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 2017년 7월월

“하나님의교회 측의 시한부 종말 사기 행각을 고발한다!”

하피모, 장길자, 김주철 사기죄 혐의로 고발


“장길자와 김주철은 자신들의 재산을 증식할 목적으로 1988년, 1999년, 2012년 각 연도마다 시한부 종말을 설파하면서 수많은 신도의 재산을 갈취했습니다.”

▲ 판교하나님의교회 앞에서 고발취지를 설명하는 하피모 회원들

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공동대표 김용한 외 2인)이 하나님교회 신도들의 신앙의 대상인 장길자 씨와 총회장 김주철 씨를 사기죄로 혐의로 고발했다. 하피모는 7월 27일(목) 오후 2시, 판교하나님의교회 앞에서 고발취지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뒤 대검찰청으로 이동해 고발장을 접수했다.

시한부 종말론에 근거한 재산 편취

하피모가 장길자 씨와 김주철 씨를 고발한 핵심 이유는, 자신들은 믿지도 않는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면서 신도들의 재산을 헌납받은 데 있다. 하나님의교회 탈퇴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의교회는 종말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설교로 신도들로 하여금 헌금을 내도록 만들었다.

“종말이 되고 현세의 재물은 전부 불타 없어질 텐데, 현세의 재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종말에 하늘나라로 들어갈 144,000명에 속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재물을 땅에 두기보다는 하늘에 두라.”

1988년 종말 실패 후에는 이런 설교도 있었다.

“늦어도 2012년 이전에는 분명히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다. 세상의 종말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복을 쌓아야 하고 구원을 받을 144,000명을 찾아 전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수가 많지 않아 구원을 받으려고 해도 우리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찾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교회를 건립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영광스러워하는 일은 하나님을 위한 교회를 건립하는 일에 일조하는 일이다.”

하피모는 “신도들은 2012년 종말을 굳게 믿고, 구원을 받기 위해 재산을 처분해서라도 헌금했다. 하나님의교회가 수십 년 동안 시한부 종말을 설파하여 벌어들인 재산의 규모가 3∼4조 원에 이른다는 판결문(2015나2032729)을 보더라도 이들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들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 하피모 회원들은 기자회견 후 대검찰청으로 이동해 고발장을 접수했다.

장길자와 김주철은 종말을 믿었나

하피모는 하나님의교회의 건축계약과 교리, 종말 주장 부인 등을 설명하며 장 씨와 김 씨가 종말을 믿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건축문제다. 하나님의교회는 1999년 9월 1일, 분당 이매동에 건물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공개된 도급계약서에 따르면 준공 일자가 2000년 9월 1일로 명시되어 있다. 1999년 종말을 주장하면서, 다음 해에 완공되는 건물을 짓고 있었다는 뜻이다.

 

둘째는 교리 부분이다. 하나님의교회는 2012년 종말 실패 이후, 왜 종말이 오지 않느냐는 신도들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나님의교회는 ‘준공검사’라는 교리를 만들었다. 본래 준공검사란 공사가 완성되었을 때 공사의 치수, 품질 등이 계약서의 규정과 합치하는 지를 확인하는 검사다. 하나님의교회는 이를 차용해 ‘종말의 시기는 완성되었지만 신도들의 정성이 충분한지 하나님께서 검토하고 계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문제는 준공검사 도중에도 계속해서 새 건물을 세워나갔다는 점이다. 하피모는 “하나님의교회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건물은 이미 완공이 되어 하나님의 검사만 남았을 뿐인데 왜 새로운 건물이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셋째는 종말 주장 부인과 관련자료 은폐다. 하피모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는 신도들 교육을 위해 안상홍 씨가 쓴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와 『요나의 예언』,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김주철 씨가 쓴 『멜기세덱 군사되라』를 주로 사용했다. 종말에 구원을 받으라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또한 초신자들에게는 자신들의 교리를 주입하기 위해 ‘강의 노트’를 작성하고 내용을 숙지하게 했다. 2000년이 되기 전의 강의 노트에는 세상의 종말과 구원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 씨와 김 씨의 책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신도들에게는 강의 노트를 작성하지 못하게 하고 기존에 작성한 노트들을 제출하게 했다. 동시에 하나님의교회는 종말을 말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피모는 “하나님의교회가 그동안 해온 종말 주장이 당당했다면 관련 자료들을 폐기 또는 은폐할 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하는 하피모 관계자

한편,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켰던 이장림 씨(다미선교회)는 당시 사기 및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다미선교회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이 씨는 신도들이 (단체에) 자발적으로 나왔으며, 본인은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확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씨가 1993년 5월 22일에 만기 되는 환매채를 사들인 사실이 들통 나면서, 종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 인정되어 사기죄가 성립되었다.

