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교회의 바람직한 관계

신학은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의중을 성경의 계시에 반영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경륜을 사유하는(thinking of God’s thought) 과정이 신학 하는 과정이다혹자는 이것을 계시의존적인 사색이라고 불렀다그러나 이 과정은 단순히 인지적인 과정(cognitive process)만은 아니고성령이 개입하시는 일종의 하나님 사건(doxological process)으로 말할 수 있다다른 말로 신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사건으로 파악되어야 한다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전인적으로 인지되고 경외의 대상으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유태화 교수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이러한 만남의 사건으로서 신학은 두 가지 차원의 결과를 가져온다하나는 하나님께 인간이 수용되는 경험에 이르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배제되는 경험에 직면하는 것이다인간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따라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허물과 죄가 벗겨지고그에 수반된 기존의 세계관과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의 사유를 수용함으로써 올바른 삶을 노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기에 어느 정도의 격려와 도움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기도 한다이것이 인간이 신학을 하면서 경험하는 두 다른 세계이다.

이런 맥락의 논의는 신학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 교회와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신학은 개인의 과업이라기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과업이라고 해야 바를 것이다교회에 위임된 권세 가운데 가르치는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교회는 신앙고백공동체로서 성경에 기반 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바르게 전수해야 할 책임이 있기에신학교를 세우고 신학을 교육하기를 힘써야 한다이러한 작업을 하되하나의 고립된 교회로 남지 않고 공교회로 온전히 서기 위해서 교회의 선조들과의 건전한 신학적인 사귐을 이루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그런 점에서 신학을 수행하는 것은 개인의 신앙고백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교회 공동체의 과제임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교회는 신학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에 근거하여 활동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거듭난 바로 나와 같은 신자들의 모임이다나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현실적으로 보면 내가 문제를 지닌 존재인 것만큼 교회는 문제를 지닌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그리스도 예수의 속량과 의의 전가에 근거하여 칭의된 자들의 모임이지만현실에서 볼 때는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칭의 되었다는 점에서는 거룩한 자들의 모임이지만현실적으로는 극복해야 할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영광을 지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와 함께 실존하지 않을 수 없고더욱이 그 문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 안에 존재할 것이다따라서 신학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은 마땅한 자리를 명확하게 인지하도록 하면서 자신의 생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환언하여교회는 칭의된 것을 인하여 감사하되온전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반성해야 한다기존의 가치관에 대하여 죽고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나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일방적인 능력으로 홍해를 건넌 사람들에게 시내산에서 주어진 규범적인 율법 앞에 선 모습과 흡사하다규범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노정해야만 하는 과제가 하나님의 이스라엘 혹은 교회에 주어진 것이다.

 

  

이로써 계시에 반영된 하나님의 사유를 사유하는 신학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주어진 은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은혜에 근거한 삶의 모습을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할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환언하여신학은 교회의 긍정적인 부분을 독려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왜곡되고 부족하고 과장된 것을 지적하는 형태로 수행될 수밖에 없다흔히들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그것이 교회를 맹목적으로 편드는 형태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그 의미가 정확히 반영된 것이 아니다신학이 교회를 위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말은 현실의 교회가 붙잡고 가야 할 것과 버리고 가야 할 것을 정확히 안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신학은 긴장국면에서 수행되어야만 한다이 긴장을 깨트리고 어느 것 하나에로 환원되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신학하나님과의 만남이 반영된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신학의 올바른 길에서 이탈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현실이 그러하기에 미래의 목회를 준비하는 신학생들은 신학수련의 과정을 통하여 교회를 객관화하는 과정을 먼저 밟아야 한다신학을 수행하는 학생은 냉철한 눈으로 현실의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는 과정을 힘들고 지치지만 겪어내야 한다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은 교훈과 관점을 가지고 교회의 구성원으로 실존적으로 다시 돌아가 올바른 교회를 추구해야 한다신학도는 한편 교회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다른 한편 교회로 새롭게 다가서는 이런 과정을 거칠 때교회를 똑바로 볼 뿐만 아니라 살리는 신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를 하는 목사나 신학을 수행하는 목사나 사실은 한 방향을 향해서 함께 가고 있는하나님의 사역자이다더불어 계시에 반영된 하나님의 사유를 사유하며그것이 현장의 목회를 통하여 수렴되도록 일하는 신학도이자 목회자이다서로의 은사를 존중하고그 은사가 수행되는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성경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 사이의 긴장이 드러나는 성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미묘한 긴장의 과정은 계시의 인지적 측면과 실존적 차원에 직면하는 과정에 다르지 않은 것으로 경험되어야 한다둘 다 계시에 의존하면서 수용과 배제를 집요하게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서로의 관점이 존중되어야 하되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맹목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나 공허한 비판에만 머무는 것은 올바른 목회를 위한 길에서나건전한 신학의 길에서도 멀어져 있는 불행한 모습일 뿐이다그런 바탕 위에서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유태화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bareun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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