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 2017년 6월월

다미선교회는 사기, 하나님의교회는?

1992년 10월 28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던 한 단체가 있었다당시 사회는 시끌벅적했다주요 방송사들은 그들의 광신적인 집회 현장을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24:00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신도들은 말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다미선교회교주 이장림 씨는 자신들이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이 땅에서는 7년 대환난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적그리스도인 유럽공동체의 통합대통령이 등장하고전 세계 50억의 인구가 대환난 기간에 사망한다는 전형적인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을 설파했다.

이장림 씨는 영생을 받아야만 휴거 할 수 있다며 신도들을 미혹했다신도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재산을 처분해 다미선교회에 바쳤다영생의 조건이었다금액은 10억 원이 넘었고외화 26,711달러도 있었다당시 서울지방검찰청은 이장림 씨를 사기 및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구속했다. 1심에서 사기외국환관리법위반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이 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하나님의교회의 시한부 종말론

현재도 다미선교회와 유사한 단체가 존재한다. 1988, 1999, 2012년, 세 차례나 종말을 주장한 하나님의교회다종말을 빌미로 헌금을 유도한 것 역시 다미선교회와 유사하다하나님의교회 탈퇴자들은 종말이 오므로 재물을 땅에 두기보다 하늘에 소망을 두라.”, “하나님께 제일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을 드리는 것이라는 설교를 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하나님의교회는 종말을 이용해 신도들 사이에 공포감을 조성하고하나님의교회가 도피처라고 가르쳤다도피처 건축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신도들이 바친 건축 헌금으로 (종말을 주장한) 2012년에만 서른 곳 가까이에 건물을 세웠다.

이장림씨와 하나님의교회는 종말을 믿었을까?

다미선교회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보면이장림 씨는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나왔으며자신은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확신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이 씨가 1993년 5월 22일에 만기 되는 환매채를 사들인 사실이 들통 났다이 씨가 종말을 믿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동시에 사기죄가 성립되는 주요 요소였다추가로 이 씨 자택의 침대 밑에서 26,711달러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하나님의교회는 종말을 믿었을까몇 가지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첫째하나님의교회는 1999년 9월 1분당 이매동에 건물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공개된 도급계약서에 따르면 준공 일자가 2000년 9월 1일로 명시되어 있다 1999년 종말을 주장하면서 다음 해에 완공되는 건물을 짓고 있었다는 이야기다종말을 믿지 않았다는 증거다.

2012년 종말 불발 이후에는 신도들 입단속에 들어갔다한 탈퇴자는 종말을 주장했던 사실을 비밀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었다고 증언했고종말에 관련한 책자를 숨기기도 했다심지어 자신들은 종말을 주장한 적이 없다며하나님의교회의 시한부 종말론을 비판한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하나님의교회 지도부가 종말을 믿었다면 보일 수 없는 이상행동들이다하나님의교회는 여전히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미선교회 사건은 믿지도 않는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면서신도들에게 헌금을 유도하면 사기라는 판례를 남겨주었다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며 사람들의 삶을 유린하는 사이비 종교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다미선교회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은 “(이 사건은종교를 빙자한 사기이며 국민 간의 신뢰 관계를 뒤흔든 반 신뢰 사범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이 땅에는 종교를 빙자한 사기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저는 제1계명만큼은 잘 지킵니다?

손재익 목사의 십계명 바르게 이해하기(4)


우리의 착각

흔히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다른 계명은 몰라도 제1계명만큼은 잘 지키고 있습니다저는 부처를 믿는 것도 아니고알라를 믿는 것도 아니거든요1계명도 못 지켜서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나요” 대부분의 독자들도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이러한 생각은 십계명을 얼마나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물론 표면적으로 우리들은 제1계명을 잘 지킵니다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진 않습니다집에 불상을 모시지도점집을 드나들지도 않으니 제1계명을 잘 지키고 있긴 합니다.

