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 2017년 10월월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신실함: 로마서 9∼11장까지를 중심으로

김곤주 목사의 로마서 핵심 요약(3)


바울은 예수를 믿지 않는 친척과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인한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자신의 형제와 친척과 민족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끊어져도 상관이 없다고 9장 1∼3절에서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었는지를 설명하고(9:4∼5),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9:6)라고 선언합니다. 이 짧은 구절은 로마서 9∼11장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 문장입니다. 바울은 진정한 이스라엘(true Israel)은 오직 택함 받은 이스라엘(ethnic Jews)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특별히 선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김곤주 목사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다 진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면, 누가 진짜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이냐’라는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은 먼저 ‘이삭의 선택’과 ‘야곱의 선택’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9:7∼9)를 통해서, 그리고 ‘애굽의 바로’(9:17~18)와 토기장이 비유(9:19∼21)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내용이 이중 예정의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바울이 의도적으로 이중 예정(선택과 유기)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의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지옥에 가도록 선택되었다고 강조하는 극단적인 칼빈주의(Hyper-Calvinism)의 가르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해당된다(9:24)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와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통하여 성취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9장 마지막까지의 내용에서 설명 합니다(9:25∼33).

바울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많은 유대인)이 왜 예수를 믿지 않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두면서 10장의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선택의 문제가 있다(9장)는 점과 함께, 인간의 반응과 그 반응에 따른 책임과 관련이 있다(10장)는 점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10:2∼3).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그 율법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막 7:7〜8; cf. 마 23: 23).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진단합니다(10:2; cf. 호 4:6).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10:3)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는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대조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서 하늘에 올라가거나 무저갱(음부, depthless)에 내려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 합니다(롬 10:6∼7). 한마디로, 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받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10:3∼10).

바울은 ‘네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9)고 말씀한 후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 합니다(10:10). 또 10장 13절에 가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합니다(욜 2:32).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며, 전하는 자가 없다면 어떻게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씀 합니다(롬 10:14∼17).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들었으나 거절하였다’는 사실을 10장 19∼21절에서 다시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이 종일 손을 펴서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을 불렀다’고 이사야 65장 2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1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가운데 있지 않은 정말 버림받은 것인가’ 하는 문제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속에서 다루기 시작합니다. 먼저, 바울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두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는데, 첫째는 예수를 핍박하던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역사에 나오는 ‘남은 자들’ 가운데 특별히 엘리야와 7천 명의 남은 자들을 예로 소개합니다(11:2∼5; cf. 열상19: 9〜18).

이렇게, 바울은 구약시대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기초해서 끝까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구원문제와 이방인의 구원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하면서, 유대인들의 강퍅한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고, 이것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11:11∼12).

그리고나서 바울은 로마 교회 내에 있는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11:13). 다시 말해서, 11장 13절에서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하고 언급한 후에, “너희”(이방인 신자들)와 이 사람들(유대인들)을 대조적으로 말하고 있는 “형제들아” (25절) 하고 이방인 신자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cf. 11:13〜24). 따라서 사도 바울이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11:13)에서 시작해서, 11장 32절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로마교회 안에 있는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에게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참 감람나무에 붙어 있던 나무가지들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꺾이고, 대신 돌 감람나무에 붙어 있었던 가지들 (이방인들)이 접붙여져서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게 되었다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해서, 이방인 신자들인 너희들이 그 가지들(유대인들)을 향해서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11:17-18). 또, ‘그들(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꺾이고, 반대로 너희들(이방인 신자들)은 예수를 믿음으로서 꺾이지 않았다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합니다(11:20). 왜냐하면 ‘원 가지들 (유대인들)도 버림받았다면, 너희(이방인)들도 얼마든지 버림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11:21).

이렇게, 사도 바울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형제’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충고를 하는 이유는 ‘너희들이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멸시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로마 교회가 유대인 출신의 신자들과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 사이에 갈등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14장 이후에 가면 바울은 더 분명하게 이 문제를 거론합니다,

다음으로 로마서 11장 25∼26절은 로마서 9∼11장 전체의 중심이 되고 핵심이 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구원의 신비가운데 하나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신비’는 많은 이방나라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나면 그 후에 많은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11:26)는 말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해석을 보면, 첫째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적적으로 집단적 회심이 일어나 구원을 받는 민족적 구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사람들(ethnic Jews)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유대인 개개인 모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9∼11장 전체의 문맥(남은 자 사상)과 일치하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11장 26∼27절의 문맥과도 가장 일치합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원문 중심의 이야기 로마서』를 참조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한 버림받은 민족으로 보여 질 수 있지만, 사실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고(11:28), 그래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11장 2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은 한번 부르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전에 하나님을 몰랐고 그래서 하나님을 순종치 않았던 ‘너희’(이방인 신자)들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11:30; cf. 행 13: 46).

