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창조 신학(2)

편집자 주조덕영 박사의 사도 바울의 창조신학 글을 4회에 거쳐 연재합니다조덕영 박사는 조신학연구소 소장창조론 오픈 포럼 공동대표평택대 신학부 겸임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III. 사도 바울의 인간관

1.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는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창조주 하나님을 외면한사도 바울이 말하듯 인간의 본성은 핑계할 수 없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바울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광스럽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생각은 쓸모없고 마음은 어리석어 어두워졌다고 했다(1:21).

▲조덕영 박사

사도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은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지만 사실은 어리석으며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존재라고 했다(1:21-23). 불멸의 하나님의 영광을 소멸되어 버릴 것의 형상으로 바꾸어버렸다구약 시대뿐 아니라 바울이 살던 1세기 당시에도 샤머니즘과 토템과 물신숭배(der Feitischismus)가 만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하나님은 그들을 그대로 내어버려 두셨다.

이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은 첨단과학기술 시대를 자처하는 21세기가 되었음에도 여전하다우리 사회 속에서도 고급 승용차 앞에 놓인 돼지머리나 정부 행사에 고사(告祀)를 위한 떡이나 기관 단체 행사와 제사에 동물의 머리 고기가 등장하는 것이 여전히 낯설지 않다하늘에나 땅에나 거짓 신들이 많고 많은 신()과 주()가 있고 그것을 따르는 어리석은 피조물들이 여전히 허다하다바울은 인간의 마음이 창조주를 마음에 두기보다 피조 세계의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연의 양상들을 섬기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꿰뚫고 있었다.

2. 창조주를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내어 버려두셨다라고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1:24, 26, 28). 사람들이 하나님과 참 된 진리를 찾으려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패한 마음으로 합당치 못한 악한 일을 하도록 내어버려두셨다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에 대해 하나님이 그대로 내어 버려두자 인간은 하나님의 것을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시작했다(1:25). 진리를 거짓과 맞바꾸었다.

바울은 오늘날까지 결혼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여 순리를 역리로 쓰는 동성애도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의 결과라고 했다(1:26). 바울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아 당대 로마 시민들에게도 이 이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이 같이 인간 자신이 스스로 마음의 정욕대로 사는 것에 대해 바울은 부끄러운 일이라 하면서 그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마땅한 보응(대가)이 있다고 했다그 보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바울은 설명하지 않았다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보응법적 규제동성 간 불편한 동거잉태하지 못함동성 간 연애로 인해 발생하는 문화적심리적육체적 불편함과 불균형그리고 예기치 못한 질병의 초래 등 보응은 많다.

지금도 동성애를 옹호하는 정치인들이나 우매한 대중들이 있다군 생활을 체험한 남자들에게 있어 군 생활 중 당하는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과 경험은 바로 동성애 성향의 상관을 만나는 것이다전혀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들이 일방적으로 저지르는 폭력적 행위는 불쾌함뿐이요 어떤 병사에게는 자살의 충동을 일으킬 만큼 혐오스러운 체험이다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당하고 감싸라고군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예수께서 마귀와 귀신과 독사의 새끼들을 감싸라고 하셨던가도착(倒錯)을 정상이라 말하면 안 된다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사람은 사랑해야 하나 죄와 죄인은 보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그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이다.

이 밖에도 온갖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함시기살인분쟁사기악으로 가득한 자들과 수군거리며 서로 헐뜯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며 자랑하고 악한 일을 꾸며 대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미련하며 언약을 배신하거나 인정도 없고 무자비한 자들이 모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 사람들이 행하는 결과물들이다(1:29-31). 하나님의 법은 인간이 이런 식으로 살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끝없이 알려주고 경고한다그런데 어그러진 인간은 자기들만 이런 행위를 하는 게 아니다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옳다고 두둔까지 한다(1:32). 인간을 물질에 불과한 유물론적 일원론적 존재로 믿는 공산주의자들이 상습적으로 거짓말과 악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의 존재인가그렇다인간의 지식은 완전하지 않고 사람을 교만하게 할 뿐이다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밀어붙일 때 그 정당성을 설파한 것은 일부 지식인들과학자들이었다최근 방사성 물질 검출로 대량 회수 소동이 일어난 건강 침대 소동도 음이온이 건강에 이롭다는 일부 방송 의사들의 음이온 예찬에서부터 착안된 광고 결과물이었다임산부의 입덧을 드디어 잡았다고 과학의 성과를 찬양하던 진통제 탈리도마이드는 수많은 사지(四肢기형의 태아로 인해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에 대해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분이 아니다하지만 직접적 보응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이렇게 스스로 그 보응을 충분히 달게 받는 것으로 대가를 치른다.