▲ 손재익 목사

1계명이 말하는 다른 신의 넓은 의미

하지만 제1계명은 단순한 계명이 아닙니다훨씬 더 넓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1계명이 말씀하는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이란 기본적으로 바알아스다롯아세라부처(Buddha)알라(Allah) 등과 같은 다른 신을 말하지만꼭 인격을 가진 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빌립보서 3장 19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라고 말씀하는데여기 는 우리의 복부(腹部)를 의미합니다영어로 stomach입니다비유적으로 말해 먹는 것도 다른 신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하나님보다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그것이 곧 제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하박국 1장 11절을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이 말씀에 의하면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믿는 것도 제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이 외에도 성경에서는 재물(욥 31:24; 마 6:24), 탐심(눅 12:16-21; 골 3:5), 쾌락(딤후 3:4)도 다른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보다를 넘어 나란히

이렇게 말씀드리면저는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한 적은 없습니다먹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그래서 한 가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을 보면 나 외에는으로 번역된 말이 나오는데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엘 파나이로서직역하면 내 앞에”(before me)라는 뜻입니다그래서 개역개정성경의 난외주에는 내 앞에라고 되어 있고, NIV는 출애굽기 20장 3절을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내 앞에라는 말은 하나님과 나란히하나님 곁에라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그래서 NIV의 난외주는 “before”라는 말이 “besides”, 즉 곁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된다는 말이면서 또한 하나님과 동시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다시 말하면, “나 외에라는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과 병행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포함합니다하나님을 안 믿고 다른 신을 믿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과 동시에 하나님과 동등한 수준으로 어떤 존재에 대해 의지하면 제1계명을 어기게 됩니다(cf. 사 40:25).

 

나 외에라는 말이 하나님과 나란히라는 뜻이 있다는 사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5문답도 분명히 가르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5우상 숭배란 무엇입니까?

우상 숭배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대신in place of,14) 혹은 하나님과 나란히alongside of다른 어떤 것을 신뢰하거나 고안하여 소유하는 것입니다.15)

14) 요 5:23; 엡 2:12; 요일 2:23; 요이 9 15) 대상 16:26; 사 44:15-17; 마 6:24갈 4:8; 엡 5:5; 빌 3:19

또한 마태복음 6장 24절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며 제1계명에 이러한 의미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하는 제1계명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거나 하나님과 나란히 두는 것은 제1계명이 금하는 다른 신입니다바알이나 아스다롯과 같은 신들이 다른 신이 될 수도 있고자연현상을 지배하는 해와 달도 다른 신이 될 수 있으며나무나 동물 같은 토템(totem)도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샤머니즘이나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나라에서의 조상숭배도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사람의 힘도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합 1:11). 자기 자신도 신이 될 수 있습니다학생들에게는 학업(공부), 이성교제외모연예인 등이부모에게는 자녀자녀의 학업 등이성인에게는 명예권력돈 등이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어기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제1계명을 잘 어기고 있다는 사실은 제1계명의 긍정명령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십계명은 그 형태가 “~을 하지 말라는 부정명령을 기본으로 합니다그러다보니 각 계명을 어기지만 않으면 잘 지킨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을 하지 말라는 이면에는 “~을 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즉 부정명령은 긍정명령을 포함합니다그렇기에 제1계명의 경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섬기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만 않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하나님을 힘써 섬겨야 합니다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하나님을 묵상하고 존경하고 흠모해야 합니다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마태복음 22장 3738절에서 예수님께서 “(37)….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1계명을 과신하지 말자

우리는 제1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제1계명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없습니다우리 모두 날마다 제1계명을 어기는 자들입니다. “저는 다른 계명을 몰라도 제1계명만큼은 잘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그런데 제1계명만 아닙니다앞으로 다루게 될 모든 계명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우리는 날마다 범죄 하는 자들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편집자 주필자 손재익 목사는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를 담임하고 있다저서로 『십계명언약의 10가지 말씀』(디다스코)이 있다.

 

손재익 목사 bareunmedia@gmail.com

교회사 속 이단(1) 영지주의

편집자 주수많은 이단이 역사 속에서 발흥과 쇠퇴를 반복했다오늘날 교회는 교회사 속 이단을 살펴봄으로정통신학이 정립된 과정을 배우는 동시에 잘못된 신학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영지주의(Gnosticism) 초기 기독교가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이단 사상으로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했다서요한 교수는 “(영지주의는보통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지식즉 신과의 신비적 교제의 욕망과 또한 사후 하늘에서 영혼의 안전을 찾는 소망을 추구하였다”1)고 설명한다.