하피모는 “하나님의교회는 종교의 형식만 가지고 있을 뿐 실상은 신도들의 재산을 노린 조직화된 사기 집단일 뿐이다”라며 “장길자와 김주철의 사기 행각과 이로 인해 발생한 피해들에 대한 죗값을 묻기 위해 저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자 고발장을 제출하기 이르렀으니 청와대와 각 정부기관 그리고 언론사와 수사기관은 이들의 범죄 사실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하피모, “교주에 대한 신뢰를 깨트리는 것이 가장 큰 반증”

탈퇴자 끌어안고 걸어온 길, 사기죄 고발로 방점 찍나


▲ 분당 이매동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하피모)은 하나님의교회에 아내를 빼앗긴 남편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한국과 해외에서 하나님의교회를 상대로 각개전투하던 이들이 SNS를 통해 만나 약 3년 전, 하피모를 만들었다. 피해 남편들은 가출한 아내들을 함께 찾으러 다녔고, 하나님의교회가 제기하는 각종 민·형사상의 소송을 공동으로 대처했다.

 

하피모 회원들은 누구보다 현장에서 하나님의교회 신도들과 탈퇴자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하피모 운영진은 교리, 활동 유형, 탈퇴자들을 수년간 면밀하게 분석했다. 하피모 운영진을 만나 하나님의교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대처해 왔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탈퇴자를 끌어안았다

하피모는 탈퇴자를 보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하나님의교회 고위직과 당회장, 사모, 장년, 청년, 청소년 등 탈퇴자라면 가리지 않고 매달 정기적으로 이들과 모임을 했다. 하피모 관계자는 “(하나님의교회 혹은 사이비종교 대처에 있어서) 핵심은 탈퇴자”라며 “내부의 상황을 잘 아는 탈퇴자들이 모일 때 하나님의교회(혹은 사이비종교)는 두려워한다. 탈퇴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내부 상황과 피해에 대한 진술과 증언을 확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추후 법적 싸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전한다.

 

하피모는 탈퇴자들의 탈퇴 계기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교주와 총회에 대한 실망이었다. 하피모 관계자는 “교주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의심이 시작된다. 그러던 중 교주에게 인간적인 실망을 하면 탈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한다.

교주를 믿지 못하게 만들자!

하피모 관계자는 사이비 종교는 성경을 믿는 게 아니라 ‘교주’를 믿는다고 말한다. 성경은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뜻이다. 일례로 한 사이비 단체의 강사는 성경을 통해 구원자를 찾았으니 성경은 필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신도들에게 교육한 바 있다. 때문에 성경으로 반증 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고 말한다. 교주는 성경도 다시 쓸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신도들에게 성경만으로 만든 반증 교리는 한계가 있다.

 

하피모는 탈퇴자들을 통해 가장 큰 반증은 ‘교주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나님의교회 신도들이 교주를 믿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 실행에 옮겼다. 신도들이 ‘하나님’으로 믿는 존재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집중했다. 동시에 수뇌부가 신도 단속을 위해 해온 거짓말도 지적했다.

 

그중 네 가지가 신도들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첫째, 시한부 종말론을 감추려 한 문제다. 하나님의교회는 1988년과 1999년, 2012년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지만, 1988년과 1999년의 종말 주장을 신도들에게 감추려 했다. 비교적 최근에 입교한 신도들은 하나님의교회가 1988년과 1999년 종말을 주장한 적이 없다고 배웠다.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은 종말을 주장한 적이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종말을 주장한 증거가 속속들이 나왔다.

▲ 하피모는 시위를 통해 하나님의교회의 반사회성과 모순을 지적했다.

둘째, 안상홍의 무덤 문제다. 안 씨는 아내 황 모 씨와 경상남도 양산 석계공원묘원에 나란히 묻혀있다. 신도들에게 안상홍은 하늘로 승천한 존재이지 땅에 묻혀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피모가 안상홍의 무덤을 신도들에게 알렸을 때, 신도들은 크게 동요했고 이탈자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셋째, 어머니 하나님 장길자의 이혼 사실이다. 하피모 회원들은 하나님의 교회 앞에서 “어떻게 이혼녀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라고 외쳤다. 신도들은 당황했다. 장길자 씨가 이혼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줄 알았던 신도들이 많이 탈퇴했다.

 

▲ 하피모 회원의 일인시위

넷째, 시위에 대한 거짓말이다. 하나님의교회는 하피모의 시위를 막기 위해 소송을 남발했다. 일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자 하나님의교회는 신도들에게 하피모가 시위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일부 피켓의 문제였지 시위 자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피모는 한 달간 시위를 멈췄다. 의도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뇌부는 신도들에게 우리가 승리했다는 듯이 설교했다고 한다. 한 달 뒤, 하피모의 대대적인 시위가 이어지자 신도들은 당황했다. 장길자 씨가 하피모는 시위를 못 한다고 말하면 그 말이 곧 믿음의 대상이요 교리다. 하피모의 시위 재개는 자신들의 ‘신’의 이야기가 거짓말 혹은 틀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도들은 당연히 실망과 의심을 하게 된다. 실망과 의심이 파고들 때, 탈퇴자들과 함께 만든 반증 교리를 제시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다.

