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적 문제 간과하면 안 돼
대한민국 국방부와 병무청은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입영 및 집총 거부자’로 통칭해 왔다. 병역법 88조(입영의 기피 등)는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도 예비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제각각 하급심, 일관된 대법원
문제는 법령해석이다. 2004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입영 거부자에 대한 첫 무죄 선고가 내려진 이후 1심에서 간헐적으로 무죄가 선고되어왔다. 지난 2년간 전국에서 약 20건의 무죄 판결이 이어졌고, 지난해 10월 18일에는 항소심 최초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개인의 양심과 종교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고 처벌로 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무죄 판결의 배경이었다.
대법원은 하급심과 상관없이 유죄 판결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과 2011년, 병역법 88조에 대한 위헌 결정 신청에서 각각 ‘합헌’ 결정을 내렸다.
상반된 사회적 요구
사회적 요구 역시 상반된다. 신속하게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편에선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사례를 들고, UN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라고 대한민국에 권고했던 안을 제시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입영 거부로 약 2만 명이 수감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찬성 측은 지속해서 전과자를 만들 수 없다고 호소한다.
반대 측은 우리나라가 전쟁의 위협이 여전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내세운다. 또한, 제도의 악용도 우려한다.
입영 거부의 대다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입영 거부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물론 모든 입영 거부자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아니지만, 대다수임은 부인할 수 없다. 병무청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500명 내외가 입영 및 집총을 거부하고 그중 다수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여호와의 증인 외에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입영 및 집총 거부와 더불어 꾸준히 언급되어왔다. 메노나이트(편집자 주: 네덜란드 출신 메노 시몬스에 의해 시작된 재세례파의 한 교파) 역시 입영을 거부한다.
국가체제는 사탄, 병역 이행하면 제명·출교
한 종교단체 신도들의 집단적 행위의 내면에는 반드시 ‘교리’가 자리 잡는다. 종교단체에서 교리는 신도들의 신념이고, 경우에 따라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입영 거부 문제는 종교적 이해를 가미해 풀어야 한다. 이들의 국가관은 이 문제에 접근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양심’ 때문에만 병역을 거부할까? 여호와의 증인은 병역을 거부하고 투표와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평화, 정치적 중립, 우상숭배라는 각각의 이유를 들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통치자가 사탄이라고 믿는다. 병역이나 투표는 사탄의 정부를 위해 일하는 꼴이 된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선출직 공무원으로 일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여호와의 증인 탈퇴자는 과거 「교회와 신앙」과의 인터뷰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입영 거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적 결단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국가, 정부 조직이 사탄의 권세에 속했다는 교리 학습의 결과다. 사탄의 권세에 속한 국가를 위해 집총을 했을 경우 영생을 얻을 수 없다고 배우기 때문에 구원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병역을 거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탈퇴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병역을 이행하면 제명·출교를 당한다. 신도들은 종교적인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양심적 자발성이 있기도 하나,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영 거부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언젠가는 제도가 마련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그 중심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입영 거부를 평화를 사랑하는 ‘양심에 따른 행동’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의 입영 거부는 ‘종교적’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