불확실한 기원과 제한된 자료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왔다첫째역사적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다목창균 교수는 영지주의자들이 그들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고그들 사상의 기원이나 형성 과정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데서”2) 영지주의의 불확실한 기원 문제가 비롯된다고 지적한다목 교수는 영지주의의 기원에 대해 ▲동양 종교 유래설 ▲헬라 사상 유래설 ▲유대교 유래설 ▲기독교 내부 유래설 ▲고대종교 및 사상의 혼합설 등을 소개하면서 특정 견해에서 기원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어여러 요인의 혼합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전한다.3)

둘째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단편적인 자료들에 의존해왔다교부들그중에서도 이레니우스가 발렌티누스바실리데스 등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들을 비판한 『이단 논박』(혹은 반박외에 이들을 상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다저스틴 홀콤은 이레나이우스(편집자 주이레니우스)와 그 제자들이 영지주의에 확실히 적대적이었기 때문에영지주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레나이우스와 그의 제자들이 영지주의를 공정하게 알려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4)라고 지적한다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1945나지(혹은 나그)함마디 문서5)의 발견으로 전환점을 맞는다이 문서를 통해 이레니우스의 주장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영지주의에 대한 새로운 내용도 알려지게 되었다.

다양한 분파

영지주의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중심이 된 운동이 아니다다양한 교리주장 등이 산재된 채로 형성되어 한마디로 정의조차 어려운 집단이다김영재 교수는 영지주의는 여러 우주의 신화그리스도와 동방의 이교적 철학 사상기독교 교리 등을 혼합한 사상으로하나의 체계이기보다는 사상적인 운동으로서 기독교 내에 있었던 이단 사상의 하나였다”6)라고 밝힌다목창균 교수 역시 “2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영지주의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다양한 분파로 구성되었으며수많은 영지파 교사들을 배출했다”7)라고 전한다저스틴 홀콤은 이레나이우스는 『이단 반박』에서 발렌티누스파오피스파셋파가인파바실리데스파 등 다양한 영지주의 학파를 설명하고 논박한다라며 영지주의는 많은 학파가 있었고 신념 체계도 넓었다고 설명한다.8)

교리

영지주의의 특성상 이들의 견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하지만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첫째이원론과 지식으로 이루는 구원이다이원론을 간단히 설명하면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사상이다영지주의자들이 물질세계를 악하다고 규정하는 이유는이 세계의 창조주가 열등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영지주의자들은 유일신론을 견지하지 않는다이들은 참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고참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 열등한 존재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다그 열등한 존재는 데미우르고스소피아 등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견해를 달리한다.

홀콤은 영지주의의 분파인 셋파오피스파바르벨로파의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설명한다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초월적인 신이 침묵하는 상태로 존재하고아래로 내려올수록 열등한 신들이 나타난다가장 아래에 아르콘이 존재하는데아르콘은 인간보다 능력과 선함이 떨어지지만환영을 이용해 공포감을 조성함으로 인간을 지배한다셋파오피스파바르벨로파는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르콘의 하나로 간주한다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한 이유는 인간이 지식을 얻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9)

영지주의자들에게 구원은 불완전한 존재가 만들어 놓은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탈출은 은밀한 지식을 통해 이루어진다세계와 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소유해야만 영이 해방될 수 있다구원을 위한 지식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이 지식은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고그들에게서 전수된다고 믿는다라은성 교수는 “(영지주의는세상이나 물질세계를 악하다고 규정해 놓고세상의 기원이나 참된 본질에 대한 신비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이와 같은 복잡한 지식즉 영지를 알게 되고 악한 육체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금욕을 일삼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10)라고 그들의 구원관을 설명했다.

둘째삼위일체와 성육신을 부정한다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또한 악한 육체 안에 갇힌 존재가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성육신을 부정한다이는 자연스레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셋째선악과 문제를 재해석한다영지주의자들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한다뱀이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 (위에서 언급한아르콘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영지를 주려고 했다고 주장한다마이클 호튼은 구약에 표현된 창조의 하나님(여호와)은 신적인 영혼을 몸 안에 가두어 둔 악한 신이 되는 반면 에덴동산의 뱀은 내적인 깨달음을 통해 아담과 하와를 해방시키려 했다”11)라고 영지주의자들의 세계관을 설명했다.