종말론과 가정파괴 교리, 하나님의교회를 이루는 두 축

하피모 운영진들은 하나님의교회를 이루는 두 축을 ‘시한부 종말론’과 ‘가정 파괴 교리’라고 진단했다. 종말로 공포심을 심고 재산을 헌납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교회 신앙을 반대하는 이들을 마귀 혹은 대적자(편집자 주: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는 자신들의 신앙에 반대하는 이들을 대적자라고 부른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재산 피해와 이혼, 가출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피모는 종말론과 가정을 파괴하는 교리가 하나님의교회 교세 확장의 축이라면, 반대로 이 두 교리가 없으면 하나님의교회 신도가 증가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하피모는 두 교리를 ‘악성 교리’라고 부르며 악성 교리가 순화되면 하나님의교회는 자연스럽게 와해된다고 진단한다.

 

먼저 시한부 종말론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하나님의교회의 시한부 종말을 주장은 모두 실패했다. 세 번이나 실패한 시한부 종말을 다시 주장하기란 하나님의교회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실제 하나님의교회는 종말 대신 ‘70억 인류 구원’을 내세웠다. 하피모 관계자들은 하나님의교회가 70억 구원을 공표하는 순간 신도들이 많이 이탈했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가정 파괴 교리다.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이 가족을 마귀 혹은 대적자로 가르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하피모 회원들의 민사 소송에서 그러한 교리가 가르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때문에 하피모 회원들은 민사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하나님의교회는 이 교리를 가르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교회는 단체를 지탱해 온 두 축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하피모는 현재 가장 중요한 소송을 목전에 뒀다. 7월 27일(목) 장길자 씨와 김주철 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 믿지도 않으면서 종말을 주장해 신도들에게 재산을 헌납 받아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취지다. 한국 이단 사이비 역사에 획을 그을 수 있는 판결을 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 책 소개 〕 다음 세대 부흥 DNA 『아포슬』

김영한 목사, 대구동신교회 청년부 성장 이야기 담아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 양육이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교회에 청소년, 청년들이 없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교단인 예장합동과 통합만 보더라도 전체 교회의 70%가량이 주일학교 혹은 청년부가 조직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교회 안 젊은 세대의 양적, 질적 성장을 예상하는 이도 많지 않다.

▲ 저자 김영한 목사 / 목양 / 296쪽

그래서 이 교회가 주목된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출석 인원이 500여 명 이었던 대구동신교회(담임목사 권성수) 청년부가, 현재는 약 1,200명이 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단순한 양적 성장도, 수평이동을 한 것도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예배, 교육와 훈련, 선교라는 본질에 최선을 다했다.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성장했으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헌신했다. 2개월 마다 열리는 전도 집회에는 매번 50∼100명이 와서 40% 이상 결신하고 정착한다.

동신교회 청년부 ‘아포슬’의 디렉터인 김영한 목사가 이들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책 『아포슬』(도서출판 목양)을 출판했다. 김 목사는 살리고, 키우고, 가르치는 ‘생명사역’을 슬로건으로 건 아포슬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다양한 에피소드를 이 책에 기록했다. 또한 2017년의 아포슬 매뉴얼을 통해 공동체의 사역조직, 예배와 모임, 연간 사역일정, 교육과 훈련 등을 공개했다.

김영한 목사는 “청년부 사역의 핵심이 되는 3가지 요인이 있다.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통한 부흥 DNA 3요소를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뤘다”라며 “이 책이 청년목회의 로드맵을 가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소원한다”고 밝혔다.

저자 김영한 목사는 신대학원을 졸업한 후 캐나다 밴쿠버 TRINITY WESTERN 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다. 시리아어, 아람어, 히브리어, 헬라어 문헌을 연구하며 구약학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인(SIGN)을 받고, 갑작스럽게 2009년 3월 조국으로 돌아왔다. 대구동신교회에서 영어예배 디렉터로 5년, 청년부 디렉터로 4년을 섬겼다.

바른미디어 bareunmedia@gmail.com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국가관(3)

양심의 자유와 복종


2. 죄의 억제 기능으로써 율법의 제2 용도를 적용한 국가관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죄의 억제 기능으로써 ‘율법의 제2 용도’를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성경적 국가관을 확립하였다. 이 부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조 19장 “율법에 관하여”(Of the Law of God)를 살펴야 한다. 이 항목에서 국가의 종교적 의무에 대한 내용은 “율법의 제2 용도”에 기초한다. 율법의 제2 용도란 율법의 3가지 용도 중 “죄의 억제” 기능으로써 율법은 인간의 양심 속에 내제하여 죄를 억제케 하는 성격을 갖으며, 특히 죄를 억제하는 수단으로써 국가의 시민법적 형벌까지도 허용하는 원리이다.

 

▲ 신원균 박사

이것은 칼빈을 통해서 체계화된 내용인데, 그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억제케 하기 위해서 인간의 본성적 마음에 율법의 기본적 내용을 심으셨고, 이 양심의 법에 따라서 죄를 억제하시고 외적으로는 국가를 세우셔서 인간의 죄를 억제케 하신다고 지적하였다.1) 따라서 국가는 인간의 윤리적 사회적 죄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죄까지도 막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국가의 신앙적 책임과 의무론이 이 교리의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이 윤리와 종교를 포함한 국가의 시민법적 형벌 원리는 이 신조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정통교회 안에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개념이었다. 제일 먼저 신학적 기초를 제시한 것은 어거스틴이다. 워필드는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미국판으로 편역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어거스틴은 이단에 대한 시민법적인 처벌의 정당성을 믿고 있었으므로 다른 경우에서처럼 이 경우에도 당연히 시민법에 호소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법원에서 서신왕래가 있던 영향력 있는 친구가 있었으므로 최후의 수단으로써 시민법적이며 교회법적인 힘의 논리가 동시에 헌신으로 가득한 교황의 가련한 머리에(조지무스) 일격을 가하였을 것이라고 충분하게 가정해 볼 수 있다. … 이 두 개의 편지에서 다 같이 어거스틴은 로마의 주교좌가 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펠라기우스주의자들에게 박해를 가한다는 사실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고 식스투스에게 만천하에 드러난 이단에게 …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과거의 신앙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든지 아니면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2)

