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제임스성경이 다른 어떤 성경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는 개역성경을 사탄이 변개했다고 하거나, 또 어떤 이는 킹제임스성경이 아닌 다른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한다. 이들이 빠진 사상을 소위 킹제임스 유일주의라고 부른다.
킹제임스성경의 우월성과 유일성의 문제는 논의 가치가 높지 않아 학계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무게감 없는 주제다.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는 다각도로 비판받아왔고 그 과정에서 비학문적, 비신학적 주장임이 많은 학자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들은 킹제임스성경의 유일성을 변호하기 위해서 근거 없는 주장을 양산한다.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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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4일, 한국기독교 백주년기념관 1층 소강당에서 “성경번역: 더 분명한 번역은 없을까요?”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킹제임스 성경의 우월성”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 윤사무엘 목사(감람원신학교 총장)는 다른 유일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사본학의 상식마저 무시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아래는 윤사무엘 목사의 주장과 몇 가지 반론이다.
윤사무엘 목사 주장
한국은 1911년 발간된 성경전서(舊譯)가 Underwood, Appenzeller, Gale, Reynolds 등이 킹제임스 성경을 중국성경과 함께 참고하여 번역 완간했으나, 1938년 일본총독부가 3년 이상 작업하여 미국 현대역인 American Standard Bible(1901)을 대본으로 <개역판>을 출간했다. 신사참배 결의하기 직전에 이 성경을 출간했을 때 한국교회는 아무런 반응 없이 이를 수록했다. <개역>의 전통을 이어받아 <개역개정>이 나와서 <구역>의 안디옥 사본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반론
1938년에 출판된 개역판을 일본총독부가 작업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 1911년에 출판된 구역은 번역에 있어서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12년, 선교사들과 몇몇 한국인들이 개역위원회를 조직했고 원어, 70인역, 영어개역, 킹제임스성경, 독일어 성경 등을 참고해 개정판을 만들었다. 이것이 1938년 성경개역으로 출판되었다.
윤사무엘 목사는 구역을 만들 때 킹제임스성경과 중국성경을 함께 참고하여 번역 완간했다며, 킹제임스성경이 독특한 역할을 한 것처럼 표현한다. 하지만 구역은 킹제임스성경 외에도 영어개역, 미국표준역 등 다양한 성경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물론 킹제임스성경은 그중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다.
또한 윤 목사는 구역에서 개역판 그리고 개역개정으로 넘어오면서 성경이 전면 개정된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문장을 표준어에 가까운 표현으로 바꾸는 정도였다.
윤사무엘 목사 주장
400년 전 킹제임스 번역위원회가 사용해 온 사본보다 현재 고고학 혹 사본학이 더 나은 사본을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반론
보편적인 사본학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예가 1947년 2월, 아랍계열의 한 베두인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한 동굴을 발견하면서 획득하게 된 사본들이다. 고고학자들은 10년 동안 동굴 주변에서 발굴 작업을 하며 수백 개의 사본을 발견했는데, 사해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사해 사본(혹은 두루마리)이라고 한다. 이때 발견된 문서는 B.C. 200년경부터 A.D. 13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윤 목사는 시내 사본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약 사본인 P52(편집자 주: P는 파피루스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8장 31∼33절과 37∼38절이 포함)는 1920년대에 이집트에서 획득되었다. 오늘날은 킹제임스성경은 물론 초기 영어 번역본들이 나올 때 보다 몇 백 년 앞선 사본들을 보유하고 있다.
윤사무엘 목사 주장
안디옥 학파의 The Latin Vulgate(A.D. 120년) 성경이 비공개적으로 일반 성도들에게 퍼지면서 당대 가장 권위 있는 성경으로 자리 잡아 가자 당시 다마수스 교황은 라틴 교부이자 저명한 하자인 제롬을 시켜 위조 라틴 벌게이트를 만들게 하였고, 그것으로 원래의 라틴 벌게이트를 대체 시켰다.
반론
라틴 벌게이트는 A.D. 382년 다마수스 교황이 제롬(히에로니무스)에게 위임해 만든 성경이다. 이 성경은 윤 목사의 주장처럼 의도적인 변개를 위해서가 아닌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로마교회 지도자들은 고대 라틴 번역판의 불완전성을 일찍이 인지했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라틴어 사본은 번역이 가지각색이어서 통일된 더 나은 성경이 필요했다. 또한 라틴어는 A.D. 3세기 경 그리스어를 대체한 학술어가 되었는데 “신학적이고 예전적인 사용을 위해 통일되고 신뢰할 만한 라틴어 성경 본문이 절실히 필요”1)했다.
윤사무엘 목사 주장
존 위클리프가 고대 라틴 벌게이트를 대본으로 최초의 영어 신약전서를 번역, 출판했다. 이것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위클리프가 죽은 뒤에 그의 시체를 파내어 다시 화형을 시켰다.
반론
가톨릭에서 위클리프의 시신을 꺼내 불태운 이유는 그가 고대 라틴 벌게이트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승인하지 않은 성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세는 황제나 교황이 승인하지 않는 성경을 만들 수 없었다. 또한 위클리프는 “종교개혁의 샛별”이라고 불리는데, 교황의 권위에 문제를 제기하고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으며 화체설을 부인했다. 그가 후에 이단으로 정죄 되고 시신이 불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위클리프가 라틴어를 영어로 옮겼다면, 원어를 영어로 옮겼던 윌리엄 틴데일도 종교재판을 받아 화형을 당했는데 이 역시 교황이나 황제에 의해 승인되지 않은 성경을 출판했다는 이유에서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1603년 영국의 왕이 되면서 제임스 1세로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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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주장
필리핀뿐만 아니라 싱가폴, 인도네시아, 인도, 러시아, 몽골, 남미, 아프리카, 유럽도 대다수가 킹제임스 역을 존경하고 있고 유일한 권위역 “The Authorized Version”으로 남아 있다. 한국교계만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세계 기독교계로부터 왕따 당하고 있다.
반론
킹제임스성경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더 나은 번역본이 나오기 까지 그 권위가 인정받은 것은 맞다. 하지만 세계 여러 국가에서 유일한 권위역으로 남아있다는 주장은 극단적이다. ‘The Authorized Version’은 시대적 용어다. 1603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왕이 되면서 제임스 1세라 불리기 시작한다. 이 제임스 왕의 승인 하에 만들어진 성경이 킹제임스성경이고 왕이 승인하였기에 ‘The Authorized Version’ 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적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1) 필립 W. 컴포트 엮음, 『성경의 기원』(엔크리스토, 2010), 248.
조믿음 기자 bareunmed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