교회의 반응

저스틴 홀콤은 영지주의자의 엘리트 사상은 구약 성경을 분노전쟁복수의 이야기라고 묵살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안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영지주의자가 되는 것은 도시적으로 세련되고 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지적인 구심점이 없었던 평범한 기독교인들에게 큰 유혹이 됐다”12)라고 지적한다.

이에 맞서 교부들 그중에서도 이레니우스가 최전방에서 교회를 보호했다알리스터 맥그라스에 따르면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누스와 그 진영에 대응해 구원의 경륜을 주장하고창조주 하나님과 더불어 당시 형성 중이던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13)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이레니우스의 반응이 초기 기독교 사상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이룬 것으로 인정 받는다”14)고 평가했다.

 

1) 서요한『초대교회사』(그리심, 2010), 307.

2) 목창균『이단 논쟁』(두란노, 2016), 69.

3) 같은 책, 7072.

4) 저스틴 홀콤『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49.

5) A.D. 34세기 경에 콥트어로 필사된 문서로 대부분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현재 이집트에 보관중이다.

6) 김영재『기독교 교회사』(이레서원, 2000), 95.

7) 목창균『이단 논쟁』(두란노, 2016), 74.

8) 저스틴 홀콤『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48.

9) 같은 책 5152.

10) 라은성『이것이 교회사다』(PTL, 2012), 360.

11) 마이클 호튼『개혁주의 조직신학』(이용중 옮김부흥과개혁사, 2012), 42.

12) 저스틴 홀콤『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56.

13) 알리스터 맥그라스『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포이에마, 2011), 186.

14) 같은 책, 187.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발행인 칼럼〕가족이 이단 사이비에 빠졌다면?

가족이 이단 사이비에 빠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전화를 오늘도 여전히 받았다기자에겐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익숙한 순간이지만수화기 넘어있는 타자에겐 절박한 상황이다.

기본적인 질문부터 한다. “어느 단체에 빠졌는지 알고 있는가?”, “(빠진 지)얼마나 되었는가”, “(빠진 당사자가가족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어떤 단체에 빠졌는지부터 알아야 한다신천지하나님의교회, JMS, 통일교 등등 한국에는 수많은 이단 사이비가 존재한다나름의 특징이 있어 대처법 또한 조금씩 다르다군소 이단 사이비 혹은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곳이라면 더는 안내가 어렵다그럴 땐 정말 답답하다.

가족 구성원의 초동대처는 회심과 직결된다안타깝고 화가 날 테지만다그치면 안 된다신체적 접촉은 절대 금물이다사이비에 빠진 순간가족에 대한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가 형성된다포교대상 혹은 단절대상종교 활동을 방해하면 대적자일 뿐이다내가 알던 착한순한여린 내 자녀내 배우자가 아니다이 때문에 다그침 혹은 작은 신체적 접촉은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킨다.

먼저 전문 상담소를 찾아야 한다다시 말하지만 전문상담소다최근 이단 피해자들을 도구(돈벌이 혹은 야망 성취)로 보는 뜨내기 상담소가 있는 것으로 안다반대로 열정은 있지만 준비가 덜 된 채 어설프게 행동했다가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는 이차삼차 피해가 일어난다혹 누군가를 소개받았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야 한다애초에 공신력 있는 기관에 문의하는 게 가장 좋다상담소에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안내에 따라야 한다.

어설픈 교리 논쟁 역시 금물이다교리적 세뇌와 더불어 개신교 교리를 반박하는 소위 반증 교리를 배운 상태일 경우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다. 14만 4천이 12×12×1000 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신천지에 빠진 게 아니다성경을 보는 눈이 바뀌어 있으므로정통교리를 들이민다고 회심할 이들이 아니다저들의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교리적 논쟁은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오히려 질문이 효과적이다생각할 겨를 없이 교리를 주입 당했을 뿐이다빈틈을 찾아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인 싸움을 염두에 둬야 한다상담 한 번 혹은 대화 한 번으로 회심하면 좋겠지만가족 간의 대치가 장기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애초에 이단 대처가 교리 비판과 더불어 법률적 대처심리 상담 등 다방면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그에 걸맞은 지식과 지혜를 쌓아야 한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국가관(1)

양심의 자유와 복종


한국사회와 교회는 2016년에 탄핵정국을 맞이하여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심각한 혼란을 맞이하였다특히 촛불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을 정의와 도덕에 침묵한 악한 성도들이라고 비판하며반대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을 종북좌파 빨갱이적그리스도라고 비판하고 있다또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교리적 신념을 혼합하여 이 분열에 기름을 붓고 양 진영으로 나뉘어 미움과 비난을 가중시켰다.