위의 설명처럼 어거스틴은 국가의 시민적 형벌 의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신적의무로 언급하였다. 어거스틴의 뒤를 이어 칼빈은 「기독교 강요」 4권에서 국가 통치의 주된 목적이 예배를 존중하며 보호하고,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보존해야 하며, 우상숭배, 신성모독, 종교에 대한 방해를 막아야 할 종교적 의무가 있음을 밝힌다.3)

 

칼빈은 1544년 세르베투스의 사건과 관련해서 이 문제를 실제적으로 적용하였다. 카스텔리옹이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서 관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 그는 “세르베투스의 오류에 대한 개혁신앙의 수호”(Defensio orthodoxae fidei contra Michaelis Serveti)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국가의 관원들이 교회가 이단으로 판단한 자들에 대해 언약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시민법적 형벌을 행하는 것이 성경적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아무리 입법자가 야만적이고 무지하다 하더라도, 만사에 앞서 오직 신들이 경배되고 공경되는 것을 배려한다. … 만일 누군가가 종교를 지키는 책임을 법에 포함시킨 것이 미신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선하고 바른 정치의 목적이 사람들 사이에서 적법한 질서를 보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종류의 정부가 종교 없이는 불완전하며, 위정자가 하나님 예배를 유지하는 일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시민 소송에만 전념한다면, 위정자는 단지 애매모호한 것이거나 절반만 만들어진 조생아와 같다고 결론짓는다.4)

칼빈의 위와 같은 입장은 어거스틴의 국가관에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종교적 의무는 사도시대와 어거스틴을 이어 칼빈과 16-17세기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적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신학적 흐름을 고려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신조들이 로마의 황제에 의해 소집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위정자의 총회 소집권은 교회가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 교회를 보호하는 중요한 종교적 의무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도록 국가관의 언약적 책임성과 의무를 확대시켰던 것이다.

▲ 칼빈(좌)과 어거스틴(우)

이와 같은 국가의 종교적 의무 대한 적극적 이해는 개혁교회의 신조들을 통해서 계속 발전하였다. 먼저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제39장. 우리는 하나님이 무질서한 욕망을 억제할 법률들과 집정관들을 두셔서 이 세상이 통치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왕국, 공화국, 또 세습적 및 비세습적인 여러 나라와 또 정당한 정부에 속한 모든 것과 또 그것들의 창시자로 인정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들을 설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만 십계명의 두 번째 판의 범죄뿐만 아니라, 첫 번째 판을 어기는 범죄도 제지하시기 위하여 위정자의 손에 검을 쥐어 주셨다.5)

위의 프랑스 신앙고백에서 위정자가 십계명의 두 번째 판인 윤리적인 범죄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내용에 해당되는 첫판의 범죄를 위해서도 칼을 받았다고 언급하는 부분은 국가 위정자의 종교적 역할에 대한 매우 적극적인 표현이다.

 

이런 중요한 표현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축소된 면이 있다. 이장식 교수는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만 십계명의 제2계명을 어길뿐더러 제1계명도 어기는 범죄를 제지하시기 위하여 위정자의 손에 검을 쥐어 주셨다”6)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십계명의 1-2판을 1, 2계명으로 잘못 번역하여 중요한 의미를 축소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번역을 원문에 맞추어서 1판과 2판으로 수정하여 국가 위정자의 종교적 역할에 대한 의미가 더욱 강조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민법적 형벌에 대한 적용은 도르트 신조를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신조의 마지막 “결의문”7)을 통해서 엄중한 경고를 제시하였다. 신조는 교회의 이단은 종교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엄중한 책망이 있어야 함을 밝혔다. 당시 의회는 이 결정을 존중하고 시민법적 형벌을 알미니안파들에게 다양하게 적용하였다. 먼저 회의 후 200여 명의 알미니안파 목회자들이 파면을 당하고, 정치적 지도자인 올덴바로테벨트는 이단적 가르침을 옹호한 죄목에다 국가 원수에 대한 반역죄까지 더해져 참수형을 당했으며, 정치가요 신학자인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종신형을 받았다.8)

 

하지만 시민법적 형벌의 영역은 오늘날처럼 비기독교적 문화와 사회제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매우 조심해야 하며, 또한 기독교 국가라 하더라도 적용에는 난관이 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나 종교개혁의 시기는 언약의 책임을 공감하는 기독교 국가의 형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적용할 수 있었지만 현재처럼 기독교 국가가 아닌 사회 속에서는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장로교회에서는 1729년 수정판을 통해서 비기독교 국가 아래서 국가의 종교적 의무와 책임을 소극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해서 국가의 총회 소집권과 치리권을 삭제한 것이다.

