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성범죄 과정, 사이비 종교 포교 과정과 유사
그루밍(grooming)은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사용되거나 혹은 사회상을 반영한 신조어였다.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 깨끗하게 만든다는 데서 유래한 단어로 동물의 털을 손질하거나, 단장할 때 사용해왔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외모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지칭하는 그루밍족이라는 말도 탄생했다. 이 단어가 최근에는 성범죄 관련 용어로 익숙해졌다. 포털사이트에 그루밍을 검색하면 성범죄 관련 기사나 글이 압도적으로 많이 노출된다.
그루밍 성범죄란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깊은 신뢰 관계를 얻어 심리적으로 종속관계를 만든 다음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피해 계층은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클수록 그루밍 성범죄에 취약하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겉만 보면 합의에 의한 관계로 비치기도 해 처벌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루밍 성범죄의 6단계, 사이비 종교 포교 과정과 유사
미국의 법정신의학박사인 마이클 웰너는 그루밍 성범죄가 이뤄지는 6단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대상자 고르기
2) 신뢰 얻기
3) 욕구 충족
4) 고립시키기
5) 성적 관계
6) 회유 및 협박으로 통제
가해자는 대상자부터 찾는다. 마구잡이로 고르지 않는다. 기간을 두고 대상자의 정보를 파악한다. 취약점이 명확하게 눈에 띌수록 좋다. 이후 대상자에게 접근해 욕구와 결핍을 충족시켜주며 신뢰 관계를 맺는다. 가해자는 대상자와 둘만 있거나 특별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상황을 자주 연출해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고립시킨다.
대상자가 가해자를 신뢰하고 깊이 의존하면 서서히 신체 접촉이 시작된다. 잦은 신체 접촉은 결국 성관계로 이어진다. 가해자는 이 모든 과정을 피해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마치 둘 사이가 연인 관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상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했을 때, 가해자는 “주변에 알리겠다”라고 협박하거나, 회유를 통해 통제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루밍 성범죄 과정은 사이비 종교의 포교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단순한 순서만이 아닌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지점까지 닮아있다.
대상자 고르기
포교 대상자의 등급을 나누는 일은 사이비 종교 신도들의 포교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도들은 포교 대상자를 A, B, C 등급으로 나눠 포교가 잘 될 것 같은 사람과 잘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구분한다.
포교가 용이한 사람은 누구일까? 미국의 공신력 있는 기독교 상담기관인 New Life Clinics의 설립자 스티븐 아터번은 잭 펠톤과 함께 저술한 『해로운 신앙』에서 해로운 신앙에 빠지기 취약한 자들이 가지는 공통점을 언급한 바 있다.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 실망 경험이 있는 자, 자존감이 낮은 자, 학대 피해자 등이 대표적이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 모두가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는 뜻은 아니지만 주된 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해로운 신앙』에 따르면 엄한 부모 밑에서 자라거나 혹은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 자녀는 성인이 되면 자신의 부모와 유사한 성향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끌리거나 독재적 성향을 가진 교주에게 쉽게 굴복하는 심리 상태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발생한 실망 경험은 또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두려움과 낮은 자존감을 가진 자들에게 끈끈한 소속감을 제공하며 다가오는 사이비 종교 신도들은 상당히 매력적인 존재다.
▲사이비 종교 포교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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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 충족을 통한 신뢰 얻기
신도는 포교 대상자의 필요를 채워주며 신뢰 관계를 쌓는다. 가족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받아야 할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비 종교 신도의 접근에 쉽게 미혹된다. 관계는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좋은 말이 아닌 좋은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이비 종교의 교리를 처음부터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깊은 신뢰 관계를 가진 사람이 제시하는 성경 공부 혹은 그에 준하는 모임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교리를 전하는 사람이 나에게 매우 좋은 사람으로 인지되어 있다면, 교리를 믿게 되는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진입로에서 관계는 교리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용한다. 교리가 틀려도 사람이 좋아서 사이비 종교에 남아있겠다는 사람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사이비 종교 신도들은 관계 맺기에 매우 공을 들인다. 짧게는 수개월 길면 일 년이 넘도록 포교 대상자에게 자신의 정체와 접근 목적을 철저하게 감춘다. 친구, 연인, 선후배 등 인간 대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용한 모든 방법을 이용해 관계를 맺으며 “나는 너에게 절대로 해로운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각인시킨다.