 

▲ 신원균 박사

이 혼란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성경적으로 정립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국가관에 대한 무지와 곡해에서 발생한 것이다기독교 역사에서 잘못된 국가관은 대략 3가지로 나타났다첫째는 로마 가톨릭처럼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오류이며둘째는 영국 성공회처럼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오류였고셋째는 재세례파나 영지주의처럼 국가의 모든 일을 세속적으로 취급하여 회피하는 이원론주의였다.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관계를 두 왕국론’, ‘정교분리의 원칙이란 개념과 영역주권이라는 개념으로 확립해 왔다이 의미는 대신교단선언문(1974)에 우리는 교회의 자율적 원칙에 의하여 교회정치를 행하며 국가에 대하여는 영역주권적 정교분리(領域主權的 政敎分離)의 원칙에 입각한 보족적 관계를 주장한다.”라고 고백되기도 했다교회와 국가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한 하나님의 통치 수단이기 때문에 각각은 언약적 책임이 서로 방해 받지 않도록 서로 협조 및 견제하는 관계를 갖는다즉 신앙적 자유나 국가적 자유가 서로를 침해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상호 구별된 협력적 의무를 강조하여 각각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도 서로 돕는 국가관을 지켜왔다본 글에서는 이와 같은 개혁교회의 국가관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교회와 국가의 정교분리원칙

 

1.1. 국가 위정자의 총회 소집권을 인정한 1647년 초판의 국가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로마서13장 4절에 기초하여 국가의 위정자를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보호자요교회를 돕는 자요언약의 집행자요 하나님의 사자로 고백한다.1) 이 고백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정교분리의 원칙과 상호협조와 협력의 의미를 포함하는 고백이다본 고백은 국가 위정자의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를 좀 더 세밀히 구별하여 정교분리의 체계성을 높였다즉 말씀과 성례와 총회 소집권은 교회 직원들의 권한으로그리고 시민질서와 교회의 보호는 국가 위정자의 권한으로 구분하였다이것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각각 하나님이 주신 언약적 사명을 실천해야 하는 협력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2000년 교회역사를 통해서 가장 많은 논쟁과 혼란을 겪은 신학적 주제이다중세 로마가톨릭처럼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거나 다스렸을 때 교회는 급속히 세속화 되었다반대로 영국 성공회나 근대 유럽의 교회들이나 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교회처럼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거나 다스릴 때 교회는 신앙의 본질을 잃고 국가의 부속기관으로 전락해 버렸다이런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 칼빈(J. Calvin)이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저항권’2)을 처음 소개한 후 제네바에서 시의회로부터 교회 치리권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교회와 국가의 통치권을 분리한 정교분리원칙은 모든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들의 국가관으로 자리 잡았다

  

칼빈의 저항권을 그대로 수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교회와 국가의 정교분리원칙을 더욱 세밀하게 발전시켰다그러나 신조의 국가관은 1647년 초판과 1729년 미국 수정판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이 차이점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이 개념을 각 나라에 적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좀 더 구체화시키고 체계화 시키는 발전의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1647년 초판은 총회 소집권과 교회 치리권을 국가 위정자에 위임하는 내용을 고백한다.3) 이 부분에 대해서 국가 위정자가 교회의 치리권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므로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가 불분명한 면이 있다고 지적하는 신학자들도 있다.4) 하지만 신조의 표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에라스티언파의 주장처럼 통치권의 힘이 국가에 전폭적으로 위임된 형태가 아니라신조는 국가의 종교적 의무와 책임을 더 강화시키고자 총회 소집권을 국가에 위임시켰던 것이다즉 본 신조에서 말하는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천해 가는 두 개의 수단이기 때문에 서로 협력적이면서도 언약적 책임을 각각 나눠진 정교분리의 형태로 체계화되었다.5)

 