 

국가의 종교적 범죄에 대한 형벌적 치리권은 카이퍼와 바빙크를 통하여 ‘영역주권’의 개념으로 정립되면서 상호 구별되며 협력적이며 보충적인 개념으로 더욱 발전했다. 즉 비기독교 사회 속에서 교회와 국가가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언약적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서로 협력하고 도울 수 있게 하는 발전적 개념이다. 영역주권이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치리권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국가는 각 영역에 해당되는 범죄에 대해서 고유한 치리권을 행사하면서도 상호 협조하며 돕는 방식을 취하는 의미이다.

 

바빙크는 ‘계시철학’ 마지막 제10장에서 “계시와 미래”라는 제목을 통하여 신앙 없는 일반 국가제도에서는 희망이 없고, 기독교적 신앙이 토대가 된 언약적 국가에 소망이 있음을 제시한다.9) 즉 지금은 비기독교 사회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을지라도 기독교인들의 미래는 종교개혁 시대와 같은 언약적 책임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국가에 대한 기대와 전진이 있어야 함을 언급하면서 보다 더 현실적인 답을 제공해 주었다.

 

결국 율법의 제2 기능으로서 국가관은 비기독교 국가 아래서는 상호 구별성을 좀 더 우선하되, 기독교 국가 아래서는 국가의 종교적 의무와 책임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종교적 범죄까지 치리할 수 있는 성격을 갖는다. 비록 국가가 강제로 신앙을 갖게 할 수는 없지만 한 지역의 통치 아래서 교회가 보존되며, 바른 신앙이 확립될 수 있도록 이단과 우상숭배의 범죄를 막아야만 위정자도 국가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계속).

1) Ioannis Calvini,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 libros quatuor nunc primum digesta, certisque distincta capitibus, ad aptissimam methodum: aucta etiam tam magna accessione ut propemodum opus novum haberi possit”, in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eds. Guilielmus Baum, Eduardus Cunitz, Eduardus Reuss, vol. 2 (Brunswick: C. A. Schwetschke, 1863-1900), 260-61. 이하 CO, Institutio 1559로 한다.

2) B. B. Warfield,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에 관한 안내논문”, in Saint Augustine Anti-Pelagian Writings vol. 1, ed. trans. P. Schaff, 차종순 역 「어거스틴의 은총론」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105, 125.

3) CO, Institutio 1559, 1094.

4) 박건택, “칼뱅과 카스텔이옹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 「신학지남」 제259호 (1999년): 79-80.

5)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382.

6) 이장식, ⌜기독교 신조사⌟, vol. 1 (서울: 컨콜디아사, 1993), 218; cf.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382. 프랑스판과 영어판 원문을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판: “ὰ cette cause il a mis le glaive en la main des magistrats pour reprimer les peches commis non-seulement contre la seconde table des commandements de Dieu, mais aussi contre la premiere.” 영어판: “so he has put the sword into the hands of magistrates to suppress crimes against the first as well as against the second table of the Commandments of God.”

7)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597.

8)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1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Co., 1998), 522-23.

9) Herman Bavinck, Philosophy of Revelation, 위거찬 역, ⌜계시철학⌟ (서울: 성광문화사, 1990), 283-327. cf. “칼빈과 낙스를 이어 청교도들이 국가의 징벌을 교인의 권징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후대에 이르면서 정교혼동으로 교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날에 와서는 교회와 국가가 상호 독립케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정책으로 실증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 저작전집: 교회론」 (서울: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8), 118].

편집자 주: 필자 신원균 박사는 한마음교회를 담임하고,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책임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청소년조직신학입문』(리폼드북스), 『개혁교회 신앙고백서 해설집』(리폼드북스) 등이 있다. 

 

신원균 박사 bareunmedia@gmail.com

〔발행인 칼럼〕 이런 광고를 봐야 한다니!!!

YTN 뉴스 중에 나온 「천지일보」 광고


응? 순간 당황했다. YTN 실시간 뉴스 도중 「천지일보」 광고가 나오다니.

“천지일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20초짜리 광고는, 출연자들이 차례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깊이가 남다르죠”, “편견 없는 기사가 의식을 깨워주죠”라고 답하며, 새 시대 희망언론 「천지일보」라고 홍보하며 마무리된다.

순간 「천지일보」의 정체성과 신천지 신도 감싸기를 위한 왜곡보도 등이 생각났다. 먼저 정체성. 「천지일보」는 “우리는 신천지 신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만희 씨가 “우리 신천지 신문만은 믿을 수 있다는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해도, 「천지일보」 관계자가 “우리 신천지 기자단”이라고 해도 신천지 신문이 아니라고 한다. 신천지 탈퇴자들이 「천지일보」를 강매하거나, 관공서에 배포하는 일을 했다고 진술해도 아니란다.

정체성도 문제지만, 광고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편견 없는 기사를 써왔을까? 물론 기자들도 실수할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오보를 내기도 한다. 오보를 정당화하자는 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기자들도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가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의도적인 왜곡과 자질의 문제가 드러날 때이다.

