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교리는 왜 중요한가?

박재은 박사의 칭의 바르게 이해하기(1)


칭의”(稱義, justification)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죄인을 의롭다 여겨(칭해 혹은 일컬어주시는 것을 뜻하는 신학 용어이다칭의 교리에 대한 논쟁은 과거에도 있어왔으며현재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다가 올 미래에도 그 논쟁의 불씨가 완전히 시들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칭의 교리가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해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 교리 자체가 가진 신학적 중대성 때문이다칭의의 성격과 방법 그리고 그 원인들에 대한 약간의” 다른 관점이 결국엔 다른 모든 신학 측면들에까지 영향을 미쳐 커다란” 신학적 차이로 귀결되는 경향이 짙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칭의 교리는 신학적으로 중대한 것이다칭의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고찰 할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전통적 신학 논제들(loci)의 범주를 따라가며 논의해보도록 하겠다순서는 성경신학적 중요성역사신학적 중요성조직신학적 중요성실천신학적 중요성 순으로 진행할 것이다


▲박재은 박사 

1. 성경신학적 중요성

교리란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 정리하여 명제적 진술을 하는 것이다모든 교리는 성경으로부터 발현되어야만 한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칭의 교리는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칭의의 가르침을 요약 정리하여 명제적 진술을 한 성경적 가르침들의 모음 형태(combined form)를 지닌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들 수 있다. “같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왜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교리적 진술을 하는가즉 같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왜 서로 다른(때로는 서로 현저히” 다른칭의 교리를 말하는가의 문제이다.

이 차이점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불거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성경을 어떤 해석학적 틀 안에서 볼 것인가혹은 다양한 해석학적 도구 가운데 어떤 도구를 최우선으로 취하여 사용할 것인가또는 특정 본문을 특정 시대적 맥락(context) 가운데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아니면 신구약 통일성 관점에서 특정 본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요즘 시대는 특정한 성경 해석법을 최고(the best)라고 감히 말 할 수 없다소위 수 없이 많은 ”(new) 관점들이 물밀 듯이 해석학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칭의 교리 영역에도 예외가 아니다이제부터 본 연재를 통해 차근차근 살펴보겠지만 이처럼 다양한 성경 해석법은 기존의 전통적 칭의 교리의 성격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교리의 뿌리를 뒤흔드는 중대한 도전을 주기도 하였다현재는 역설적이게도 칭의 교리 때문에(혹은 덕분에더욱 성경 신학 분야와 해석학 분야가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그 역의 상황도 혼재하고 있다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동시에 고무적인 일이기까지 하다성경과 교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 상호적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날카롭게 분석평가할 때 비로소 시너지 효과로 발휘되어 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물꼬를 틀 수 있게 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2. 역사신학적 중요성

역사신학은 장구한 교회 역사 흐름 속에서 특정 성경적 가르침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살펴보고 현재의 거울로 삼는 학문이다그런 점에서 칭의 교리는 역사신학적으로도 중대하다칭의 교리를 중심에 놓고 교회 역사를 찬찬히 살피다보면 그 장구한 흐름 안에 온갖 종류의 교리적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칭의 교리에 대한 본인의 신념 때문에 기쁨으로 춤을 추기도 하고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할 뿐 아니라슬픔과 고통과 비애에 잠 못 이루고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바치기까지 했던 수없이 많은 교회의 인물들을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은 칭의 교리를 연구하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이다특히 칭의 교리 발전의 장구한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떤 방향성을 가진 채 칭의 교리를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진다. “역사야말로 현재의 거울이요 시대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차후에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지만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수없이 많은 불균형적” 칭의론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귀한 잣대를 제공해 줄 수 있다칭의 교리를 역사신학적으로 고찰한다는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여 과거의 영광과 슬픔을 피상적으로 경험하는 데 그친다는 뜻은 아니다오히려 과거를 거울로 삼아 다시금 건전한 방향성을 가지고 힘껏 도약할 수 있는 운동 능력을 기르는 것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칭의 교리는 역사신학을역사신학은 칭의 교리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상호 발전의 사명이 서로에게 부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 조직신학적 중요성

조직신학은 기본적으로 특정 신학 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요약 정리하여 주제별로 교리적 진술을 하는 학문이다조직신학은 모든 교리적 분야예를 들면 신론기독론인간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 등을 포괄적 조망 하에 다룬다비록 조직신학은 각론들로 구성되지만 각각의 각론들은 언제나 교리적으로 상호 통합하여 유기적으로 존재한다이러한 통합적” 조직신학 성격을 칭의 교리 역시 그대로 닮아 있다.