교회와 국가의 정교분리원칙에 대한 가장 중요한 표현은 30장 교회권징’ 1항에서 교회의 왕이자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국가 공직자와는 구별하여 교회 직원들의 손에 정치를 제정해 주셨다.”6)라는 고백에 잘 나타난다또한 23장 국가 위정자’ 3항에서는 국가의 공직자들은 말씀과 성례의 집례나 천국열쇠의 권세를 자기들의 것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7)라고 보충하여 이 구별성을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그리고 23장 1에서는 온 세상의 최고의 주()요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위정자들을 세우셔서 자기 아래 두시고 자기 자신의 영광과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다.”8)라고 고백하여 시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 위정자의 언약적 책임을 더 세밀하게 구별시켰다국가 위정자가 교회의 통치권에 함부로 간섭하거나 침해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분리시킨 이 고백은 초판이나 수정판 모두 동일하게 채택하여 신조의 정교분리원칙을 확고히 했다.

 

이 항목에서 말씀과 성례의 의무는 하나님께서 교회에만 허락하신 교회 직원의 고유한 역할이기 때문에 국가는 무력이나 권세로 간섭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이것은 사람들의 편의를 따라서 나눈 것도 아니며또한 실용적인 목적에서 구분한 것도 아니라하나님께서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위해서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분리한 신적명령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것은 교회직원들의 책임에 해당되는 교회의 치리권과 총회소집 권한에 대한 부분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초판(1647)은 국가 위정자가 이 두 부분을 관여 할 수 있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초판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래와 같은 제20장 423장 3항과 제31장 2항이다.9)

20장 4교회 안에 세우신 외적 평화와 질서를 파괴하는 그릇된 의견과 행위를 한다면그런 자들은 교회의 권징과 국가의 권세에 의해 문책을 받거나고소를 받도록 합법적으로 소환을 받을 수 있다.

 

23장 3국가의 공직자들은 말씀과 성례의 집례나 천국열쇠의 권세를 자기들의 것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그러나 그들은 권위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일치와 평화를 보존해야 하며하나님의 진리가 순수하고 완전하게 지켜지도록 하고모든 신성모독적인 일과 이단들을 제압하고, 예배와 권징에 있어서 모든 부패와 남용을 막거나 개혁하며하나님의 모든 규례들이 적절히 제정되고 집례 되고 준수되도록 조치할 의무들을 가진다이러한 의무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공직자는 교회 회의를 소집할 권세와또한 거기에 참석할 권세와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에 의해 처리되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하도록 제공할 권세를 가진다.

31장 2국가 공직자는 종교적 일들에 관하여 의논 혹은 조언을 듣기 위해 목사들과 기타 적합한 인물들의 총회를 합법적으로 소집할 수 있다그러나 국가 공직자가 교회에 대해 공적인 적대행위를 할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교역자들이 그 직무상의 효력에 따라 그들 스스로와 또는 그들의 교회로부터 위임받은 적합한 대표들과 함께 별도로 모여 회의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국가 위정자는 이단방지 및 예배개혁과 권징을 위해서 종교회의를 소집하고 또한 총회와 협의회를 소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교회 직원들과 함께 치리회를 조직하여 교회의 치리권인 권징의 행위도 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10) 이것은 언약의 집행자요 하나님의 사자라는 국가 위정자의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를 적극적으로 확대한 고백이었다.

 

국가의 신앙적 의무와 책임에 대한 확대에 대해서 많은 신학자들은 이 내용이 에라스티언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하여 비판적 평가를 제시하였다이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언급하는 정교분리의 원칙은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국가의 신앙적 의무와 책임을 좀 더 축소시키는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하지만 신조의 이 표현은 에라스티언파의 영향을 받은 고백이 아니라 장로교파의 신학적 입장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 표현으로 평가해야 한다.

