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 연재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부터 A.D. 70년 예루살렘 함락에 이르기까지 주요 왕조의 발흥과 쇠퇴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부터 세례요한의 등장 사이에는 400여 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말라기를 읽고 마태복음을 펼친 독자는 순식간에 약 4세기를 뛰어넘은 셈이다. 성경만으로는 이 기간에 일어난 일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나의 사자’1)를 마지막으로 세례요한 전까지 자신의 백성을 향해 침묵하셨다. 이 400여 년의 시간을 신구약 중간사 혹은 중간기라고 부른다.
신약성경 이해의 첫 단추
신약성경은 많은 왕조의 발흥과 쇠퇴를 단숨에 뛰어넘고 독자를 거대 제국 로마로 안내한다. 독자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 구약에서 발견할 수 없는 유대교의 분파들을 만나고, 수전절 같은 새로운 절기를 보게 된다. 분봉왕, 회당 등 낯선 단어도 발견한다. 때문에 성경, 특별히 신약을 이해함에 있어 신구약 중간사에 대한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역사·문화적 배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첫 단추가 된다.
레이몬드 설버그는 “중간사 기간에는 중요한 발전들이 있었다. 강대한 왕도들의 교체가 있었고, 유럽의 판도가 두 세 차례나 바뀌었으며,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국경선이 커다랗게 변모하였고, 새로운 문화들이 출현하였다”2)라며 “복음서에서 우리는 산헤드린 공회를 만나고, 장로들의 전통에 대하여 읽으며, 서기관들의 활동을 대하게 된다. …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은혜를 베푸셨을 때 팔레스틴은 유대와 사마리아, 갈릴리의 세 부분으로 분할되었다. 이러한 성경상의 분할은 어떻게 유래되었는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신구약의 중간사 시기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지리와 역사, 종교적 발전을 연구할 때 얻어 진다”3)고 말한다.
중간사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다. 자료가 제한적이고 그마저도 불확실한 내용이 많다. H.야거스마는 “이 기간의(편집자 주: 야거스마가 이야기한 기간은 B.C. 330년경과 A.D. 135년 사이)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자주 상당히 많은 불확실한 것들과 가정들로 허덕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역사의 학문적인 토론에 있어서 실제로 많은 점들이 그 어떤 일치된 견해가 없다”4)라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동시에 중간사를 연구함에 있어 중요한 자료들로 구약성경, 신약성경, 외경과 위경, 필로의 저작, 요세푸스의 저작, 헬라 및 라틴저작, 사해사본, 탈무드나 미드라쉬, 미쉬나 같은 랍비문헌, 고고학의 증거 등을 제시한다.
그리스도를 보내기 위한 준비 기간
신구약 중간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400여 년의 기간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예비적 차원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4장 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성경은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가 찼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때”란 무엇일까? 약 40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학자들은 중요한 몇 사건을 공통으로 언급한다. 첫째,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부터 소위 ‘오현제’5)라 불리는 다섯 명의 황제가 통치할 때까지의 약 200년간 계속된 로마의 평화를 뜻한다. 외국과의 크고 작은 전쟁과 내부의 반란 등 군사적 충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로마가 영토 확장을 최소화하면서 상대적으로 평화를 누린 시기임은 분명하다. 로마는 이 기간 동안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기보다 국경을 요새화해 수비하는 데 집중했다. 그에 걸맞게 군대를 재편하는데 공병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자연스레 보병은 쇠퇴하게 된다. 육성된 공병은 로마의 토목공사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진 약 28만km의 잘 뻗은 도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탄생시켰다. 이 길은 사도 바울과 많은 전도자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둘째, 언어의 통일과 70인역의 탄생이다. B.C. 336년, 약관의 한 젊은이가 암살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게도냐의 지도자로 등극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 번도 통합된 적이 없었던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자신의 발 아래 놓은 전쟁의 전문가 필립포스 2세였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필립포스 2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반란군을 빠른 속도로 진압했다. 그리스 전역을 순식간에 장악한 그는 아버지가 맡았던 페르시아 원정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 전투(프란체스코 솔리메나, 17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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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는 마게도냐인 이었지만 그리스의 문화를 존중했다. 이는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한 여러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다. 역사가들은 알렉산드로스를 정복자인 동시에 헬레니즘의 전파자로 기록한다. 본래 팔레스타인이나 지중해 연안은 아람어 등을 많이 사용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이후 헬라어를 공통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언어의 통용은 복음 전파에 큰 유익을 주었다. 김병국 교수는 “언어의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가 하는 것은 초기 기독교가 번성했던 지역과 헬라어가 공용어였던 지역이 거의 정확히 겹친다는 사실이 잘 말해주고 있다”6)고 밝혔다.
▲듀크 대학교 파피루스 보관소에 보관중인 70인역 시편 90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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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통일된 헬라어로 70인역이 탄생했다. 70인역이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6명씩 선정된 72명의 번역자가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말한다. 70을 의미하는 라틴어 셉투아진트라고 불리기도 하고, 수비법에 따라 LXX(50+10+10)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70인역에 대한 작업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B.C. 285∼247년경 이루어졌다고 알려진다. 70인역은 초대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1세기는 유대인조차 특별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 히브리어를 알지 못했던 시대였다. 초대교회의 많은 구성원이었던 이방인들은 당연히 히브리어를 몰랐다. 만약 70인역이 없었더라면 다수의 사람이 구약성경을 읽거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헬라어는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성경은 여러 헬라어 종류 중 가장 대중적이고 쉬운 편에 속했던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이 역시 복음이 대중적으로 전해지는 데 크게 기여한 요소였다.
하나님은 비록 침묵하셨지만 여전히 역사 속에 개입하셨고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를 만들어가셨다.
1) 말라기의 뜻, 말라기가 고유 명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2) 레이몬드 설버그, 『신구약 중간사』(기독교문서선교회, 2004), 9.
3) 같은 책, 11.
4) H.야거스마, 『신약배경사』(솔로몬, 2004), 19-20.
5) 오현제는 로마의 12대 황제인 네르바, 13대 트라야누스, 14대 하드리아누스, 15대 안토니우스, 16대 아우렐리우스를 말한다.
6) 김병국, 『신구약 중간사 이야기』(대서, 2013), 34.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