이와 대조적으로 ‘너희(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긍휼이 이제는 그들(유대인들)도 긍휼을 얻게 하기 위함’(11:31) 이라고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 즉 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말이며, 이렇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순종하지 않은 가운데 있도록 내버려 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11:32).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로마교회에 있었던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한 가족임을 깨닫고, 연합과 일치를 깨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신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라는 측면에서,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11장 33∼36절에서 바울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으로 마칩니다(“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편집자 주: 김곤주 목사는 안양대(B.A) 및 안양대 신대원(M.Div)을 졸업한 이후, 호주(Australia) 몰링 학교(Morling College)와 무어 신학교(Moore College)에서 각각 성경신학 석사과정(MA in Theology)을 졸업 했다. 코람데오 신학교(CoramDe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호주 시드니에서 새언약 교회를 담임으로, 필리핀 세부 연합 신학교(Subu Union Theological College) 교수로 사역 중 이다. 저서로는 『 원문 중심의 이야기 로마서 』 (세움북스)가 있다.   

 

김곤주 목사 bareunmedia@naver.com

제5계명이 말하는 여러 부모들

손재익 목사의 십계명 바르게 이해하기(8)


자주 설교되는 제5계명

한국교회는 십계명을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제5계명만큼 자주 가르칩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합니다. 언제입니까? 5월 둘째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날에 전국교회에서는 거의 비슷한 본문과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다른 계명은 매년 선포되지 않는데, 유독 제5계명만 그렇습니다.

▲ 손재익 목사

이렇게 매년 제5계명에 관한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는 과연 제5계명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유교가 말하는 효(孝) 정도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넓은 범위의 부모

우리가 제5계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5계명이 말하는 부모를 육체적 부모에게만 한정시킨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을 육체의 부모에만 적용시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부모는 더 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성경에는 문자적 의미의 부모 외에도 다른 관계를 가리켜 부모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45:8에서 요셉은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해서 자신이 ‘총리’가 된 것이 바로의 아버지가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49:23은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라고 해서 ‘왕’과 ‘왕비’를 아버지와 어머니에 비유합니다.

열왕기하 5:13에서는 “그(나아만)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라고 해서 나아만의 종들이 군대장관인 나아만에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열왕기하 2:12은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라고 해서 엘리사가 그의 ‘스승’ 엘리야에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사사기 5:7은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라고 해서 ‘사사’ 드보라를 가리켜 어머니라고 표현합니다.

사무엘상 24:11은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라고 해서 다윗이 사울에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4:14∼15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14)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라고 함으로서 사도와 고린도교회의 관계를 부자관계로 표현합니다.

갈라디아서 4:19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나의 자녀들아”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딤전 1:2)라고 표현하고, 디도에게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딛 1:4)라고 표현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은 부모를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제5계명은 육체적 부모에게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의 윗사람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제5계명의 부모는 육신의 부모를 기본으로, 사람이 관계하는 모든 관계에서의 윗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사실은 장로교회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24, 125문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24문: 제5계명에 있는 부모는 누구를 뜻합니까?

답: 제5계명에 있는 부모는 육신의 부모natural parents뿐만 아니라,1) 연령2)과 은사3)에 있어서의 모든 윗사람superiors과 특히 하나님의 규례ordinance에 의하여 가정4)과 교회5)와 국가commonwealth6)를 막론하고 우리 위의 권위의 자리에 있는 자들over us in place of authority을 뜻합니다.

1) 잠 23:22, 25; 엡 6:1,2   2) 딤전 5:1,2   3) 창 4:20∼22; 45:8   4) 왕하 5:13  5) 왕하 2:12; 13:14; 갈 4:19  6) 사 49:23

125문: 왜 윗사람을 부모로 여겨야 합니까?

답: 윗사람superiors을 부모로 여겨야 하는 것은, 그들이 육신의 부모와 같이 아랫사람inferiors에게 모든 의무를 가르쳐 저희의 여러 가지 관계relations에 따라 아랫사람을 사랑love과 부드러움tenderness으로 대하게express 하고,1)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그들 자신의 부모에게 하듯 자기 윗사람에 대한 의무를 더욱 큰 의욕willingness과 즐거움cheerfulness으로 행하도록performing 하기 때문입니다.2)

1) 엡 6:4; 고후 12:14; 살전 2:7,8,11; 민 11:11,12   2) 고전 4:14∼16; 왕하 5:13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24문답은 앞서 부모의 예로 제시된 창세기 45:8; 열왕기하 2:12; 5:13; 이사야 49:23을 근거구절로 제시합니다.