포교 과정에서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질이 필요한 사람에게 물질을, 이성에 취약한 사람에게 성을 포교에 이용하기도 한다. 포교 대상자는 ‘나’라는 존재에 관심을 가진다고 착각하지만, 신도에겐 같은 단체로 끌고 올 하나의 포교 대상일 뿐이다. 사이비 종교 신도는 결코 그 사람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고립시키기 및 성적 관계
그루밍 성범죄의 네 번째, 다섯 번째 단계인 고립시키기와 성적 관계는 본격적인 세뇌 성경공부 모임으로 볼 수 있다. 포교 단계에서 벌어지는 성경공부는 대부분 비밀리에 이뤄진다. 많은 사이비가 “성경공부가 시작되면 사탄의 방해가 시작되니 비밀로 하라”라고 강조한다. 짧게는 수개 월 길게는 일 년까지 집중적으로 세뇌 성경공부 모임을 시킨다. 성경을 통해 자신들의 교주를 발견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고립을 시키기 위해선 독특한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사이비 종교의 메커니즘이 설명된다. 사이비 종교는 신도들에게 특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희소성 모델(혹은 제로섬 모델)을 제시한다. 희소성 모델이란 물질(혹은 그 무엇)이 희소하여 모두가 골고루 나눌 수 없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앤 윌슨 섀프는 『중독사회』에서 희소성 모델을 중독의 특성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사이비 종교는 대부분 구원(혹은 영생)을 빌미로 희소성 모델을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상징 수 144,000을 실제 숫자라고 주장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144,001등이 되지 않도록 다그친다. 그때부터 신도에게 144,000 안에 드는 일은 단 한 가지 관심사이자 전 삶을 바쳐서 획득해야 하는 일이 된다. 신도는 자신의 관심사만 보고 옆을 보지 못하는 터널 비전 현상(편집자 주: 터널의 출구만 보이고 주변은 어둡게 보이는 현상으로 당장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지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희소성과 터널 비전은 두려움의 전조가 된다. 144,001등이 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신도의 삶을 짓누른다. 그럴수록 더욱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종말을 빌미로 신도들을 통제하는 사이비 종교도 희소성과 터널 비전을 작동한 모델로 볼 수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종말을 두려워한다. 종말은 개인적 종말과 총체적 종말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적 종말은 죽음, 총체적 종말은 이 세상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영생을 담보하는 미혹, 총체적 종말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종말의 때와 시를 알고 있는 우리와 함께하면 안전하다는 속삭임은 희소성 모델이다. 신도를 터널 비전에 빠지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협박과 회유로 통제
대다수 사이비 종교는 신도의 온·오프라인을 통제한다. 인터넷을 선악과라고 가르쳐 정보를 차단하거나, 같은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가족과 “갈라지라”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온·오프라인을 통제할 때도 역시 ‘구원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두려움을 유발한다. 신도가 단체를 탈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은 의존을 낳기도 한다. 두려움을 피하려고 하든, 해결하려고하든 신도는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는 교주의 가르침에 더욱 빠져든다. 통제를 당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사이비 종교 교주의 두려움 유발은 뒤집으면 회유를 위한 수단이 된다. 구원 박탈을 빌미로 두려움을 유발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천국 보장을 빌미로 회유를 했다는 뜻이다. 회유 보다 두려움 유발이 선행하는 이유는, 두려움을 해결할 존재는 오직 교주뿐임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선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줘야 하는데, 교주는 보상을 독점함으로 신도를 통제한다.
한편, 사이비 종교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도 있다. 가령 사이비 종교에 오랜 시간 몸담은 사람의 경우, 해당 단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탈퇴까지 수 만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믿고 따랐던 신적인 존재 교주에 대한 배신감,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 허망함,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두려움을 겪기도 한다.
탈퇴자들을 향한 시선의 변화 필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대다수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들을 향해 “분별하지 못한 너의 책임”이라고 정죄하지 않는다. 그루밍의 과정을 이해하고 가해자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행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루밍 성범죄의 단계와 닮아 있는 사이비 종교의 포교 과정을 이해한다면 신도 혹은 탈퇴자들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허황된 교리를 왜 믿는지 모르겠다’라며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일은 교리적 측면에서만 접근한 잘못된 시선이다. 교리도 중요하지만 교리를 믿게 되는 과정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사람을 빠트리는 이단과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동시에 연구될 때 더 나은 사이비 종교 대책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조믿음 발행인 bareunmed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