「천지일보」는 신천지 탈퇴자가 신도들에게 집단폭행 당한 사실을 왜곡 보도함으로 정정보도를 낸 적이 있다. 또한 CBS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라 한 기사에 대해 신천지 측의 주장을 담은 반론보도를 하자, 「천지일보」는 CBS가 사실상 오보를 인정했다는 억지 기사를 썼다. 결국 「천지일보」는 정정보도와 함께 손해배상 1,000만 원 판결을 받았다. 「천지일보」의 잘못된 보도의 이면에는 ‘신천지 감싸기’라는 이유가 있었다.

「천지일보」의 광고를 YTN 실시간 뉴스를 통해 내보내는 건, 「천지일보」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은 홍보다. 많은 사람이 착각한다. ‘그 정도 언론에 광고가 나왔으니 괜찮지 않은가?’

 

 

▲「천지일보」광고

절대 아니다. 결국 돈이다. 언론사는 돈이 필요하고 광고는 가장 큰 수입원이다.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광고들까지 싣는 것이 오늘날 언론사의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몇 해 전 한 중국산 사이비 종교가 많은 언론사들에 광고를 내며 대대적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었을까. 소위 말하는 필터링이 없다. 광고의뢰가 들어왔을 때, 광고의 내용, 주체 등을 파악하는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천지 피해자들은 분노할 거다. 「천지일보」의 이미지 세탁에 분노할 거고, 필터링도 없이 광고를 내보내는 YTN에 분노할 거다.

YTN에서 「천지일보」 광고를 봐야 한다니!!!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하피모, 장길자와 김주철 사기죄로 고발한다

7월 27일 오후 2시, 판교 하나님의교회에서 기자회견


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하피모)이 하나님의교회에서 어머니 하나님으로 믿는 장길자 씨와 총회장 김주철 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 

7월 27일 오후 2시, 판교 하나님의교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35)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 취지를 설명한다. 기자회견 직후 대검찰청으로 이동해 고발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 대전 하나님의교회

하피모 김용한 공동대표는 “장길자, 김주철 씨는 정작 자신들은 믿지 않으면서 1988년부터 신도들에게 종말의 일정을 특정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재산을 헌납한 피해자들이 발생해 왔다”라며 고발 이유를 밝혔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제1계명, 제2계명, 둘 다 같은 거 아닌가요?

손재익 목사의 십계명 바르게 이해하기(5)


우리의 착각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 정도는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십계명도 모르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어?” 라고 자부합니다. 정작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면 아무 말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1계명, 제2계명의 차이를 물어보면 “둘 다 같은 거 아니야?”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제2계명은 언뜻 보면 제1계명의 반복 같습니다. 제2계명도 제1계명 같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처럼 보입니다.

▲ 손재익 목사

제1계명과 제2계명은 다르다

제2계명은 제1계명과 엄연히 다릅니다. 제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금하는 계명이지만, 제2계명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형상화하여 섬기는 것을 금하는 계명입니다. 제1계명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관련되지만, 제2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형상을 가진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제2계명이 기록되어 있는 출애굽기 20:4-6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를 보면 그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제2계명을 설명하고 있는 신명기 4:15-19에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15)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17)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19)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신명기 4:15-19는 “(15)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라는 설명처럼, 십계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자세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지 못한 형상’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뵈올 때에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형상화해서 섬기지 말라는 명령이 제2계명입니다.

제2계명과 하나님의 형상

제2계명은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섬기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 4:24). 그렇기에 어떤 형상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남자의 형상, 여자의 형상, 땅 위에 있는 짐승의 형상, 하늘을 나는 날개를 가진 새의 형상, 땅 위에 기는 곤충의 형상, 땅 아래 물속에 있는 물고기의 형상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 프랑스의 화가 니콜라 푸생(1594년∼1665년)의 아론의 금송아지

제2계명을 어긴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사람들이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출 32:1) 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론이 사람들에게 금 고리를 빼서 가져오라고 합니다(2). 그리고는 그 금 고리로 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4). 그리고는 그 앞에 제단을 쌓고 거기에 절을 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5,6). 다시 말하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을 합니다. 이 모습을 언뜻 보면 제1계명을 어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으로서의 금송아지를 섬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4절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들은 금송아지를 가리켜서 다른 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말고 이 금송아지 신을 섬기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금송아지를 향해서 말하기를 “이 금송아지가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십계명의 머리말(출 20:2)을 인용하면서 말합니다. “(4)….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형상화 하면 안 되는 이유

왜 하나님을 형상화해서 섬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을 두고 예배한다면 좀 더 편리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은 형상화할 수 없습니다.

