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 박사이자 오랜 기간 ‘중독’을 주제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쳐온 앤 윌슨 섀프는 자신의 저서 『중독 사회』를 “현대 사회는 놀라운 속도로 퇴화를 거듭하는 중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인간은 부정부패, 금융위기, 도덕성 결핍, 오염, 전쟁의 위협 등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당면한 문제들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진단한다.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중 한 가지가 흔히들 알고 있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다. 코끼리는 귀만 있는 것도 코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마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코끼리가 태어나서 살고 죽는 과정을 보며 코끼리를 파악해야 코끼리를 온전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문제 전체를 총체적으로 고려해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이단 사이비 대처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저자의 이야기를 이단 사이비 문제에 대입하는 건, 기자의 직업병이라 어쩔 수 없다.). 분명 이단 사이비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다. 탈퇴자도 많아졌고, 법적인 싸움도 많이 이겨 좋은 판례들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단 사이비 대처는 암울하다.
첫 번째 이유는 (당사자 혹은 가족 외에) 이단 사이비의 가장 큰 피해자인 교회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데 있다. 신천지 출입금지 스티커 하나 붙이고, 일 년에 이단 사이비 세미나 한두 번 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안이한 생각은 언제쯤 사라질까? 물론 매번 “이단, 이단”, “사이비, 사이비” 할 순 없다.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기우다. 소름 끼칠 정도로 한국교회는 이단 사이비에 무관심하다. 이단에 관심이 없으니 대처 방안에 관심이 없고, 피해자들이나 이단 대처 사역자들에 대한 관심도 없다. 하나님의교회를 코너로 몰고 간 주체가 하나님의교회에 아내들을 빼앗긴 소수의 남편들(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 하피모)이라는 사실에 교회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들이 150여 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하나님의교회의 치부를 드러냈지만, 정작 교회는 그들을 얼마나 도왔나. 아니 그들의 존재를 알기나 할까.
두 번째 이유는 이단 대처가 교리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교리비판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단 사이비의 핵심 교리를 논박하고 정통 교리로 새롭게 교육하는 과정은 이단 사이비 단체에서의 탈퇴는 물론 건강한 삶과 신앙인으로서의 정착을 위해 더없이 중요하다. 문제는 교리비판에만 집중했을 때 발생한다. 이단 사이비에 대한 편파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혹은 일부 교리를 비판할 줄 안다고 해서 이단 사이비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딱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교리적인 잣대로만 이단 사이비를 대처하는 이들은 적어도 기자의 관점에서 교리 전문가지 이단 사이비 전문가는 아니다. 이단 사이비는 중독과 세뇌의 관점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 있다. 왜곡된 정서를 바로 잡는 심리 상담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몇 년 전, 한 단체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다 절도죄로 구속된 청년을 면회한 적이 있다. 감옥에 들어오니 현실을 파악했단다. 절도범으로 낙인찍힌 그는 출소 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한 20대에 이단 사이비 단체에 들어가 30대에 탈퇴한 청년이 많을 테다.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위해 치열하게 보내야 할 10년을 낭비한 수많은 청년. 우리는 그들을 낙오자로만 치부해야 하는 걸까. 이들의 회복을 위하는 일 역시 이단 사이비 문제의 일환이라는 공감대는 언제쯤 확산될까.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