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반증이 된다
이단 사이비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굳이 기사로 담아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질문의 의도는 이해한다. 교주나 핵심 인사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나 기이한 행보는 이단 사이비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피해자, 탈퇴자 혹은 신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신도에겐 더더욱 그렇다.
혹자는 정통교리만 들이밀어 반증을 시도한다. 어설픈 교리적 논쟁만큼 위험한 일이 또 없는데도 말이다. 신도들은 교리적 세뇌와 더불어 개신교 교리를 반박하는 반증 교리를 배운다. 저들의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논쟁은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교주는 성경도 다시 쓸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신도들에게 성경만으로 만든 반증 교리는 한계가 있다.
때로는 해당 단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나 교주의 말실수 혹은 기이한 행보가 정통교리보다 더 큰 반증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사이비 단체는 피해자의 시위를 막기 위해 시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남발했다. 그중 일부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몇 줄의 피켓 내용이 문제였지 시위 자체를 못 하게 된 건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의도적으로 시위를 멈췄다. 아니나 다를까 교주는 신도들에게 피해자들이 앞으로 시위를 하지 못한다며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설교했다.
한 달 뒤, 피해자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신도들은 당황했다. 분명 자신들이 신으로 믿는 이가 시위는 없을 거라 말했다. “시위는 없을 것.” 이 말은 신도들에게 하나의 ‘교리’가 된 셈이다. 오류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신도들은 교주의 오류를 목격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의심을 하는 자가 생긴다. 실망과 의심이 파고들 때, 탈퇴자들과 함께 만든 반증 교리를 제시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다.
필자의 글을 보고 신천지를 탈퇴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왜 그런 기사를 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한 가지다. 황당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