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수많은 이단이 역사 속에서 발흥과 쇠퇴를 반복했다. 오늘날 교회는 교회사 속 이단을 살펴봄으로, 정통신학이 정립된 과정을 배우는 동시에 잘못된 신학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초기 기독교가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이단 사상으로,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했다. 서요한 교수는 “(영지주의는) 보통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지식, 즉 신과의 신비적 교제의 욕망과 또한 사후 하늘에서 영혼의 안전을 찾는 소망을 추구하였다”1)고 설명한다.
불확실한 기원과 제한된 자료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왔다. 첫째, 역사적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목창균 교수는 “영지주의자들이 그들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고, 그들 사상의 기원이나 형성 과정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데서”2) 영지주의의 불확실한 기원 문제가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목 교수는 영지주의의 기원에 대해 ▲동양 종교 유래설 ▲헬라 사상 유래설 ▲유대교 유래설 ▲기독교 내부 유래설 ▲고대종교 및 사상의 혼합설 등을 소개하면서 특정 견해에서 기원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어, 여러 요인의 혼합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전한다.3)
둘째,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단편적인 자료들에 의존해왔다. 교부들, 그중에서도 이레니우스가 발렌티누스, 바실리데스 등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들을 비판한 『이단 논박』(혹은 반박) 외에 이들을 상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다. 저스틴 홀콤은 “이레나이우스(편집자 주: 이레니우스)와 그 제자들이 영지주의에 확실히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영지주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레나이우스와 그의 제자들이 영지주의를 공정하게 알려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4)라고 지적한다.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1945년, 나지(혹은 나그)함마디 문서5)의 발견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이 문서를 통해 이레니우스의 주장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영지주의에 대한 새로운 내용도 알려지게 되었다.
다양한 분파
영지주의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중심이 된 운동이 아니다. 다양한 교리, 주장 등이 산재된 채로 형성되어 한마디로 정의조차 어려운 집단이다. 김영재 교수는 “영지주의는 여러 우주의 신화, 그리스도와 동방의 이교적 철학 사상, 기독교 교리 등을 혼합한 사상으로, 하나의 체계이기보다는 사상적인 운동으로서 기독교 내에 있었던 이단 사상의 하나였다”6)라고 밝힌다. 목창균 교수 역시 “2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영지주의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다양한 분파로 구성되었으며, 수많은 영지파 교사들을 배출했다”7)라고 전한다. 저스틴 홀콤은 “이레나이우스는 『이단 반박』에서 발렌티누스파, 오피스파, 셋파, 가인파, 바실리데스파 등 다양한 영지주의 학파를 설명하고 논박한다”라며 영지주의는 많은 학파가 있었고 신념 체계도 넓었다고 설명한다.8)
교리
영지주의의 특성상 이들의 견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첫째, 이원론과 지식으로 이루는 구원이다. 이원론을 간단히 설명하면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사상이다. 영지주의자들이 물질세계를 악하다고 규정하는 이유는, 이 세계의 창조주가 열등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유일신론을 견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참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고, 참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 열등한 존재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 열등한 존재는 데미우르고스, 소피아 등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견해를 달리한다.
홀콤은 영지주의의 분파인 셋파, 오피스파, 바르벨로파의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설명한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초월적인 신이 침묵하는 상태로 존재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열등한 신들이 나타난다. 가장 아래에 아르콘이 존재하는데, 아르콘은 인간보다 능력과 선함이 떨어지지만, 환영을 이용해 공포감을 조성함으로 인간을 지배한다. 셋파, 오피스파, 바르벨로파는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르콘의 하나로 간주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한 이유는 인간이 지식을 얻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9)
영지주의자들에게 구원은 불완전한 존재가 만들어 놓은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탈출은 은밀한 지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계와 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소유해야만 영이 해방될 수 있다. 구원을 위한 지식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 이 지식은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고, 그들에게서 전수된다고 믿는다. 라은성 교수는 “(영지주의는) 세상이나 물질세계를 악하다고 규정해 놓고, 세상의 기원이나 참된 본질에 대한 신비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복잡한 지식, 즉 영지를 알게 되고 악한 육체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금욕을 일삼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10)라고 그들의 구원관을 설명했다.
둘째, 삼위일체와 성육신을 부정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악한 육체 안에 갇힌 존재가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성육신을 부정한다. 이는 자연스레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셋째, 선악과 문제를 재해석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뱀이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 (위에서 언급한) 아르콘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영지’를 주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호튼은 “구약에 표현된 창조의 하나님(여호와)은 신적인 영혼을 몸 안에 가두어 둔 악한 신이 되는 반면 에덴동산의 뱀은 내적인 깨달음을 통해 아담과 하와를 해방시키려 했다”11)라고 영지주의자들의 세계관을 설명했다.
교회의 반응
저스틴 홀콤은 “영지주의자의 엘리트 사상은 구약 성경을 분노, 전쟁, 복수의 이야기라고 묵살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안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영지주의자가 되는 것은 도시적으로 세련되고 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지적인 구심점이 없었던 평범한 기독교인들에게 큰 유혹이 됐다”12)라고 지적한다.
이에 맞서 교부들 그중에서도 이레니우스가 최전방에서 교회를 보호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에 따르면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누스와 그 진영에 대응해 구원의 경륜을 주장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더불어 당시 형성 중이던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13)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이레니우스의 반응이 “초기 기독교 사상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이룬 것으로 인정 받는다”14)고 평가했다.
1) 서요한, 『초대교회사』(그리심, 2010), 307.
2) 목창균, 『이단 논쟁』(두란노, 2016), 69.
3) 같은 책, 70〜72.
4) 저스틴 홀콤, 『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49.
5) A.D. 3∼4세기 경에 콥트어로 필사된 문서로 대부분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이집트에 보관중이다.
6) 김영재. 『기독교 교회사』(이레서원, 2000), 95.
7) 목창균, 『이단 논쟁』(두란노, 2016), 74.
8) 저스틴 홀콤, 『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48.
9) 같은 책 51〜52.
10) 라은성, 『이것이 교회사다』(PTL, 2012), 360.
11)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조직신학』(이용중 옮김, 부흥과개혁사, 2012), 42.
12) 저스틴 홀콤, 『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부흥과개혁사, 2015), 56.
13) 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포이에마, 2011), 186.
14) 같은 책, 187.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