영이라도 형상화 하면 안 될까요? 우리가 영이라고 알고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이 아닌 것을 향해 절을 한다면 결국 제1계명을 어기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묘사할 수 있는 신상, 형상, 그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조물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분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가장 비천한 피조물로부터 가장 고상한 피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피조물을 다 합친다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고, 신화적인 피조물로도,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과 물에 있는 모든 것으로도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어떤 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섬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능력을 제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모양,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두 가지 우상

성경이 금하는 ‘우상’(idolatry)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다른(잘못된) 신을 섬기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것입니다. 제1계명은 첫 번째 것으로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금합니다. 여기에는 다른 신의 우상이나 형상을 섬기는 것에 대한 금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2계명은 두 번째의 것으로 다른 신의 우상이나 형상에 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형상화해서 그것에 절하는 것을 금합니다. 제2계명은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것을 금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른 예

우리는 성경에서 제2계명을 어긴 몇몇 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17:1-6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미가’라는 사람이 은으로 신상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미가는 그 신상을 만들 때에 우상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5).

열왕기상 12:27-30에서 여로보암 왕이 두 개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하나는 벧엘에 다른 하나는 단에 둡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28)….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은 출애굽기 32:4와 매우 흡사합니다. 그는 아론이 그러했던 것처럼 금송아지를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성경은 “(30)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라

하나님을 형상화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 우상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최대한 없애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어도 하나님을 형상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편집자 주: 필자 손재익 목사는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를 담임하고 있다. 저서로 『십계명, 언약의 10가지 말씀』(디다스코)이 있다.

「바른미디어」, 이단 사이비 정보 담은 포스터 5종 제작

신학, 이단사이비 전문 언론 「바른미디어」가 이단 사이비에 대한 정보를 담은 포스터 5종(A2 사이즈)을 제작했다. 포스터는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구원파, 통일교, 기타 이단(JMS, 만민중앙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동방번개)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신천지는 포교방법, 하나님의교회는 시한부종말론, 구원파는 단체의 공식명칭, 통일교는 사업체, 기타 이단은 주요 주장 등 각 단체별로 특징을 잘 부각했다.

▲ 5종 포스터

5종의 포스터는 2만 원(택배비 포함)에 판매되며, 수익금의 10%는 이단 사이비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된다.

「바른미디어」 조믿음 발행인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제작했다. 교회에 부착해 놓으면 성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의: 050-6558-0253 / bareunmedia@naver.com

바른미디어 bareunmedia@gmail.com

죄인인가 의인인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는 모두 사해졌는가

박재은 박사의 칭의 바르게 이해하기(6)


들어가는 말

모든 신학 각론들이 그러하듯이 칭의론과 속죄론 또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서로 간에 맺고 있다. 이전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만약 칭의를 가능하게끔 만드는 질료적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義, righteousness)라면(이에 대해서는 5회: “칭의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살펴보라) 이 그리스도의 의는 십자가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그 신학적 근거를 굳건히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속죄를 위해 보혈의 피를 죄인 대신 아낌없이 쏟으셨고, 대속적 죽음을 온전히 감당하심을 통해 죄인들이 응당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은 탕감되었다(속죄론). 십자가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 사역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가 되었고 이 그리스도의 의가 믿음으로 죄인에게 전가됨으로써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칭의론).

 

▲ 박재은 박사

이러한 신학적 내용은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가사에도 여실 없이 드러나 있다.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우리 다 찬양을 합시다 주님을 만나볼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270장 1절). 이 가사에 내포된 신학적 의미에 대해 여러 갈래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눈보다 더 희게 만들었다면 과연 어느 범위까지의 죄를 깨끗하게 만든 것일까?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은 과거에 지은 죄에만 그 영향력을 미치는가? 아니면 현재 짓고 있는 죄까지도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흥건히 적셔지는가? 이러한 질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의인인가? 아니면 (지금도 죄를 짓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죄를 지을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죄인인가?” 이는 “칭의”와 “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문제로 칭의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바른 답변을 지금부터 찾아보도록 하자.

의로운 동시에 죄인1)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칭의의 장 한 복판에 서 있는 인간의 정체성을 대단히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해 규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의로운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표현이다. 과연 한 사람이 의로운 동시에 죄인일 수 있을까? 루터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진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확고하게 정체성 규정을 했다. 즉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덧입은 자는 “전적으로 의롭다”(totaliter justus)는 것이다. 그러나 죄악 된 인간의 본성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인간의 근원적 본성은 여전히 후패하며 부패한 “전적인 죄인”(totaliter peccator)이다.2)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의인으로 칭함 받은 자는 이미 “의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때 여전히 죄인이므로 루터는 이를 역설적인 표현인 “의로운 동시에 죄인”이라는 표현으로 신자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다.

▲ 마르틴 루터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사역을 통해 과연 어떤 죄가 사해진 것일까?  어떤 죄가 사해졌기에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칭함을 받고 있을까? 반대로 죄의 어떤 부분이 남아있기에 우리는 의인으로 칭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일까? 이러한 질문을 죄의 두 가지 결과와 연결시켜 살펴보도록 하겠다.

죄의 결과: 죄책과 부패(혹은 오염)

죄를 지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죄책”(罪責, guilt)과 “부패”(腐敗, corruption)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금은방에 들어가 귀금속을 훔치면 법적으로 절도죄에 해당되어 실정법을 어긴 죄인이 된다. 죄인이 된다는 말은 곧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법적 책임(liability)을 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죄책”이 생긴다는 개념이다. 즉 죄인이 절도죄에 상응하는 형량을 받으면 그는 형량대로 교도소에서 죄의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한다. 만약 살인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무기징역 혹은 사형으로 져야만 한다. 그 어떤 죄인도 마찬가지이다. 저지른 죄에 대한 법적 책임은 그 죄를 저지른 자가 져야만 한다.