 

국가가 교회를 보호하고 이단을 막아야 하는 신앙적 책임과 의무의 성격은 칼빈이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 하리라(49:23)”11)는 말씀에 기초하여 주석한 내용에 기초한다그는 왕과 왕비들은 교회의 유모요 보호자라고 제시하여 국가의 존재와 사명을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적극적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소개하였는데이후로 이 개념은 개혁교회의 중요한 국가관으로 자리 잡았다대표적으로 스코틀랜드 신조 제24장 국가 공직에 관하여라는 항목에서도 국가의 신앙적 책임을 다음과 같이 적극적 확대하고 있다

재판관과 왕후는 선한 사람들을 칭송하며 보답하고 악인의 처벌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검을 받았다또 왕후군주관리는 우선 근본적으로 종교의 보존과 정화를 위한 임무를 가진 것으로 우리는 확신한다. 그것은 시민적 질서를 위할 뿐더러 참된 종교의 유지와 우상과 미신의 박멸을 위하여 정해진 것이다. 다윗여호사밧히스기야요시아 및 그 밖의 왕 등이 신앙의 정화를 위하여 주의를 집중시켰고 특별한 칭찬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12)

위 신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종교개혁자들이 이해한 정교분리의 국가관은 시민질서만 책임지는 소극적 형태가 아니라 교회를 보호하고 이단과 우상을 막아 적극적으로 국가의 신앙적 책임을 다하는 개념이었다특히 제스위스 신조는 국가의 권징적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30장 국가의 공직에 관하여라는 항목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더 강하게 표현하였다.

공직자는 모든 행악자들치안 방해자들도적들살인자들억압하는 자들신성모독자들거짓말쟁이 및 하나님께서 형벌하고 처형하라고 명령하신 모든 사람을 향하여 칼을 뽑아야 한다공직자는 고집 센 이단자들즉 하나님의 존엄을 쉼 없이 모독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심지어는 파괴하는 이단자들을 진압해야 한다. 13)

이 외에도 웨스터민스터 신조 제31장 총회”(Of Synods and Councils) 부분에서는 교회와 국가의 구별성과 협력성을 논리적으로 아래와 같이 구분해 주었다. “노회와 총회들은 교회에 관한 것 이외의 것을 다루어서는 안 되고국가와 관련이 있는 사회 문제를 간섭해서도 안 된다다만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 겸허하게 청원하는 형식을 취하거나 또는 위정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 양심껏 충고하는 방식을 취할 수가 있다.”14)

 

위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확립한 정교분리원칙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고립적 형태로 단순히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위한 각각의 사명과 책임을 구별해 주고또한 각 영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서로 협력 및 협조하는 방식의 상호 조화적 분리개념이다.

 

정교분리의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심한 논쟁을 한 분파는 교회를 국가의 통치 아래 두고자 했던 에라스티언파들이다영국은 왕이 국가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수장령을 중심으로 왕의 권한을 절대시 하는 나라이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연적으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두 항목이 왕의 책임과 권위의 범위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이 국가주의를 배격하고 각각의 독립성을 강조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대표단이었다대표적 인물들로는 사무엘 러더포드와 스티븐 마샬죠지 길레스피 등이다특히 러더포드는 에라스티언파와의 논쟁을 통하여 두 항목에 대한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를 오직 교회직원들에게만 두고자 했다특히 그는 법이 왕이다”(Lex Rex)15)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왕조차도 무조건적인 권한을 가진 것이 아니라 법률에 기초하여 통치할 것을 강조하여 종교분리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다.

 

초판을 작성할 때 에라스티언파도 참석하여 국가의 권위를 더 높이려고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장로파의 입장을 따라 국가 위정자의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가 적극적으로 확대된 형태의 정교분리원칙을 확립하였다비록 1647년 초판에서 국가의 권위가 교회보다 더 높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이 표현들은 제202325장에서 이미 두 영역을 구별하며 국가의 교회 간섭에 대해 철저히 제한시키는 것을 고려해서 살펴야 한다.

 

이런 논쟁의 과정을 거쳐서 교회와 국가는 반드시 독립해서 각자의 언약적 책임의 역할과 범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정교분리원칙이 개혁교회의 국가관으로 체계화되었다본 신조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국가의 언약적 책임의 협력성과 구별성을 동시적으로 강조하였다왜냐하면 국가는 왕과 관원들을 중심으로 다스려져가며교회는 장로들을 통해서 다스려져 가도록 구별한 독립성은 사람의 편리에 따라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었다

 

특히 A. 카이퍼(A. Kuyper)의 영역주권은 이 개념을 가장 훌륭하게 정립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그는 「칼빈주의 강연」(Lectures on Cavinism)에서 삼중적으로 연역된 지배권을 제시했는데첫째는 국가에 나타나는 주권둘째 사회에 나타나는 주권셋째는 교회에 나타나는 주권이다.16)