이처럼 제5계명의 대상은 ‘육신의 부모’만이 아닙니다. 훨씬 넓은 범위를 포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은 ‘부모’만을 언급했을까요? 일종의 제유법(提喩法)입니다. 부모는 모든 권위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사회의 시작이며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가족과 관계를 맺고 교회에 속하여서 교회원과 관계를 맺고,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대상이 바로 부모입니다.

아랫사람과 동등자까지도

제5계명은 사람이 관계하는 모든 윗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확장됩니다. 바로 아랫사람과 동등자에게까지도 확장됩니다. 이 사실은 에베소서 6:1∼9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1∼9는 제5계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1∼3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제5계명입니다. 구약의 출애굽기 20:12에 기록되어 있는 제5계명을 인용하면서 그 의미를 좀 더 크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5∼8에도 제5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제5계명이 가정이라는 영역에 한정되어서 자녀가 부모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로 종이 주인에게도 해야 할 계명임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각각의 말씀 밑에 붙는 말씀을 자세히 보면, 에베소서 6:1∼3에서 아랫사람으로서의 자녀가 윗사람인 부모에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한 뒤에, 이어지는 4절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말씀합니다. 5∼8절에서 아랫사람으로서의 종이 윗사람인 상전에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한 뒤에, 이어지는 9절에서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1∼3절, 5∼8절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해야 할 도리를 언급한 뒤에 4, 9절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야 할 도리를 언급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제5계명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해야 할 도리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야 할 도리도 가르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4문답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26∼132문답은 제5계명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64문: 제5계명에서 요구된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속한 지위places와 관계relations에 따라 윗사람superiors,1) 아랫사람inferiors,2) 동등한 사람equals3)으로서 존경을 유지하고preserving the honour, 의무를 행하라는 것performing the duties입니다.

 

1) 엡 5:21  2) 벧전 2:17  3) 롬 12:10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26문: 제5계명의 일반적 범위scope는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의 일반적 범위는 여러 가지 상호 관계에 있어서 아랫사람, 윗사람, 혹은 동등자들로서의 우리가 서로 지고 있는 의무들을 행하는 것performance입니다.1)

 

1) 엡 5:21; 벧전 2:17; 롬 12:10

마치면서

독자 여러분, 혹 제5계명을 육체의 부모에 대한 것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더 넓은 범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부모에게도 지켜야 하지만, 사람이 관계하는 모든 윗사람에게 지켜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도 지켜야 하지만, 부모가 자녀에게도 지켜야 합니다. 자녀뿐 아니라 모든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합니다.

편집자 주: 필자 손재익 목사는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를 담임하고 있다. 저서로 『십계명, 언약의 10가지 말씀』(디다스코)이 있다.

손재익 목사 bareunmedia@naver.com

〔발행인 칼럼〕신천지 신학원의 불법성 문제, 처음부터 재검토되어야

기형아 출산 유발약을 막은 일화로 유명한 프랜시스 올덤 켈시(1914년 7월 24일 ~ 2015년 8월 7일) 박사. 그녀는 의학박사 학위 취득 후 1960년 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는 일을 맡았다. 그해 9월 그녀에게 주어진 첫 신청서는 ‘탈리도마이드’라는 진정제 였다. 과거 서독의 제약사인 그루넨탈이 개발한 이 약은 탁월한 수면 진정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고 임산부의 입덧 방지제로도 처방되었다.

▲ 프랜시스 캐슬린 올덤 켈시
    (1914 ~ 2015)

켈시 박사는 신청서에 담긴 정보가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약품의 독성과 효과 등에 대한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 당시 미국 내 제조사인 머렐 사는 다른 나라에서 시판이 되는 만큼 쉽게 허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다 난관에 봉착하자 로비와 항의 등으로 켈시 박사를 압박했다.

켈시 박사가 끝까지 소신을 지키며 승인을 거부하던 중 유럽 의학계는 탈리도마이드가 팔, 다리를 마비시킬 수 있고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게 된다. 약품은 곧바로 회수되었지만 당시 탈리도마이드 복용 탓에 태어난 기형아는 전 세계에 약 1만 2천 명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은 단 17명. 그 17명도 의사들에게 나눠 준 샘플로 인한 피해였다.

