구도 이 법을 지키라고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신자의 양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딤후 1:14)께서 끊임없이 이 계명을 지키도록 명령하십니다.
편집자 주: 필자 손재익 목사는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를 담임하고 있다. 저서로 『십계명, 언약의 10가지 말씀』(디다스코)이 있다.
손재익 목사 bareunmedi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