 

3. 바울의 육체론연약한 육체와 신령한 몸

바울은 육체(육신)라는 말을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한다영국의 신약학자 브루스(F.F. Bruce)는 육체의 용법에 대해 (1) “사람의 신체”(2:28; 고후12:7; 4:13; 2:29), (2) “인간의 혈통 또는 혈연 관계”(1:3, 9:3, 5, 11:14), (3) 단순한 인류”(2:16; 3:20; 고전1:29)라는 의미로 구분하였다주석가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 문제를 좀 더 신학적으로 접근한다.

먼저 그는 신령한 몸과 대조하여 육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전15:44-46). 이 육체는 질병에도 고통 받을 수 있는 연약한 몸이다(4:13). 바울은 예수도 이 연약한 육체로 인해 육체적 죽음을 맞아(1:22) 화목 제물이 되었다고 했다즉 이 몸(육체, sarx)는 쳐서 복종시켜야 되는 연약한 몸이다그런데 이 육체는 또 다른 성향을 보인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en sarki) 행하나 육체대로(육신의 생각대로, kata sarka) 싸우지 아니하노니”(고후10:3). 이 몸(육체)은 또 다른 경향성즉 중의적 요소와 의미가 있음을 언급한다.

사람의 본능에 속한 육체는 첫째 아담에게서 온 것이요(고전2“14) 신령한 생명은 둘째 아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그러나 이 육신의 몸은 신령한 생활에 적합지 않으므로 사람의 몸이라 하고 신령한 몸은 부활의 몸이라 하였다겉으로 보면 다 같은 육체이나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요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다이 육체의 몸은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해야 한다(6:5).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한다고 우리 몸의 다른 측면이 없는 것이 아니다우리 인간에게는 육체의 상전이 장악할 수 없는 몸이 있다바로 진정한 하늘의 주인이 다스릴 신령한 몸이다.

바울은 율법적 관점에서는 육체적으로 누구보다 신뢰할만한 인물이었다(3:4).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순수 이스라엘 사람이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새인으로 교회를 핍박하기까지 열심을 내었던 율법에 비추어 보면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러한 육체가 전부가 아니었다알고 보니 율법에 매달린 이 육체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가치를 알고 난 다음에는 마치 배설물이요 쓸모없는 쓰레기나 다름이 없었다몸과 마음이 육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게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육체조차 의롭게 된다(3:9). 그래서 바클레이는 바울이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7:5)라고 말한 표현을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율법적 싸움을 벌이던 때요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얻으려다가 오직 좌절과 패배와 절망을 맞볼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말한다.

바클레이는 이 몸(육체육신, sarx)과 유사한 또 한 단어를 지적한다바로 사르키코스(sarkikos)이다바울은 불신자도 아니요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도 아닌3의 인간 곧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지적한다아이처럼 여전히 단단한 것이 아닌 젖을 먹고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병든 육체가 육신의 질서를 잃어버리듯 교회도 시기와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고전3:3-4). 성화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설명한 단어라 볼 수 있겠다.

육신을 따라 생각하는 것(8:6)과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은 죽는 것이요(8:12, 13) 죄 아래 팔린 삶이다(7:14).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은 벗어버려야 한다(4:22).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5:24).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멸해야 한다(6:6).

조덕영 박사 bareun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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