 

칭의 교리는 기본적으로는 구원론”(soteriology) 영역에 속한 교리이지만 단순히 그 영역이 구원론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예를 들면칭의의 유효적 원인(efficient cause,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장 효과적이고 근원적 원인)이 하나님이라면 넓게는 신론의 영역이며 좁게는 신론 중 예정”(predestination)의 영역이다칭의의 질료적 원인(material cause,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필요한 재료적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 righteousness)라면 넓게는 기독론의 영역이고 좁게는 기독론 중 그리스도의 사역”(works) 영역이다칭의의 도구적 원인(instrumental cause,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필요한 수단적 원인)이 신자의 믿음(faith)이라면 넓게는 구원론의 영역이고 좁게는 구원론 중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영역이다칭의 사건은 신론기독론구원론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조직신학의 영역이므로 칭의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곧 조직신학 각론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로 발전 될 수 있다최근에는 칭의 사건을 교회론 혹은 종말론적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짙은데 이 또한 칭의 교리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교리적 확장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라 볼 수 있겠다.

 

칭의론은 그 본질 상 조직신학의 각론들을 개별적으로 동시에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교리이므로 반드시 조직신학 전체를 투영하는 거시적 조망과 통합적 조망 하에 연구될 필요가 있다이는 단순히 조직신학 내에서의 각론들끼리의 통합적 측면뿐만 아니라 간(inter) 학문들 예를 들면 성경신학역사신학조직신학 그리고 다음에 살펴볼 실천신학까지를 아우르는 폭넓은 조망 하에 다룰 필요가 있다이런 측면에서 칭의 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인간교회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지닌다.

4. 실천신학적 중요성

실천신학은 성경교리역사 등이 말하고 있는 바를 분석하여 개인사회교회국가의 각 영역들에 적용하는 학문이다교리는 삶의 체계가 되어야 한다삶과 동떨어진 교리는 결국 피상적인 외침이요 건조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만약 칭의 교리가 신학적/교리적으로 중대하다면 그 중대성이 한낱 책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그 신학적 중대성이 개인의 삶과 신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야 한다. 칭의 교리는 신자의 삶의 토대요 근본이다하나님 나라는 의인만 들어간다(고전 15:50). 하지만 의인은 없으되 하나도 없다(롬 3:10). 그렇다면 어떻게 죄인은 의인이 될 수 있을까바로 그리스도의 의가 믿음으로 죄인에게 전가(imputation)됨으로써만 가능하다이것이 바로 칭의 사건의 핵심이다이러한 칭의 사건은 성도의 삶의 양태와 태도를 규정한다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므로 죄인은 반드시 죽어 음부의 권세 아래 거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에 힘입어 값없이 의인으로 칭함을 받아 더 이상 죽음의 권세 아래 있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게 된 자가 바로 성도이다.

 

이러한 칭의 사건을 실존적으로 깨닫고 경험한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는 감격과 감사와 순종”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감격적인 칭의 사건의 의미가 각 개개인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데 유효적 원인으로 작용해야 한다바른 신학과 바른 교리의 소유는 개인의 잔잔하고도 무미건조한 삶의 양태 가운데 엄청난 반향과 충격을 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이러한 실천적 축을 이루는 근본을 바로 칭의 교리가 감당할 수 있다칭의 교리가 성도 개개인을 세울 수 있다면 이는 곧 성도의 모임인 교회를 세우는 일과 진배 다름없다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말처럼 칭의론이 바로 설 때 교회도 같이 서고칭의론이 무너질 때 교회도 같이 무너진다. 이처럼 칭의 교리는 실천신학적 토대(즉 성도 개인과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세워나감에 있어 근본구조(infrastructure)를 이루는 교리적 기저요 주춧돌의 역할을 감당한다.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칭의 교리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기 전 서론적 고찰로서 칭의 교리의 중요성을 성경신학적역사신학적조직신학적실천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혹자는 또 칭의론이야!?”라면서 미간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그 안에는 지긋지긋함과 식상함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칭의 교리 자체에 대한 반항심까지 잔뜩 서려 있을 수 있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칭의 교리는 여전히 중요하며 여전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교리이다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에 다시금 칭의 교리를 넌지시 되짚어 보며 성경과 역사와 신학이 칭의에 대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해 주의 깊게 경청 할 필요가 있다그 이유는 우리 모두 칭의라는 토대 위에 두 발 벌려 서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필자 박재은 박사는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고 있다저서로 『칭의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 『성화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가 있다.

 

박재은 박사 jepark.theopneust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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