 

죄책과 더불어 부패(혹은 오염) 또한 죄인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이다. 성경은 죄의 결과의 한 측면인 부패의 특성에 대해 다각도로 설명하고 있다. “총명이 어두워진” 상태, “무지한” 상태, “마음이 굳어진” 상태(이상 엡 4:18), “더러운 것”을 내는 상태(욥 14:4), “거짓 된” 상태(렘 17:9), “가시와 엉겅퀴를 맺는” 상태(마 7:16), “감각 없는” 상태, “방탕”한 상태,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상태(이상 엡 4:19)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처럼 죄인은 그 마음이 부패하고 후패하여져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죄의 결과인 부패하고도 오염 된 상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책의 형벌”을 무죄한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아 대리적 속죄를 이룬 사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가 져야만 하는 “죄책”을 완전하게 해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더 이상 죄책을 묻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가 감당하신 죄책은 단순히 과거의 죄책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지을 죄의 모든 죄책까지를 다 포함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을 때(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책을 다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됨으로써 우리는 법적으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신분적 칭함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서는 더 이상 법적인 죄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에서 살펴본 루터의 논의에 비추어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완전하게 의롭다”고 칭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책”을 다 해결해주셨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책임이 없는 자는 법적으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완전한 “의인”인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의로운 동시에 죄인”이라는 역설적 레토릭을 구사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죄책의 측면으로서가 아닌 “부패의 측면으로서의 죄인”이라는 사실을 염두 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해 우리의 죄책은 남김없이 깨끗하게 되었지만 죄의 또 다른 결과인 부패와 오염은 여전히(사실 아주 지독하게) 남아있으므로 우리는 의로운 동시에 여전히 죄인이다.

실천적 고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죄책”은 남김없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부패성”과 “오염성”이 남아있다는 가르침은 칭의론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있어 매우 소중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가르침은 한번 예수 믿으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므로 더 이상 회개 기도할 필요도, 성화의 삶을 살 필요도 없다는 식의 반(反)율법주의적 가르침이 서 있을 공간 자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책은 남김없이 해결되었지만(칭의의 영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지독한 결과인 “부패”는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우리는 이 잔존하는 부패를 깨끗케 만들기 위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회개와 성화의 열매를 부지런히 맺어야 한다(성화의 영역). 죄의 결과를 죄책과 부패(오염)로 상정하여 이를 각각 칭의와 성화라는 신학적 관점 속에서 이해하는 관점은 칭의가 완료되었기에 성화는 필요 없다는 식(즉 죄책이 없어졌으므로 부패 또한 사라졌다는 식)의 불균형적 칭의–성화 이해에 경종을 울릴수 있다. 그러므로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칭의와 성화 사이의 관계를 “불가분” 관계로 보았다. 칭의가 없으면 성화도 없고, 성화가 없으면 칭의 또한 없다. 즉 칼빈은 칭의와 성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이중 은혜”(duplex gratia)라고 생각했다.3) 칼빈의 주장은 옳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죄책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통해 단 한순간에 해결되었지만(칭의의 단회성), 여전히 부패와 오염은 남아 있으므로 늘 성령 하나님과의 동행 가운데 “자기 두루마기”를 성실히 빨아야 한다(계 22:14, 성화의 점진성).

나가는 말

예수를 믿기만 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죄책이 다 사해진다는 소식이야말로 복된 소식 즉 “복음”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 복된 소식이 “방종주의”(과거, 현재, 미래의 죄책이 다 사라졌으므로 죄를 막 짓고 살아도 이미 없어진 죄책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논리), “실용주의”(죽기 전까지 열심히 죄를 짓고 살다가 죽기 직전 예수 한번 믿고 모든 죄책을 사함 받겠다는 논리), “값싼 은혜주의”(복음의 유익을 받아 누릴 줄만 알고 예수를 믿고 섬김에 있어 어떠한 대가도 치룰 마음이 없는 논리)로 발전되어 “다른 복음”(갈 1:9)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죄의 결과는 죄책과 부패요 그것이 곧 사망이다(롬 6:23). 십자가의 은혜로 죄책이 해결되어 영원 사망이 아닌 영생 복락을 얻어 누리는 자라면,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죄의 부패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히 12:4). 칭의의 은혜를 누린 사람이라도 늘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참된 반성과 더불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묵상해야 한다. 우리는 죄책으로서는 의인이라는 땅을 밟고 서 있지만, 부패로서는 여전히 죄인이라는 땅을 밟고 서 있는 역설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1)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박재은, 『성화, 균형 있게 이해하기: 하나님의 주권 대 인간의 역할, 그 사이에서 바라본 성화』(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47-63을 참고하라.

2) Luther, WA, 56:271.

3) Calvin, Institutes, 3.16.1.

편집자 주: 필자 박재은 박사는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칭의, 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 『성화, 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가 있다.

 

박재은 박사 jepark.theopneust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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