 

영역주권의 개념은 바빙크(H. Bavinck)를 통해서 더 체계화되었다그는 「일반은총」(Common Grace)을 출판하여 교회와 국가의 상호 협력적 관계를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조화 속에서 새롭게 정립하였다.17) 바빙크는 로마 가톨릭과 재세례파 등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극단적 이원론 형태로 분리시킨 점을 비판하는 동시에 일반은총의 역할을 제시하면서 교회와 국가의 언약적 책임자로서 통합적 협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이와 같은 개혁교회의 정교분리원칙에 대한 국가관의 발전을 생각해 본다면 곤잘레스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17세기의 칼빈주의를 많이 반영한 것처럼 칼빈의 신학을 지나치게 도식화해서 원래적인 정신을 상당히 많이 상실하기에 이르렀다”18)라는 주장은 칼빈과 후기 칼빈주의의 국가관을 곡해한 잘못된 비판이다.

 

이상과 같이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국가관은 로마 가톨릭처럼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방식도 아니며성공회처럼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방식도 아니고재세례파처럼 교회와 국가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회피주의적 분리도 아니고루터파처럼 설교와 성례만 교회가 가지고 교회권징과 치리권을 국가 위정자에게 완전히 넘긴 절충주의적 분리도 아니다오히려 본 신조는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통치 수단으로써 각각의 사명과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며 보충하는 정교분리의 국가관을 성경적 국가관으로 정립하였다(계속).

 

1) John Calvin, Calvin’s New Testament Commentaries, vol. 8, ed. D. W. Torrance, T. F. Torrance (Grand Rapids: Eerdmans, 1960-1972), 280-81.

2) Ioannis Calvini,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eds. Guilielmus Baum, Eduardus Cunitz, Eduardus Reuss, 1 vol. (Brunswick: C. A. Schwetschke, 1863-1900), 1092. 이하 CO, Institutio 1536로 한다.

3) William Maxwell Hetheringto, History of the Westminster Assembly of Divines (The True Peace, 1993), 232-40.

4)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964), 244-55.

5) 김길성,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서약”, 「신학지남」 (1993년 가을호): 147-50.

6) The Confession of Faith, (London, 1658), 101.

7) The Confession of Faith, 80. cf.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Co., 1998), 653.

8) The Confession of Faith, 78.

9)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653, 668-70, 920-21; cf.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Pennsylvania: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2), 297, 373-77; Gordon H. Clark, What do Presbyterians Believe?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965), 256-60. 두 항목은 형식의 차이성을 주의해야 한다20장 4항과 제23장 3항은 항목이 동일하지만 제31장은 초판에서 제1-5장으로 구성했고바로 2항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수정판은 1-4항으로 변경했고여기서는 초판의 1-2항을 1항으로 합쳐서 수정 번역하였다특히 핫지와 클락은 수정판을 중심으로 강해했고윌리암슨은 초판을 택하여 강해했다. 1903년 판의 모든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2개 보충(3장 예정론10장 3항 유아구원), 3개 수정(16장 7항 불신자 선행22장 3항 맹세25장 6항 교회의 머리), 2개 추가(34장 성령35장 선교).

 10)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244-46.

11) John Calvin, Calvin’s Old Testament Commentaries, vol. 28, ed. William Pringle (Grand Rapids: Eerdmans, 1960-1972), 39-40.

12)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475.

13) 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305.

14) The Confession of Faith, 104. cf.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377-78.

15) Samuel Rutherford, Lex, Rex, or The Law and The Prince (London, 1644), 1-3.

16)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Grand Rapids: Eerdmans Pub. Co., 1931), 79.

17) Herman Bavinck, Common Grace ⌜일반은총⌟차영배 역 (서울총신대학출판부1993), 57-79; cf. C. Van Til, The Defense of the Faith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980), 151-78.

18) Justo L.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3, 이형기⋅차종형 역 ⌜기독교사상사」 (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390.

편집자 주필자 신원균 박사는 한마음교회를 담임하고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책임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저서로는 『청소년조직신학입문』(리폼드북스), 『개혁교회 신앙고백서 해설집』(리폼드북스등이 있다.

신원균 박사 bareun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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