켈시 박사는 소신을 지킨 공무원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켈시 박사에게 공무원에게 주는 최고상을 수여했다. 켈시 박사는 FDA에서 90세까지 근무했고, FDA는 2010년부터 켈시 어워드 제정해 수상하고 있다.

올덤 켈시의 이야기를 읽으며 신천지 신학원의 불법성 문제로 (피해자들이) 싸워온 지난 10년의 과정이 떠오른다. 이런 미담에 하필이면 사이비 종교의 학원법(정확히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문제를 덧이어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원법상 학원은 ‘10인 이상의 학습자에게 30일 이상 학습장소로 제공되는 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신천지 신학원은 보통 6∼7개월 과정이다. 인원은 20명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원법상 학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은 신천지 신학원이 내부교육기관인 동시에 종교교육이기 때문에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의 입장을 전해들은 검찰은 신천지 피해자들의 신천지의 학원법 위반 혐의 사건을 불기소 처분을 해버렸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은 바른 판단을 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신천지 신학원은 내부교육기관이 아니다. 신천지는 ‘신학원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 및 이에 준하는 자격을 획득한 자’를 신도로 규정하고 있다. 신학원 수강생은 신천지 신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종교교육은 또 어떠한가. 헌법재판소(2000. 30. 30 헌바14전원재판부)는 “종교교육이라 할지라도 학교나 학원의 행태로 행하는 것에 대하여 방치할 경우, 여러 사회적 폐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설립인가나 등록제로서 최소한의 규제하는 것이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사익의 제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교육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근거해 “종교교육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학교나 학원이라는 교육기관의 형태를 취할 경우에는 교육법이나 학원법상의 규정에 의한 규제를 받게 된다”라고 법령을 해석했다. 따라서 신천지 신학원이 내부교육기관인 동시에 종교교육이기 때문에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안양과천교육지원청 판단은 잘못되었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서울서부교육청은 신천지 신학원이 학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빌딩에 있는 신천지 신학원을 고발했다. 그런데 변수를 만났다. 같은 빌딩에 간판도 없는 신천지 위장교회가 있었다. 검찰은 “신학원은 같은 빌딩에 있던 교회의 소속이며 소속 신도들이 교리를 공부하는 곳으로 확인했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신천지는 상식적이지 않은데 상식선에서만 수사하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공무원은 신천지 비밀 모임장소에 가서 여기가 신천지 신도들이 공부하는 장소인가를 물었다고 한다. 신천지의 습성을 조금만 아는 사람에겐 속된 말로 속에 천불이 날 일이다. 검찰은 신천지에 기망 당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잘못된 판단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리며 내 자식을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 민원인이 들어올 수 없도록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은 문까지 걸어 잠그는 행태를 보인 바 있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켈시 박사. 시판되고 있는 약이기 때문에 형식적 절차만 거쳐 판매 허가를 해주는 것이 당연할까?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켈시는 고집불통, 비합리적인 관료라는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론 기형아 출산을 막은 영웅이 되었다. 이 약이 임산부가 복용해도 되는지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따져봤던 켈시를 지금 와서 외골수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천지의 학원법 위반 고소에 대한 불기소 처분은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잘못된 결론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사건을 되짚어 볼 의식 있는 공무원이 없을까.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시위로 연휴를 시작한 피해자들

유례없는 긴 연휴를 시위로 시작한 이들이 있다. JMS피해자연합과 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 회원들이 사이비종교피해자연대의 이름으로 피켓을 들었다. 9월 30일 토요일, 서울 신촌과 청와대에서 각각 사이비를 규탄하는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 JMS 피해자의 일일시위

신촌 일대는 각종 사이비종교의 포교가 극심하다고 알려진다. 한 JMS 피해자는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사이비종교 신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라며 “사람들에게 사이비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라고 밝혀다.

청와대에서 시위를 진행한 하피모 관계자는 “(하피모가) 장길자 씨와 김주철 씨를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허황된 교리로 사람들을 기망해 헌금을 받아 사기로 처벌된 사례가 많다. 우리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 하나님의교회피해자의 일인시위

 

한편, 신천지대책전국연합 일부 운영진, 신천지피해가족연대, 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 JMS피해자연합, 탈퇴한농마당 등 한국 주요 사이비종교의 피해자 단체들은 사이비 대처에 힘을 모으기로 하고 지난 7월 초부터 ‘사이비종교피해자연대’라는 이름으로 매주 4회 이상 꾸준히 일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조믿음 기자 jogog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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